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형법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9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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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읽는 존 딕슨 카. 아직 멀었나보다. 네 작품이 각기 특색 있어서 한 사람이 썼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제쯤... 하면서 <화형법정>을 잡았건만, 에필로그까지 읽고 벌떡 일어나 버렸다.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에드워드 스티븐스는 실제 일어났던 기괴한 사건들을 연구해서 쓰는 인기작가의 원고에서 아내 마리와 꼭 같은 모습의 여자 사진을 발견한다. 17세기 독살범으로 교수형 당한 그녀는 자신의 아내와 이름마저 꼭같다. 의심의 싹을 틔운채 집으로 돌아오고, 목욕하고 나온 사이 사진이 없어진걸 보고 더욱더 아내를 의심한다. 더 추궁하려던 찰나에 이웃의 마크 데스파드가 와서 얼마전에 죽은 자신의 백부가 자연사가 아니라 독살 당한 것 같다며, 납골당을 파 시체를 검시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밀실살인으로 유명한 존 딕슨 카. 그는 본격파이지만, 납득하기 억울한(?) 트릭들도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트릭은 그가 영향을 미친 많은 후배작가에 의해 베껴진 것이라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두가지 밀실이 나오는데, 납골당을 파헤쳤으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과 하인이 백부에게 독약이 든 잔을 내미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 여자가 벽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화형법정>은 존 딕슨 카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인데, 여기에는 펠 박사나 메리발경은 나오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브루넬 경위나 범죄작가 고든 크로스는 이 작품에서만 등장한다. 처음 나오는 에드워드와 마리 부부, 그리고 데스파드 집안의 마크와 루시 부부, 마크의 비뚤어진 동생 오그덴과 이디스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욱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고, 본격 작품 치고, 전형적인 캐릭터들을 뛰어넘는다. 

1930년대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벌어진 독살 사건에 감쪽같은 밀실 살인사건과 더불어 17세기에 남자를 독살하던 마리 도브리 후작부인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이야기는 시종 기괴하고 오컬트적인 기운을 내뿜는다. 딕슨 카가 놀라운 것은 몇가지 키워드와 이야기를 던져준 것만으로 그와 같은 분위기를 작품 전반에 흐르게 한다는 것이다.

결말은 요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놀랍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존 딕슨 카의 팬에게는 쇼킹함과 동시에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는 느낌일 것이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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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7-08-12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 고전 읽는 재미에 흠뻑 취하셨군요. 딕슨카라면 <연속 살인 사건> 재밌습니다. 로맨스에 코미디가 잘 버무러져서 아주 즐거워요. 바다건너 최신화제작들이 다투듯이 번역되는 요즘이지만 DMB의 리스트는 아직도 독보적입니다.

하이드 2007-08-12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딕슨 카는 <모자 수집광 사건> 같은 작품이 제일 좋아요. 괴기 유머.<연속살인사건>과 <해골성>이 남았는데, 기대되네요. ^^ 정말요. 동서미스테리 독보적입니다. 계속 좀 나와주면 좋으련만.

비로그인 2007-08-1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서 마지막엔가 그녀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통통통 부엌서 도마질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오싹~

이박사 2009-09-03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이 예술.
 
구석의 노인 사건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63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 지음, 이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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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의 <구석노인 사건집>은 열네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마지막 단편인<구석노인 마지막 사건>에서 나름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의 복선은 전 단편들의 구석 노인 대사에 스며있다.

ABC샵( 빵집) 의 구석에 앉아 있다고 해서 맘대로 '구석의 노인'으로 불러버리는데, ABC샵이 단골인 여기자가 구석 노인에게 당시의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을 듣는 것이다.

염소처럼( 젖소처럼이던가? 늙은 고양이던가? 무튼) 우유를 마시며, 끈으로 매듭을 복잡하게 지었다 풀었다 하면서 무능한 경찰을 동정(?) 하며, 사건의 범인과 트릭을 거침없이 말한다. 그 빵집의 구석에 앉기 전에 이미 발로 뛰어 조사를 끝낸 사건들이다. 왜 그를 안락의자 탐정의 전형이라고 하는지는 의문이다.

독자와 함께 사건의 해결을 듣고, 독자를 대신해 가끔 질문도 던져주는 여기자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제외하곤 철저히 독자이자 청자이다. 너무 역할이 없어서 구석할배 일인극 같다.

열네편의 단편에 나오는 트릭들은 수작들이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감정 과잉까지는 아니더라도, 탐정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익숙한지라, 트릭, 해결, 트릭, 해결의 구조는 밍숭밍숭했다.   

각 단편의 사건 해결은 진정한 사건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구석노인은 경찰의 협조자가 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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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8-11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름만 알던 고전을 직접 읽는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읽었어요.^^;

하이드 2007-08-1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래도 주인공이 좀 못되서 좋았어요 ^^a 이거 읽고 바로 <화형법정>읽었는데 거기에 구석노인 나오더라구요! 바로 복습- 하고 뿌듯했지요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7
존 카첸바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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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정신병자가 20여년전의 그 병동에서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사진과도 같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그때의 일을 되살려 벽에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스물 한살의 나이에 엠뷸런스에 실려 그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고, 생애 처음으로 가지게 된 친구 소방수 피터는 그에게 바닷새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사내가 다시 프랜시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름이 뭔가?"
"프랜시스 패트럴."
그 사내가 미소 지었다. "패트럴이라. 멋진 이름이군. 희망봉에 흔히 있는 작은 바닷새지. 여름 오후 때면 그 새들이 파도 위를 스치듯 날며 물보라 속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보인다네. 아름다운 동물이야.하얀 날개를 일 초에 여러 번 퍼덕거려서 힘도 안 들이고 미끄러지듯 솟아오르지. 눈이 아주 좋아서 파도 속에 숨은 까나리나 청어를 찾아내다네. 시인의 새가 틀림없어. 자네도 그렇게 날 수 있나, 패트럴?"

교회에 불을 지르고 들어온 소방수 피터,그는 참정용사였고, 유능한 방화조사관이었다. 냉철한 분석력으로 방화범을 찾던 그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병원 밖의 사람이다.  비정상이 정상이고, 비일상이 일상인 그 곳에 스며든 병원 밖에서 온 피터와 연쇄살인의 범인을 쫓아 정신병원으로 뛰어든 여검사 루시는 그 안에서는 정상인 바닷새와 함께, '천사' 라는 별명을 가진 악마를 쫓는다.

존 카첸버그라는 작가는 놀랍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Madman's The Tale>에는 정신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광기는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는 집착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병원에 던져진 유일한 정상인인 피터와 루시 또한 '광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순간부터 독자는 가장 정신이 나간듯한 바닷새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보고 있음을 퍼뜩 깨달을 것이다. 정상에 묻히고 싶은 인간의 욕망. 적어도 이 소설 속에서만큼은 '누구나 좋아하고, 존경하고,의지하는' 소방수 피터보다, 성범죄 전담반 반장으로 젊은 날의 상처를 삶의 목적으로 승화시켜, 성범죄자들을 잡아 넣으며 승승장구해 온 루시보다도 누구보다도 연약하고 섬세하며 환청에 시달리는 바닷새 프랜시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될 것이다.

'불과 몇 주 만에 겨울의 잔재가 암울하게 패배하면서 물러날 즈음' 과 같은 표현이 책에 널려 있는것은 등장인물들의 뛰어난 심리묘사(그것이 얼마나 스릴을 배가시키는지 이 소설에서 새삼 깨달았다)와 함께 이 작품이 보통의 스릴러가 아님을 말해준다. 게다가 클라이막스에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작지만 결정적이 사건은 근래 만나기 힘든 두근거림을 주었고, 에필로그격인 결말은 얼마전<타인의 삶>이라 영화의 마지막에서 느꼈던것과 비슷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었다.

오래간만에 전작을 읽고싶은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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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8-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혹시 쓰다 만?
마무리 할 때, 세번째 문단, 참정용사도 기왕이면;;;;

2007-08-10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7-08-1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언제 자물쇠가 풀렸지? ^^; 제보 감사해용-

와글와글 2007-08-1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제목부터가 확 당기는데요~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이라.....빠른 시일내에 읽어보고 싶네요~!! ^^
 
Y의 비극 동서 미스터리 북스 4
엘러리 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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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이 '버나비 로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던 드루리 레인 4부작 뿐만 아니라, 엘러리 퀸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칭송받는 작품중에 하나이다. 셰익스피어 배우 드루리 레인이 등장했던 첫 작품 <X의 비극>에 소소하고 기발한 트릭이 있었다면, <Y의 비극>은 등장인물의 면면부터가 드라마틱하다. 기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해터가는 '미치광이 해터가'로 불리는데, 에밀리 해터라는 철의 여인을 필두로 주정뱅이 콘라드, 쾌락주의자 막내딸 지일, 장녀이자 천재 시인 바바라, 그리고 에밀리와 전남편 사이의 딸 루이자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에 장님이다.

'연극은 말하자면 만찬이고……프롤로그는 식사 전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프롤로그는 실종되었던 부호 요크 해터가 독살된 시체로 뉴욕만에 떠오른 것이다. 독살은 자살로 판명나고, 그로부터 두달후 해터 집안에는 독살시도와 살인, 화재등 의문의 사고가 불길하게 연이어 일어난다. 전편에 등장했던 샘경감과 브루노 검사는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는 골치 아픈 사건을 가지고 햄릿장을 찾는다.

해터 집안에서 외부인이자 에밀리 해터의 저주받은 핏줄이 아닌 요크 해터와 콘라드의 부인인 마사 해터는 어느 하나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가족들 사이에서 점점 말라간다. 요크 해터의 자살은 필연적이었고, 불행하고 비극적으로 치닫는 결말 역시 예견되었다.   

 <X의 비극>에서 은퇴한 국민 배우의 모습과 위상을 지닌 드루리 레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의살아온 배경과 그가 살고 있는 햄릿장과 식솔들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다운 현학과 약간의 염세까지를 보여주었다면, <Y의 비극>에서는 드루리 레인에 대한 설명과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대폭 줄었고,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다만, 그 결말을 볼 때, 드루리 레인의 더욱 더 복합적이고 복잡한 캐릭터가 더해졌다면 더해졌다.

트릭의 대담함과 범인의 의외성, 약간은 모호한 결말까지, <Y의 비극>은 걸작으로 손꼽힐 이유들을 두루두루 갖추었다. 드루리 레인은 단 4부작에 등장할 뿐이지만 엘러리 퀸과 대등한 위상인 것만 보아도 알파벳 시리즈의 파워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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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드의 손톱 동서 미스터리 북스 72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박순녀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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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가드너의 페리 메이슨은 변호사이다. 보통 변호사 아니고, 탐정을 부리는 '싸우는' 변호사.

그 때 여자는 얼굴을 들고 메이슨을 보았다.
"그렇다며 당신은 무슨 일을 하지요?"
메이슨은 내던지듯이 무섭게 대답했다.
"싸웁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메이슨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하는 가장 큰 특징은 '의뢰인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자신에 대한 의무지. 나는 돈으로 고용되는 투사야. 의뢰인을 위해 싸우는 게 일이지. 나에게 사건을 의뢰하는사람은 대부분 정직하지 못해. 그러니까 의뢰인이 되는 거지. 모두가 제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야. 그러한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건져내는 게 내 직업이야. 그러니까 의뢰인에게는 정직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 돼. 저쪽이 나에게 정직하게 대해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말야."

정의로운 행동파 투사인 메이슨은 <비로드의 손톱>에서 의뢰인을 구하려다 살인누명까지 쓰고 기자, 형사, 탐정에게 쫓기는 몸이 된다. 의뢰인은 비로드 안에 손톱을 감춘듯한 요부 이바 글리핀이다.

사건에 기민하고 억울하게 대응하는 페리 메이슨과 그의 유능한 비서 델라 스트리트 콤비는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델라는 꽤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안티를 양상할법도 하지만 말이다.

캐릭터라기 보다는 사건 진행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인 여비서 델라라던가, 어린척 하며 입만 열면 거짓말인 이바 글리핀이라던가,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이보다 더 한심할 수 없다' 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말그대로 술술 넘어가는 책이니, 가끔 불량식품 먹는 기분으로 읽어주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삼일만에 썼네, 사일만에 썼네 할때 독자의 반응은 '대단해!'이거나 '역시!' 둘 중 하나일텐데, 얼 스텐리 가드너가 사일만에 썼다는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맞긴다.

이 책의 빼 놓을 수 없는 좋은 점은 책 뒷편에 '카가미'라는 (아마도 일본인) 평론가의 얼 스텐리 가드너론이 나와 있는 것인데,  이것이 꽤나 알차다. 그것을 읽고 얼 스텐리 가드너를 덜 미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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