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닐 게이먼 지음, 데이브 맥킨 그림, 윤진 옮김 / 소금창고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닐 게이먼의 책은 영화로도 나왔던 <스타더스트>로 제일 처음 접했다.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느낌인데, 정말이지 못말리게 아름다운 문장들을 구사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가였다. 지금 와서, 그의 작품을 검색해보면, 상당히 의외의 작품들이 나타난다. <네버웨어>나 <멋진 징조들>같은 책들이 내가 닐 게이먼 하면 떠오르는 책들인데, 환상문학전집의 <신들의 전쟁>이라던가, 얼마전에 나온 그래픽 노블 <샌드맨>이라던가, 어린이를 위한(?) 그림 동화책<코랄린>,<벽 속에 늑대가 있어>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날>이라던가 말이다.  

닐 게이먼의 어른용(?) 책들을 읽고, 동화책으로 왔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데이브 맥킨은 닐 게이먼의 동화책 일러스트들을 담당하고 있고, 그래픽 노블인 <샌드맨>의 표지를 담당하기도 하는등 닐 게이먼과 인연이 많은, 궁합이 맞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어린이용 동화책이라기엔, 의미심장하고, 기괴하고, 으스스한 닐 게이먼의 글과 잘 맞는 일러스트들을 그리고 있다.  



강조하고자 하는 사물은 실물에 가깝고, 그 외에는 과감한 생략과 과장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 텔레비젼 앞에 앉아 신문만 읽고 있는 아빠가 있다. 신문을 읽고 있을 때에는 다른 곳에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이 책은 신문만 읽는 아빠를 위한 책일까? 신문만 읽는 아빠를 둔 아이들을 위한 책일까? 



어느날 아이는 친구가 가지고 있는 소니와 비니라는 이름의 예쁜 금붕어 두마리를 보게 된다.



와- 예쁘다.
금붕어를 바꾸고 싶어하는 아이! 정작 바꿀 물건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튕기는 나딘에게 고심끝에 드디어 발견한 ....

'우리 아빠랑 금붕어랑 바꾸자!'
그 아래 동생曰 : '이런'



바꿔버렸다. 신문만 보고 다른 곳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아빠와 예쁜 금붕어 두마리를..
저지르고 나자, 엄마에게 혼날 걱정이 되는 아이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추궁에 바로 불어버리는 예쁘고 착한 여동생

금붕어 두마리를 다시 아빠로 바꿔오기 위한 남매의 여정이 시작된다.

 

친구는 아빠를 기타로 바꾸었고, 기타를 들고 다른 친구에게 가자 아빠를 고릴라 가면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런.
오빠 : 너 커서 기타치는 가수가 될까?
동생 : 커서 바보나 되지 마.

 

고릴라 가면을 써 보는 남매
오빠 : '원래 얼굴이 고릴라 같은데 가면은 왜 필요하냐?'
이건 상당히 ... 우리 남매와 같다.  



바로 동생에게 복수 당해 경찰아저씨한테 혼나는 오빠;;
그들의 여정은 계속된다.  



이번엔 토끼...다. 토끼로 바뀐 '신문만 보고 다른 곳에 신경 안 쓰는 아빠'
남매의 여정은 계속된다.





지도를 따라 걷고 또 걷는 남매
동생 : 내 생각엔 생강맛 사이다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 같아.
나 : 삶은 무보다도?
동생 : 아니, 그렇게까지 끔찍하진 않았던 것 같아.   



드디어 도착. 뚱뚱하고 귀에 점이 있는 커다란 토끼 갈베스톤을 데리고, 다시 '신문만 보고 다른 곳에는 전혀 신경 안 쓰는 아빠'와 바꾸기 위해 지도 끝의 풍차가 있는집에 도착하였다. 







갈베스톤의 토끼장 안에서 여전히 신문을 놓지 않는 아빠를 데리고 집으로..



엄마는 내게 
가슴에 십자가를 그으며
맹세하라고 하셨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와 다른 물건을
바꾸지 않겠다고
그래서 나는 약속했다.
다시는 아빠와 다른 것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동생을 놓고선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라는 닐 게이먼스러운 결말. 흐흐흐   

엉뚱한 남매와 '신문만 보는 전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는 아빠'가 나오는 닐 게이먼의 동화는
화려한 붓놀림의 데이브 맥킨의 그림과 잘 어우러진다.
아이들에겐 예쁜 금붕어에서 가수로 만들어줄 기타로, 고릴라 놀이를 할 수 있는 쿨한 고릴라 가면으로,
그리고 다시 크고 뚱뚱한 귀여운 토끼로 바꾸어가는 재미가 있는 동화지만,
어른들에겐 여전히 섬뜩하고 찔리는 잔혹동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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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1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참 예쁘네요..

파란 2009-02-13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꿀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글쓴이나 그린이가 모두 독특한 면이 있어요. 벽속에서 늑대가 나왔어요도 근사하지요. 아이들은 늑대가 나온책을 더 좋아하더군요. 가끔 궁금한게 폴리네시아여왕은 무슨 의미일까. 두책 모두 나왔는데 무슨 의미일까 합니다.

하이드 2009-02-1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가지 다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벽 속에 늑대가 있어요>는 저도 읽으면서 두근두근 했으니깐요. 반전도 재미나고요.

그나저나 저도 궁금했어요. 폴리네시아 여왕은 누굴까요??

파란 2009-02-1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속에 늑대는..아이들이 다 좋아하는데. 실은 [우리 아빠랑은..]책은 공부방아이들은 싫어하더라구요. 일반적인 가정환경이 아니어서 보여주지 않았던 그림책인데 아이들이 어느새 한명씩 읽어보더니 다들 싫다고 했던 책이었어요. 가방에 넣어간 제가 생각이 부족했다 싶어 미안했던 책이에요. .

kogima 2009-09-0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군가는 책을 엉망으로 낱장이 되도록 흩어 놓았고,
누군가는 책을 한 켠 한 켠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셨네요,
그래서 또 누군가는 쪽수가 없어서 순서가 실종된 책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안녕~
 
비잔티움의 첩자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8
해리 터틀도브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만약 로마제국을 재건하려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시도가 국력을 소진시키지 않았다면? 비잔틴 제국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도들을 막아내고, 훗날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비잔틴 제국에게 치명타를 가한 이슬람교가 처음부터 아예 생겨나지 않았다면?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비잔티움의 첩자>는 전형적인 what if 소설이다.  위의 가정을 기반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동로마와 서유럽 제국및 근동의 페르시아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시절이다. 주인공인 바실 아르길로스는 로마의 군인에서 스파이로 공을 세우고, 콘스탄티노플, 모두의 꿈의 도시인 그 곳에서 제국의 정예 수사관인 마지스트리아노스로 일하게 된다.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단편은 역사 속의 물건들을 하나씩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첫 단편인 '아르고스의 눈'은  로마군으로 아르길로스가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은 유목민과의 대치중에 그들이 '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해서, 마술의 정체를 알기 위해 잠입하고, '마술'의 정체인 '망원경'을 가지고 도망나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각각의 단편은 시간적으로 이어지지만, 몇년씩 훌쩍 넘어가서 두번째 단편인 '기묘한 발진'에서는 벌써 아르길로스가 마지스트리아노스로서의 과한 업무에 치여 있는 모습,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는 가장의 모습으로 나온다. '기묘한 발진'은 당시의 가장 무서운 역병의 하나인 '천연두'로써, 우리의 영웅 마지스트리아노스 아르길로스는 '우두접종'의 아이디어를 내서 제국을 구한다는... 다소 수퍼히어로적인 이야기이다. 아르길로스의 사건 해결 과정은 하드보일드인데, 마무리는 셜록홈즈..라고 할까.

대체역사에는 실제 역사 또한 포함되어 있기에, 역사 속의 이야기와 대비하면서 읽는 것도, 터틀도브가 안내하는 what if의 세계에 빠지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이 정예수사관인 첩보원이어서 마타하리 같은 페르시아의 여자 스파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도 또 하나의 볼 거리.

역사속의 이야기로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성상聖像'이었다. 그리스 정교의 이콘숭배를 비판하는 커다란 소요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단편이다. 각각의 단편이 보여주고 있는 역사속의 물건들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읽을 사람의 재미를 위해 생략하지만, 각각의 단편들이 모두 지루한듯 재미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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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11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이책 재미있지요.근데 별로 판매가 되지 않았던지 행책에서 절판시킨다네요

하이드 2009-02-1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었어요. 재 취향의 책이 아니긴 한데, 좋은 책이고, 재밌는데, 아쉬워요!
 
에덴의 동쪽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2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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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여페이지의 대작인 <에덴의 동쪽>은 <분노의 포도>와 함께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정작 스타인벡은 "내 최고의 대표작으로, 이전에 쓴 다른 작품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준비였다." 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이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의 배경인 살리나스 계곡은 작가의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고, 새뮤얼 해밀턴은 작가의 조부를 떠올리며 쓴 것이며, 작품 속에 존 스타인벡 어린이가 나오기도 한다. 제임스 딘이 주연하고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영화로도 유명한데, 표지 역시 제임스 딘이 나오는 영화컷을 쓰고 있다.  영화는 앞으로 볼 예정인데, 영화 줄거리와 책의 줄거리가 영 다르다. 내용도 다르거니와 다루어지는 부분도 이 대작의 1/10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 많은 매력적인 인간상들의 부분이나마 볼 수 있을 것일는 점에서 기대가 되긴 한다.

이 작품은 해밀턴가와 트래스크가 3대에 걸친 선과 악, 카인과 아벨, 사랑과 증오의 서사시이다. 
서부의 살리나스 계곡에 정착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아일랜드에서 온 해밀턴가가 자리잡은 곳은 살리나스 계곡에서도 최악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고, 트래스크가의 애덤 트래스크가 후에 와서 자리잡는 곳은 알짜배기 땅이다. 이것은 땅의 이야기는 아니다. 땅위에 사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해밀턴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이자, 살리나스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트래스크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은 바로 새뮤얼 해밀턴이다. 살리나스의 누구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독자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미워하기는 커녕, 사랑에 빠지고 만다. 발명가고, 긍정적이고, 항상 유머러스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손재주 있는(개척지의 농가에서 손재주 있는 사람은 스타 중의 스타다)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덤 트래스크의 중국인 하인 리와 함께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직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다. 

그런 해밀턴이 일군 해밀턴가는 "살리나스 계곡에 안전하게 정착해서 단단한 기반을 닦은 훌륭한 가문이었고, 다른 집안보다 더 가난하지도, 더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런 데다 보수주의자와 혁신주의자, 몽상가와 현실주의자가 적당히 섞인 비교적 균형이 잘 잡힌 가족이었다. 새뮤얼은 자기 자식들을 흐뭇하게 여겼다. "

딸들과 아들들. 각각이 모두 새뮤얼을 닮아서 매력적이고, 똑똑하다. 존 스타인벡은 새뮤얼의 딸인 올리브의 아들로 나온다. 의상실을 하는 사랑스러운 대시라던가, 몽상가 톰도 인상적이지만, 나는 이 가족 중에서 새뮤얼을 빼고는 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현실적이고, 돈을 버는 재주가 있는 그인데, 아버지와 비슷한 성향의 가족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이 책은 이 아들 딸들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정도로 짧더라도 강렬하게 그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트래스크가에는 애덤 트래스크가 있고, 쌍둥이 아들인 아론과 칼렙이 있다.
주인공을 꼭 한 명 꼽아야 한다면,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새뮤얼이라 치더라도) 애덤 트래스크인데,
애덤의 아버지인 사이러스 트래스크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들 가족의 이야기에 많이 할애하고 있다. 이병으로 제대하여 군대에 대해 부풀려 말하며 거짓말을 하다가, 공부하게 되고, 결국 어째어째 재향군인 대표로 워싱턴까지 진출하여, 나중에는 장례식에 부통령이 참가할만큼 영향력 있는 몸이 된다. 그가 남긴 엄청난 유산은 아들인 애덤과 찰스에게 돌아간다.
이 가족의 특징은 카인과 아벨과도 같은 애증의 형제인데, 사랑받는 애덤, 아론, 사랑을 갈구하는 찰스, 칼렙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갈구하면서 자라는 어린아이의 속은 어둡고 복잡하고, 한없이 엉켜 있다. 반항적이고, 자신 안의 악마적인 면을 느끼고 있으며, 그러나 동시에 형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고, 때로는 해치고 싶고, 고통받게 하고 싶고, 영악한 이들. 
제임스 딘과 무척 어울릴 것 같아 영화도 기대중이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등장하는 케이티. 천사같고, 인형같은 외모의 그는 통찰력 있는 새뮤얼과 리가 보기에는 악마이고, 내가 보기에는 딱 사이코패스다. 끝가지 그녀에 대해서는 모호하지만, 중간중간 연민을 일으킬 장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태워 죽이고, 돈을 훔쳐 집을 나와 창녀생활을 하면서 남자를 후리다가 크게 당하고, 애덤과 찰스의 농장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그녀. 감정이라곤 없고, 인간에게서 '악惡'만 보는 그녀이다. 새뮤얼 해밀턴의 정반대에 서 있는 무서운 여자. 이 여자의 이야기 또한 무척이나 흥미롭다.

대충의 등장인물 이야기만 해도 이렇게나 길어진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천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 나오는 형제들. 그 중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어둡고 복잡한 내면의 그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실수와 충동적인 행동도 그들에게는 선한 이들의 그것보다 배로 힘겹다. 
그러나, 이 책의 (내가 생각하기에) 주제이기도한 팀셸. 히브루어로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한 논쟁은 애덤과 새뮤얼과 리가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데, 주로 리의 의견이고, 새뮤얼이 받아들인다.

"미국 표준성서에는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라고 '명령'을 내려요. 여기서 죄는 무지로 볼 수 있죠. 그런데 흠정역 성경은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약속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것이라는 뜨이지요. 그런데 '팀셸(timshel)'이라는 히브리어는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의 뜻으로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길은 열려 있다는 말이니까요. 즉, 책임을 사람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는 곧 '너는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의미죠. 모르시겠어요?"

인간의 선택. 실수를 하고, 끊임없이 죄를 짓고, 또 끊임없이 선택을 한다.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요. 인간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라는 것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꽤나 의미심장한 이야기이다.

존 스타인벡의 책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는데, 그의 문장 또한 맘에 든다.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와 어둡고 음울한 캐릭터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범죄와 미움과 증오는 있지만, 독자는 누구 하나 미워하기 힘들다. 여러가지 일화들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절절한 느낌 또한 최고다. 중간에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사랑하는 주인공이 죽었을때는 그 이야기를 너무 슬프게 해서 책을 한동안 덮기도 했다. 거장이 괜히 거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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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
존 카첸바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카첸바크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을 무척이나 인상깊게 봤다.
정신병자, 파이어맨, 여검사와 '천사'라 불리우는 잔인한 범죄자가 등장하는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이야기였다.

<애널리스트>가 전작에 비해 평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등장인물이 전지전능한 범인과 정신과 의사인 희생자, 단 둘에 국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조연들의 역할은 미미하고, 캐릭터가 죽어 있다. 무엇보다도 초반부에 정신과 의사인 리키 스탁스를 파멸시키기 위해 범인이 사용하는 방법들이 '전지전능'해서, 의사와 생일이 같은 친척 소녀의 생일에 사물함에 포르노 사진을 넣어둔다거나, 의사의 환자를 죽인다거나. 까지는 모르겠는데, 의사의 모든 계좌의 돈을 빼버린다거나, 집이 있는 건물 자체를 태풍에 휘말린듯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거나, 편지 한장으로 의사가 쌓아온 모든 경력을 무로 돌려버린다거나 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 범인이 엄청난 증오로 의사에게 몇년에 걸쳐 복수하게 된 동기도 희박하다.

그러니, 저자가 640페이지라는 어마무시한 두께의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필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읽는 내내 미심쩍은 마음이 한켠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억지스러운 설정을 소설적 장치려니, 무시한다면, 소설은 재미나게 읽히고, 진짜 이유도 모른채 '파멸' 바로 근처, '지옥문' 바로 그 앞까지 간 리키의 입장에서 미스터 R을 찾아 반격하는 리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고, 쫓고 쫓기는 범인과 희생자의 이야기도 나름의 서스펜스를 갖추고 있다. 

희생자가 '정신과 의사'라는 점도 이 이야기의 매력포인트이다. 존 카첸바크는 누가 뭐라해도 심리소설의 대가이지 않겠는가.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을 이용해 자신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존재에게 대항한다.  두명의 남자가 투탑으로 나오는.. 이라고 하기에는 미스터 R의 존재가 모호하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정신과의사 리키가 북치고 장구치는격.

장점이 많은 책이긴 한데, 설정이 약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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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번역은 괜찮던가요?

하이드 2009-02-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히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비연 2009-02-0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약했죠..이 책은.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에 비해서.

루나 2009-03-0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책 보고 반해서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 읽었는데... 이책 참 좋던데요~^^

하이드 2009-03-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생각나는 좋았던 장면들이 있긴 한데, 주인공이 좀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에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필연성도 좀 떨어지는것 같고 말이죠. 좋은 작가고, 좋은 글인건 분명해요. ^^
 
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와 온다 리쿠를 열광적으로 맞이했던 독자들 중에 하나고, 적극적으로 마음 돌리고 욕한 독자들 중 하나다.
안 읽으면 그만이지, 욕은 왜 하나. 라고 한다면, 좋아했던 마음이 기대 이하의 범작들로 인한 실망으로 지속적으로 무너져갈 때 겪게 되는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플러스, 정말 많은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고, 그 중에는 진짜 시간 아깝고, 돈 아까운 책들도 많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건 정말 괜찮아라고 해도 돈 주고 사기 싫어지는 지경까지 와 버렸으며, 내가 열번 속지, 열한번 속냐. 하는 심정으로 기대치를 확 낮추어 놓은 상태이다.

잡설은 그만하고, 꽤나 평이 좋은 작품인 <악의>를 읽게 되었다.
꼬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좋은 이야기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치고는 지루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치고는 진중했다. 고 평하고 싶다.

이야기는 노노구치의 수기로 시작한다. 
학교 선생이다 그만두고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선 노노구치와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문학성까지 인정 받은 히다카는 어린시절의 죽마고우다. 부인이 죽고 5년이 지나 재혼한지 한달이 된 히다카는 이제 곧 캐나다로 떠나 휴식기를 가지려 한다. 노노구치는 그를 방문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그 날 밤 히다카의 전화를 받는다. 의논할 일이 있으니 와달라는. 마침 출판사 직원이 방문중이라 8시경에 찾아가기로 하는데, 막상 찾아가자 집안에 불이 모두 꺼져 있고, 집에는 아무도 없는듯하다. 부인에게 전화를 하고, 근처 찻집에서 기다렸다가 부인을 만나 집으로 들어가자, 히다카가 교살된채 죽어 있는데...  

노노구치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거에 같은 학교에서 교사를 했던 가가형사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평생 겪기 힘들 사건에 대한 수기를 쓴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가가형사는 그 수기를 보여달라고 한다. 사건의 진행에 따른 노노구치의 수기와 가가형사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밝혀지는 진실, 아니 똘똘뭉친 인간의 악의惡意

이 책에는 정도가 각각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음기인 악의가 등장한다.
'악의'는 아주 어릴적의 학교 왕따 문제부터 시작한다. 왕따를 하던 대장겪의 못된놈은 '아무튼 그애가 싫었어요' '아무튼 그애가 싫었어요' 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유 없이 치솟는 나쁜 감정 '악의' 못된놈이 무리를 모아 그 악의들을 한 아이에게 쏟아 붓고, 그 악의는 또 다른 곳으로 더욱 증폭되어 전달된다.

도대체 이 이유없는 나쁜 감정 '악의'는 어디에서부터 생기는 것일까? 질투, 시기, 열등감, 등등의 밭에서 자라난 '악의'라는 재료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훌륭하게 요리했다. 개인적으로 마침내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탐정역의 인물이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사건 해결을 설명하는 것에 지루해하는 편인데,(이미 독자는 다 아는 얘기라구.) 이 책은 결말까지 나같이 성급한 독자의 눈을 놓치 않는다.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 who done it? why done it? how done it? 을 다루게 된다면,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why done it?이다. 범인은 진작에 밝혀졌는데,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즉. 범죄의 동기는 무엇인가? 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사건의 진정한 전말을 파악하게 된다.    

'세상에 시시한 책은 없다. 시시하고 편협한 마음의 독자만 있을 뿐이다' 라는 어느 일본 작가의 저자 후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얘기를 '저자'가 해봤자.. 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시시한 책은 열라 많고, 쓰레기 같은 책도 열라 많다고 생각하지만, 편협한 마음의 독자는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나도 가끔 '편협한 마음'의 독자가 된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이름만으로 사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름만으로 절대 안 사. 했던 작가들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온다 리쿠가 그 둘. 이제 그 둘에 대한 편협한 마음을 버리고, '좋은 작품'을 엄선해서 읽어봐야 겠다고 반성했다.

*리뷰 제목은 <닥터 노먼 베쑨>중 닥터 노먼 베쑨의 연설문 중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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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2-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완독. 아직 후끈. 저 역시, 살짝 식었다가, 이 책은 아주 맘에 들었담다.

하이드 2009-02-09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까지 흠잡을데가 없더군요. (막 흠잡으려고 작정하고 봤음에도 불구하고요 ^^;)

Beetles 2009-02-2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하이드님의 추천은 절 실망시키지 않는 듯..이스트사이더의 남자까지 최근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