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의 비극 동서 미스터리 북스 38
엘러리 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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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드릭 대니와 맨프리드 리, 두 사촌형제가 창조해낸 명탐정이자 그들의 필명인 엘러리 퀸. 국가 시리즈를 한참 쓰는 와중에 추리소설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버너비 로스. 9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버너비 로스가 엘러리 퀸이라는 것을 밝혔으니, 그 동안의 2인2역은 그들에게 과연 미스테리 작가라는 클리쉐뿐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두고두고 즐겨 말하는 에피소드를 선사하였다.

명탐정 엘러리 퀸에 비견하려면, 이란 명제를 가지고 만들어냈을 명탐정 드루리 레인은 
무대에서 은퇴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국민 배우이다. 비극배우인 아버지와 희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드루리 레인은 탄생은 무대뒤, 막과 막 사이. 어머니는 연기에 대한 무리로 숨졌고, 무대를 전전하며, 가장 먼저 한 말이 '대사'였다는 전설적인 셰익스피어 배우이다. 귀에 병이 생겨, 귀머거리가 되고, 독순술( 입모양을 보고 뜻을 해독하는)을 배워 귀머거리 셰익스피어 탐정이라는 우아하고 고상한 탐정의 모델을 만들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중에 그는 리어왕도 되었다가, 멕베스도 되었다가, 혹은 리처드 3세도 되었다가 하면서, 경감과 검사에게도, 독자에게도 분명한 사실들만을 지적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국민배우로 추앙받는 그에게 가끔가끔 드러나는 염세적인 면모들은 그에게 더욱 빠져들게 할 뿐이다.

드루리 레인 예찬은 여기까지,
X의 비극에서 범인은 X이다. 드루리 레인이 그의 햄릿장을 찾은 샘경감과 브루노 검사에게 '미지의 범인을 X라고 하면..'에서 나온 X인데, 그것이 참으로 미묘하다. Y의 비극과 Z의 비극이 열렬히 궁금해진다.

롱스트리트 & 데이비드 회사의 롱스트리트의 약혼 피로연날, 피로연에 참가한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모여 전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밤, 만원전차 안에서, 롱스트리트는 독코르크알(정말 기발하고 있을법하다!)을 만지고, 죽어버린다.

전차 안의 모두가 용의자가 되고, 그 중에서,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 롱스트리트에게 원한이 있을법한 그의 지인들이 의심을 받게 된다. 특히 롱스트리트의 동업자인 데이비드에게 의심이 집중된다.

두번째로 읽는 <X의 비극>인데, 읽으면서 계속 놀란다. 엘러리 퀸은 '독자에게의 도전장'으로 유명하다. 엘러리 퀸 이후에도 '페어함'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는 작가들은 많지만, 진심으로 이해되는 작품은 거의 없다. 그러나 <X의 비극>에서, 정말로 단서들은 널려 있다. 드루리 레인에게 너무나 분명한 사실들은, 사실 독자들에게도 너무나 분명하다. 한번으로 그치지 않으니, 계속 도전해볼지어다. 그런 이유로, 재독하면서, 널려있는 단서들을 다시 줍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재독임에도 불구하고, 트릭과 범인이 마지막까지 생각 안 났던, 나 같은 경우에는 삼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의 스케일과 이 정도의 트릭'들'을 책 한권에서 몽땅 보기는 쉽지 않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재미를 보장하는 이 소설은 '용두사미'와 거리가 멀다. 마지막까지 힘있게 독자를 휘어잡는 이런 정직하고, 공평하고, 파워 넘치는 추리소설을 보면 행복하다.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완벽한 코스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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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8-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이 남을 추리소설의 명작이죠..^^(근데 그 트릭은 저도 잘 기억이 안 난다는..ㅜㅜ)
저도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추리소설의 고전들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아 좋아요~

Shaylor 2007-08-0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진짜 어이없었던게
Y의 비극 읽는데
책 표지에 꼬마애 그림이 번듯이 있었던거
 
혼징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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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민 추리 작가 요코미조 세이지를 처음 접한 것은 <옥문도>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완벽한 소설을 접했으니, 이후에 읽게 되는 것들은 실망만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두번째로 읽은 두 개의 중편 <혼징 살인사건>과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나의 헛된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요코미조 세이시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은 국민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일것이다. 그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바로 <혼징살인사건>이다. 어리버리해 보이고, 지저분한 외모에 말까지 더듬는 코스케이지만, 의외로, 등장했다하면, 일본의 명탐정으로 경찰쪽에서도, 일반인들에게도 호감과 우러름을 받는다.

탐정의 (겉보기)어수룩함이 현대추리소설 독자에게 이미 낯익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요코미조 세이지를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것은 그 어수룩함과 묘하게 발란스를 맞추는 소설의 기괴함이다.  책 뒤에 소개된 세이지의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것들을 옮겨본다.

 '집념, 망상, 숙명적 증오, 너무도 강렬한 애정, 복수, 인과응보 같은 것이고, 그의 이미지의 소재가 되는 것은 쌍둥이, 정신 이상자,근친상간, 불구자, 간통, 화상, 이상 성격 등이다. 게다가 검은 고양이, 짐승의 시체, 갑옷 입은 무사, 바다 모를 저수지, 독풀, 점술, 자장가, 기도원, 오래된 편지, 뱀, 거미, 문신,멍, 악기, 계시, 저주, 절세 미녀, 미소년, 독부, 마술사, 지나침, 이성...과 같은 소재를 이용하여 세이지만의 독특한 세계를 엮어내는 것이다.'

그 기괴함과 <혼징 살인사건>의 밀실 살인은 얼핏 존 딕슨 카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와 그의 소설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을테니, 이만 줄이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혼징살인사건>에서 '혼징'은 에도 시대 귀족이나 고관들이 묵는공인된 여관을 말하고, 이 소설의 중심인 이찌야나기 집안이 바로 그 혼징이다. 보수적이고, 가문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한 그들 가족 중 장남인 겐조가 신여성인 가스꼬를 맞이하는 첫날밤에 두 사람은 기괴한 거문고소리와 함께 무참히 죽은채 발견된다.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가스꼬의 삼촌인 구보 긴조는 이후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합리적이고 똑똑하며 긴다이치의 굳센 후원자로 나온다. 결혼 전날 마을을 찾은 세손가락의 사나이가 용의자로 떠오르고, 경찰이 갈팡질팡 하는 사이 '등장부터 이미 명탐정이었던' 긴다이치 코스케가 구보의 전보를 받고 마을에 도착한다.

이 책 바로 전에 존 딕슨 카의 <세 개의 관>을 읽은지라 공교롭지만, <혼징살인사건>역시 일본 전통가옥의 구조를 이용한 밀실살인사건이다. 화자인 미스테리 소설가나 미스테리 소설의 팬인 이찌야나기가의 셋째 사부로, 혹은 코스케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밀실 살인 트릭과 작품들은 (여기에 다른 소설의 스포일러는 없다) 추리소설 팬들에게는 또다른 재미일 것이다.  

앞서 말했던 기괴함을 돋보이게 하는 세이지만의 강력한 이미지들이 여기도 등장한다. 거문고소리, 토막살인, 결혼 첫날밤, 혼징, 세손가락 사나이, 고양이 무덤, 병약하고 모자란 셋째딸 등등.
트릭은 단순하지 않다. 아니, 그 트릭에 가기까지 몇번이나 작가가 파 놓은 함정을 넘어야 한다.

<나비 부인 살인 사건> 에서 역시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야기의 배경부터가 오페라 가극단이고, 살해당하는 최고의 여자 소프라노가 콘트라베이스 케이스에 넣어져 장미 꽃잎 덮인채 배달되는 것은 그 시대치고 꽤나 엽기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이 배우인 등장인물들이 콘트라베이스 안의 시체를 발견하고 각각 로미오의 시체를 보았을 때 줄리엣이라던가, 자살한 마담 버터플라이를 발견했을 때의 핑퀴어튼, 혹은 자르다의 시체를 삼베 부대에서 발견했을 때 미친듯이 놀라며 슬퍼하는 리골레토까지...연기 경쟁이라도 하듯 재연하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섬뜩하다( 내 경우에는 잠깐 섬뜩하고, 한참을 킬킬거리며 웃었긴 하다만)
<나비 부인 살인 사건>에서는 전 경감인 유리선생과 기자가 홈즈와 왓슨의 역할을 한다. 긴다이치에 비해 아우라가 약하기도 하고, 이 작품의 성격상 덜 드러나기도 하지만, 한개성하는 등장인물들과 꼬이고 꼬인(다행히, 내 머리가 따라가 줄 정도의) 사건의 트릭, 드라마틱하고 유머러스한(?) 사건들과 대사들은 긴다이치의 이름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이제 시공사에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부지런히 나와 주고 있으니 (현재까지 <옥문도>, <팔묘촌>, <악마의 공놀이 노래>) 요코미조 세이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입문을 위해 동서미스테리의 <혼징 살인사건>을 읽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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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gghhhcff 2007-08-04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 시공사에서 나온것 말고 동서미스터리에서 나온것도 있군요.
그런데 표지가 좀..흐미;;;

미즈행복 2007-08-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주 재미있겠네요.
근데 혹시 긴다이치 코스케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나오지 않나요? -아닌가?-
소년탐정 김전일은 소싯적에 아주 재밌게 봤는데...
일본 추리소설의 주가가 높다기에 전에 '용의자 X의 헌신'을 봤는데, 괜찮긴 했지만
너무 좋다는 아니었거든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제8지옥 동서 미스터리 북스 74
스탠리 엘린 지음, 김영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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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리는 제법같이 자리가 잡힌 탐정회사의 사장이다. 고객이자 유명한 법률회사 파트너의 아들 하링겐이 아버지의 회사를 나와 자신의 회사를 차리고, 맬리에게 사건을 가지고 온다. 뉴욕 경찰계를 들썩였던 뇌물수수의 바람속에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는 말단경관 랜딩의 무죄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주인공이 탐정회사 사장이고, 소재는 미스테리의 그것과 같을지 모르겠지만,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이 책을 잡았다간 대실망할 것이다.

어떻게 봐도 멋있게 봐줄 수 없는 주인공이 그가 반한 여자, 의뢰인인 말단 경관 랜딩의 약혼자인 눈이 튀어나올듯한 미녀 루스를 차지하기 위하여 랜딩의 유죄를 확신하고, 그의 유죄 증거만을 쫓아다니는 이야기이다. 그런 과정에서 작지 않은 그의 회사에 끼칠 위험이라던가, 아이 넷 딸린 유능한 탐정을 사지로 내몬다던가 하는건 아무렇지도 않다.

월 스트릿 저널을 '월거리 저널'( 왜, 아예 '벽거리 신문'이라고 하지) 하는 등의 직역체는 다른 동서미스테리들을 훨씬 능가한다. 직역체 뿐만 아니라, 오타와 비문들의 잔치는 어이없는 주인공과 누가 누가 더 짜증나나 시합이라도 하는듯하다.

이 작가가 내가 열광했던 단편집 <특별요리>의 그 작가라니,믿기 힘들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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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7-08-03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거리 저널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단하네요 -_-b

하이드 2007-08-0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도 두번 나오는 중에 한 번은 윌거리 저널이라고 나와서 윌거리가 따로 있나 고민했습니다. -_-;; 저런게 한 두개가 아니였다는;;

chika 2007-08-0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 거리 신문,에 한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금 이거 보고 혼자 미친듯이 웃음 참다가 걸렸어요! ㅠ.ㅠ)

비로그인 2007-08-0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에는 영한 번역기계가 있다는 설이...

오차원도로시 2007-08-0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거리 저널...;;; 네이버 번역기에 돌렸나...ㅋ

moonnight 2007-08-0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핫. 대단한 책이로군요. 읽는 것이 지옥이라니. 풀썩. ㅠㅠ;

비로그인 2007-08-0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단지 사랑얘기로서 맘에 드는가봐요..
 
세 개의 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90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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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코담뱃갑>, <모자수집광 사건>에 이어 세번째로 접하는 존 딕슨 카의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의 거자인 존 딕슨 카의 소설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인 <세개의 관>이다.
작품이 많은 작가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읽은 소설들이 제각각 다른 느낌이다.

머리 쓰기에 게으르고, 트릭보다는 캐릭터나 분위기와 같은 젯밥에 더 마음이 쏠리는 나는 어쩌면 진정한 추리소설 매니아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 정도의 작품을 접하고 보면, 헝클어진 머릿속 실타래를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첫번째 관, 두번째 관, 세번째 관의 세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모 교수는 공개된 장소에서 마술사 프레이에게 협박을 받게 되고, 협박의 그 날, 그의 집에서 총에 맞아 죽게 되지만, 그를 죽인 범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펠박사와 해드리 경감은 마술사 프레이를 쫓지만, 프레이 역시 목격자가 보는 가운데, 총에 맞아 죽고, 범인의 행방은 또한 묘연하다.

트릭이 대단할수록 트릭이 밝혀지고 난 후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카는 그것을 마술에 비유했다. 마술사 프레이와 함께 일했던 오로크의 입을 통해 말하길 "사람들이란 이상한 데가 있어요. 그들은 마술을 구경하러 옵니다. 이건 마술이라고 하는데도 굳이 돈을 내고 마술을 보러 오는 겁니다. 그러고는 뭔가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그것이 진짜 마술이 아니라며 기분 나빠하는 겁니다. 그들이 직접 조사한 자물쇠를 상자나 끈을 묶은 자루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기술을 설명해주면, 속임수라고 하며 화를 내지요. "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가는 것 이외에도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펠 박사의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강의인데, 밀실 살인 사건의 모든 가능한 트릭들을 망라해 놓았다. 친절하게도 작가와 작품들까지 예로 들어가며, 반다인이나 엘러리 퀸의 작품 중 아직 보지 못한 작품의 트릭을 알아버렸다.고나 할까.(하지만, 나는 나의 망각력을 믿는다.) 마음의 준비 없이 스포에 당한 것에, 혹은 내가 앞으로 볼 '밀실 살인 사건' 의 트릭을 모두 밝혀버린 것에 비난의 화살을 던져야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펠 박사는 특유의 드라마틱한 대사들을 읊으며, 트릭을 풀어낸다.

드러나 있는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찾지 못했던 것에 비해 허무한 트릭에 억울감도 들지만, 아마, 그런 독자들을 위해 카는 오로크의 입을 빌렸던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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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8-03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좀 부족한 기분이었는데 하이드님이 말씀하신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불연속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3
사카구치 안고 지음, 유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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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스의 동경사진전시관의 '일본 전후 사진전'에서 만났던 다자이 오사무의 바에 앉아 찍은 유명한 사진과 함께 걸려 있던 사카구치 안고의 사진이다.배경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은 눈매와 폼새가 아닐 수 없다.  다자이 오사무와 함께 무뢰파(혼란, 퇴폐, 허탈을 표방)로 이름을 떨쳤다.

<백치,타락론>의 그 사카구치 안고와 <불연속 살인사건>의 작가가 동일인물인지 잠깐 찾아 보았다. 동일인물 맞다. 사카구치 안고는 그 자신이 미스터리 소설의 팬이었고, 반 다인, 엘러리 퀸, 그리고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그녀와 비슷하다던가 한건 전혀 아님)

추리 소설 리뷰에 사설이 길었다. 이 작품은 산속 깊은 곳 산장이 배경이다. 그곳에 모이는 자들은 문인, 예술인들이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불문학자,배우, 화가 등이 산장의 주인 가즈우마에 의해 한자리에 모인다. 명목상 여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개성 강한 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이 모임의 특징은 연애, 혹은 밀회다.

먼저 말해두면, 주요 등장인물이 무려 스무명에 달하는! 당황스러운 소설이었다.
앞쪽에 나와 있는 '등장인물 소개'를 가끔씩 넘겨가며 도움을 받았고, 분명하고 개성있는 캐릭터 설정에 비교적 쉽게 등장인물과 이름을 매치시킬 수 있었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의 '누가 누구의 부인이었는데, 지금은 누구랑 결혼해서, 누구랑 바람피고, 누구는 누구랑 부부지만, 누구의 애인이고, 그 애인은 누구를 좋아하고,누구는 누구의 아버지의 첩과 도망가고...'    얽히고 얽힌 연애관계로 시작하는 첫 장에서는 정말 땀이 삐질 났다.

심약하고, 예민하고, 거침없고, 무례하기까지한 문인들에 대한 묘사를 보고 있자면, 작가의 배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튼, 그 심상치 않은 모임에서 한명씩 죽어나가기 시작해 모인 사람들의 반수 정도가 목이 졸려서, 독을 먹고, 칼로 찔리는 등 살해된다. 모든 사건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사람이 좀 많고, 좀 많이 죽었어야지;;)

"글쎄요, 사건의 성격은 불연속 살인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제가 후세를 위해 이 사건을 기록한다면 어쩌면 '불연속 살인사건'이라고 이름 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범인이 노리는 점이 바로 그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어떤 사건에서 자기의 의도가 드러나는지를 얼버무리려 하는 것이 범인의 목적이겠죠. 범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목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동기가 밝혀지면 범인도 곧 드러나기 때문이죠."

문인, 예술인 외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중 하나는 교세라 박사이다. 이는 작품 속에서 명탐정으로 소개되는데, 어째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가장 무개성해 보인다.( 그만큼 다른 이들의 개성이 강한지라) 경찰들도 등장한다. 아마 당시의 상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는데, 등장하는 경찰들이 다 뛰어난 경찰로 좋게 좋게 묘사된다.

사카구치 안고는 "인간성을 왜곡하고, 불합리한 행위며 심리를 무리한 억지로 꿰어맞추는 트릭이 먼저 만들어진 뒤에야 등장인물이 창조되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과연, 생생한 캐릭터에 단순하지만 강력한 트릭에 거침없는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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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복잡한 소설이군요.^^;

하이드 2007-08-0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었어요. 롤러 코스터 타는 기분

오차원도로시 2007-08-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은 인물에 정신없음..이란 반응에 손을 놓고 있었는데...하이드님 리뷰를 보니까 흥미가 소록소록 생겨나는데요? ㅋ

하이드 2007-08-0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혹 읽을때는 그냥 그랬는데, 읽고 나서 생각할수록 괜찮은 책 있지 않나요? 이 책도 그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