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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의 비극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44
엘러리 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버나비 로스, 아니 엘러리 퀸의 알파벳 비극 시리즈를 마쳤다. 사실 알파벳 비극 시리즈가 아니라, 드루리 레인 4부작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기는 하다만. 엘러리 퀸 초기 걸작으로 꼽히는 <X의 비극>, <Y의 비극>에 비해 엄청난 간극을 보이고 있는 <Z의 비극>이기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알파벳 시리즈에 대한 리뷰가 될듯하다. 사실 본토의 엘러리 퀸 팬들, 엘러리니야 사이에서는 드루리 레인 시리즈가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에서는 인기 있다' 라는 말로 팬 사이트에 나오곤 한다. 동양이란, 즉, 추리소설이 인기 있는 일본을 말하는 것일 게다.
<Z의 비극>에서는 그동안 한번도 언급된 적 없는 썸경감의 딸 페이션스 썸이 화자이자 드루리 레인을 돕는 탐정으로 나온다. 레인 시리즈의 무게를 드루리 레인에서 활발하고 재기넘치는 여탐정 페이션스 썸으로 두기 위한 과도기였다고 생각되지만, 4부작으로 끝났고, <드루리 레인 마지막 케이스>는 보지 못했으므로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X의 비극>이후 십여년이 흘렀고, 60대에 40대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 드루리 레인은 70의 노인이 되었고, 썸 경감은 은퇴하고 사립탐정이 되었고, 브루노 지방검사는 뉴욕이 주지사가 되었다. (추리 소설 치고, 이렇게나 유명인물들이 주인공인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뉴욕 주지사에 세계적인 명배우라) 악명 높은 정치가 포어세트 상원의원이 살해되고, 용의자로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에얼론 도우가 지명된다.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페이션스와 썸 전경감, 그리고 드루리 레인은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다.
<Z의 비극>은 전편에 비해 추리 적인 면은 약하고, 새로운 등장인물을 등장시킬때 그렇듯이 (<X의 비극>에서 드루리 레인이 등장했을때도) 페이션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만, 드루리 레인의 등장에 비해, 여자라는 걸 빼고는 모든 면이 약하지만, 당시에는 재기발랄한 여탐정이라는 소재만으로도 파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봐도 전의 두편에 비해 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 듯한 작품이지만, 몇가지 미덕을 찾을 수 있었는데,중간에 나오는 사형장면 같은 것은 30년대에 쓰여진 추리소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모던하다. 장면묘사와 심리묘사의 생생함은 동시대의 스릴러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 듯하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그 장르에서 찾을 수 있는 '전형성'을 추구하는 것일테지만, 특히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추리소설을 읽을때는 더욱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되는 '의외성'은 반가운데, 시리즈 전편에 걸친 드루리 레인이 그렇다. 엘러리 퀸은 그들의 현학적인 면을 드러내기 위한 욕심에 셰익스피어 배우라는 설정과 햄릿장이라는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를 들어낸 듯한 로맨틱한 장소를 만들어냈으며, 그의 충직한 하인들 역시 셰익스피어 극에 나오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전형적인 인물인데 문득 문득 드러나는 점들이 재미있다.
<X의 비극>에서 드루리 레인은 처음으로 소개되는데, 어느 장소를 가건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우러러본다거나 하는 점이 자주 나온다. 그런 드루리 레인이 겉으로는 완벽하게 상냥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대중에 지겨워하며 염세적인 면을 때때로 드러내는 부분이라거나 <Y의 비극>의 결말의 의외성이라던가(결말은 모호하지만, 어떤 결말이건 드루리 레인이 결백할 수 있을까?) 그리고 <Z의 비극>에서 그는 몰라보게 늙고 병든 모습으로 또 한 번 독자들을 놀라게한다. 이런 의외성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시리즈에 열광하는 나 같은 사람이 좋아할만한 재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