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4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송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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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 전집의 첫번째 책으로 '가볍게' 고른 <지중해 기행>이었는데, 엄청나게 '무거워져' 버린 마음.
전집의 첫번째 책이고, 앞으로 한권씩 채워 나갈 예정이니, 하드웨어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종이의 질도 좋고, 책만듦새도 탄탄해보여,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책방의 먼지를 다 끌어들일 것 같은 아이보리 표지에는 일찌감치 비닐 표지를 씌워 놓았다. 책을 펼칠 때 힘을 줘서 펼쳐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 책은 카잔차키스가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반도, 예루살렘, 키프로스를 여행한 여행기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그 대부분은 이집트와 시나이반도에 할애된다. 그 중에서도 시나이 반도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강렬하게 와닿고, '시나이 반도 여행기'의 강렬한 인상은 후에 나온 <영혼의 자서전>이라던가 <최후의 유혹, <수난>, <미할리스 대장>과 같은 카잔차키스 대표작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를 만나고, 이집트에서는 변화의 조짐과 젊은 열정들을 만난다. 순례여행인 시나이 반도에서는 내면의 자신을 만나고, 다툼한다. 뭐랄까, 그의 그리스인으로서의 풍모와 세계관은 (그가 그리스인이어서 그런지, 그여서 그런지, 무튼) 잊고 있었는데, 세상사를 초월하는 동시에 현대사와 인류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애정을 보여준다. 그의 가장 열렬한 논쟁 상대는 신, 혹은 자기 자신이다. 내면의 끝없는 격렬한 싸움의 연속이다.  

그런 그 조차, 시나이 반도에서 희열과 만족감에 자신과의 싸움을 잠시 포기하고, 순수하게 그곳을 느낀다.  

두 개의 산 사이, 1천 5백 미터 고지에, 사각의 요새처럼 탑과 총안(銃眼)을 갖춘 시나이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나는 수도원의 큰 마당을 내려다본다. 중앙에 교회가 빛나고 그 옆에는 자그맣고 하얀 모스크가 서 있다. 이곳에서는 초승달과 십자가가 사이 좋은 형제처럼 함께하고 있다. 그 주위로 눈 덮인 수도승들의 방과 저장실, 게스트하우스들이 하얗게 반짝인다. -124쪽-   

 

시나이 수도원, 지금은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불리운다. 그곳에서 그는 조르바를 떠올리고, 조르바에게 받은 편지를 떠올린다. 아, 조르바. 항상 맘에 담고 있었지만, 한동안 수면위로 나오지 못했던 그 이름을 만난 순간, 반가운 옛친구를 만난것 같았다. 그의 변함없이 초인간적인 스케일에는 차라리 웃음만 나온다.  모세가 계명을 받고, 그를 따르는 이들을 인도했던 그 곳.에서 새로운 십계명을 들고 내려오는 자유로운 인간 조르바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시나이반도길에 만나는 베두인족들의 씀씀이, 수도원의 사람들, 그 와중에 계속되는 신을 향한 질문. 

이런 모든 것들이 이 책을 쉬이 읽히지 않게 한다. 카잔차키스의 내면을 엿보는- 정말로, 엿보는 것 밖에 못한다. 인정도 이해도 못하는 한심한 독자- 것 외에, 단편적인 단상들만을 마음에 담을 뿐이다. 그 외에 역사와 신과 유대인에 대한 나의 무지는 읽는 내내 갑갑했다. 반성.

이 책은 지중해를 단순히 '기행' 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이자 한 남자의 '자신과의 싸움'이다. 연결되는 다른 책들을 읽고,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면 느끼게 될 것들이 기대된다.  그때까지는 부족한 독서나마 이렇게 마무리할 수 밖에 없겠다.

   
 

죽음을 정복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향한 몸부림에 있다. 좀 더 분투하다 보면 <승리>를 향한 몸부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상을 비웃으며 용감하게 살다 죽는 것- 인간의 가치는 오직 이것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훨씬 더 힘든 것이 있으니, 당신을 기쁨과 긍지와 무용(武勇)으로 채워 줄 보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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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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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스터리,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트릭이 있다고 죄다 미스터리라면, 세상에 미스터리 아닌 이야기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연애 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조화'라는 책 뒤의 문구에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뒤에 친절한 해설이 나와 있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장치는 해설을 두 번 읽고( 선전문구처럼 책을 두 번 읽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북스피어는 참 책선전을 맛깔나게 한다.) 그제야 이해했다. 

대학생인 스즈키는 미팅에서 마유라는 귀여운 처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대학생에서 사회초년생으로 넘어가는 그네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로, '이니시에이션 러브'라는 제목은 극 중의 미야코가 '통과의례'로서의 절대적인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하는 단어이다. 

젊은 시절, 통과의례처럼 겪는 열병과도 같은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혹은 아직도 그 열병을 바라며, '사랑' 이라는 과목의 통과의례를 치루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A면, B면으로 이루어진 책은 기발하다. 각각의 장은 유행했던 노래 제목이다. 젊음, 유행가, 당시에 유행했던 청춘드라마까지, 소소한 소품들이 갖추어져서 책을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옛날 유행가가 담긴 음반 하나를 감상했다는 정도의 느낌까지 들지도 모른다.

다만, 일본의 어느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 유행가들이나 드라마들이,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얼마만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제법 일본문화를 많이 접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접점이 없었다. ) 의문이다. 신경쓴 매력 포인트에 무지한 독자에게 이 소설이 그 외의 또 다른 어떤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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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의 통과의례 : 이니시에이션 러브
    from 아크비스타 :: 아크몬드의 비스타블로그 2009-02-13 00:30 
    위드블로그는 블로거 여러분에게 문화, 서비스, 제품 등 다양한 분야의 체험을 통해 블로깅 소재를 제공해 드리고 블로깅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입니다. 컨텐츠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남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블로거 여러분들의 블로깅 활동을 지원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인용: 위드블로그 소개 페이지 지난 번의 ‘프로블로거’에 이어 두 번째 위드블로그 캠페인 참여로 받은 ‘이니시에이션 러브’에 대해 포스팅 합니다. 캠페인에 참여할..
 
 
 
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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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결론의 서프라이즈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휴화산 지역에 캠핑을 가게 되는 에이토 대학 미스터리 연구 동호회. 에가미는 동호회의 부장이고, 화자인 나,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신입 회원이다. 캠핑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Y대학의 워킹 동호회와 단짝 친구들 모임, 그렇게 그들은 캠핑장에서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즐거운 날을 시작한다. 

작가가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본격소설. 추리소설 동호회가 나오고, 화산 때문에 고립되는 등장인물들은 클로즈드 써클을 구성하고, 하나씩 없어지고, 죽는 등장인물들은 'Y'라는 다잉메세지를 남긴다. 본격의 냄새가 풀풀나지 않는가.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그 분위기나 등장인물들에 치중하지, 범인 찾기에는 그렇게 열을 올리는 편은 아니다. 본격보다는 하드보일드. 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독자로서 적극적으로 범인을 찾고 안 찾고를 떠나서, 번역의 문제 때문에 절대 논리적으로 범인을 도출해 낼 수 없는 상황은 짜증난다.(이건 번역자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벚꽃..>의 우타나 쇼고는 그 언페어함으로 욕을 먹는 작가인데(나 말고도 욕하는 사람 한명 이상 있는데 백원 건다.) 그치야 워낙 서술트릭을 쓰다보니, 언페어하게 느껴질 확률이 더 높고, 번역이라기 보다는 문화의 차이로 인해 트릭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바보가 된 느낌. 을 받게 되는데, 그와 비슷한 짜증과 억울을 소설의 막판에서 느껴야 했다. 안그래도 임팩트 없는 사건해결인데 말이다. 반전을 높이사지는 않지만, 반전이라도 있었으면, 바랄 정도로 밍밍한 결말이었다.   

그러저럭 읽을만은 했던 것은 이것이 데뷔작이고, 그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뭐라고 말하던 추리소설의 여러가지 클리쉐들을 좋아하는 것은 덕후의 심정이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의 기대감을 제하고, 이 작품만을 본다면, 아쉽게도 딱히 인상적이거나 봐줄만한 첫만남은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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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2]의 서평을 써주세요.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2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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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홈즈의 이탈리아인 비서관>으로 먼저 소개된 칼렙 카의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원제는 Alienist 이다. 20세기 전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물론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소외되었다 alienate' 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런 정신병리현상을 연구하는 전문가, 정신과 의사를 일컬어 '에일리어니스트alienist'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후반 뉴욕,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로 유명했던 에일리어니스트인 크라이즐러 박사가 어린아이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시어도를 루즈벨트와 담판을 짓고 타임즈지 범죄담당 기자 무어, 최초의 여경을 바라보며 '경찰서에서 일하는' 여자인 새러, 그리고 마커스 와 루시어스 형사와 팀을 이끌며 범인을 잡는 이야기이다. 

뭐랄까, 이 책의 미덕은 너무나 많아서, 절대 한번에 다 이야기할 수 없다. 어떤 것을 얼마나 길게 이야기하듯, 그것은 이 책의 매력의 일부분일 것임을 미리 말해둔다.

우선 '재미있다'. 아무리 유익하고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도 교과서가 아닌한 '재미있어야 한다' 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단 이 소설은 재미있다. 19세기 말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19세기 말 뉴욕에 들어간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역사추리소설로, 19세기 말 뉴욕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당대의 심리, 정신질환의 진화기에,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이 소수의 의견이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들로 반발을 일으키고, 거기에 대항해 논리를 펼치는 이야기들은 간만에 지적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 외에도 로맨스, 페미니즘, 희비극, 유머,정치, 종교, 다문화 등등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책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성공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소설이다.  

시어도르 루즈벨트..그 TR이 맞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시어도르가 각종 범죄와 갱단이 종류별로 판치는 뉴욕에서 경찰청장으로 있으면서 사회개혁 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다. 루즈벨트 외에도 실존인물들과 실존건물들(?) 등이 많이 등장하는데, JP 모건이라던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건축가 제임스 렌윅이 만든 집이 본부이고, (그 집은 그레이스 성당 -제임스 렌윅이 디자인한 뉴욕의 명물- 맞은편에 있다.), 개혁사상가로 외설 추방운동을 펼친 콤스톡이 나쁜놈으로, '미치광이 소년'으로 알려진 10대 범죄자 제시 포메로이가 연구대상으로,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인디언 운동가의 대가 클라크 위슬러가 크라이즐러 박사의 친구이자 조언자로 나오는 등 많은 실존 인물들과 실제의 일화들이 나오고, 실존인물들은 책 뒤에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워낙에 논픽션 작가이다. 역사소설에서 '역사'와 '소설'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소설의 분위기는 꽤나 달라지고, 그 사이에서 적절하게 발란스를 이루기는 쉽지 않은데, 논픽션 작가였던 그는 논픽션과 픽션을 섞인지도 모르게 녹아들여서 독자를 끌어들인다.  

남자이면서 여자역할을 하는 소년 매춘부가 온 몸을 묶인채 성기를 도려내서 입에 넣고, 눈알은 후벼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쏟아내고, 오른손을 잘라내고, 엉덩이 살을 도려내는 등의 잔인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똑같은 방법으로 소년 매춘부들이 살해되기 시작하는데, 위에 말했던 크라이즐러 박사가 이끄는 팀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장님이 건초에서 바늘 찾듯이 범인을 찾아 나간다. 이 팀원들이 하나하나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팀원들 외에도 크라이즐러 박사를 도와주는 그의 하인들은 모두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데, '정신병' 감정을 받을 만큼 잔인한 폭행이나 살인으로 크라이즐러 박사와 인연을 맺었던 '환자' 들이다.  

소년 매춘부. 라는 설정에 낯선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당대의 뉴욕은 경찰도, 상류층도, 미디어도 범죄에 대해서 지금과는 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는, 물론 지금도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은 인생에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야 하는 특수한 기간이며, 어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들만의 규범과 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그저 작은 어른으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1896년의 법에 의하면 아이들이 제 발로 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든 말든 그것은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할 그들의 일이었다. "

역사소설이라고 지적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스릴도 있고, 서스펜스도 있고, 촘촘하게 짜여진 플롯과 범인 찾기도 있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내가 느꼈던 매력을 리뷰로 다 풀어내기는 불가능하다. 딱 하나, 결론이 허무하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결론밖에 있을 수 없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에릭 라슨의 <화이트 시티>를 좋아한다면, 이 책 역시 좋아할 것이다.
앞의 두 권이 논픽션이고, 이 책은 픽션이지만, 논픽션 작가가 쓴 픽션이라 논픽션의 느낌 역시 강하다.
다니앨 키스의 <빌리 멀리건>과도 '아동학대'라는 주제로 연결 될 수 있다.  
19세기 말 뉴욕에 관심 있거나,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에 대한 현재의 이야기를 보거나 읽은 독자들에게 그와 같은 기법들의 도입, 사상의 출현 당시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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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브라운 2009-01-1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꽤 끌립니다 ^^ 소설책만도 이렇게 밀려버리면 곤란한데 자꾸 좋은 책을 알려주시는 군요 ^^;;

짝짝 2009-01-16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사물 좋아하는데- 재미있겠네요 ㅎㅎ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본격소설 - 하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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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애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던 미즈무라 미나에는 7년여간의 작업 끝에 일본 근대를 배경으로 세기의 로맨스 '폭풍의 언덕'의 일본판과도 같은 멋진 연애소설을 썼고, 거기에 일본의 근대화, 일본 마지막 부르주아 계급 이야기, 세대의 단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격정의 로맨스를 담아냈다. 짝짝짝   

천페이지가 넘는 소설이다보니 두툼하다. 막상 '폭풍의 언덕'은 상권을 대부분 읽은 다음에야 시작되고,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 상권의 맨 뒷부분이다보니, '이런'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본격소설에 들어가기 전의 길고 긴 이야기' 라는 챕터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본격소설'을 읽기 전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고, 재미있고, 끝까지 읽고 나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신분의 차를 뛰어넘는 다로의 사랑을 도와주고, 지켜보는 후미코의 입을 통해 이야기는 펼쳐진다.

   
  다로 군은 아이한테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될 정도로 온몸으로 결사적인 기합을 발하며, 거기에 자기 자신이 밀릴 듯하면서 펼친 손바닥을 요코 아가씨 가슴께에 들이댔습니다. 그 세 개의 작은 돌멩이를 줍는 일이 그 아이의 여름방학의 전부였다는 사실이, 힘주어 젖힌 다섯 손가락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연민이라고도 경멸이라고도 감동이라고도 할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습니다. -479쪽-  
 
   

(무려 상권 479쪽에서야 요코에게 처음으로 다가가는 다로군)  

이것은 전쟁후 만주에서 넘어온 몸과 마음 모두 가난에 찌든 인력거꾼의 조카네 가족, 그 중에서도 차별받는 중국인 원주민의 피가 섞인 조카의 조카인 아즈마 다로와 일본의 마지막 부르주아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타가와가 요코 아가씨와의 신분의 벽을 뛰어넘고, 나중에 또 다른 벽도 뛰어넘는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요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엄마와 이모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하루에, 나쓰에, 후유에. 한명만 있어도 화려한 그녀들은 셋이 모여있을때 그 아름다움은 세배가 아니라 몇십배가 된다고 했다. 화려한 꽃밭같은 미모의 세자매. 여름이면 부자들의 고급휴양지인 가루지가와에 머문다. 하루에의 딸 마리, 에리, 나쓰에의 딸 유코, 요코, 그리고 그들의 별장 맞은편에 꼭 같은 모양으로 있는 시게미쓰가의 서양관. 세자매의 사이구사가는 시게미쓰가를 동경한다. 2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가장 먼저 유럽이니 미국이니 외국에 나간 세대이고, 서양식 옷을 입고, 외국잡지를 보고 문화를 누리던 당시의 상류층 계급이었다. 그런 그들 중에서도 뭔가 외모도 성정도 그들과는 달랐던 요코는 몸도 약하고, 외모도 뛰어나지 않다.  그런 그녀가 각기 다른 타입의 백마탄 왕자님 두 명에게 동시에 정말 '소설에나 나올법한' 불멸의 사랑을 받는다.  

연애 이야기도 물론 재미있지만, 세자매 이야기도 흥미롭다. 시골에서 자란 후미코의 눈에는 별세계와도 같았던 세상에 대한 묘사. 식모라고 부르던 것을 가정부라고 불러야 하는 봉건적인 세대의 마지막 부르주아 계급으로서의 세 자매. 시대의 뒤꼍으로 밀려난채 세상에 투정을 부리는 늙은이로 주저앉고, 가난해져버렸지만.. 그들의 프라이드는 연약할지언정 그들과 함께 살아남았다.  

"맞아요, 왜 이런 사람이 오페라 구경을 할까 싶은 작자들까지도 오페라, 오페라 하고 떠들어대거든요."
"3층 테라스 좌석 같은 것에도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돈을 치르면서."
"맞아, 그러니까 모처럼 오페라를 보러가도 글쎄, 신주쿠 영화관으로 알고 잘못 알고 오신 거 아니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은 얼굴뿐이야."
"호호호."
"멋내는 것도 여전히 시원찮아서 극장 분위기나 망치고"
"맞아, 맞아."
"그래서 저는요, 최근 정말이지 너무너무 지겨워서 이렇게 집에서만 들어요."
"네, 그게 제일입니다."
"이상한 것들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224쪽-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앞서 말했듯이, 마지막 부르주아 계급의 이야기, 그리고 세대 단절의 이야기라 하였다. 세대 단절의 이야기는 우리와도 비슷하다. 세자매 시대에 있었던 인간의 패기와 뛰어남은 그 아랫세대에서는 뭉퉁그려졌다. 모두가 같아졌다.후유에가 말한 것처럼 덩치만 커지고, 사람은 계속 작아져만간다. 는 것에 더해 아즈마 다로는 이야기를 듣는 유스케에게 말한다.

"경박한 건가요?"
이십육 년간의 인생에서, 유스케 자신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경박..."
남자는 그렇게 되풀이하고 나서 툭 내던지듯 말했다.
"경박을 넘어 희박이죠."
샴페인 글라스를 눈높이까지 올려 거품을 바라보면서 말을 잇는다.
"이 거품 같은 느낌...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417쪽-  
 
책을 덮고 나면, 연애에 대한 벅찬 느낌과 함께 한 시대의 마감과 다음 세대로의 과도기를 본 것에 대한 진한 허무와 여운을 느끼게 된다. 샴페인 거품과도 같은 경박하다 못해 희박한 이 세대가 지나면 다음에는 어떤 세대가 와서 또 이 세대를 마감하고, 대체할지 궁금해진다. 분명한 것은 그 때에도 격정의 로맨스는 존재하리라. 존재해야만 하리라. 는 것.

※책에는 가루이자와라는 곳의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흑백 사진들은 묘하게 감동적이다. 소설 속에 끼워져 있는 '사진'의 역할이란 것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이 정도의 강한 느낌을 주는 흑백사진이라는 것은 장르불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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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네 2009-01-13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격소설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네요^^ 슬며시 추천 누르고 갑니다-

하이드 2009-01-1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진짜 재밌었어요. 이런 재미있는 소설 읽을때마다, 원서로 읽으면 어떨까 궁금해져요.

Apple 2009-01-14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격정의 로맨스!!!!!!!!! 멋지네요.^^ 살까말까 하던 책이었는데 질러야겠습니다.흐흐흐흐흐...

하이드 2009-01-1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나요. 이 책 읽고, 다음책으로 넘어갈때 이 책의 여운 때문에 고생좀 했다는;; ^^
원서 읽고 싶은 병이 도져요. 아.. 일본어 ㅡㅜ

Apple 2009-01-15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그정도예요?ㅇ.,ㅇ 나 그런책 엄청 좋아해요!!!! 그냥 가볍게 읽는 책도 좋지만, 역시 뒤가 오래남는 소설이야 말로 마음에 남는 명작이지요.흐흐..꼭 질러야되겠네요.^^

hanicare 2009-01-1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용실에서 견뎌야 할 긴 시간 고문을 줄여줄 용도로 이 책을 골랐어요.
하이드님의 리뷰보고 궁금해지더군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흥미진진 읽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이렇게 손에 잡으면 놓지 못하는, 눈을 뗄 수 없는 절대미녀같은 소설도 좀 나와줘야해요.
개성미녀들도 좋지만^^
*화자를 가정부로 선택한 걸 보면 이 작가는 상당히 노회한 듯 합니다.아니었다면 계급인지 계층인지를
이토록 적나라하게 갈라놓은 것에 거부감과 비난이 엄청났을텐데요.
*그러나 10점 만점은 줄 수 없음. 요코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세 자매 혹은 그녀들이 풍기는 하이칼라(아, 이 용어 정말 오랫만에 들어봐요. 일제시대 작품에 종종 나오던 그 단어,,역시 우린 그들의 식민지 맞았네요.)한 선민분위기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하는 짧은 생각이 들더군요.요코정도로는 이 정도 길이의 책을 꽉 채울 수가 없었겠죠. 무엇보다 소설가와 그녀를 찾는 청년(일본이름은 거의 안외워짐)이 만나는 것, 이 청년이 다로군과 접하게 되는 장면, 이 청년이 소설가까지 찾아오게 되는 부분에서 저는 작위적인 냄새가 너무 짙어서 감점이 되더군요.

하이드 2009-01-1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로맨스 소설 보면, 각각의 주인공들 버전으로 여러권 나오는 것 있는데, 그런것처럼, 세자매의 각기 다른 버전이 궁금했어요. 요코 말고 유코의 사랑 이야기도..

간만에 읽는 이런 타입의 소설이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