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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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의 원제는 'THE GROWNUP' 이다. 변역본의 바뀐 제목이 원제만큼이나 마음에 들기는 오랜만이다.

시만 읽고, 꽃만 잡고(->는 일이지만), 연애만 하고 있는건 아니고, 책도 부지런히 사고 있고, 읽고 있다.

 

맘에 안 내키는 책들은 끝까지 안 읽고 덮는 경우도 많고, 읽다 만 책들도 많은데, 이 책 올긴이의 말에 나온 스티븐 킹 인용처럼 "추운밤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창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멋진 이야기를 접하는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스티븐 킹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中)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단편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독서였다. 길리안 폴린의 책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는 <나를 찾아줘>에서 부터 <몸을 긋는 소녀>, <다크  플레이스>와 같은 장편은 물론 <나는 언제나 옳다>에서까지 강렬하다.

 

이 책은 얼불노의 조지 R.R. 마틴이 미스터리, 호러, 순문학 등 장르를 막론하고 뛰어난 작가들에게 단편을 의뢰해 <사기꾼Rogues>라는 선집을 내면서 한 의뢰로 시작, 길리언 플린은<What do you do?>를 기고했다가 2015년 에드가 상을 수상한다. 이 책은 작가가 에드가상 수상작을 수정하여 다시 출간한 것이다.

 

책이 양장인데, 정말 얇아서 소설로는 1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실망은 날아가버릴 것이다. 이야기는 남자들의 자위를 도와주는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내가 손으로 해주는 그 일을  그만둔 건 실력이 달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만둔 거지."

 

라는 첫문장. 3개주에서 손놀림이 가장 좋았던 그녀가 일을 그만두게 된건 손목 터널 증후군이 왔기 때문이다.

화자는 애꾸눈엄마의 손에서 앵벌이 도구로 자랐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항상 '정직하게'임한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임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쪽방은 자위를 돕는 방, 다른 방은 가짜 점성술사를 둔 방이었는데, 자위를 돕는 방에서 은퇴한 '나'는 '점성술사'의 방으로 가서 어릴적부터 갈고 닦아온 '사람을 읽는' 기술을 발휘한다. 그러던 어느날 중산층의 똑똑해 보이는 수잔을 만난다.

 

화자의 배경이 생활감 있게 묘사되고, '그러던 어느날' '수잔'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하층민이었던 화자의 애환을 묘사하는 드라마에서 느닷없이 고딕풍의 호러로 넘어간다. 그녀에게 속을 것 같지 않던 수잔은 계속 찾아오면서 이사간 집과 기묘한 의붓아들, 그리고 늘 출장중인 남편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데, 이야기는 점점 이사간 집과 아들에 대한 공포로 흘러간다.

 

'자위 돕기', '점성술사'에서 다음 직업으로 트랜드를 보고, '집 정화'를 계획하고 있었던 화자는 수잔의 집으로 가서 이상한 집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일주일에 두번씩 방문해 집을 정화시켜주기로 한다.

 

화자, 수잔, 의붓아들인 마일즈, 그리고 출장중인 남편의 존재감. 이렇게 넷이 비등한 강한 에너지를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뒤에 나타난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 4개의 플롯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뒤쪽에서 나타나는 플롯에서는 독자까지 포함되어 다섯꼭지점의 이야기가 된다. 천재적인 작가인지, 타고난 이야기꾼인지, 지금까지는 철저한 계산에 의해 쓰는 천재적인 작가로 보여지지만, 저자가 그리는 여성캐릭터는 정말이지 현실에 있을법하게 강력하다. 그 여성캐릭터의 맞은편에 있는 남자 캐릭터는 그 강력한 여성캐릭터의 상대방 역할을 잘 해낸다.

 

그런 작가의 개성을 잘 드러낸 번역본의 제목이지 않은가.

 

나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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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6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6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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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읽기 좋은 책이다. 두시간 정도면 졸다 깨다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집에도 읽을 책들이 많고, 새로 주문하는 책들도 있다. 그 와중에 한권씩, 두권씩 빌려보기 좋은 책이다.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에 이어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을 읽었다.

 

다섯가지의 단편 연작인데, 각각의 눈으로 공부도, 사랑도 너무 열심히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에게 버림받은 부인, 그를 따르던 부교수, 그가 부인을 버리고 떠나 함께 사는 여자의 딸, 그의 친딸을 만나는 남자 등등

 

미우라 시온의 이야기는 뭔가 쎄한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기에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들도 아니고, 각각의 '사랑' 에 관한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닌다. 한동안 책을 재미있게 못 읽었는데, 그래도 미우라 시온 책들을 읽으면서 숨쉬듯 책을 읽게 되는 그런 독서의 호흡을 찾았다.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에서 잡은 사랑과 삶에 관한 글들 :

 

 격렬한 감정은 책과 같다. 아무리 두꺼워도, 언젠가 끝이 나온다. 나는 이미 격렬함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저 시작도 끝도 없는 생활을 계속해나갈 뿐이다.

아무리 고민과 괴로움이 있어도 뒤로 미뤄둔 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잔다. 뒤로 미뤄놓을 수 있는 구조로 생겼다니 마음이란 의외로 잔혹하다.

아직 끝내고 싶지 않다고 희망하는한 우리는 떨어진 꽃잎들을 계속 그러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한데 모아서 어떤 꽃의 일부였는지를 상상한다. 식탁에 둘러앉으면서 생각했다. 뻔뻔하지만 착실한 이런 형태의 제스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가 없는 곳에는사랑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나중에 이해할 수 없는 공백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공백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더 깊이 사랑해야 하는가?

사실은 하나이지만, 진실이란건 사람의 머릿수만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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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지지 않는 마음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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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책의 제목과 컨셉트.

사이토 다카시는 그 두 가지에 정말 특화된 저자가 아닌가 싶다.

 

사이트 다카시의 책을 여러권 읽었는데,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내가 공부하는 이유 등) 첫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주옥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문장이라도, 한가지 아이디어라도 건지면 실패한 독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책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도 어떤 문장도 와닿지 않았고, 이전에 읽었던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의 메세지와 상충되는 점들이 있어 갸우뚱하게 된다.

 

<부러지지 않는 마음>의 부제는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세가지 방법" 이다.

 

서문이던가, 여튼 앞쪽에 나와 있다.

 

I.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II. 타인과 깊이 있게 사귄다.

III. 정체성에 뿌리를내린다.

 

안타깝게도. 이 세가지 요약도, 그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들도 와닿지 않았다.

워낙 궁금한 제목과 컨셉트로 책을 내주고 있으니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않겠지만, 이 작가의 책이 이렇게 영양가 없을 수도 있다는건 염두에 두고 고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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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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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글들을 좋아한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주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사실 받은 상들이나 나온 책들이나 주류라면 주류인데, 주류가 아닌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좀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해줘서 좋다. 그렇다고 막 반하고, 좋아죽겠고 그런건 아니고, 언젠가 작가의 책들을 다 읽어야지. 정도의 마음. 그런 의미에서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은 별로긴 했지만, 계속해서 미우라 시온의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오늘 정말 좋아하는 <배를 엮다> 에 대한 페이퍼를 보고 나니 <배를 엮다>도 다시 읽고 싶다.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의 주인공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든 학생들이다.

'순서'는 응모, 회의, 필기, 면접, 진로, 합격. 이렇게. 목차가. 되게 예쁘게 내지에 나와 있다.

 

이 책에는 작가 미우라 시온이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 면접볼때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고 한다. K담샤와의 안 좋은 에피소드들이 나와 있어서 작가가 이후 그 출판사에서 책을 잘 안 낸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다.

 

만화를 진지하게 좋아하고,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가나코는 미우라 시온 책들의 다른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대단한 가문의 후계자로 금수저라면 금수저인 가나코가 취업준비를 하는 모습에 그닥 감정이입이 되지 않기도 했다. 다리 패티쉬가 있는 일흔살의 서예가와 사귀고 있는 것도 바로 와닿지 않았고. 하지만, 리뷰를 쓰며 다시 돌이켜보니 내 처지도 여름방학과도 같은 처지.

 

출판사 합격을 기다리는 스물 몇의 주인공이 '매일이 여름방학' 이라도 '자신을 믿고 살아갈 거' 라고 말하는 가나코가 그녀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세상이 뭐라든,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에 '금수저'라는 헬조선의 용어를 들이대는 것이 좀 부끄러워졌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격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오케이를. 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늦여름, 스물셋 같은 그런 순간의 이야기.

 

+++

 

"가나코, 여름방학이구나"

"네. 그리고 전에 말했지만, '매일이 여름방학'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상점가 아케이드 아래에서 사이온지 씨가 웃었다.

"전에 말했지만."

장난스럽게 말을 반복하며 사이온지 씨는 말한다.

"그것도 나쁘진 않네."

사이온지 씨의 눈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이제부터 떠나는 여정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게요."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내 입을 뚫고 나왔다.

"설령 '매일이 여름방학'이 된다 해도, 내 자신을 믿고 살아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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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폰트의 기발함과 표지의 귀여움외에 요령있는 삶에 크게 도움될 이야기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재미없는 농담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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