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2]의 서평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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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2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셜록홈즈의 이탈리아인 비서관>으로 먼저 소개된 칼렙 카의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원제는 Alienist 이다. 20세기 전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물론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소외되었다 alienate' 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런 정신병리현상을 연구하는 전문가, 정신과 의사를 일컬어 '에일리어니스트alienist'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후반 뉴욕,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로 유명했던 에일리어니스트인 크라이즐러 박사가 어린아이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시어도를 루즈벨트와 담판을 짓고 타임즈지 범죄담당 기자 무어, 최초의 여경을 바라보며 '경찰서에서 일하는' 여자인 새러, 그리고 마커스 와 루시어스 형사와 팀을 이끌며 범인을 잡는 이야기이다.
뭐랄까, 이 책의 미덕은 너무나 많아서, 절대 한번에 다 이야기할 수 없다. 어떤 것을 얼마나 길게 이야기하듯, 그것은 이 책의 매력의 일부분일 것임을 미리 말해둔다.
우선 '재미있다'. 아무리 유익하고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도 교과서가 아닌한 '재미있어야 한다' 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단 이 소설은 재미있다. 19세기 말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19세기 말 뉴욕에 들어간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역사추리소설로, 19세기 말 뉴욕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당대의 심리, 정신질환의 진화기에,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이 소수의 의견이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들로 반발을 일으키고, 거기에 대항해 논리를 펼치는 이야기들은 간만에 지적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 외에도 로맨스, 페미니즘, 희비극, 유머,정치, 종교, 다문화 등등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책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성공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소설이다.
시어도르 루즈벨트..그 TR이 맞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시어도르가 각종 범죄와 갱단이 종류별로 판치는 뉴욕에서 경찰청장으로 있으면서 사회개혁 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다. 루즈벨트 외에도 실존인물들과 실존건물들(?) 등이 많이 등장하는데, JP 모건이라던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건축가 제임스 렌윅이 만든 집이 본부이고, (그 집은 그레이스 성당 -제임스 렌윅이 디자인한 뉴욕의 명물- 맞은편에 있다.), 개혁사상가로 외설 추방운동을 펼친 콤스톡이 나쁜놈으로, '미치광이 소년'으로 알려진 10대 범죄자 제시 포메로이가 연구대상으로,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인디언 운동가의 대가 클라크 위슬러가 크라이즐러 박사의 친구이자 조언자로 나오는 등 많은 실존 인물들과 실제의 일화들이 나오고, 실존인물들은 책 뒤에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워낙에 논픽션 작가이다. 역사소설에서 '역사'와 '소설'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소설의 분위기는 꽤나 달라지고, 그 사이에서 적절하게 발란스를 이루기는 쉽지 않은데, 논픽션 작가였던 그는 논픽션과 픽션을 섞인지도 모르게 녹아들여서 독자를 끌어들인다.
남자이면서 여자역할을 하는 소년 매춘부가 온 몸을 묶인채 성기를 도려내서 입에 넣고, 눈알은 후벼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쏟아내고, 오른손을 잘라내고, 엉덩이 살을 도려내는 등의 잔인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똑같은 방법으로 소년 매춘부들이 살해되기 시작하는데, 위에 말했던 크라이즐러 박사가 이끄는 팀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장님이 건초에서 바늘 찾듯이 범인을 찾아 나간다. 이 팀원들이 하나하나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팀원들 외에도 크라이즐러 박사를 도와주는 그의 하인들은 모두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데, '정신병' 감정을 받을 만큼 잔인한 폭행이나 살인으로 크라이즐러 박사와 인연을 맺었던 '환자' 들이다.
소년 매춘부. 라는 설정에 낯선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당대의 뉴욕은 경찰도, 상류층도, 미디어도 범죄에 대해서 지금과는 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는, 물론 지금도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은 인생에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야 하는 특수한 기간이며, 어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들만의 규범과 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그저 작은 어른으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1896년의 법에 의하면 아이들이 제 발로 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든 말든 그것은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할 그들의 일이었다. "
역사소설이라고 지적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스릴도 있고, 서스펜스도 있고, 촘촘하게 짜여진 플롯과 범인 찾기도 있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내가 느꼈던 매력을 리뷰로 다 풀어내기는 불가능하다. 딱 하나, 결론이 허무하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결론밖에 있을 수 없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에릭 라슨의 <화이트 시티>를 좋아한다면, 이 책 역시 좋아할 것이다.
앞의 두 권이 논픽션이고, 이 책은 픽션이지만, 논픽션 작가가 쓴 픽션이라 논픽션의 느낌 역시 강하다.
다니앨 키스의 <빌리 멀리건>과도 '아동학대'라는 주제로 연결 될 수 있다.
19세기 말 뉴욕에 관심 있거나,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에 대한 현재의 이야기를 보거나 읽은 독자들에게 그와 같은 기법들의 도입, 사상의 출현 당시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