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뉴질랜드 이야기중에서 꼭 언급해야 할 한가지를 빠트린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뉴질랜드로 건너가고, 이민가고, 도망가고, 숨어살고....하고있는 우리와 같은 핏줄기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교민을 다 만난것은 아니기에 전반적인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 저기서 귀동냥해서 들었거나 제가 두루 살펴본바를 참고로 하여 한국 교민의 생활상을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약 3만에서 3만5천에 이르는 교민들이 우리 나라의 2.7배에 달하는 뉴질랜드에서 숨쉬고 있다고 합니다.

  ㅇ 한국 교민의 생활

  한국인의 뉴질랜드 이민역사는 무척 짧다고 합니다. 제가 만나뵌 분들 중에는 30년이 되셨다는 분이 뉴질랜드 이민의 전설처럼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홍콩 조차와 더불어 이민이 시작되어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지금도 끊임없는 이민을 진행하고 있는데, 중국 이민자와 타이완 이민자는 견원지간으로 특히 타이완 이민자들은 중국이민자들의 행태에 대해 상당히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제가 만난 타이완 이민자들은 자신들에게 "China"라는 단어를 붙이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뉴질랜드의 상권을 주름잡는 사람들은 바로 한국인 들입니다. 옽클랜드의 다운타운은 말씀드렸듯이 반경이 1Km정도에 지나지 않아 다운타운은 무척 번잡한 편입니다. 특히 240여미터에 달하는 남반부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Sky City" 를 중심으로 하는 상권에 많은 한국인들이 가게를 열고 있습니다. 도심의 길거리를 걷다보면 한국어 간판이 즐비하며, 순대국부터 미장원, 장례용품점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업종에 걸쳐 한국인이 삶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가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거부로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은 "아리랑"이라는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김상래 사장이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이민도 비교적 일찍 왔을뿐만 아니라 도심의 빌딩을 구매해서 음식점을 비롯한 선물상점, 그리고 한국식품 24시간점을 열고 있음은 물론, 최근에는 다른곳에 빌딩을 구입하여 "뉴코아"라는 상호의 선물용품점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민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대부분 월세로 장소를 임대받고 있는 실정인데 분명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하는 장사임에도 그 대상은 한국인을 우선하는 관광객이라는 점입니다. 뉴질랜드인들의 구매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한국 관광객이나 기타 국가의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뉴질랜드의 경기도 상당히 어렵다고 하는데 이런 여파로 한인 상점의 수익도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 가서 사시는 분들의 많은 공통점은 조용하게 살고 싶어서 뉴질랜드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분들은 미국의 한인사회처럼 한인회장이나 기타 감투에 관심이 없이 살고자 하다보니 뉴질랜드에서는 한인회를 구성하기가 무척 힘이 들다고 합니다. 서로 안맡으려고 해서 강제로 맡기는 지경이며, 한인회의 활동도 다른 여타 나라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민자의 성격은 비단 오클랜드뿐만 아니라 전역에 걸쳐 조용히 살겠다는 의지로 한인 사회의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있는데 의식이 있어 이민을 오신분들은 자식의 어학공부나 또는 나름대로의 안락함과 개인 생활의 보호를 위하여 조용하게 접촉이 없이 지내는 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한국 이민자의 직업은 비교적 다양한 편입니다만, 일차적으로는 가게를 얻어 영업을 하는 것이며(이런 경우에는 잠시도 가게를 비울 수 없어 개인 시간을 내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한국 관광객을 소단위로 맞이하여 자신의 밴으로 뉴질랜드 관광을 시키는 관광업입니다. 제가 만난 분들중에는 뉴질랜드 전역을 700회나 다니신 한국 교민도 계실 정도로 관광업은 손쉽게 할 수 있는데 다만 무척 피곤한 삶이라는 점입니다.

 이런분들에 비해 조금 편하게 수입을 올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에서 출발할때 약간의 여유자금을 가져와서 조금 큰 집을 사고, 아랫층을 홈스테이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아파트가 거의 없습니다. 단독 주택으로 대부분 나무로 지어진 단층, 또는 2층집인데 이렇게 한국에서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이나 유학생에게 임대를 하여 수입을 올리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골프관광을 비롯해서 인근 지역의 관광안내까지 맡아 해 주기에 방문객들은 비교적 편안하게 뉴질랜드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모텔과는 달리 조식과 석식을 한국식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여행에서 쉽게 접하지 못할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으므로 고국에 대한 향수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뉴질랜드 전역에 산재한 모텔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호텔은 별로 없지만 관광객을 위한 모텔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방문시 눈치가 있으신 분이라면 뉴질랜드 전체의 모텔이 수록된 책자가 무료이니 이 책만 가지고 있다면 뉴질랜드의 어디를 가더라도 잠자는데는 불편함이 없을것인데, 약간의 큰 돈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모텔을 구입해서 운영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뉴질랜드의 두개의 큰 도시인 오클랜드나 크라이스처치에는 아직 한인타운이 형성되어있지 않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오클랜드의 중심부에서 많은 한국 이민자가 가게를 열고는 있지만 한인 타운은 아니며 이는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클라이스처치에서도 한국인들의 가게는 중심부에 비교적 많이 눈에 띄는 편입니다. 가장 쉽게 생계를 유지하는 방안이 이렇게 가게를 운영하는 것인데 주로 한국 상품을 취급하거나 또는 동네의 구멍가게인 "데일리"라는 상점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부 한인들은 자동차 판매업을 비롯하여 주택업등에 종사하기도 하며 뉴질랜드의 주 산업인 1차 생산물 가공시설과 이의 판매시설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가지 안타까운점은 뉴질랜드에서의 관광안내는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물코너와 결탁이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현상은 안내자에게 상당한 리베이트를 줘야하기에 당연히 물건값은 비쌀수밖에 없습니다. 관광객의 대부분은 뉴질랜드에 첫발을 디디며 마중나온 관광안내자와 뉴질랜드 체류동안을 같이 지내게 됩니다.  그러니 안내자의 안내에 의해 들리게 되는 관광상품점이 우리 관광객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속리산 입구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많은 가게가 아니기에 다른 상점과의 가격 비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광광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인근 가게라도 나가보려고 한다치더라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이들의 영업형태 때문에 숙소 인근에 설혹 선물 가게가 있다해도 가격 비교는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관광 안내자들은 바로 이런 점을 악용한다고나 할까요?

 제가 직접 경험을 한 일입니다만, 녹혈제품 구입에 있어 제게는 특별히 싸게 하여 400뉴질랜드 달러에 판매를 하였습니다만, 일단의 일본 관광객들에게는 1500뉴질랜드 달러에 판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일본 관광객이기에 엄청 바가지를 씌운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 관광객이던 그렇게 팔고 있다는 것이며 이중 상당 금액이 안내자에게 리베이트로 지불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뉴질랜드에 장어라도 잡아먹고 싶어 가신다 하더라도 별도의 날짜를 정해서 도심의 선물가게에서 구입하시는 것이 그나마 바가지를 덜 쓰시는 것이 되며, 가장 정확한 제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은 공항 면세점으로 이곳에서는 모든 물품을 다 판매하니 여행중에는 선물일랑은 다 잊어버리고 여행에 열중하시고 귀국할 때 면세점에서 선물을 구입하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뉴질랜드도 사람이 사는곳이기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한가지 교민 사회를 걱정하시는 분의 말씀을 빌면...뉴질랜드 사람들은 매우 착하고 순진하다고 합니다. 거짓말을 해도 대부분 그냥 진실로 알고 넘어가는데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자꾸 늘어가자 이제는 정말을 말해도 의심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말은 우리 교민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계 이민들의 공통점이라고 합니다. 한 순간의 작은 이익을 위해 하는 거짓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는 엄청난 불행으로 되돌아옴을 우리 교민들은 빨리 깨우쳐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아시아계 사람들이 욕을 먹어도 우리 한인 교민들은 그 질타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영광을 갖도록 노력들을 해야 할것입니다.

 사족을 두 개만 달겠습니다.

   다색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중에서 인종 차별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뉴질랜드라고 보시면 될것입니다. 뉴질랜드는 소위 평등사회를 추구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국가라고 판단이 됩니다. 대부분의 복지국가가 그러하듯 높은 세금은 고액 수입자에게는 불만이 될 수 있으나 그 세금으로 빈부 격차를 줄이는 뉴질랜드 정부의 방침이 특별하게 잘 사는 사람도 없으며 또 끼니를 굶어야 하는 사람도 없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 유학생의 생활입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열심히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지만 그래도 많은 한국의 유학생들은 빗나간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고급차는 대부분 중국이나 한국 유학생들의 차 입니다. 더 많은 학문을 배우고자 유학을 가는 경우는 안 그렇겠지만, 우리 나라에서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어 유학을 보낸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못 따라가는 수업인데 뉴질랜드에서는 언어도 다른데 더 잘 할수 있겠나요? 당연히 자연도태 현상을 빚고 마는데 그런 유학생의 생활이 문제입니다.

말씀드린 가장 높은 타워인 'Sky city"의 2층과 3층은 카지노 입니다. 이곳에는 한국 유학생들이 득실거립니다. 저도 얼굴이 노랗고 영어를 사용하는지라 이들은 제가 같은 동양권에서 온 사람이라는것만을 아는지 자기들 끼리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잃었다는 금액이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룻밤에 2만 뉴질랜드 달러라면 어쩌다 한번 들리는 카지노에서라면 이해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거의 매일 카지노에 들리면서 그만한 돈들을 도박으로 날린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부모가 얼마나 갑부인지는 몰라도 망나니 돌대가리 자식놈 잘되라고 해외에 보내 놓고 관심도 없으니 쉽게 도둑질 해서 벌은 돈인지라 억만금을 잃은들 그들에게는 뭐가 그리 대수겠냐마는 옆에 앉아있는 한국의 절대 거지인 제 입장에서는 한방 휘갈겨 주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이더군요.

길거리에서 우연치 않게 만났던 유학생인 김석규군은 오클랜드 공대에 다니는데 월반을 해서 현재 4학년이며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 교수들이 뉴질랜드에 붙잡아 두고자 한다고 하였는데 이런 학생과 카지노에서 하룻밤을 꼬박 세우면서 돈을 날려버리는 유학생과는 근본이 다른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어찌 되었든 뉴질랜드는 이런 양면이 공존하는 도시임을 알아 두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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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1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잘 다녀오셨어요?
오랫동안 안보이셔서 무슨 일인가 했답니다.
잘 다녀오신 듯해서 반갑고 기쁩니다.
추천은 접니다.(ㅋㅋ)

수수께끼 2004-10-13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안녕하셨는지요?
뉴질랜드에 가 있는 동안 정말로 좋았던 것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국내의 소식을 접하지 않으니 죽이되는지 밥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뉴질랜드의 한국 이민자들은 무슨 무슨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뉴질랜드로 간 분들이기에 마음속으로는 아니지만 애써 우리 나라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신다는 것이지요...
덕분에 답답한 마음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는데 역시 들어오니 또 다시 답답해 지는군요...들어오는 다음날부터 국감이다 뭐다 하는데 우리 나라는 뉴질랜드처럼 조용하지도 않아 어디서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니....저도 뉴질랜드로 떠날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참!!! 추천을 해 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추천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글은 워낙 추천과는 거리가 있는 글들인지라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어제도 0, 오늘도 0, 또 내일도 0....이렇게 되어 있으니 조금 보기도 싫었었는데....다행히 작대기 하나라도 님께서 해 주셨으니 정말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겸해서 자주 작대기 그려줄것도 부탁드립니다...하하하...고맙습니다.
 

ㅇ 주거 환경

 뭐니뭐니해도 뉴질랜드의 자랑거리는 바로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일 것입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뉴질랜드인들의 노력은 뉴질랜드 발전단계의 여러곳에서 볼 수 있으며, 그들이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깨끗한 뉴질랜드로 보존이 되어진다고 할것입니다.

  오클랜드를 제외한 뉴질랜드의 대부분의 도시는 우선은 공원을 먼저 조성을 합니다. 자연녹지 개념의 이 공원은 우리네 아파트 단지에 게딱지만하게 조성된 조잡스러운 정원의 모습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 공간을 그대로 놔두고 인근에 주거 단지를 조성하는것으로 집 밖을 벗어나면 바로 공원에 도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원은 나무는 물론이고 누구나 싼 비용으로 즐길수 있는 골프, 그리고 호수가 있어 각종 RC를 이용한 레져 활동을 보장해 줍니다.

  공원에 있는 호수는 인공으로 조성되었다기 보다는 자연을 그대로 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호수는 작은 강을 따라 도심에 모였다가 다시 흘러 나가게 되어 있으며, 흘러가는 물길에는 보트를 비롯한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뉴질랜드인들이 환경보존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알 수있게 해 주는 간단한 고찰은 바로 이러한 물길의 속을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물이 깊던...아니면 얕던...물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깡통이나 플라스틱, 그리고 깨어진 유리조각이나 껌 종이등등 우리가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것 같은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속에 있는 이물질이라고 구태어 말하자면 나뭇잎 정도 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가 다닌곳에는 일부러 물속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의 물속이나 다 같은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물속에는 이상하게도 장어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장어구이는 우리네 주변의 음식점도 많고 한편으로는 정력에 좋다느니 건강식품이라느니 해서 장어는 우리의 먹거리의 하나인데 이 장어가 뉴질랜드의 도심을 흐르는 작은 강(강의 폭은 기껏 3~10m 정도입니다)에는 팔뚝만한 장어가 자주 눈에 뜨이는 것입니다. 저도 교민의 초청으로 한 가정을 방문하였었는데, 주메뉴가 바로 장어구이였습니다. 물론, 당연히 장어는 동네 공원의 개울에서 잡은 것이지요.

  한국인이 잡아먹는 장어에 대해 특별한 단속을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는 한국인이 뉴질랜드에 살기 이전에는 없었던 풍경이라 그에 관한 제재법이 없어서인지 잡아가도 별로 간섭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장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뉴질랜드로 이민가신다면 실컷 장어를 맛보실 수 있으실겁니다. 그런데 제가 먹어본 뉴질랜드 장어는 우리 장어처럼 기름이 많지 않고 담백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풍천 장어처럼 고소한 맛은 없는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지천에 널린 장어를 보고 한국 이민자 한사람이 이 장어를 잡아서 한국으로 수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출 절차를 받다보니 장어가 뭐길래 수출을 하는것이냐는 것이지요...그래서 강장식품이고 건강에 좋고..등등 장어가 갖는 우수성을 설명을 하였더니 그 효능을 입증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민은 캔터베리 대학에 10만 뉴질랜드 달러를 들여서 연구 용역을 주었는데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연구 결과가 나오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교민의 생각대로 제대로된 식품이라면 수출허가가 나겠지만 만약, 그 연구 결과가 수출의 가치가 없다고 판정이 난다면 10만 뉴질랜드 달라는 날라가 버리고 마는것이랍니다.

 이렇듯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환경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분명 우리 나라보다 잘산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그들의 환경은 다닥다닥 게딱지마냥 붙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환경에 비하면 엄청 부러운 환경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연기나는 굴뚝이 별로 없을 정도로 뉴질랜드의 하늘은 남태평양의 푸르른 하늘 그대로 입니다. 산성비가 내리지 않으니 비를 맞는것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다가도 금방 맑은 날씨로 돌아오는 뉴질랜드는 분명 축복받은 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ㅇ 특 산 물

  뉴질랜드의 특산물은 뭐니뭐니해도 1차 산업인 목축업의 가공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축업은 주로 소와 양, 그리고 사슴을 키우는데 이들이 뉴질랜드에 기여하는바는 실로 대단하다 할것입니다. 뉴질랜드의 1차 국가 수입원은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관광수입이며, 두번째는 바로 목축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축업을 이용한 가공품은 전부 건강식품으로 분류가 되어 판매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몇 가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 초유(初乳:Colostrum) : 사람이나 소나 모유는 많은 영양가를 담고 있읍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소가 송아지를 낳고나서 배유하는 우유를 초유라고 하는데 이 초유는 어린 송아지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각종 면역, 성장, 영양 등등의 이로운 물질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이런 소의 우유를 상품화 한것이 바로 초유 제품들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송아지에게 그 송아지의 미래를 위해 먹여야 될 우유를 사람들이 가져가서 상품화 하는 것이기에 잔인한 측면도 있겠지만, 소를 키우는 일도 사람이 잘 되고자 하는 방편이기에 뉴질랜드에서는 이런 초유 제품이 특산품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나오는 모유에 가장 많은 영양분이 있어 이런 초유를 이용한 상품을 만들어 서로가 좋은 제품이라고 선전을 하는 경향이 발생을 하다보니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송아지 보호를 위해 아예 출산후 24시간동안의 초유는 상품화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초유제품은 칼슘을 비롯한 성장기 발육에 필요한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어 어린아이가 먹거나 또는 골다공증이 있는 환자의 치료나 예방, 특히 초유의 고단백만 추출한 제품은 알레르기성 비염에 특효가 있어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사가지고 가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몇 군데 수입상이 있는데 국내 판매가는 뉴질랜드 판매가의 거의 5~20배 수준이라고 보시면 될 정도로 고가임을 말씀 드립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 120뉴질랜드 달러(한화 약 92,000원)하는 초유 제품이 국내에서는 538,000에 판매를 하고 있으니........

  - 녹색홍합 : 녹색홍합은 우리 홍합보다 조금 크고 껍질에 녹색을 띄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자연산이 있는가 하면 양식 녹색홍합이 있는데, 이 녹색홍합이 관절염 치료제로 유명하게 된것은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한 네덜란드와 영국인과는 달리 몸집이 엄청난 원주민인 마오리족들이 자신과는 달리 무릎의 관절 통증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사는것에 대한 궁금증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오리족들의 식생활을 살펴본 결과 녹색홍합의 생식이 주된 식생활임을 알고 녹색홍합의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인체의 염증을 해소하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로 홍합은 끓여서 먹는데 뉴질랜드에서는 우리 처럼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날것으로 그냥 먹습니다. 저도 그냥 먹어보았는데 의외로 삶아 먹는것보다 훨씬 고소하고 삶은것과 별반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습니다(그렇다고 국내 홍합을 날것으로 드실 생각일랑은 아예 하지 마시고요...성분 자체가 틀립니다. 국내 홍합은 자칫 중금속 오염 가능성이 높을수 있답니다)  그런데 삶아 먹는 홍합은 1차는 홍합이지만 2차 그 국물 맛을 느낄줄 알아야 하는데 그저 밋밋한 맛이라서 우리 홍합의 국물맛을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마누카 꿀 : 마누카라는 꽃은 뉴질랜드에서만 나는데, 이 식물도 인체에 좋은 여러가지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외상이나 찰과상 등등 외부 상처에 이 꿀을 바르면 쉽게 낫는다고 하는데 이러한 성분을 담은 꿀을 채취한것이 바로 마누카 꿀입니다. 하얀꽃이 인상적인 마누카 꿀은 양봉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채취를 하는데 전반적인 꿀의 성분은 화분 + 꿀 이기에 색상은 옅은 아이보리 같습니다.

  -프로폴리우스(propolius) : 이 약의 성분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약은 뉴질랜드인들의 가정에는 우리네 머큐롬 처럼 상비약으로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상처난 곳에 바르는 머큐롬과는 그 사용처가 다릅니다. 이 약은 목, 인후염, 잇몸 질환, 입냄새 등등 구강 질환에 아주 특효를 가진 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약의 성분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스포이드로 되어 있어 혀에 몇 방울을 떨구고 입속에서 뱅뱅 돌리다가 삼키면 되는데 그 맛은 무척 쓴맛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쓴맛으로 사용을 꺼리는 경우를 막기 위하여 단맛이 나는 플로폴리우스를 개발하여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양모내의, 양털 방석, 알파카(알파라는 양의 일종인 동물로 그 가죽을 이용한 제품) 등 1차 생산품의 가공품이 주요 특산품이라고 보면 되는데, 최근에 각종 액기스로 만들던 제품들을 한국인이 개발한 급냉기법으로 냉동건조시킨후 제품으로 만드는 방법이 개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똑똑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멋진 방법은 잘 만드나 봅니다.

  이상 간단하게나마 개략적인 소개를 마치고 다음부터는 사진만 보여드리겠습니다. 뉴질랜드 관광, 교통편 등등 소소하지만 알려드리고 싶은것은 많은데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면 추욱 쳐지게 될것 같아서 꼭 필요한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 다시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비록 짧은 동안이지만 관광보다는 뉴질랜드에 담긴 문화와 인간을 위주로 살펴보았기에 조금은 깊게 살펴 볼 수 있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뉴질랜드에 관한 궁금한 내용은 각종 싸이트를 참조하시면 되시며, 기타 궁금한 사항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자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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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10-1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호랑녀 2004-10-1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잘 읽었습니다. 언젠가 방송통신대 영문과에 편입해서 한학기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중 영어권 나라들의 생활에 관한 과목이 있었죠. 뉴질랜드... 외우기 참 어려웠는데, 이렇게 보니 눈에 쏙쏙 들어오네요 ^^
수수께끼님... 돌아오셔서 기뻐요. 내내 청소 잘 하다 막판에 청소 못했는데, 다른 분들이 열심히 해 주셨죠?

수련 2004-10-11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올려주실 사진이 기대되는군요.
친구가 뉴질랜드로 이민가더니 소식이 끊어졌어요.
교민을 통하면 찾을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교민이 통틀어 몇명이나 되는지요?

가을산 2004-10-12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보니 우리 애들이 장어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곳에 가면 물속에 우글우글하다구요?

조선인 2004-10-1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헤헤 드디어 사진 시작이군요.
수수께끼님도 뵐 수 있을까요?

수수께끼 2004-10-1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하하하....
저는 보기 힘들겁니다. 왜냐구요? 일단은 제가 카메라맨이었으니 당연히 저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뉴질랜드에 간적이 없는 셈이 되더군요....뭐라도 증명사진이 있었어야 하는데...끙~~그리고..원래 저야 투명인간입니다요~~
장어는 낚시가 없어도 됩니다. 뉴질랜드의 바닷가에서도 워낙 고기가 많은지라 손으로 떠도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잡을수 있는 고기와 잡을수 없는 고기를 구분을 해야 합니다. 연안에서도 커다란 숭어같은 고기가 다니는데 그거 잡았다가는 큰일 치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어는 배가 터지게(으...터지면 안되니 늘어날 만큼) 잡아먹어도 된답니다.
 

이상하게도 올린 글이 짤려버려서 재등록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ㅇ 교 육

 뉴질랜드의 교육에 대해서는 바로 이 교육여건과 관련된 문제로 많은 한국인이 뉴질랜드를 찾기에 이민자의 가장 큰 이슈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학년까지 공립학교는 거의 무료이기 때문입니다.  일년에 1만원 미만의 교육비가 실제 뉴질랜드의 교육비라고 보시면 될것입니다. 모든 교보재는 다 학교에 있기에 심지어는 책도 안가지고 학교에 가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단지 뉴질랜드의 일반적인 교육형태입니다. 여기에서 일반적이란 누구나 교육의 혜택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사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클랜드나 크라이스처치등지의 명문학교(주로 사립)는 자그마치 1년에 드는 수업료가 15000뉴질랜드 달러 정도나 한답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일수밖에 없는데 그렇게라도 해서 사립학교에 보내려는 이유는 그 사립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나중에 성장을 하여 뉴질랜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며,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서 부터 형성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뉴질랜드에도 소위 강남의 8학군과 같은 지역이 있습니다. 다른곳이 아닌 오클랜드 지역으로 사립명문이 몰려 있는데 이곳을 8학군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집값을 올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백의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의 교육열에 놀랍니다.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피아노다, 영어다 기타 등등 한국 부모의 극성은 세계 어디에 가서나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의 과외수업에 대한 댓가 지불방식은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주로 1개월 단위로 수업료를 지불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시간 단위로 지불을 합니다. 만약 1시간의 피아노 교습을 마쳤다면, 선생은 당연히 받아야 할것을 받아가듯이 손을 벌려 수업료를 받아갑니다. 우리나라 같다면 낯뜨거워서라도 그렇게 못할텐데....이런것이 문화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2년전만 하더라도 뉴질랜드의 화폐가치는 1달러당 500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1달러당 780원 수준입니다. 2년전보다 뉴질랜드 달러 가격이 자그마치 50%나 상승했는데, 이 상승의 주요 원인이 바로 한국, 중국 등 아시아계 이민의 영향이라는 것입니다. 집값 또한 아시아계 이민자가 몰려 들면서 25~30%가량 올라 결국은 2년전보다 2배나 상승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이민을 와서 싸게 집을 사 두었던 사람들은 덩달아 2배로 돈을 벌었지만, 요즘 가는 사람들은 그만큼 비싼 돈을 치뤄야 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의 대학은 오클랜드 대학을 비롯하여, 오타무대학, 캔터베리 대학등 세계적인 대학이 몇곳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1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상위권의 수상자는 모두 한국인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뉴질랜드 대학은 입학은 쉬우나 졸업이 무척 어렵습니다. 중간에 성적이 나쁘면 전과를 해야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의 대학이 그러하듯 뉴질랜드의 대학도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려운데, 고등학교까지 죽어라고 공부하여 상위권을 점했던 한국 교민 학생들은 이상하게도 많이 중도하차를 한다고 합니다. 아마 너무 힘을 빼서 대학 공부를 따라갈 수 없어서인지요...  하지만, 저도 직접 뉴질랜드 고등학교의 과목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그 수업의 정도라는것은 우리나라 중학교 수준 정도 입니다. 그러니 한국의 학생들 처럼 공부를 하면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뉴질랜드의 고등학교까지의 초, 중등 교과과정이 너무 쉽다보니 우등상을 휩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부터는 전공제이며 깊이가 다른 학문을 연구를 하여야 하는데 암기식으로 외우기에 급급했던 교민 학생들은 이해력 부족과 응용력 부족으로 중도하차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가지 재미있는 일들을 소개 하겠습니다.

- 뉴질랜드의 수업일수는 8주 수업후 2주 방학이며, 여름에만 4주의 방학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 우등상을 주는가 하면 열등상도 같이 주는데 어떤 상이라는 것을 발표를 하지 않습니다. 상이란 트로피를 주는것으로 받는 사람만이 어떤 상이라는것을 알 수 있지요...그런데 더 재미있는것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우등생이나 열등생이나 이 트로피를 반납을 한다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는 각종 장학제도가 많이 있는데 공부 잘해서 받는 장학생이 1이라면, 운동이나 기타 독특한 기술로 인하여 받는 장학생이 10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뉴질랜드는 운동을 잘 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 하는 학생보다 더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 뉴질랜드에서의 학교체육활동에서는 한국과 같이 유도, 태권도, 양궁, 배드민턴 등 개인운동 과목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외 럭비, 축구, 농구, 야구 등 집단 경기를 가르치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 자신 혼자만 잘하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집단이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며, 집단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를 어려서부터 길러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결코 우리보다 더 잘 산다고 할수없는 나라의 교육에 대한 마음가짐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아웅다웅하는 정치가 없을수밖에요...

한국 학생들의 뉴질랜드 학교 생활은 한마디로 "NO"라고 뉴질랜드 선생님이 말씀을 하십니다.이러한 표현은 조금 심하다고 할 수 있으나 현실이기에 왜 그런말을 하는가를 그대로 밝히고자 합니다. 일부 사립학교나 공립학교중 오클랜드 중심가에 있는 학교에서의 한국인 학생수는 전체학생 대비 1:8 정도라고 합니다. 한 반이 20여명이면 3명은 한국 학생이라는 말인데 실제는 한 반의 절반 가량이 한국 학생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문제는 학생간의 대화입니다. 아무래도 언어표현에 있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학생들은 영어에 서툴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결국은 한국말을 하는 한국 학생끼리만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선은 영어 습득이 지연될수밖에 없고, 두번째는 뉴질랜드 친구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한국학생의 영어가 부족하니 뉴질랜드 학생에게 접근을 못하고, 뉴질랜드 학생들이 친하게 지내고자 접근을 해도 언어 표현의 한계로 친해질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니 당연히 한국 학생들끼리만 노는 이상한 풍경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공부야 어떻게 하든 뉴질랜드에 온 목적이 바로 영어나 하나 똑바로 익히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님보다야 영어를 사용하는 실력이 더 나으니 부모님은 당연히 영어를 잘 하는줄 알지만 실은 그런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자식들에게 영어를 익히기 위한 부모들은 한국인이 많이 살지 않는 학교에 자녀들을 입학 시킵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싫든 좋든 영어를 써야하고 그만큼 빨리 영어를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의 문제는 인구 130만명 수준의 오클랜드만 하더라도 서울의 두 배가 될 정도로 넓으니 학교를 끝내고나서는 한국에서 처럼 동네에 사는 학교 친구들과 어울릴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친한 한국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한참을 가야하는 뉴질랜드의 형편은 우리 이민자들의 자녀를 외롭게 혼자 커야하는 독불장군으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서 집안일을 한다거나 아니면 가까운 공원에서 혼자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뉴질랜드에서는 방학때 단체 활동을 학교 주관으로 많이 합니다. 물론,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만 참여하는 자유수업이지만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이마저도 빠진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방학은 열심히 놀아야 한다는 인식은 한국에서나 뉴질랜드에서나 마찬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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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뉴질랜드는 비행기로 12시간 전후를 날아가는 남반부의 섬나라입니다. 9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뉴질랜드 바람은 많은 사람들이 뉴질랜드로 몰리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뉴질랜드가 살기 좋다는 이유로 지금은 약 2만 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대해 짧은 기간 다녀왔기에 뭐라 말할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보다는 모든 현상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고자 노력하였기에 오히려 뉴질랜드에 퐁당 빠져있는 사람들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모두들 말하기를 뉴질랜드는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라고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말들도 맞을지 모르겠지만 보다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면 뉴질랜드는 제주도와 다를것이 없는 나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그리고 호주보다도 남극에 더 접근해 있는 나라....남섬과 북섬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에 대해 제가 보고 느꼈던 여러가지를 몇 차례에 걸쳐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ㅇ 개관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의 남북한을 합한 면적의 약 1.2배에 해당하는 섬나라 입니다. 원주민은 폴리네시아계인 마우리족이었는데, 그 유명한 쿡 선장 일행이 이곳에 도착하면서부터 현재까지 영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아있습니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공식적으로 영어와 마우리어인데 재미있는 것은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지라 미국인등 영어권에서 이곳으로 여행온 사람들이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면서도 무슨 뜻인지를 몰라 당황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한글을 사용하는 남북한의 사람들이 대화도중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용어로 인하여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과 똑 같은 경우로 보시면 될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방통행은 미국에서는 "one way"로 사용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one side road"로 사용한다던가, 교차로에서 차량 우선권에 대하여 미국은 양보라는 의미의 "yield"를 사용하지만, 영국식으로는 "give way"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영어권임에도 어떻게 표현을 하느냐는 차이로 우리나라에서의 "다이빙"이 북한에서는 "물박치기"로 사용되는 경우가 같은 것이기에 같은영어 표현이라도 미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잘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우리족들은 폴리네시안 계통처럼 키가 크고 건장하며, 영국계 이민의 후손들에 비해 낙천적인지라 부의 축적에는 소홀히 하여 현재는 대부분의 마우리족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일본어 발음과 비슷한 영어식인데 대부분의 단어에는 "a,e,i,o,u(아,에,이,오,우)"로 끝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총 인구는 약 4백만 정도이며 이중 1/3인 130만 정도가 북섬의 오클랜드에서 살고 있고, 제 2의 도시인 남섬의 크라이스처치에는 약 40만이 살고 있으며, 수도는 두 섬의 중간쯤 되는 웰링턴입니다. 웰링턴은 북섬의 바닷가 끝트머리라 바람이 강하여 바람의 도시라고 불리고 있는 전통적인 영국식 건축물로 꾸며진 도시이며, 수상관저나 의회가 이곳에 있습니다.

ㅇ 기 후

 위도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극점에 가깝지만, 한 겨울에도 영하권의 날씨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우리와는 계절이 반대인지라 크리스마스는 늘 여름이지만 눈이 내리는 일이 거의 없어 설령 뉴질랜드의 겨울에 크리스마스가 있다해도 "화이트"라는 단어는 쓰기 힘든 기후입니다.

 언뜻, 겨울에도 영하의 날씨가 아니라 살만하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시겠지만, 태평양상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지라 바람이 강하고 비가 자주 내려 좋은 날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보면 됩니다. 한편으로는 화산으로 형성된 섬이라 지진이 많으며 피해는 크지 않으나 늘 심해에서 발생하는 지진이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거의 대부분의 건물은 2층 이하로 짓고 있으며 목재로 짓고 있습니다. 도심의 다운타운이라고 하는 곳에만 높게 지은 건물이 있는데 대부분의 도심 건물은 내진 설계가 되어져 짓고 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정말로 살기 좋은 기후라고 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햇살을 받을 수 있으며, 바다 한가운데 덜렁 솟아오를 섬이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아무리 더워도 더위로 인하여 땀을 흘리는 경우는 없으며, 한 여름에도 나무그늘은 20도 중반으로 오히려 추위를 느끼는 기후랍니다.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호주도 마찬가지의 기후인데...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반팔에 스웨터를 동시에 소지해야하고 햇빛아래의 더위에서는 벗지만, 그늘에서는 스웨터를 입어야 하기에 소위 허리패션이 생기게 되는데 이곳이 허리패션의 원조라고 합니다.

ㅇ 경 제

 뉴질랜드의 경제는 한 마디로 연기나는 굴뚝을 가진 공장이 없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2차 산업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국가적으로 자연보호에 치중을 하다보니 공산품 생산은 바로 산업 노폐물의 양산이라는 개념에서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물가는 비싸서 볼펜 한자루가 보통 뉴질랜드 달러로 10달러 정도나 합니다. 특별히 생산 공장을 지으려면 당국의 엄밀한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주 수입원은 관광입니다. 대부분의 국가 재정은 관광수입으로 충당을 합니다. 그리고 주요 생필품에 대해서는 세금이 없습니다. 차량에 대한 세금도 없어 비교적 차량 가격이 싼 편이며, 뉴질랜드 차량의 좌측에는 생산연도와 모델명을 반드시 부착토록 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의 포니를 비롯한 2~30년 된 차량들도 가끔 눈에 띄입니다. 특히 방개차로 불렸던 독일의 폭스바겐이 만들었던 "비틀"이 아직도 길거리에 나다니고, 일본에서 만들었다가 우리 나라에서도 타고 다니던 70년대의 차량인 "퍼블릭카"도 굴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차량이 굴러 다니는 것은 뉴질랜드의 기후로 인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많은 비가 내리지만 산성비가 아니기에 차량의 부식 원인이 되는 요소가 없기 때문이며, 실제로 이곳에서는 세차라는 개념이 필요없을 정도로 비가 내려도 차량이 지저분해지는 일이 없습니다.

 뉴질랜드는 Mt. Cook라는 높은 산이 있는데 만년설로 덮여 있는 산으로 이 산에서 녹아 내리는 물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같은 정수조가 없으며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지하에서 바로 끌어올려 식수로 사용하니, 말하자면...제주도에서 나는 삼다수가 수도꼭지에서 흘러 내린다고 보시면 될것입니다.

 뉴질랜드는 민주국가라고 하지만 모든 체계는 사회주의 국가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봉급 생활자의 급여에서 39%에 달하는 세금을 거두어 들입니다. 그 세금으로 마우리족을 비롯한 인근의 섬에서 유입된 사람들에게 생계비로 지출하고 있으니 제대로 소득분배가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도 아마 이러한 소득 재분배를 꿈꾸는 모양인데....우리 나라의 경우는 뉴질랜드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뉴질랜드 소득의 가장 큰 자원은 바로 농촌입니다. 뉴질랜드는 천혜의 자연혜택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은 대부분의 산에 나무가 없고 모두 초지로 형성되어 있으니 양이나 소나 사슴을 마음놓고 방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의 2차 공산품을 꼽으라면 바로 이런 자연 상태에서의 가공 생산품이 대부분을 차지 한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뉴지랜드의 1등 소득자는 농민입니다. 뉴질랜드의 거의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이렇게 생산된 제품들을 판매를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당연히 관광객이 됩니다. 이렇게 판매된 관광 수익이 바로 뉴질랜드 정부의 예산으로 편성이 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주로 양모 관련 제품이며, 제가 돌아본 대부분의 매장의 옷들은 "made in china"입니다. 그러나 제품 관리에 워낙 철저한 사람들이라 OEM방식으로 중국에서 들여오는 제품의 질은 뉴질랜드의 기준을 통과해야만 하기에 비록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철저한 생산관리와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게 형성된 다운타운 이외에서는 별다른 상거래가 없기에 뉴질랜드의 상거래로 인한 수익은 별로이며, 오히려 소비를 촉구하는 카지노를 비롯한 먹거리등의 3차 산업은 성행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자국민을 위한다기 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상거래라고 보여집니다.

ㅇ 정 치

 우리 나라의 정치에도 눈을 돌려버린 사람이 뉴질랜드의 정치에 관심을 가질리가 있겠냐마는 우연히 틀어놓은 TV에서 야당 정치인이 정부의 실정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장면이 방송이 되었습니다. 여 수상은 그 항의와 비난에 대해 정중하게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사과를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머물던 시기가 뉴질랜드의 의회 의원 선거를 하는 기간인데 전혀 선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 입니다. 가끔 정원에 내가 입후보를 했네...라는 입간판 정도가 전부입니다. 한마디로 정치는 생활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인이랍시고 우리처럼 우쭐거리거나 대접받기를 원하지도, 또 해 주지도 않습니다.

 제가 점심식사를 위해 "koyote"(우리나라의 음악 그룹인 '코요테'와 같은 발음이었습니다)라는 음식점에 간 적이 있습니다. 레스토랑인데 제법 유명한 집이라고 해서 저도 가 보았는데 스테이크 종류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줄을 서 있는 제 뒷편의 어떤 청바지 입은 키 큰 사람에게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악수를 청하기도 하더군요. 처음에는 무심코 넘겨 보았는데 나중에 자동차를 타고 가던 사람이 손을 흔들자 이 사람도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기에 누군가를 앞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바로 시장님이라고 하더군요. 시장이 줄서서 기다리는 나라... 완전히 영국을 옮겨 놓은것 같은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물으니 뉴질랜드의 가장 큰 경기인 "All Black"(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경기에도 주빈석이 따로 없어서 수상도 일반인과 같이 줄을 서서 입장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럭비가 별로 인기가 없지만 뉴질랜드 럭비팀은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국민 전체가 럭비 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뉴질랜드의 모습은 영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영국인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중충한 날씨나 바람 등등이 영국의 그것과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거리나 주택가의 모습도 영국의 모습과 흡사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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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0-0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도착하셨다면 아직 시차적응하시기 힘들텐데, 이렇게 얘기를 들려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수수께끼 2004-10-0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닌게 아니라 4시간의 시차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돌아올때보다 더욱 피곤하게 느껴지는군요. 하지만 너무 오랜동안 떠나 있었던지라 비몽사몽간이라도 이렇게 폐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답니다.
5대양 6대주라고 하는데 드디어 마지막으로 남반부까지 다녀왔으니, 말 그대로 다 정복한 셈이지만...하하하...그냥 6대주는 겉만 핥으며 돌아본 것이랍니다.

가을산 2004-10-0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소식 듣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TV방송에서 휴일 스케치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고궁 나들이 모습입니다. 도심속의 풍경중 유달리 고궁 스케치가 많다는 것은 고궁이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있어 빼곡히 들어찬 건물과 빡빡한 삶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휴삭처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궁궐(宮闕)이라는 말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아주 오래전의 과거에 사용되던 용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은 朝鮮이라는 한 시대가 막을 내린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았고 신문명을 받아 들인지도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급변하는 문물의 이입으로 사회구조와 우리 생활에 큰 변화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우리의 궁궐이나 생활은 불과 100년이 채 안되었음에도 저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로만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처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있는 5대 고궁을 찾습니다.  5大宮이란 昌德宮과 昌慶宮, 그리고 景福宮, 德壽宮, 慶熙宮을 말하는데 이 다섯 개의 궁궐 중에서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창덕궁만 유일하게 선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궁들도 있는데 왜? 유독 창덕궁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최근세기까지 지어진 건물에서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으며, 특히 後苑(흔히들 秘苑이라고 하지만 이 이름은 일본인들이 격하 시킬 목적으로 붙여준 이름이며 비원 보다는 창덕궁의 후원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은 300여년이나 된 우리 나라의 정원 조경의 두드러진 성격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역사적, 건축학적 측면에서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에 지정이 된 것입니다.

    창덕궁을 관람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80년대에는 장기간의 공사로 인하여 공개되지 않았었으며, 공사가 끝나고 개방된 이후에는 일정 시간에 맞추어 집단으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토록 되어 있습니다.    특히 자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을 위하여는 매 시간 안내를 하며, 기타 외국인의 관람시간.....그리고 내국인의 관람시간은 별도로 설정하여 관람토록 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일반 궁궐처럼 혼자 사색을 한다거나 호젓하게 고궁이 갖는 한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창덕궁의 관람시에는 아예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들 중국 관광을 가서 자금성을 구경하고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 나라 궁궐들은 작고 보잘것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기야.....자금성의 위용을 보고 나서 우리의 궁궐을 보면 그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기에 하는 말들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형만을 보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중국의 건축물들은 거의 모두가 좌우 대칭형입니다. 대부분이 넓고 평평한 대지 위에 지어져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의 건축은 마치 종이에 그린 것 처럼 반으로 양분된 것 같아 접으면 좌우가 딱 맞아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중국의 건물은 크기만 할 뿐 線이나 절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궁궐(한옥도 마찬가지입니다만...)의 처마를 보십시요. 그 처마가 얼마나 하늘로 날아 오를 듯 경쾌하게 만들어져 있습니까?  거기다가 건물의 배치는 건물이 놓여진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고 음양오행을 적용하여 건축하였으니 그 경관은 건축물이 어디에 놓이던 자연과 괴리되지 않고 자연 속에 하나 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左靑龍 右白虎의 風水를 살려 지어진 우리의 宮闕

  궁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궁궐인 창덕궁은 어떤 구조일까요?    임금이 나라 일을 보던 正殿과 대신들과 국사를 의논하거나 궁을 지키는 군인들이 머물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지역을 外殿이라고 하는데 이 외전이 수행하는 기능을 <闕>이라 하였고,  임금과 그 가족이 거쳐하는 곳으로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 지역인 內殿을 <宮>이라고 합니다. 궁은 또 다시 '正宮'과 '離宮'으로 구분하며 '정궁'이란 임금과 가족이 생활 할 수 있는 궁이 다 갖추어진 것을 말하며(흔히 6宮이라고 합니다)  '이궁'이란 이러한 6궁을 다 갖추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전'과 '외전'이 같이 있는 곳을 <궁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창덕궁은 대비나 대왕비는 창경궁에 거처를 두었고 동궁도 다른 곳에 머물렀고 창덕궁에 이들의 거처가 없었기에 창덕궁은 '이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덕궁에는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 외국의 신하들을 맞이한다거나 또는 국가의 커다란 행사를 치루던 인정전(仁正殿)이 있으며,  인정전은 만조백관이 다 모인 가운데 조례를 치루는 장소였기에 종1품, 정1품 등으로 구분된 품계석(品階石)이 정전 마당 좌우에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의 이름도 어진 정치를 편다는 '인정전'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며 어진 정치를 한다는 의식은  위정자의 포부였었나 봅니다.     인정전과는 문으로 연결되어 임금이 집무를 하며 신하들의 결재를 하고 국사를 논하던 선정전(宣正殿)이 있고 선정전과 담을 하나 두고 임금의 침소인 熙政堂이 있으며 희정당의 뒷편에는 왕비의 침소인 대조전(大造殿)이 있습니다.

   인정전이나 선정전, 희정당등 임금이 잠시라도 머물도록 된 곳에는 모두 어좌(禦座)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임금이 앉는 의자이기에 높임말로 용상(龍床)이라고도 부르는 임금의 자리 뒷편에는 백성을 잘 이끌고 부귀 영화를 누리라는 의미와 임금의 무병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해와 달,  그리고 다섯 봉우리가 그려진 병풍이 있는데 이를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이라고 합니다.  창덕궁 내전 건물의 특징은 어느 쪽 방문을 열든 밖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방안에 앉아서도 창문만 열면 밖을 구경 할 수 있도록 되어있음은 물론이고 창문에는 일정한  모양을 갖춘 불발기창이 설치되어 자칫 어둡고 침침할지도 모를 실내에 충분한 빛이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담벼락이나 굴뚝에도 아름다운 기하학적 문양이나 화초 그림을 넣어 단순하고 단조로울수 있는 일상에서 잠시라도 탈피하고자 하는 마음과 궁내 생활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자연과 가깝게 배려한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巨木과 연못...그리고 아름다운 조경이 가득한 後苑

  창덕궁의 내전에서 문 하나를 지나면 후원의 경내에 접어들게 됩니다. 잠시 숲길을 오르다 다시 내리막 길을 내려가면 휴게실이 나타납니다.  이 휴게실은 창덕궁의 유일한 매점을 겸하고 있는데 이곳에 왜?  매점이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곳에서 관광객에는 잠시 쉴 시간이 주어집니다.  시간이 없다고 들르는 곳에서마다 독촉을 하던 안내원도 이곳에서는 잠시 방관을 하는것은 매점의 매상과 관련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 지역이 창덕궁 후원의 별미라고 할 수 있는 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이 있는 곳이지요.  부용정은 두 발을 부용지에 담근 형태의 아(亞)자형 정자로 내부에 들면 아름다운 불발기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산란이 은은한 곳입니다.  관람객들은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의 푸근함과 여유를 느끼게 될 정도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랍니다.  이곳에 매점을 만들고 잠시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그만큼 이곳이 편안한 곳이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부용지의 한 쪽에는 영화당(映化堂)이라고 현판이 걸린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 앞에서는 과거 시험을 치뤘었습니다.  그리고 부용정의 맞은 편에는 어수문(魚水門)이라는 담장이 없는 문이 있으며 그 윗쪽에는 2층 누각인 주합루(宙合樓)가 있는데 주합루의 아랫층은 바로 규장각(奎章閣)입니다.  숙종 때 만들어진 규장각을 정조는 왜 창덕궁의 후원으로 옮겼을까?  정조의 문예부흥이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규장각은 많은 서적이 보관되었던 일종의 도서관이었으며, 주합루의 서쪽에는 규장각의 도서를 열람하는 희우정(喜雨亭)이 있어 임금도 이곳에 들러 규장각의 도서를 열람하였다고 합니다.   주합루의 이층에서 내려다 보는 부용지 주변의 풍광과 경치는 정말 일품입니다. 봄이며 돋아나는 새싹과 꽃으로 가득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소리와 녹음이 울창하며, 가을의 낙엽은 세월이 남긴 흔적으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겨울에는 눈덮인 일대의 정적이 가슴속에 아프게 내려 앉는 느낌을 준답니다.  옛 사람들은 이런 것을 어찌 알고 이 곳에 건물을 지었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부용지의 풍경은 밝은 햇빛 속에서 보기에는 너무 가볍다고 느껴져 안개비라도 내려 준다면 정말로 분위기가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도 합니다. 그만큼 부용지 주변은 닫혀있는 우리의 마음을 살그머니 열고 풀어놓고 싶은 공간입니다.

아름다움이 날아갈 듯 살아있는 우리의 건축

   영화당을 벗어나 잠시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가면 작은 연못이 나오고 거기에는 정사각형의 커다란 지붕을 가진 애련정(愛蓮亭)이 나타납니다.  부용지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수수한 연못에 두 발을 담그고 있는 정자인데 한자로 표현하면 그 뜻이 다르겠지만, 주변 분위기 처럼 정자만 달랑 하나가 있는것이 애련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정자의 분위기가 그 정자 이름과 같은지 말입니다.(여기에서 말하는 정자 이름은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말함입니다)       부용지나 애련지나 다 마찬가지지만 이곳 연못으로 흘러드는 물은 그저 곱게 흘러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연못에 몸이 닿기 전에는 반드시 이무기나 용의 입을 통해야 하고 그것도 바로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몇 차례나 멈추었다가 떨어지게 만들었으니 아마도 우리 조상의 여유로움이 이런 조형물에 까지도 담겨 있는것은 아닐지요?

  애련지의 우측 조금 높은 곳에는 임금이 사대부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지은 99칸짜리 집이 있으니 연경당(演慶堂)입니다. 사대부 집은 집앞에 개울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개울을 건너야 대문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연경당의 대문인 장락문(長樂門)도 그 절차를 밟은 후 출입토록 되어 있습니다.  연경당의 구조는 겉문은 들개창으로 만들어 밖을 시원하게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안채에서는 방안에 앉아서도 사랑채와 행랑채가 한 눈에 보이게 만들어졋고, 대문에서는 약간 비껴앉은 안채가 바로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 모양입니다. 방안에 앉아서도 마당의 꽃을 구경하도록 되어 언제나 방문만 열면 화단에 핀 꽃을 볼 수 있는데,  마침 하얗게 소복처럼 단장한 찔레꽃의 향기가 방안으로 스며듭니다.      이밖에도 후원에는 아름다운 정자가 많이 있습니다. 연경당 뒷편 축대위에 있는 농수정(濃繡亭), 육각형의 지붕 모양이 아름다운 존덕정,  고인 물이 한 바퀴를 돌아 떨어지게 만든 옥류천, 바닥면이 부채꼴 모양인 관람정(觀纜亭) 등 우리가 잊고 있은지 한 세기가 안되는 우리의 정원 조경 문화와 건축 문화가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도심속의 섬이라고 부를만한 별천지.....창덕궁과 후원은 그 아름다움 만큼이나 수난도 많았습니다. 수 차례 불이 났으며, 조선조 말에는 서구의 신문명이 들어와 고종 때에는 임금이 자동차에 오르내리기 쉽도록 하기 위하여 궁의 입구를 다시 곳추세워 만들어야 했으며, 자가발전 시설이 도입되어 궁내 흐늘거리던 촛불이 전등으로 바뀌는 등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형태로의 변화가 있었지만 인구 1200만의 복작거림, 그 한가운데 조용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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