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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 ㅣ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평점 :
노먼 베쑨의 평전을 읽기 시작했던 것은 김갑수의 책에서 그가 성질이 무척 나뻤다. 라는 글을 읽고 나서였으니, 그닥 지적이거나 선한 의도는 아니였는지도 모르겠다.
인물, 평전을 즐겨 읽는데, 실천문학사의 평전들은 인물 뿐만 아니라, 인물이 치열하게 살아 낸 현대사에 대해서도 비교적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조명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노먼 베쑨의 업적과 글, 일화를 위주로 마흔 아홉의 나이에 일흔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훨훨 태우고 가기까지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노먼 베쑨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의 전반부는 노먼 베쑨의 예술가와 지적인 의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스페인과 중국에서의 후반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온 몸과 마음을 던지고, 아마도 자신의 남은 수명까지 다 던져 산화한 휴머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먼은 다양한 모습을 지닌 복잡다단한 인간이었다. 성마른 성질은 환자들 앞에서만 틀림없이 누그러졌다. 뛰어난 외과의였고, 그림을 그리는 뛰어난 예술가이자 시인이자 명연설이자 과학자이자 설계자이자 사업가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폐결핵으로 죽을 자리를 찾아서 요양원으로 들어가서 거의 죽다 살아난 이후로, 더욱 불타오른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닥터 노먼 베쑨이라는 인간 양초 앞에서, 그가 사랑했던 용감하고 꿋꿋한 인민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그 세상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처음으로 스페인 전장에서 헌혈을 시도하였고, 헌혈대를 조직하였으며,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 전반부에서 노먼 베쑨이란 사람의 다혈질적인 면과 예술적인 면, 의사로서의 지적이고, 앞서나가는 것을 보았다면, 후반부에서는 전쟁의 발톱에 상채기난 시민, 혹은 시민들의 틈에서 의술이 아니라 인술을 행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그를 더욱 인간적이고, 한가지 목적에 포커스를 맞춘 강렬한 인상으로 보여주는데, 그 주에서도 의사 봉의 이야기는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노먼 베쑨이 백구은 동지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을때, 노먼 베쑨과 그의 의료대가 전장 근처의 산간 마을에 방문하여 그 곳의 의료대와 환자들을 본다. 그 중에 한명이 부목처치가 안되어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처지인 것을 보고, 특유의 벼락같은 성질을 내며, 그를 담당한 의사 봉의 잘못을 장군에게 보고한다고 하며, 큰 망신을 준다. 다음날 노먼이 자신의 분신이라고 하며 아꼈던 통역사 동이 봉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봉은 오지산간마을의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도 없어 글도 못 배우고 물소를 치던 소년이었다고 한다. 전쟁이 나고, 오지의 마을에도 군인들이 스쳐지나가게 되며, 세상 이야기를 듣고, 군대에 입대하여, 자력으로 읽고 쓰기를 배운다. 읽고 쓰기를 깨치고 나서 간호병이 되고, 수석 간호병의 자리까지 오르자, 이번에는 대학 나온 군의관들의 어깨너머로 그들의 수술 동작을 배우고, 비웃음을 받으며 라틴어 단어들을 한문으로 적어서 외우며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노먼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고질병인 성질을 반성하며, 봉을 돕게 된다.
중국에서 그는 '인민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인민의 학생이 되어야 한다' 고 했던 모택동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에게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존재로 받들어지면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겪는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감격스럽고 코끝 찡한 에피소드들은 그 중심이 되는 닥터 노먼 베쑨이 실존인물이었다는 것에서 할 말을 잃게 한다.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을 해 내느라 그는 그의 수명을 20년쯤 당겨썼나보다. 건장했던 그가 불과 2년만에 20년은 늙은 듯 체중 100파운드도 채 안 되는 고목과도 같은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양초처럼 자신을 훌훌 태우고, 중국에 큰 감동을 주고, 생명과 희망의 씨앗을 뿌린 그는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고, 중국에서 백구은으로서의 인생을 마친다.
장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면 말이다.
성질 나쁜 의사라며, 하고 읽기 시작했던 노먼 베쑨 이야기의 마지막은 경건하고 벅찬 마음으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