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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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의 두번째 책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것은 '음악'과 '글쓰기' 이고, 10대때부터의 장래희망인 '록스타 되기'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소규모 자가 양조 맥주점인 '더 부쓰 The Booth'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옥스퍼드에서는 정치학, 경제학,철학을 공부했으며 2002년 월드컵때 한국을 찾았다가 한국에 빠져서 2004년 다시 서울로 와서 외국인강사, 미국계 증권회사, 한국의 증권회사를 다녔다. 2007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맨체스터 대학에서 MBA를 따고 스위스의 헤지펀드 횟에서 일했다. 2010년에서 2013년까지는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다. 

저자의 경력을 이렇게까지 리뷰에 써 본적이 없는데, 사실, 지금 리뷰 쓰면서 처음 봤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다 옮겨 보았다. 
이 책은 '한국정치'에 관한 책이다. 위에 적은 그런 과거를 지닌 82년생 영국 남자의 눈으로 본 '한국정치' 에 관한 책이다. 

이 나라의 정치는 대체로 재미 없고, 황당함으로 자극할 뿐이다. 투표권이 생긴 이래로, 그리고 훨씬 더 전인 애기때부터도 내가 아빠 손에 끌려 야구장을 다니며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었던것처럼 나는 2번을 찍어왔다. 한국정치에 대해서라면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갑갑하고 싫다. '한국이 싫어서' 를 만든'한국'은 바로 '정치'가 만든거 아닌가 말이다. '익숙한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보는 내내 불편하지만, 뒤로 갈수록 안개가 걷히듯, 처음으로 새누리당의 능력이 보였고, 익히 알던 새정치연합의 무능이 선명해졌다. 이렇게 얘기하니 새누리당에 호의적이고 새정치연합을 까는 책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 책에서만큼은 다니엘 튜더는 모두까기 인형이다. 다만, 국외자의 눈으로, '영국 정치' 속에서 대부분을 살아 왔던 이의 눈으로 비판하기에 좀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대체로 욕하고 한심해하지만, 그들의 능력을(국정을 잘한다는 것과는 다른)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불편한 희망' 이라고 했는데,'희망'은 어디 있나요? '현상유지'로 이미 먹고 들어가는데, 그 '현상유지'를 잘하기까지 하고, 그들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무능한 야당까지 있으니,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한 표를 행사하는 것에도 대부분의 경우 패배감만 느끼고, 어떻게 그럴수가! 분노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깊은 체념이 자리잡고 있는데, 제1세계 선진 영국에서 온 저자 답게 영국의 좋은 사례들을 알려주는데, 그 부분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면 챕터 09의'좋은 정치인 찾기' 같은거. 

영국에는 정치인과의 면대면 간담회 문화가 있다. 유권자의 민원이나 고충을듣는 일명 '서저리surgery' 제도다. 영국 국회의원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서저리 자리를 마련한다. 간담회를 원하는 유권자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시간과 날짜를 물어보면 된다. 국회의원은 바쁘더라도 서저리 요청을 받으면 몇 주일 내로 10~ 15분가량 시간을 내도록 되어 있다. 

유권자는 정치인과 직접 만나 간담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4~5년마다 한 번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 외에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2011년 73명의 런던 국회의원 중 10명은 연간 1000명 넘는 유권자를 만났고, 국회의원 1명당 연간 평균 720명의 유권자를 만났다. 

그러니깐,이게 헛된 공약 뿌리는 선거때 말고, 사진 찍으려고 기자들 몰고 다닐때 말고, 1대1로 직접 만나 민생을 듣는다는거 아닌가. 이건 유권자 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유권자를 표찍는 '머릿수'로만 세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좋은 제도인 것 같다. 책에서 다니엘 튜더의 친구는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국회의원이 만나줄리 없다고 했다는데, 그 친구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나도 물론 시도해 본 적 없다. 

그리고 이 책에는 다니엘 튜더가 대단한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대단히 양성평등에 뒤쳐져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강조하는 글들이 나오고, 그건 근래의 몇몇 진보지식인들의 행태를 봤을때도 굉장히 와닿는 글이었다. 

386 아저씨에 의한, 386 아저씨를 위한

민주당 당사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특정 그룹이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왕년에 학생운동을 한 지식인이나 교수처럼 보이는 40~50대 남성이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다양성이 배제된 특정 그룹이 당을 주도하고, 끊임없이 학생운동 시절과 박정희를 운운하는 사람들로 뭉친 정당은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인식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더 따뜻하고 일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했다. 하지만 너무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나이나 성별,배경 면에서 다양성이 부족해 국민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희망을 품기 어려워 보인다 

상대적으로 여성 비중이 낮은것 역시 눈에 띄었다. 박원순이 재임에 성공한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날에는 당사에 여성들이 많이 보였는데,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아니라 시청 직원이나 박 시장과 시민단체 활동을 같이 했던 동료들인 것 같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사에서는 여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거 캠프 관게자에 따르면 여성 비율이 10퍼센트에도 미치지 않고, 그마저 선거를 돕고 있는 20대 인턴이 대부분이며 지도부에는 여성이 정말 극소수였다. 

이 이야기 뒤로 저자가 본인은 지지정당이 없지만, 새누리당이 한국에서 정치공학에 가장 뛰어난 정당인 점은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이자스민을 비례후보로 공천한 영리한 전략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다니엘 튜더는 여기에 덧붙여 최초의 동성애 커밍아웃 의원을 새누리당에서 비례공천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아.. 새정치연합이여... 

복지에 대한 접근 방식도 현명하다. 여기서 새정치연합은 완전히 망했고, 망했고, 프레임은 새누리당이 선점했다. 야당이 했어야 하는건 '투자로서의 복지' 프레임이였다. 

한국에서는 복지를 확대하려는 사람들조차 그릇된 방식으로 복지를 제시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메시지는 이랬다. '가난하고 딱한 국민이여, 국민의 최상위 1퍼센트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빈곤해진 이명박 정권 아래 끔찍한 시간을 보낸 여러분, 여러분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복지를 확대하겠습니다.' 마치 사탕을 잃어버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수사였다. 
복지에 대한 궁극적 메시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수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지위 상승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회가 지금 여러분을 도울 테니, 나중에 성공하면 사회를 도와야 합니다'라는 암묵적 합의가 복지정책에 내포되어야 한다. 

마지막장인 '모든 것은 프레임에 달려 있다' 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페미니즘'과 '어셩인력 낭비 문제' 에 대한 글은 
현실적이고 명쾌하다. 

책이 나온 것이 6월인데, 안철수에서 세월호까지 다양한 현재진행형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의 세번째 책에서는 불편해도 좋으니 '희망'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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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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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실질'을 키우고 싶다. 두둑한 배짱으로 나약함과 불안감 따위를 다 몰아내고 어디까지나 밝고 적극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구라도 이러한 것들을 바록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러한 작은희망조차 손에 넣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요? 세간에는 밝게 살고 오래 사는 비결,미용이나 바디 케어,안티에이징이나 마음 수련법뿐만 아니라, 학원 선택법, 자산 운용법, 손해 없이 상속하는 법,무덤을 고르는 법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마음의 실질을 키우는 데 얼마나 도움이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불안할 뿐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나 토마스 만이 그려 낸 것은 이른바 '마음을 상실하기 시작한 시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이미 '마음 없는 시대'의 마음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음습한 집단 괴롭힘이나 무차별적인 폭력, 자신들의 울분을 풀기 위한 인터넷상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 나아가 예전의 국수주의를 방불케 하는 혐오 발언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글로벌 자본주의의 패배자들 혹은 몰락의 불안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외주의나 사회의 '이물질'에 대한 공격에서 배출구를 찾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황폐한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까지 이르지 않았을까요.  


강상중 교수의 책은 꽤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주제는 '마음', '고민' 뭐 이런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그 의미가 퇴색된 단어들인데, 그 흔하지만 중요한 단어들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주게 한다. '마음'을 이야기하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들, 읽고 나서 뒤돌아보면 잊혀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 늘 강상중 교수의 책은 와닿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재일교포로 살았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였고, 칼 맞는걸 대비해 옷에 종이뭉치를 끼우고 다녔다는 그런 과거의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의  치열한 고민과 선택과 실천이 있었어서이지 않을까. 


그가 항상 인생의 멘토처럼 드는 '나쓰메 소세키' 에 대한 이야기들, 소세키 자신의 이야기와 소세키 소설 속의 인물들 이야기들을 늘 현실에 접해 이야기해주니, 소세키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 와닿고, 소세키 소설은 더 좋아지고. 그런 개인적 선순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마음'이다. 이 책에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가 꺼낸 멘토는 나쓰메 소세키 '마음' 의 '나'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한스 카스트로프이다. 


'마의 산'은 재미없는 책.완독하기 힘든 책.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는데, (아마 다시 읽어도 그럴 공산이 높긴 하지만) 강상중 교수의 안내로 따라 한스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재미있었다. 이전의 책에서와 달리 이 책에는 언급된 두권의 책이 인용되기도 하지만,열린 결말과도 같았던 결말의 뒷부분을 창작한 것이 나온다.거기에선 한스와 '나'가 만나기도 하는데, 이야기가 무척 자연스러워서 정말로 두 권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마음', '행복', '사랑','고민'등등은 이전 책들과 비슷하다. 늘 나오던 소세키도 나오니 말이다. 다만, 그 중에 '마음'에 더 방점을 둔 책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 말할 수 있으랴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않을까. 단단한 마음. 서문에서의 표현을 따면 '마음의 실질'을 고민하는 두 주인공을 내세우고, 당시에는 마음의 '상실''을 고민했다면, 요즘은 상실을 고민할 '마음'마저 없음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그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고, '시대'의 탓이기도 한데, 시대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마음의 실질'이라는 것을 찾아 기르자고 한다. 


여기서 마음은 '외유내강' 할 때의 내면의 '강함'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마음의 강함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의 답을 책 속에서(소설 속에서) 찾는데, 강상중은 개개인 각각이 그 답을 탐구하게 해주는데 훌륭한 가이드임에 틀림없다. 


사회에 희망이 없으면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인생에도 희망이 없어지고, 사회가 풍요롭고 활력이 있으면 인간의 인생도 풍요로워집니다. 시대가 병들어 있는데 인간에게 건강하게 살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더욱이 사람은 그 사회가 작동하는 이상으로 작동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람은 개인으로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시대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대에 모순이 있으면 개인의 정신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아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꿈도 희망도 없고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데 개인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세상에서 말하는 하나의 방정식을 좇아 단 하나의 높은 이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끝장이라며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 보고 그게 잘 안 되면 몇 번이고 뻔뻔하게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마음의ㅣ 풍요라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얼마나 넓은 선택의 폭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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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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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핑크색 표지에 청박이다. 표지 그림은 사노 요코의 일러스트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핑크+블루라니 예사롭지 않은 색감의 책은 흔한듯 예사롭지 않은 작가의 노년생활 일기다. 


빵이 떨어져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다른 할머니들을 보고 생각한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잘 죽어가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내 나이가 아직 삼십대에 걸쳐 있는데, 잘 죽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장수 사회에 노년으로 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결코 이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의 노화는 진즉에 시작되어 어렸을 적에는 낭만적인 병이라고 생각했던 (왜?) 안구건조증에 눈이 뻑뻑하고, 술을 진탕 마셔도 반나절이면, 해지고 또 '술로 해장하자' 고 호기롭게 외칠때도 있었는데, 하루종일 퍼질러 있어도 다음날 여전히 피곤한 몸이 되어 버렸다. 


몸도 마음도 한계 이상으로 과하게 써대며 관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을 외면하며 내키는대로 살아버렸던 것 같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맞이하는 사노 요코의 세대에는 롤모델이 없었지만, 사노 요코는 내게는 훌륭한 롤모델이다. 이 책에 나오는 것만 봐도 치매를 걱정하고, 유방암으로 수술을 했으며 우울증이 있다. 


장갑 한짝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을때에 장갑을 사던 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고, '내일은 장갑을 사러 가야겠다' 고 생각한다.그리고 '치매에는 돈이 든다' 고 덧붙인다 


이런 부분들.유방암도, 치매도, 우울증도. 노년에 찾아오는 '병'들에 대해 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에 관조적일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일일텐데, 읽으면서는 키득거리며 읽게 된다.웃기라고 쓴 글이니 웃지만, 남일에도 웃다가 웃음이 싹 가시는 일인데, 내 일이 되었을때 이렇게 농담거리로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은거다. 


요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나는 평생 요리가 취미였던 적이 없고, 이번 생에는 요리는 포기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급사하지 않는한 살아온 날보다 분명 살 날이 많으니 그런 입빠른 소리도 하지 않을 일이다. 올해 처음으로 '콩국물'의 맛을 알아 일일 일콩국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튼, 요리가 취미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익숙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될테지만 말이다. 


그녀가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지내는 모습은 잘 상상되지 않는데, 이혼을 두번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 노년이고 치매를 걱정하고 유방암 수술을 했고, 우울증까지 있지만,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의뢰 받으면 그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가며 버틴다. 그 전에는 아무리 한가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위장이 뒤집힐듯 배배 꼬여서 이따금씩 위산이 역류하기도 한다. 몇십 년을 매일같이, 공휴일 명절 할 것 없이 뒤틀리는 위장의 재촉을 받으며 내 인생은 끝나리라. (...)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필요할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없다. 필요한 건 에너지다. 운전을 하면서 일보다는 절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을 한다는 것이 더 건강하고 활력있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젊으나 늙으나 마찬가지인데.단, '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 말이다. 한국에 태어난 우린 모두 틀렸어..


이 책에서, 그러니깐 사노 요코의 노년 일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요리'와 '먹기' 이다. 그리고, '한류' 

한류 이야기는 예상도 못했는데, 꽤 재미있다. 한류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낯익은 드라마 제목 설명하는거 보는데, 어찌나 낯익으면서도 낯설던지.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덕질'을 한다는거 말이다. 사노 요코의 경우에는 '한류'였다. 

요즘 들어 더 느끼는데, '덕질'이 최고로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다. 


결혼 생각 없다고 하면, '나이 들면 외로워' 라고 하는데, 엄마한테는 '그럼 나이 들어 아빠 같은 남편하고 나같은 새끼 있으면 안 외롭고 좋아?' 라고 하면 엄마 말문 막힘. 


나이 들어 중요한건 건강과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보통 더 들어가는게 '친구'. 여기에 하나 더 넣어서 '좋은 취미'보다 좀 더 열심히 하는 '덕질' 인 것이 아닌가. 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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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0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질에 다섯표요~ ㅎㅎ

하이드 2015-08-06 01:41   좋아요 0 | URL
엊그제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을 봤는데, 지금까지중 가장 재미있더라구요. 책도 영화도 나이들수록 무뎌질것 같은데, 왜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걸까?? 자문하고 있어요. ㅎ

숲노래 2015-08-06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번역된 <나의 엄마 시즈코상>을 읽어 보면, 어머니와 딸(사노 요코)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아주 낱낱이 적었습니다. 사노 요코 님네 형제들이 하나같이 `어머니를 미워할` 수밖에 없기도 하겠구나 싶으면서도 여러모로 짠한 이야기가 많아요.

사노 요코 님이 빚은 <백만 번 산 고양이>라든지 <아빠가 좋아>라든지 <산타클로스 할머니>라든지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라든지 <세상에 태어난 아이> 같은 그림책은 모두, 이분이 어릴 적에 보낸 숱한 삶이 바탕이 되었구나 하고 이분 산문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느끼곤 했습니다.

저도 요새 이 책을 읽는데, 애틋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참으로 사랑스럽더군요.

하이드 2015-08-06 01:39   좋아요 0 | URL
저는 `아저씨 우산`만 읽어봤어요.

치매에 걸린 엄마와의 에피소드들도 나오는데, 여러 사정이 있군요. `나의 엄마 시즈코상`도 읽어봐야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5-08-0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삶의 에너지가 전반적으로 낮아져서 덕질 수위도 낮아져버렸습니다.. 저는 튼튼한 이와 같이 먹을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점점 `편하게` 같이 먹을 사람이 줄어드네요. 아마도 관계를 잘 유지할 에너지 마저 줄어들어서 그런건지. 사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우리나라에 태어난 저는 사노 요코씨처럼 되긴 글렀을까요?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탐아저씨 저도 어서 만나러 가야겠어요 ♡.♡
 
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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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를 좋아하던 사람이 2편인 '시크릿 에이전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한다고 해도 이해간다. 

이 작가의 책은 읽는게 너무 괴롭다. 근데, 막판되면, 모든 갈등을 어떻게든 다 풀어 버려서 찜찜한 부분을 남기지 않고,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엄청나게 높여 버리는 것이다. 


오랜만에 차일드 44를 다시 읽고, 이번에는 2편,3편까지 있다고 생각하고 읽으니 마지막에 예사롭지 않은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라리사와의 관계 및 레오의 각성, 새로운 살인전문 전담반 개설, 조야와 엘레나 입양 등


차일드 44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1편의 이야기들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풀어나간다. 

시작부터 긴장감 넘치게 레오의 젊은 시절, 스파이로 교회에 침투해서 배신하는 장면이다. 1편에서 주인공인 레오에 감정이입하며 읽어나갔다면 2편은 시작부터 무참하게 박살내는 거다. 


그러고보니, 차일드 44 시리즈에는 착한놈이 없다. 레오가 주인공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일에 회의하고, 반성하지만, 어쩔 수 없는 존재. 하긴, 그 시절에 착한놈은 다 죽고 없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오 주변 인물들도 죄다 선악을 품고 있다. 더 나쁜 놈이 있고, 덜 나쁜 놈이 있지만, 대부분은 수용소장처럼 약한 사람일 수도 있겠고. 그래서 스탈린이 죽은 후에 후루쇼프라 스탈린의 범죄를 인정하는 비밀 아닌 비밀연설문을 작성하자 대혼란이 온 것이다.


그런 혼란이 스탈린 시절보다 더욱 격동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레오는 근래 읽은 그 어떤 소설 속의 주인공보다 더 개고생이다. (내가 읽는 소설이 주로 미스터리/스릴러임을 감안할때 정말..) 언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죽을 고비들을 넘기며 '조야'를 찾기 위해 자신의 젊은날의 행위를 보상하고 그 당시 배신했던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 죄수인척 수용소로 잠입하게 된다. 


역시.. 읽을 때는 정말 짜증나는데, 읽고 나면 다 꼭 필요했던 장면들이었나 싶다. 그래서 또 나는 3편을 읽으러 가겠지. 

주인공인 레오 외의 캐릭터들이 대단히 인상 깊다. 라리사는 물론이고, 조야와 엘레나. (조야는 이번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티무르(1편부터 2편까지 나오는 인물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로운 캐릭터이지 않을까.) 프레이라, 말리샤, 그리고,파닌은 물론이고, 빵집주인, 통역사도 그 비중에 비해 진한 여운을 남긴다. 


무려 톰 하디랑 누미 라파스가 부부로 레오랑 라리사로 나오는데, 영화가 망작이란 것이 아쉬워 죽겠다. 잘 빠졌으면 2편,3편까지 쭉쭉 기대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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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0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오와 라리사는 원작에서 절세의 미남미녀로 묘사되는데..캐스팅에 좀 놀란 일인 (속물-_-;)
 
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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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다. 톰 하디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억양들이 개판이고, 영화에서 라이사를 지워버렸고, 바슬리가 아름다웠다는 것도 들었다. 기대했던 영화였지만 보지 않기로 했다. 


차일드 44가 이번에 시리즈로 3권 나오기 전의 판본 전의 판본을 읽었으니 읽은지 꽤 오래 되었고, 그 이후로 읽었던, 비교적 최근의 '얼음속의 소녀들'이 떠오른다. 비슷한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다른 주제다. 


차일드44의 '44'는 처음 발견하게 되는 소련 전역에 걸쳐 '살해'당한 아이들의 숫자이다. 

이것이 실화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실제도 책에서도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 시간대가 다른 것은 이번에 처음 인지했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건 70-90년대이고, 소설은 30년대에서 시작해 5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를 냉전시대 엄혹했던 스탈린 시대로 옮기면서. 그리고 스탈린이 죽으면서 또 다른 전개를 보인다는 점에서 정말 기발하다. (이렇게 꼬는 작가 엄청 좋아한다.) 


잊고 있었던건,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얼마나 불편했던가. 하는거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장까지 읽었을때, 꼭 인과응보여서가 아니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로 남았다는 거. 나는 하나 싫은점이 있으면, 다 싫어하는 경향이 강한데, 예외적인 경우다. 그만큼 좋은(?) , 이야기가 풍부한 미스터리라는 것이겠지.


그리고, 라이사를 지워버렸다고 했을때, 책 속에서 라이사가 얼마나 큰 비중이었는지 잊고 있었는데, 라이사 같은 잘 만들어진 여성캐릭터를 지워버리다니, 영화가 나빴네. 


이전에 차일드44를 읽었을때에는 '아동살해'에 대한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이래서 리뷰를 꼭 써두어야 한다. 다시 읽으니 기근에서 시작되는 인간성 말살, 그리고, 냉전시대의 비인간적인 상황, 고문 등의 이야기가 너무나 답답하고 무서웠다. 


이야기의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숨은 스토리라고 해야 하나 했던 부분은 반전(?)이라는 부분을 빼고는 전체적인 스토리 중 사소하지만(?)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되었다고 하는 '얼음속의 소녀들'을 읽고 나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애증이 느껴져서 좋았다. 


차일드44 2부작,3부작은 첫 시리즈인 이 책에 비해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레오'에 대한 애착도가 올라갔으므로 나는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이미 읽은 톰 롭 스미스의 책 두 권이( 그 중에 한 권은 두 번 읽었는데도) 재미있었으니 당연히 기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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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15-07-2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영화하기 좋은 소설도 없는데 영화는... ㅠㅠ

하이드 2015-07-28 20:44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나는 영화를 많이 안 봐서 그렇기도 하지만, 시대상을 책처럼 잘 드러낼 수 있는 영화가 뭐가 있나 싶어. 나는 주로 시대상이 잘 드러나는 미스터리에 환장하니깐(->차일드 44도 그렇고, 얼마전 13.67도 그렇고) 책만큼 실감나고 깊이있게 담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