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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맨
크리스틴 스팍스 지음, 성귀수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캐럴블로그 8.31
나는 역에서 지하철 문을 보면서 서있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문이 다시 닫히고, 기차가 떠나기 시작했을때, 나는 바로 건너편에서 엘리펀트맨을 보았다. 그의 얼굴의 반은 뺨 위로 녹아내려 있었다. 짙은 회색 피부는 그의 왼쪽 뺨에 함몰되어 있었다. 그의 코는 촛농이 흘러내려 굳은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가 두껍고 큰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안 좋은 쪽 얼굴의 눈은 아주 어두워서 말그대로 까맣게 보였다. 얼마나 그 눈이 어두운지 분명히 볼 수는 없었다. 그의 얼굴 전체와 머리는(머리카락은 가늘고 숱이 없어 그것을 통해 머리를 볼 수 있었다.) 이상하고 거대한 돌기로 덮여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엘리펀트맨 병으로 알려진 신경섬유종의 표시일 것이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봤다면, 내가 지금 묘사하는 것을 알것이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때, 나의 영혼은 말그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가 올려다보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때, 그럭저럭 표정관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그가 사용하는 PDA로 눈을 돌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것' 이 맞다는 예스의 표시? 아니면, 그냥 단순한 인사? 혹은 그 외 가능한 여러가지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를 다시 보지 않기는 어려웠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쳐다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꼭 다시 보고 싶었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되는 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저런 얼굴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가장 잔인하고 생생한 상상 속에서도 힘들 것이다. 기차가 천천히 다음역을 향해 출발했다. 내가 내리고자 했던 정류장보다 한정거장 앞이었지만, 나는 내려서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 <웃음의 나라>의 작가 조너선 캐럴의 블로그中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로 알려진 엘리펀트맨.
소재 자체가 꽤나 자극적이고, 우울해서, 왠만한 소설로 만들어진다고 하여도 읽기 부담스러운 책이었다.
책을 읽다가, 엘리펀트맨을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다. 그 이미지는 실화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경악하는 그것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조그만 사진으로 보는 것도 괴로운데, 실제로 엘리펀트맨을 본다고 생각하면, 어떤 표정이 나올지 장담하기 힘들다.
엘리펀트맨에게는 이름이 있다. 존 매릭. 그는 어느 순간 버려져, 구빈원에서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다가 그 기이한 외모로 인해 곡예단에 팔려가서, 구경거리가 되며,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스물한살의 나이에 닥터 트리브스를 만나기까지.
자신의 영욕을 위해 (당시는 조금이라도 희귀한 병을 가진 사람을 내세워서 이슈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희귀병에 관해서라면, 엘리펀트맨을 따를자가 없었다.) 엘리펀트맨을 내세우는 트리브스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트리브스가 존 메릭의 진정한 친구였으며, 그를 사물에서 인간의 위치로 끌어 올려준 일등공신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런던 병원에 머물면서, 그를 괴물과 대상으로만 보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세상의 대부분은 여전히 그를 구경거리로만 생각하지만, 진정한 친구들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둠만 있었던 그의 인생을 빛으로 가득채워주었다.
엘리펀트맨이라고 불리우는 외모에(어떤 외모를 상상하던지간에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온갖 악과 경멸과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던 그. 그 안에 순수한 영혼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건 너무 티피컬할지도 모른데, 그렇다. 그렇기에 그 부조화에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실화소설이 있을법하지 않은 판타지 소설로 느껴지는 것이다.
잠깐 언급될 뿐이지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구빈원에서 만나 존에게 글을 가르쳐준 타락한 목사 도너이다.
'너의 모습이 나의 마음과 같구나.' 죽는날까지, 존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성경을 남긴다.
말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생활에서, 입이 트이고, 글을 읽게 된다. 영민하고 순수한 영혼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동안 해오지 못했던 예의바른 말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존 매릭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극적인 여러 상황보다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너무나 큰 불행과 너무나 순수한 영혼이 한 사람에게 공존한다. 그 부조화는 감동적이고, 동시에 어리둥절하다.
많은걸 안고 가지는 못하겠다. 나는 평범한 다수니깐.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반짝임을 느낄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