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언 연대기 : 용기사 3부작 1 - 드래곤의 비상
앤 맥카프리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SF판 할리퀸. 이라는건 내 얘기는 아니고, 이 소설이 처음 나왔을때 SF팬들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너무 대중친화적이라 외려 SF 팬들의 불만을 샀던 작품답게(?) 장르소설을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모험소설, 로맨스 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대단한 장르소설과 세계관을 기대했다면, 적어도 1권까지는 앞에 말했듯이 로맨스모험소설이다.

소설의 서문과 해설에서 나오는 퍼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인류가 루크벳 제3행성에 정착했는데, 그 행성의 주위에 돌고 있는 붉은별이 200년주기로 치명적인 유기생물(사포thred)를 퍼언으로 보내는데, 사포는 퍼언의 모든 생물을 말라죽이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용' 과 '용기사'가 존재한다.

우주의 행성이 어떻고, 지구인들이 어떻고, 용모양의 생물 유전자를 발전시켜서 어쩌구 하는 배경은 소설에서 거의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나마 SF적인 설정이 달랑 서문과 해설에서만 나오고, 이야기는 내내 중세봉건 사회 비스무리한 배경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SF판 할리퀸이 아니라 역사판타지로맨스 소설 같았다;;)

SF 장르소설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근래 봤던 또 다른 용이야기 <테메레르>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있고, 스토리도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계속 고양되는(이런걸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 손을 뗄 수 없는 소설이다.

대대로 용굴모를 배출해온 루아사 가문의 당차고 똑똑하고 아름답고 용감하며 재치있는 레사가 가문의 몰락에서 살아남아 청동 용기사 플라르와 사포에 대항해 퍼언을 구한다.는 이야기이다. 용굴모, 용굴왕 등의 설정과 간극을 뛰어넘는 용들, 그리고 적당히 멍청하고, 적당히 협조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는 꽤나 아기자기하니 재미있었다. 플라르는 전형적인 남자주인공이지만, 레사는 전형적인 여자주인공에 사특한 성격을 양념처럼 지니고 있어 마음에 든다. 유기미생물인 사포를 제외하곤 거의 악당이라고는 안나오는 착한(?) 소설이기에 여자주인공이 천사표였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꽤나 짜임새 있게 신경쓴 티가 나는데, 이 어마어마한 시리즈에 대한 정리와 작가에 대한 이야기, 용덱스(?), 지도, 인물정리까지 근래 본 책중 부록이 가장 튼실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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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8-3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판타지로맨스 소설에 살짝 한표 던지고 싶네요.^^ 책은 정말 신경 써서 만든 티가 나요.

하이드 2007-08-3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오래 보기에 표지가 좀 약한 흠이 있어요. 때도 잘 타고. 그걸 빼면, 정말 부록에 신경쓴 티가 나지요? 이거이거 엄청 재미있던데요?!

에이프릴 2007-08-3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판타지!
가장 선호하는 장르으으으~ 저도 읽어야겠어요.

에이프릴 2007-08-3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트로샀어요. 비치타월도 '덤'으로 주길래 스물넷에서 적립금쌓은걸로 질렀으요~
도착하면 읽어야지 으으~빨리 왔음 좋겠다.
요즘 책 많이 읽긴했는데 ㅋㅋ 정말 재미위주의 로맨스물로만 쫙~읽고있었거든요 ㅎㅎ
근데 판타지로맨스라니 으흐~

BRINY 2007-08-3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성을 들은지는 한참 되었지만, 늘 봐볼까 말까 하던 책이었는데 한번 봐볼까요.(라고 하지만 사서 1권이 재미없으면 또 그냥 쌓아둘테다!!!)
 
카페 여주인 프랑스 현대문학선 24
레몽 장 지음, 이재룡 옮김 / 세계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친애하는 부인,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와 하룻밤 동침해주신다면 그 대가로 10만프랑을 지불할 것을 제안합니다. 부인은 저를 틀림없이 대담하고 몰상식한 사람이라 생각하시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제안을 드렸으며 이를 지킬 것입니다. 저의 가장 다정한 인사를 받아주십시오...

 프랑스 남부 어느 평화로운 마을 카페의 아름다운 여주인 아멜리는 어느날 괴상한 편지를 받는다. 범상치 않는 아름다움, 아니, 범상치 않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숨을 앗아가는, 눈이 번쩍 뜨이는 아름다움을 지닌 아멜리. 이 무례한 제안에 얼굴이 화끈해지며 모욕감을 느끼지만, 역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제 가치를 매겨본다. 음... 내가 예쁘긴 예쁘지... 하는 마음.

그 편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소꼽친구인 빵집친구 필로멘을 찾아간다. '이건 정말정말 비밀인데!' 하면서 시작한 '비밀'은 짐작하듯이 빵집주인에서 우체국의 이르마로 , 학교 선생인 열혈 패미니스트 클라리스에게로 알려졌을때 사건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건 나중일이고, 필로멘과 아멜리는 뻔뻔하게 자신의 주소와 이름까지 버젓이 쓴 그 사내의 존재를 먼저 확인하기로 한다.

그는... 작가다! 그래, 그거였어! '작가라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듯' 그들은 그렇게 이해한다. 그에 대한 궁금증에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먼 아멜리는 그의 제목도 요상한 소설 '젖짜는 여인'과 '텍스트-연인'이란 책 두 권을 사서 읽으며 점점 호기심을 키워간다. 결국에는 두 손 꼭 붙잡고 그를 방문하는데, 그는 꽤나 멀쩡하고, 그 제안이 진실하다고 다시 한 번 이야기 하는데,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모욕입니까?'
'경우에 따라서 그래요. 편지 안에 칭찬만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아니지요. 당신의 가격을 말했지요.'
'뭐라구요?'
'당신의 가격이오. 당신의 값어치지요.'
'선생님, 저는 팔지 않아요. 창녀가 아니라구요.'
'모르시나본데, 창녀에게는 그런 액수를 제안하는 일이 드뭅니다.'

묘하게 설득되어가는 눈 튀어나오게 아름답지만 정숙했던! 아멜리와 함께, 독자도 함께한다. 그렇지, 창녀에게 그런 액수를 제안하지는 않지. 하면서. 작가, 쟈송은 경제적 언어에 관한 묘한 궤변을 끌어다붙이며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녀를 설득한다.

이 이야기는 그렇다면 데미무어가 나오던 '은밀한 유혹' 류의 짜릿한 하룻밤의 불륜 이야기인가?
글쎄, 이야기는 생각도 못했던 방향으로 계속계속 뻗어나간다. 믿을 수 없이 유쾌하게. 이것은 블랙코미디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프랑스 남부 마을에 일어난 한바탕 해프닝이다.

'당신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내 탓은 아니잖아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거액의 하룻밤을 제안하는 작가 앞에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그토록 아름다운 정숙한 아멜리와 그녀의 남편!아, 얘기 안 했나? 그녀에게는 그녀를 믿는 마침 경제적으로 어려운(아, 이건 너무 상투적인가? 그렇지 않다.) 남편 뤼시엥이있다. 무튼,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 평범한 마을에 벌어지는 레몽장식 섹시한 해프닝에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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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7-08-2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얘기가 영화인가, 드라마인가로도 있지 않았나요?
그렇담 이 소설이 원작이었나요?
흥미로운 이야기인데요?
근데 솔직히 저런 제안을 받으면 기분이 나쁠까요? 제가 보기엔 90% 이상은 속으로 매우 좋아할 것 같아요.
제안에 응하느냐, 거부하느냐와는 별개로요.

하이드 2007-08-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제는 전형적인데,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방식과 결론은 그렇지가 않아서 디게 웃겨요.^^

홍수맘 2007-08-2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웃겨요?
저도 궁금합니다. 워낙 로맨스소설 처럼 가벼이 쉽게쉽게 읽혀지는 책을 좋아하는지라...
어렵지 않겠죠?

하이드 2007-08-2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씨니컬한 작가임을 감안하고 읽으시다면 ^^ 막, 코믹하고 그렇다기보담은, 설정인 상황이 웃음나는 프랑스식 씨니컬 유머에요

마노아 2007-08-30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 같아요. 리뷰도 맛깔스럽구요. ^^
 
레이븐 블랙 블랙 캣(Black Cat) 14
앤 클리브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영국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미국의 스릴러처럼 마구 스릴 있거나 하지는 않아도, 그 분위기와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을 좋아한다. 약간 지루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외려 재미있을 수도 있다.

영국 서북단 셰틀랜드 제도, 외지인들에게 개방되어 매주 주말이면 여객선들이 관광객들을 쏟아 놓고, 다시 실어 그들의 도시로 돌려보낸다. 셰틀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 사이에 비밀이란 없다. 모든 사소한 일조차도 삼투압처럼 모두에게 스며들듯 공유되는 것이다. 그런 마을에서 캐서린은 도시에서 온 외지인이다. 반항적인 분위기의 매력적인 그녀는 남의 눈에 신경 쓰지 않으며, 영국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 캐서린이기에 엄격하고, 못된 선생이 엄마때문에 따돌림 당하던 샐리와 단짝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새해가 지나고 며칠후, 하얗게 눈이 쌓인 곳에 곱게 누워서, 빨간 목도리에 목이 졸린채 검은 갈가마귀들에게 눈이 파먹히고 있던 캐서린을 역시 외지인이었던 프랜이 발견한다. 프랜은 그 지방의 유지인 던컨의 전처로, 캐시를 가진채, 바람 피는 던컨을 발견하고 이혼했다가, 아빠가 있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다시 섀틀랜드로 돌아온 외지인인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인물들은 이 외에도 많다. 가장 신경쓰이는 인물은 캐서린의 집과 프랜의 집 가운데 있는 백치노인 매그너스이다. 팔년전 소녀가 실종되었을 때에도 매그너스는 범인으로 지목당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고, 그런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백안시한다. 캐서린이 살해된 후, 이번에야말로 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페레즈 형사와 본토에서 온 테일러 반장은 사건의 이면을 캐기 시작한다.

'그는 늘 부적절한 감정을 흘리고 다녔다. 벌써 이번 수사에서도 프랜 헌터와그녀의 아이를 보호해 주고 싶은 느낌이 들었고, 매그너스 테이트에 대해서도 그가 살인자든 아니든 간에 일단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던가. 경찰은 모름지기 편견 없이 공평해야 하는데 말이다.'

감정 과잉의 페레즈 형사와 열정과잉의 테일러 반장은 매그너스 범인론의 미심쩍은 부분을 쫓는다.
의외의 인물이 범인인것이 식상할정도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범인은 매그너스를 포함해서 마을의 그 누구라도 될 법하다. 그와 같은 미심쩍인 분위기의 마을이다.

딱히 영국 분위기라던가, 지적인 형사라던가 ( 어쨌든 문제의 해결은 싱거웠고, 형사가 푼 퍼즐은 아니였으니) 가 나오지도 않았으며, 이야기는 지루한 편이였지만, 등장인물들에 대한 고른 묘사는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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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8-2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 분위기에 비해 좀 밋밋한 감이 있지요.
 
자코메티 - 영혼을 빚어낸 손길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로드 지음, 신길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좋아하는 예술가의 전기를 읽는 것은 좋아하는 작가의 전기를 읽는 것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 보르헤스였던가, 작품은 독자와 저자가 반반씩 만든다고 했다. 그 작품이 해석의 여지를, 개인의 경험이 침투할 여지를 많이 담고 있는 예술 작품의 경우, 감상자의 몫은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한정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더욱 커진다.

전기를 읽는다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예술가 자신도 몰랐을 것까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게 되는 것이고, 순수한 평론자였던 '나'는 세간의 평과 그 인물에 대한 권위 있는(적어도 전기를 쓸 정도의 사랑과 열정이 있는) 자의 의견을 원하지 않더라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자코메티의 비쩍 마른, 무중력 상태에서 노니는듯한 작품들을 보았을 때의 느낌들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실존에 관한 지식들로 어느 정도 퇴색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런 위험성을 모두 알고도, 열렬히 짝사랑하듯, 그의 작품을 눈으로 탐하던 '나'에게,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 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모습의 날때부터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그 작품을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낫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그의 작품들에 투영했던 나의 환상이 깨지고, 다시 재조합 되는 것은 당여한 수순이다. 한 사람의, 아니, 한 위대한 사람의 일대기를 읽는 것은 실화 소설을 읽는 것의 배의 충격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큰책을 꽤나 오랫동안 붙잡고 읽어버렸지만,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천재의 일대기를 읽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이었던 여자들,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던 아내인 아네타를 포함하여, 지하세계에 몸담았던 창녀이자 강도인 마지막 여자 카롤린까지. 자코메티라는 이전에도 없었고,이후에도 없을 브랜드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던 동생 디에고 (자코메티는 그것을 때로는 인정했고, 때로는 부인했다.) , 20세기 초 파리라는 세계의 중심에서 만난 자코메티와 동시대를 동료로서, 친구로서, 적으로서 살았던 천재들. 전기의 저자인 제임스 로드가 끝까지 시니컬한 어조를 유지하는 피카소, 자코메티가 평생 존경했던 마티스, 자코메티와의 우정으로 유명한 사르트르( 덤으로 보봐르까지), 피카소가 '가장 훌륭한 예술가에 대한 글'이라고 격찬한 장주네( 자코메티에 대한 글을 썼다.'자코메티의 아틀리에') 까지.  이 이야기속에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도 등장하고, 당시에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던 마를렌느 디트리히도 등장한다. 이렇게나 화려한 등장인물들인 것은 그 시대 그 장소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사람은 물론 자코메티인데, 많은 결점들은 물론이고, 동시에, 그의 고귀하고 공정한 영혼을 엿보면서, 생전에 그가 연옥이라 불렀던, 어린시절을 보내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그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었던 아네타 자코메티( 자코메티는 그의 어머니와 똑같은 이름의 여자와 결혼했고, 그렇게 얘기하며, 부인 아네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 항상 있어서, 그를 주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스위스 스템파 그 계곡에서의 장례식까지를 읽고 드디어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나니, 한마리 짐승같이 보이는, 조상에게 물려받기는 보통보다 튼튼했지만, 과음과 무지막지한 커피와 줄담배로 망가진 몸에 갖힌, 짐승의 그것처럼 나이브하나, 뛰어난 통찰과 직관과 맑은 영혼을 가졌던 천재에 대한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그는 그의 작품과 그의 작품이 있는 공간과 꼭 닮아 있다. 그는 죽고 없지만, 그의 작품들은 세계 곳곳의 가장 유명한 미술관에서 그렇게 닮은 꼴로, 금방이라도 걸어나갈듯,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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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표제작인 <꽃밥>을 포함한 여섯개의 중단편이 모여 있다. '현대의 기담을 소재로 하여 향수를 자극하는 새로운 형태의 설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 답게, 이야기의 배경은 오사카 어느 곳, 개발과 옛것들이 함께 공존하던 그 때를 갖가지 기담들을 소재로 잘 엮어 내었다.

<꽃밥>은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아이와 오빠의 이야기이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기뻐하던 아빠를 따라 알지도 못한채 병원 복도에서 함께 큰 소리로 만세를 불렀던 오빠는 애어른 같은 여동생의 전생의 탐험에 동생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따라나선다. '오빠란 세상에서 가장 손해가 막심한 역할이'라고 중얼거리는 오빠와 동생의 전생의 가족들 이야기는 참 따뜻하다.  두번째 단편인 <도까비의 밤> 역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가져다주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회사가 망해서 오사카로 온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 형제를 만난다. 그 한국인 가족은 알게 모르게 이웃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데, 형제중 아픈 동생인 정호와 당시 가장 인기있던 '괴수' 시리즈를 통해 친구가 된다. 도까비(도깨비)라는 한국설화와 아이 귀신, 그리고 어린 최고 인기였던 '괴수' 시리즈라는 소재는 향수를 자극하는 현대의 기담에 꼭 들어맞는다. 이 두 단편이 따뜻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였다면, 세번째 단편인 <요정생물>은 다리 밑에서 마법사가 만들었다는 해파리 같은 모양의 요정생물을 사게 된 여자아이의 성장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이야기였다.

<참 묘한 세상>은 어른 코미디에 가깝고, <오쿠린 바>와 <얼음 나비>는 우리나라에서 듣는 도시 기담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이야기 될듯한 이야기들이다.  

<꽃밥>을 제외한 모든 단편이 각각의 이유로 소외와 따돌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음 나비>에서 따돌림을 받는 주인공은 왜 따돌림을 받는지 끝까지 안나와서 궁금증이 일게 한다. 그리고 모든 단편들의 배경은 오사카이고,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진짜로 있었을 수도 있고,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어린 아이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그런 이야기들이기에 이 작품집이 맘에 드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 도시기담이 나온다면, 홍콩할머니와 빨간 마스크 정도이지 않을까?( 물론,이 기담들 역시 일본에서 건너 왔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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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7-08-2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하다는 느낌이 오네요. 과연 제 정서와도 맞을지는...
허나 내공 높으신 하이드님의 마음에 드신다니 음.
-저는 스스로도 알고 있긴 한데 너무 뭐랄까 실제적이랄까? 그래요. 딱 떨어지는 이미지를 좋아하고요. 나이가 들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하이드 2007-08-28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요정생물> 빼고는 그다지 하드코어거나 한 건 아니니깐,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