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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
세노 갓파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어떤 것부터 이야기할까. 세노 갓파라는 이름은 저자의 이름이다.(실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만화이름 같기도 하고, 요괴이름 같기도 한 머리에 쏙 들어오는 이름임에는 분명) 그는 그래픽을 전공하고, 독학으로 무대미술가가 되어 지금은 그 분야의 거장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과 같은 독특한 세밀화와 간결한 문체의 에세이스트로도 유명하다.
서점에서 처음 봤을때, 강렬한 컬러와 표지의 세밀화, 길쭉한 판형이 눈에 확 들어온다. 길쭉한 판형의 책이 눈에는 띄어도, 보통은 읽기 불편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가 않다. 종이는 얄팍하니 넘기는 맛이 있으며, 겉표지는 하드커버로 책을 받치고 읽을때 중심을 잡아준다. 중간중간 세밀화가 많고, 한장에 걸친 그림도 많은데, 책이 잘 넘어가고, 잘 펴져줘서, 읽는데 편했다. 사소하지만,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 아니겠는가. 저자가 해외출판에 까다롭다고 하는데, 그런 저자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이 책은 '인도'에 대한 책이다.
보통 여행서라하면, 실질적인'정보'를 얻거나, 역사 , 정치, 문화적 배경을 공부하거나, 현지의 느낌을 잘 전해주는 생생한 글을 보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여행서는 여행서 꽤나 보는 나로서도 본 적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은 내가 한 권의 여행서에서 기대하지 않는 여러가지를 다 담고 있다. 이 책이 20년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마, 그 곳이 '인도'여서 더 그렇겠지만, 여전히 생생하며, 여행 가이드북으로도 손색이 없다.
책에 나오는 글의 80% 정도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 유적지에 대한 글이다. 이를테면, '18세기 중반까지 이 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와디야르 왕가는 가신이었던 하이드라 알리에 의해 무너지고 왕권을 빼앗겨 버렸다. 알리의 자식인 티푸 술탄이란 남자도 용맹하고 정치력이 있었던지, 광대한 요새도시를 세우고 점점 영토 확장을 꾀했다. 그러나 강대한 이웃 나라 하이드라바드와 마라타와의 전투에다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신화적 배경과 건축에 대한 글들은 이전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 힌두신화와 건축에 대한 글들을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어, 비교적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위와 같은 글들이 80%라면, 읽어내기 힘들까 생각들지도 모른다. 나머지 10%는 현지인들과 '모든 다양함이 혼재되는 그것이 인도다'로 함축되는 인도에 대한 이야기.나머지 10%를 유머섞인 자학 정도로 보면 되는데, 이 것들이 적절히 분배되어, 꽤나 단숨에 재미나게 읽어 버렸다. 매 페이지에 나오는 세밀화를 보는 것 역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고 말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나의 '가고 싶은 나라' 리스트 저 아래에 '인도'와 '중국'이 있다. 힘들고, 불편하고, 더럽고, 위험할 것 같아서인데.. 이 책을 읽으니, '조금'은 가고 싶어졌다.
* 마하자라는 '왕'
이런 정도의 세밀화를 앞에 두게 되면, 나같은 덤벙이는 십자수 이불을 앞에 둔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말아 땀이 삐질삐질 난다.
저자의 세밀화에 대한 강박은 대단하여, 창문 하나하나까지도 그대로 그려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세노 갓파는 자신이 묶는 호텔방 역시 세밀화로 그리는데, 가격, 방번호, 온도 등의 정보는 물론이고, 방에 있는 세세한 소품까지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그려낸다. 흑백인점을 감안하여, 색상까지 하나하나 친절하게 적어주고 있다.
그의 그림은 여행지에서도 인기가 좋아, 거리의 예술가로 치켜세워지는가 하면, 방값을 디스카운트 받기도 하고, 방이 없어도, 내주게 만드는 인기있는 그림이다.
'방그림은 어느 호텔에서나 흥미를 끈다. 어디서나 공통된 반응은 룸서비스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담당하는 방이 정확히 그려지는 걸 재미있어 하며 "앗! 여기 전화가 그려져 있다!" 하고 기뻐한다. 매니저급의 사람들은 다른 호텔 방과 열심히 비교해 본다."
이 책에서는 아무래도 관광안내 책자에도 나와 있다는 '레이크 팰리스' 호텔이 가장 궁금했다. 그 외에는 하우스보트. 호수 위에 떠 있는 호텔들.
인도에서는 기차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라고 하는데, 1등급에서 3등급까지, 각각의 등급은 또 냉방칸, 침대칸, 냉방 없는 칸 등으로 나누어져서 가장 저렴한 자리와 가장 비싼 자리가 열배까지 차이난다고 한다. 기차 여행을 할 때에는 줄자를 꺼내들고, 앉은 칸의 의자의 높이, 길이, 넓이부터 시작해서, 그 칸의 모든 것!을 줄자로 재어 수치를 내고, 역시 '세밀하게' 그려 넣는 것이 취미이다. 그 외에 차장의 복장이라던가, 조식에 나오는 것들고 가격들. 즉, 이치는 여행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담고자 하고, '글'로 상호보완하고 있다.
쉰의 나이에 젊은이, 아니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여행하는 저자의 여행을 보는 것은 즐겁다. 인도라는 곳은 궁합이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세노 갓파와 인도의 궁합은 꽤나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