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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읽었다. 재밌다.
550페이지에 달하는 '손에 입맞춤하는 것'이 가장 높은 수위인 세기의 연애소설.
책 보고 영화 봐야지. 하는 맘에 주말이 오기전에 부지런히 읽었는데, 그럴 필요 없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러 연애 이야기들은 그동안 너무 욹어먹어서 새롭지 않은건 물론이고, 식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다행히 식상하지 않고 무척이나 재미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그마만큼 보편적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밝은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묘사된 인물들을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와 우리의 다아시경( 우리의 다아시경이라고 해도 누가 뭐라그러겠어. 그는 어짜피 예나 지금이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인걸) 의 알콩달콩 연애얘기와 감초로 제인과 빙리씨의 연애 이야기, 또다른 동생과 또다른 남자의 연애이야기도 물론 재미있고, 결말도, 클라이막스도 맘에 쏙 들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흥미로움 또한 이 소설을 읽고 또 읽게 만들어준다.
엘리자베스는 쾌활하고, 자기주장 분명하고, 활동적이며, 밝고, 뒤끝없으며, 지적인 여자다.
다아시경은 너무 잘나서 잘난티 팍팍 내고 다니는 그러나 알고보면 마음은 따뜻한, 게다가 여자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함) 어떻게 보면 가련하고,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이다. 수많은 연애소설, 로맨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무수히도 보아왔기에,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다만.
제인. 엘리자베스의 언니이자 베넷가의 첫째딸. 외모는 가장 아름답지만, 성격도 가장 아름답다. ( 말이 안되지? 말 안된다.쳇) 내숭파는 아니고, 천성이 선하고 착해서 '사물을 좋게만 보는' 희귀한 재주를 가진 여자다. '선한 천성'은 의외로 그녀의 '침착한 성격'을 끌어내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게 한다. 그녀의 앞날에 나쁜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착한 주인공'에 심하게 알레르기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인은 선하다' 는 명제는 그냥 인정해버릴 수 밖에 없다.
베넷씨. 다아시경은 그를 그리 좋지 않게 평가했지만, 나는 여기 등장인물 중에서 다아시경만큼이나 베넷씨가 좋다. 그의 비꼬인 유머감각은 최고다. 내 맘에 쏙드는 말도 어찌나 많이 하는지. 이 책을 읽는 동안 첫째가는 즐거움중 하나였다. 게다가 게으르다. 내가 이 소설 속에서 한 파트를 맡아야 한다면 난 '베넷씨'가 딱이다!
엄마. ( 이름 절대 생각안난다. 나오긴 하나? ) 평생 신경증을 앓는다고 죽는소리 하는 '이보다 더 경박할 수는 없다' 캐스팅 0순위인 인물이다. 옆에 있으면 얼굴 붉어지고, 딸래미들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
키티. 존재감 없음. 리디아. 별로 안 나오지만 엄마2.
메리. 셋째딸. 어려운 말 인용하려고 애쓰고( 알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곡 불러서 남들에게 깊은 인상 남기고자 하는( 피아노 잘 치지도 못하면서) 난감한, 역시 존재감 희미한 인물. 좀 가련하다.
위콤. 그래, 사실 읽으면서 가끔 휴 그랜트 떠올렸다. 사람 좋은 바람둥이역 잘어울렸는데, 음....
외숙모,외삼촌 . 교양있고, 조카들 일생에 도움됨.
콜린스. 베넷씨가 정말 좋아하는 콜린스. '분별력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교육이나 교제를 통해 타고난 결점을 개선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키울 때 무조건 복종만을 요구했는데, 이것이 그를 아주 비굴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비굴한 성격은 이제 머리는 나쁜데 사람들과 별 교제마저 하지 않는 사람 특유의 자만심과 예기치 않게 일찍 성공한 사람 특유의 자부심에 의해 상당한 정도로 상쇄되었다.... 그는 영부인의 높은 지위에 대한 존경심과 후원자인 그녀에 대한 숭배에, 자만심, 성직자로서의 권위 의식, 그리고 교구 목사로서의 권리 등이 마구 뒤섞여 오만과 아첨, 잘난 체와 비굴함의 혼합물이 되었다.' 고 한다. 죽이지 않는가. 콜린스씨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난 배우지도 않은 속독법으로 책장을 최대한 빨리 넘겼다.
이 외에도 이토록 생생한 인물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주옥같은 대사들. 그들이 어우러져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는걸 읽는건 어찌나 재밌던지. 이들의 공통점은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다. 아무리 잘나고 현명한 주인공이건 잠깐 나오는 조연이건 이 제목에 메어 있지 않은 등장인물들은 없다. 질투,미움,시기,등이 판도라의 상자를 나올때 분명 같이 튀어나왔을 오만과 편견은 삶에서 피해가기 힘든 함정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을 잘 거쳐나왔을때 조금 더 성숙해지고, 혹시 또 아는가 보너스로 다아시경같은 멋진 남자가 따라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