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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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기다려요, 운전기사 양반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요
이 편지 몰래 건네주고
몰래 답장 받을 수 있게
해 줄 수 없겠어요

잠깐만요, 상대방 이름
묻는 건 촌스러워요
노래 가사에도 있잖아요
남의 연애를 방해하면
창가의 달마저 얄미워요
안 그래요, 운전기사 양반

車屋さん 미소라 히바리


미소라 히바리 50주년 히트곡을 들으면서 리뷰를 쓰고 있다. '가나시이 사케(슬픈 술)'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심수봉이 박정희 앞에서 불러서 '니가 일본애냐' 어쩌구 했다는 그 노래다.) 50주년에 나오는 꽤나 흥나는 노래들 듣고 있자니, 괜시리 어깨가 들썩거린다. ' 운전기사 양반'은 심지어 빅밴드 스타일의 신나는 노래다.

왠 엔카가수 얘기로 이리도 잡설이 기나. 할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고 이렇다 할 장점도 없지만 일상생활이 안정되어 있어 포근한 행복 속에 사는 탐정' 을 그리고 싶었다는 미야베 미유키. 그녀의 최고작으로 꼽는 '이유' 나 '화차' 등에서의 날카로움과 명정함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이거이거,  꽤나 귀여운 분위기 폴폴 풍기는 작품이다.  이렇게 분위기.에 빠져서 쓰는 리뷰는 대략 콩깍지 리뷰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저 위에 평범하고 이렇다 할 장점도 없지만 일상생활이 안정되어 있어 포근한 행복 속에 사는 스기무라 사부로, 재계의 내노라하는 회장님의 첩의 딸의 남편으로 회장님 회사에 직속홍보부( 기업 홍보부 아니고 직속홍보부다. 빌딩이 아니라 뷜딩에서 일하는) 회장님 딸인 나오코는 심장비대증으로 몸이 약하지만, 씩씩하다. 나오코와 스기무라 사이에는 모모코라는 저행성에서 온 것 같은 귀여운 딸이 있다.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장치들이 이 소설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미소라 히바리도 그 중 하나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운전기사 양반' 이라는 노래가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른다.

사건. 은 이렇다. 회장님의 개인 운전기사인( 회사 운전기사 아니고) 가지타가 자전거에 치어 죽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자전거에 치어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혀) 가지타의 두 딸은 가지타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하고, 과거 출판사에서 일했던 전력이 있는 스기무라에게 그들을 도와주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조금조금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답지 않게 제대로 얄밉게 나오는 한명을 제외하고는 안팎으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묘사 또한 아주 맘에 든다.


마지막의 놀라운 이야기는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좀 엇도는 느낌이 있어서 별 하나 뺐다.
일단은 맘에 드는데, 미야베 월드 다음 권인 '누군가'의 속편인 '이름 없는 독' 도 재미있다고 하니, 기대만빵이다.

모또 바까아에~ 구루마야아아 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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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7-03-09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평범한데 환경은 평범하지는 않은데 솔직히 부럽네요. 우리들끼리 농담삼아 이야기하는 XX의 XX인 셈이니...^^ 저도 낮에 극장에 자주 가봐야겠습니다. 흐핫
 
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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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읽는 온다 리쿠의 작품
이 책은 뭐랄까, 소품같은 느낌이다.책의 내용도, 양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현저히 얇고 적다.( 더 얇아 보이는 ;굽이치는 강가' 와 '여섯번째 사요코'가 내가 아직 안 읽은 온다 리쿠의 책들이다)

 크리스마스에서 정초까지의 연말, 아주 오래된 건물의 명문사립고 기숙사에 남은 네명의 각기 다른 개성의 미소년 ( 내가 온다 리쿠의 정체를 이미 알아버렸단 말이지. 순정만화, 아니 순정소설 작가. 0_0) 무튼, 그런 시간 속에, 그런 장소 속에, 그런 인물들이 나와서, 각자의 으시시한 비밀들을 하나씩 이야기한다. 카드게임에 져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남에게 들켜버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각자의 비밀들. 그리고 그 비밀들이 생긱게 된 원인들을 파고 드는 것은 '흑과 다의 환상'의 수수께끼 풀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 이야기가 심각하건 어쩌건, 작가의 말대로 '훈훈한 결말'로 끝나는 ( 왜 아니겠는가, 순정소설 작가인데)
이야기. 각기 개성을 지닌 소년들의 테니스게임이라던가, 강둑을 달린다던가 하는 장면은 상큼했다. (그니깐, 순정만화에 입 헤벌리는 식의 상큼이다)

이때까지 온다 리쿠의 책이 '착하다' 는 이유로 싫었던 적은 없는데, 이야기도 없고, 착하기 까지 하니, 아무리 간지와 요시코노와 미쓰히로, 오사무가 귀엽더라도, 별은 두개 이상 못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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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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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러고 보니, 표지의 글씨 써주신 박원규님 얘기 어제 술자리에서 한참했는데,
내 가방 속에 그 분 글씨가 들어 있는 줄은 몰랐네.

드디어 이광주의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을 다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필자들, 유재원이라던가, 유재현이라던가 이주헌이라던가 ( 왠지 이름이 다 비슷;)
에 이광주를 추가.

유재원의 글처럼 시적이거나, 유재현의 글처럼 유머가득하고 따뜻하다거나 이주헌처럼 바르고 착한 느낌이 팍팍 나지는 않지만, 호모 루덴스로서의 말그대로 지적 편력 놀이에 꼭 맞다.

그 놀이에 동참하는 것은 간만에 즐거운 고전놀이였다.

저자의 첫 마에스트로는 괴테이다. 첫 챕터인 '유럽, 나의 지적 편력'과 '지중해 찬가'에서 그가 이 책에서 돌아보고자 하는 그의 마에스트로들에 대해 잘 버무려 놓았다. 좋은 시작이다.  만만치 않은 이름들이 나오지만, 마음 편히 먹고, 아벨라르, 유럽 최초의 지식인에서부터 그의 편력을 쫓아가면 된다. 지위와 부를 버리고 '변증법'의 무기를 지니고 담론의 싸움을 선택한 아벨라르의 이야기. 뒤에 나오는 엘로이즈와의 사랑 이야기는 꼭 더 찾아서 읽고 싶다. 항상 젯밥에 더 관심이 많다.

두번째 마에스트로,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 챕터는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다. Nulli concedo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습니다.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으로 학교다닐때 교과서에서 본 것, 그리고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를 내셔널뮤지엄에서 본 것 말고 그에 대한 나의 지식은 전무했다. 가장 격렬한 종교혁명의 한 중심에 서서 아무곳에도 속하지 않고, ' 나는 비극 배우보다는 오히려 관객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던 에라스무스. 이광주는 한 세대의 위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그들 저서 또한 풍부하게 인용해 두고 있으며, 에피소드들도 실감나게 소개하고 있다.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를 다음에 읽을 책으로 사 두고, 페터 회의 '여자와 원숭이'( 에라스무스 사랑을 말하다) 의 원숭이 이름이 에라스무스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시 고민해본다.

세번째 마에스트로, 몽테뉴. 
시민 계급 출신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아주 어릴적부터( 두 살때부터 독일에서 초빙된 라틴어 학자를 가정교사로 두고) 학구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 어릴 적부터 받은 고전 세례에 더해 그의 뛰어난 인간에 대한 관찰력과 천재성은 일찌감치 그를 범인의 경지에서 위인의 반열로 올려 놓았다. 그는 '독서를 즐기고 글쓰기에 나날을 보낸 서재인이기에 앞서, 담론과 사교를 즐긴 모럴리스트이며 에스프리의 인간, 그리고 오네톰(honnête homme ) 이기도 하였다' 몽테뉴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수상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서재인으로서의 몽테뉴 말년에 대한 이야기 등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키워 놓아 기어코 '수상록'을 장바구니에 넣고 만다.


 

 다음 챕터는 괴테. 저자는 괴테에 대해 가장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고, 그 지식의 깊이도 깊은듯하다. 그렇기에 가장 짧은 챕터? 혹은 그나마 내가 아는 괴테이기에 이 챕터는 그닥 신기하지는 않았다.

다음 주자는 부르크하르트, 낯선 이름이었고, 왠지 집중도 안 되었는데, 내 탓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 다음은 츠바이크. 이 책 전에 막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를 끝낸지라, 그리고 츠바이크의 책들은 많이 읽었지만, 그에 대한 글은 막상 읽은 적이 없기에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말년의 우울, 그리고 자살로 마감한 천재의 인생은 새삼 충격적이었다.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의무를 짊어지지 않는, 그럼으로써 모든 나라에 대해 차별 없이 속하게 되는 그런 무국적의 상태라면 그것은 얼마나 좋을 것인가' 라고 말하는 츠바이크. 그가 쓴 사람들에 대해 열광하면서, 난 왜 지금까지 그를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역시 예전에 사 놓은 책이다. 츠바이크의 책은 이 책과 '발자크 평전' (안인희 번역본도 사고 싶다), '에라스무스 평전' 이 남았다.

스펜더, 교양 있는 좌파. 역시 이 책에서 처음 접했고, 발레리에 대해 읽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수확. 클림트를 읽는 것이었다. 클림트야 너무나 잘 알려진 화가이고, 예전부터 좋아했었지만, 그가 산 시대 세기말 비엔나를 읽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울 듯하다.

다음은 윌리엄 모리스의 이야기
19세기의 진정한 르네상스맨.
그의 사인을 묻자 주치의는 "윌리엄 모리스였던 덫이 주요한 원인이었습니다'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1인분의 인생에 몇 사람치의 일을 한 까닭이었다는 것이다.
건축, 인테리어, 미술, 시詩, 출판,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연구대상이다.

마지막으로 호이징가와 베토벤 이야기.

인문학 이야기만 나오다가 마지막 마무리가 베토벤이다.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은 워낙에 오래 보관함에 들어 있던 책이긴 하다만,
다시 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다.

이 책, 이광주의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 은 보기 드물게 예쁘게 나온 책이다.
책의 내용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내용이거니와 도판도 최상의 질로, 참으로 세련되게 삽입되어 있어서( 요즘 나오는 책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다) 옆에 있어도 보고싶은, 아니, 가지고 있어도 소유욕이 드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다 훌륭하고, 체인리딩, 이 책을 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리라는 점에 있어서 더욱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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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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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여대제 마리 테레지아의 딸이었고, 프랑스의 루이 16세에게 시집와 프랑스의 어머니가 되었어야했다. 그러나 그녀는 왕인 남편을 무시하고 귀족사회를 쥐락펴락하며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프랑스 혁명에 의해 단두대에서 참수형을 당한다. 프랑스에 가면 그 화려하다는 베르사이유궁이 있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트리아농성이 있다.

이 여인과 이 여인을 둘러싸고 미친듯이 굴러가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조명했다. 워낙에 드라마틱한 그의 글은 오스트리아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그야말로 펜대가 빛을 뿜고 종이 위를 날아가듯이 현란한 비유와 묘사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이 여인네의 시작과 결말을 모두 알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독자를 18세기 프랑스에서 유례없는 사치와 쾌락의 현장으로, 미친 혁명의 돌풍이 부는 바로 그 곳으로 끄잡고 들어간다. 500여페이지가 넘는 힘든 독서였다.

츠바이크의 전기들들은 그 인물들에 대한 열광적인 연서도 아니고, 날카로운 비판서도 아니다. 그녀에 대한 이 책의 어조는 '안타까움'이지 않을까. 모든 퇴폐와 악은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시작된듯하지만, 수 많은 갈림길에서 항상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아니 그보다 더 나쁘게 결정 자체를 내리지 못했던 루이 16세에 의해 혁명은 완성되었고, 왕과 왕비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했다.

'진실이란 대개 그렇듯이 중용에 가까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적인 성격에 유난히 영리하지도 유난히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중략) 그렇지만 평범한 혹은 아주 나약한 천성의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또 무시무시한 개인적인 책임에 몰릴 때에도 비극은 발생한다. 필자는 이런 형태의 비극을 보다 인간적인, 보다 통절한 비극으로 생각한다. '

이 책에서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직선적인 성격의 그녀. 사치와 쾌락을 쫓을 수 밖에 없었던 성적 억눌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의 공적이 되어, 새로운 국민의회 세력의 좋은 먹이감이 되어 중상모략과 모욕, 사형선고에 이르기까지, 점점 의연함을 찾아가고, 강인한 왕비로 거듭나는 모습들을 츠바이크의 유려하다 못해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글로 생생하게 접한다.

'지루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 던 그녀는 어머니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 페르센을 만나면서( 이 이야기는 좀 더 뒤에 나온다) 철 없는 왕비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가장 완벽한 모습의 지고한 존재인 '어머니'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 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수 많은 시련과 고통은 그녀의 피에 흐르는 합스부르크왕가의 고고함을 깨웠고, 그녀를 자식에 대한 연인에 대한 사랑과 왕족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세상 전체에 맞서게 한다.  

그녀의 조력자였던 귀족들, 결국 파멸을 초래한 당사자이고, 오랜 세월 그녀의 무시를 받아왔으나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녀에게 잘 대해줬던 루이 16세.
프랑스 혁명은 필연이었고, 운명이었다. 왕으로서 왕비로서 그들의 역할은 각각의 평범하지만 극적인 성격들로 인하여 서로의 약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으며 결국은 프랑스의 왕권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우연들과 악의들, 공포들이 모이고 모여, 왕과 왕비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을 치게 했는지, 책을 읽다보면 놀랄 지경이다.

그녀를 보는 모두를 자기 편으로 만들었던 사랑스러운 열여섯의 소녀는
그 품위와 발랄함과 나긋함으로 감옥에서조차 그의 조력자와 하인과 친구를 만들었으나,
한 번 쏘아진 혁명의 화살은 그녀의 목을 요구했다.

재산을, 친구를, 왕비의 지위를, 남편인 왕을, 그리고 자식까지 빼앗기고, 그녀의 권위와 자존심마저 혁명의 도시에서 걸레가 되어버린 마지막 길. 그녀에게 죽음은 안식이었다. 사형선고는 이 세상과 이별하라는 선고가 아니라, 루이16세를 만나러 가라는 선고.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의연하게 잘 대답하고, 잘 죽는 것이다. 서른몇살의 나이에 백발이 되어버린 그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남은 모든 힘을 모아 의연하고 강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마리 앙투아네트 마지막 가는 길. 아래는 다비드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다. 다비드에 대한 츠바이크의 묘사가 흥미롭다. ' 생오노레 가 한모퉁이, 요즘 카페 드 라 레장스가 있는 곳에 한 남자가 손에 연필을 들고, 종이를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가 바로 가장 비열한 인물이며, 또한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던 루이 다비드였다. ( 중략) 그는 종의 근성과 비겁함이 천성이기는 했지만, 뛰어난 눈과 정확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종이에다 형장으로 가는 왕비의 모습을 그렸는데 놀랄만큼 뛰어난 스케치였다. '


'입은 거만하게 다물고, 속으로 외치고 있는 사람처럼, 눈은 냉담하고 손을 뒤로 묶인 채 마치 왕좌에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죄수 호송마차에 꼿꼿이 앉아 있는 여자를, 돌처럼 굳은 얼굴 윤곽에는 말할 수 없는 경멸이 흘러내리고, 솟아오른 가슴에는 흔들리지 않는 결심이 엿보였다. 인내는 고집으로 변하고 고통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힘이 되어 이 괴로운 인간에게 무시무시한 위엄을 주었다. 증오심조차도 훌륭한 태도로 죄수 호송마차의 굴욕까지 극복하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품위를 이 종이 위에서 배제시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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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2-1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사마천 2007-02-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만한 책이네요. 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와인병에 빠져서 푹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독서도 꾸준히 ^^

하이드 2007-02-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와인, 책, 반신욕이 이즈음의 화두에요. 츠바이크의 책 중 만족하지 않은 책이 없지만, 이 책처럼 호흡 길면서도 시종일관 급박한 책은 처음이네요. 몰랐던 여러 에피소드들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압권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에 비해 훨씬 현란한 글솜씨도( 단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눈에 띄였습니다.

비연님, 책 두껍고, 커서 (보통 책들 23줄, 이 책은 한페이지에 28줄이나 되어서, 며칠을 붙들고 있었네요 )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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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환상리얼리즘으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 이 책에서 그의 상상력은 무섭고 치떨린다.
어느날 교차로 파란불을 기다리던 맨 앞줄의 차에서 비명이 들린다.
' 앞이 온통 하얘.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지나가던 이가 그의 차를 운전해서 그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는 막상 차를 훔친다. 맨 처음으로 눈이 먼 자는 병원에 간다. 그의 상황을 응급으로 본 간호사와 백내장걸린 노인, 검은 색안경 쓴 여인, 사팔뜨기 소년은 갑자기 눈이 먼 그에게 먼저 진찰을 받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씩 눈이 멀어간다.

정부에서는 이를 '백색의 악惡' 전염병으로 보고 그들을 정신병원에 격리시키고 군대를 배치한다.
전염자( 눈먼자)와 보균자로 나뉘어졌던 그들은 점차 하나가 된다. 눈이 멀게 된다.

전 세계는 눈이 멀게 된다.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이 남편을 위해 눈이 먼척 병원으로 쫓아들어와 헌신과 희생으로 눈먼자들을 돌보고자한다. 그녀는 이 세상에 '눈이 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눈을 통해 당연히 가지고 있었던 것. 을 박탈당하고 격리되어 있는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의 흉측한 성질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들은 눈만 먼 것이 아니다. 음식이 없고, 밖으로는 군인들의 총부리에 의해 격리되고, 안에서는 총을 가진 눈먼 깡패에 의해 시달림을 당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가치를 시험당할때 눈 먼자들 내부의 인간성은 눈을 감고 외면하고 굴종한다.

마침내 군인들까지 다 눈이 멀어 수용소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때
그들은 바깥 세상마저 눈 멀게 되었음을 알고, 어떻게던간에 삶을 유지하고 있는 '유령'같은 무리들을 만난다.

이 책은 '도시우화'다. 이야기책 속에서만 일어나야하는 인간성의 시험.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내가 눈 감지 않게 하소서( 눈 뜬 장님이 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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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2-1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우화일듯.... 재밌을 것 같군요.

moonnight 2007-02-1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한 책이죠. ㅠㅠ; 읽는 내내 어찌나 무섭고 두근거리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