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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다니엘 튜더의 두번째 책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것은 '음악'과 '글쓰기' 이고, 10대때부터의 장래희망인 '록스타 되기'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소규모 자가 양조 맥주점인 '더 부쓰 The Booth'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옥스퍼드에서는 정치학, 경제학,철학을 공부했으며 2002년 월드컵때 한국을 찾았다가 한국에 빠져서 2004년 다시 서울로 와서 외국인강사, 미국계 증권회사, 한국의 증권회사를 다녔다. 2007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맨체스터 대학에서 MBA를 따고 스위스의 헤지펀드 횟에서 일했다. 2010년에서 2013년까지는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다.
저자의 경력을 이렇게까지 리뷰에 써 본적이 없는데, 사실, 지금 리뷰 쓰면서 처음 봤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다 옮겨 보았다.
이 책은 '한국정치'에 관한 책이다. 위에 적은 그런 과거를 지닌 82년생 영국 남자의 눈으로 본 '한국정치' 에 관한 책이다.
이 나라의 정치는 대체로 재미 없고, 황당함으로 자극할 뿐이다. 투표권이 생긴 이래로, 그리고 훨씬 더 전인 애기때부터도 내가 아빠 손에 끌려 야구장을 다니며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었던것처럼 나는 2번을 찍어왔다. 한국정치에 대해서라면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갑갑하고 싫다. '한국이 싫어서' 를 만든'한국'은 바로 '정치'가 만든거 아닌가 말이다. '익숙한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보는 내내 불편하지만, 뒤로 갈수록 안개가 걷히듯, 처음으로 새누리당의 능력이 보였고, 익히 알던 새정치연합의 무능이 선명해졌다. 이렇게 얘기하니 새누리당에 호의적이고 새정치연합을 까는 책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 책에서만큼은 다니엘 튜더는 모두까기 인형이다. 다만, 국외자의 눈으로, '영국 정치' 속에서 대부분을 살아 왔던 이의 눈으로 비판하기에 좀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대체로 욕하고 한심해하지만, 그들의 능력을(국정을 잘한다는 것과는 다른)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불편한 희망' 이라고 했는데,'희망'은 어디 있나요? '현상유지'로 이미 먹고 들어가는데, 그 '현상유지'를 잘하기까지 하고, 그들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무능한 야당까지 있으니,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한 표를 행사하는 것에도 대부분의 경우 패배감만 느끼고, 어떻게 그럴수가! 분노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깊은 체념이 자리잡고 있는데, 제1세계 선진 영국에서 온 저자 답게 영국의 좋은 사례들을 알려주는데, 그 부분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면 챕터 09의'좋은 정치인 찾기' 같은거.
영국에는 정치인과의 면대면 간담회 문화가 있다. 유권자의 민원이나 고충을듣는 일명 '서저리surgery' 제도다. 영국 국회의원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서저리 자리를 마련한다. 간담회를 원하는 유권자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시간과 날짜를 물어보면 된다. 국회의원은 바쁘더라도 서저리 요청을 받으면 몇 주일 내로 10~ 15분가량 시간을 내도록 되어 있다.
유권자는 정치인과 직접 만나 간담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4~5년마다 한 번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 외에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2011년 73명의 런던 국회의원 중 10명은 연간 1000명 넘는 유권자를 만났고, 국회의원 1명당 연간 평균 720명의 유권자를 만났다.
그러니깐,이게 헛된 공약 뿌리는 선거때 말고, 사진 찍으려고 기자들 몰고 다닐때 말고, 1대1로 직접 만나 민생을 듣는다는거 아닌가. 이건 유권자 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유권자를 표찍는 '머릿수'로만 세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좋은 제도인 것 같다. 책에서 다니엘 튜더의 친구는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국회의원이 만나줄리 없다고 했다는데, 그 친구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나도 물론 시도해 본 적 없다.
그리고 이 책에는 다니엘 튜더가 대단한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대단히 양성평등에 뒤쳐져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강조하는 글들이 나오고, 그건 근래의 몇몇 진보지식인들의 행태를 봤을때도 굉장히 와닿는 글이었다.
386 아저씨에 의한, 386 아저씨를 위한
민주당 당사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특정 그룹이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왕년에 학생운동을 한 지식인이나 교수처럼 보이는 40~50대 남성이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다양성이 배제된 특정 그룹이 당을 주도하고, 끊임없이 학생운동 시절과 박정희를 운운하는 사람들로 뭉친 정당은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인식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더 따뜻하고 일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했다. 하지만 너무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나이나 성별,배경 면에서 다양성이 부족해 국민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희망을 품기 어려워 보인다
상대적으로 여성 비중이 낮은것 역시 눈에 띄었다. 박원순이 재임에 성공한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날에는 당사에 여성들이 많이 보였는데,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아니라 시청 직원이나 박 시장과 시민단체 활동을 같이 했던 동료들인 것 같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사에서는 여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거 캠프 관게자에 따르면 여성 비율이 10퍼센트에도 미치지 않고, 그마저 선거를 돕고 있는 20대 인턴이 대부분이며 지도부에는 여성이 정말 극소수였다.
이 이야기 뒤로 저자가 본인은 지지정당이 없지만, 새누리당이 한국에서 정치공학에 가장 뛰어난 정당인 점은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이자스민을 비례후보로 공천한 영리한 전략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다니엘 튜더는 여기에 덧붙여 최초의 동성애 커밍아웃 의원을 새누리당에서 비례공천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아.. 새정치연합이여...
복지에 대한 접근 방식도 현명하다. 여기서 새정치연합은 완전히 망했고, 망했고, 프레임은 새누리당이 선점했다. 야당이 했어야 하는건 '투자로서의 복지' 프레임이였다.
한국에서는 복지를 확대하려는 사람들조차 그릇된 방식으로 복지를 제시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메시지는 이랬다. '가난하고 딱한 국민이여, 국민의 최상위 1퍼센트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빈곤해진 이명박 정권 아래 끔찍한 시간을 보낸 여러분, 여러분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복지를 확대하겠습니다.' 마치 사탕을 잃어버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수사였다.
복지에 대한 궁극적 메시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수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지위 상승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회가 지금 여러분을 도울 테니, 나중에 성공하면 사회를 도와야 합니다'라는 암묵적 합의가 복지정책에 내포되어야 한다.
마지막장인 '모든 것은 프레임에 달려 있다' 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페미니즘'과 '어셩인력 낭비 문제' 에 대한 글은
현실적이고 명쾌하다.
책이 나온 것이 6월인데, 안철수에서 세월호까지 다양한 현재진행형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의 세번째 책에서는 불편해도 좋으니 '희망'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