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역사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지음,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1990년대에 길거리마다 널려 있던 하얀색 간판과 짙은 고동색 간판의 커피전문점들이
생각난다. 이름하여 하얀색 간판은 사카 라는 이름이였고 짙은 고동색 간판은 자뎅이라
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커피 한잔을 시켜서 오랜시간 친구와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공간. 혹자는 카페...혹자는 일본에서 건너온 커피전문전에서 그 당시 지인
들과 시시껄렁한 이야기 혹은 진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던 시간이 생각난다.

커피라는 이 시커먼 음료가 유럽이라는 지역 그러니까 콕 찝어내라면 프랑스라는 나라에
상륙을 하면서 발생한 문화공간에 대해서 아직까지 존재하는 곳은 고풍스런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천연색 사진으로 그리고 그때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발췌했을 흑백톤의
사진이 책 여기저기에서 자태를 뿜어내고 있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이다. 1차적으로 이러한 사진들이 눈의 사치를 한껏 누리게 해주었다면 책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활자라는 이미지로써 또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단지 프랑스에서 커피
혹은 술을 파는 공간인 카페의 역사와 유례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모든 것을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문인 혹은 화가, 음악가...심오한 정신세계를 뇌속에 간직하고 있는 철학자들...아울러
그당시 격동의 사회의 소용돌이 중추에 있었을 사상사들의 모습까지....

더불어 그나라의 일개 평민과 소시민들의 여가모습까지 259페이지에 빼곡하게 묘사를 한
이책을 통해 표면적인 멋스러움과 약간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파리지엔느들의 모습들이
(그러니까 야외테이블에서 한껏 멋을 부리면서 커피를 홀짝거리는) 다소는 가깝게 느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뱀꼬리 : 책장을 살펴보니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제법 눈에 띄었다.
그중에 한권이 바로 이책이였다는......이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안돌려주고
다분히 독선적인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
다소 희석되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리스 2006-09-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군요. ㅜ.ㅡ

똘이맘, 또또맘 2006-09-2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뎅에서 알바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없어졌답니다. 법원 앞에 있어서 다양한 손님들이 오갔는데, 언제나 같은자리에서 책 펴놓고 두세잔씩 커피 리필하던 중년의 정체모를 부인이 생각나네요.

건우와 연우 2006-09-2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앗긴 문화재는 속이 터지지만, 그들의 문화는 부러워요....^^
수다에서 토론까지......^^

Mephistopheles 2006-09-2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 아..예...옛날에 사놓고 책꽂이에서 고이고이 잠들어 있던 책인지라...^^
똘이맘님 // 그때 길거리에 자뎅과 사카는 많이도 있었어요.. 특히 대학교 앞에는
어김없이 존재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건우와연우님 // 그들의 문화가 부러운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자신들의 입으로 최고 최고..를 운운하는 모습을 별로 보기좋진 않더라구요..^^ 더군다나 맛의 기준은 나라마다 인종마다 다 틀린데..자신들의 식재료로 세계 3대 진미라고 추켜세우는 모습은 꼴사납게 보이기까지 하더라구요..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줏어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인류학자 혹은 그와 비슷한 학문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했던 말이였던 것 같다. 지금의 인류는 시각적인 정보에 많이 의지하면서 손을 많이 쓰지만 발은 의외로 많이 안쓰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진화해 나가면서 눈과 머리는 커지고 손가락은 길어지고 다리는 가늘어진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외계인의 모습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라는 내용이였다.

하긴 요즘 사회를 보면 시각적으로 조성된 정보가 대부분이며 연령이 젊을수록 이러한 정보에 더욱 더 광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인류가 문명이라는 것을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시각적인 것에 많이 의존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요즘 시대는 그 정도는 그 옛날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의존지향적이라 판단된다.

이런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력기구인 눈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가정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작한다. 분명 답답하고 기가막힐 상황의 전개가 예상되기에 앞서 요즘 책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모습이 발견된다.

빽빽하게 페이지마다 여백이라고는 한줌도 허용하지 않는 그 갑갑함과 숨막힘.....시력을 잃는 이야기의 전개를 맞이하기에 앞서 읽는 사람의 눈의 피로가 먼저 방문하게 되는 일종의 에피타이저라고 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답답한 시력으로 활자를 쫒아가면서 읽어 내려간 내용 역시 참담 그 자체다.

시작은 단 한사람의 백색의 공포라고 불리우는 정체불명의 시력상실에 걸리면서 이 남자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핵분열마냥 혹은 전염병마냥 번져간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눈 시퍼렇게 뜨고 벌어졌던 악질적인 사회문제, 독재와 파쇼의 모습은 똑같은 모양으로 복각되어 눈먼 자들의 생명과 인생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재료는 달라도 똑같은 틀에 넣고 찍으면 모양만큼은 똑같은 공산품들처럼....

그렇다고 꼭 극악으로 치닫는 모습만을 접했다면 난 이 소설을 심드렁하게 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촘촘한 활자의 답답함 때문에 심호흡을 하면서 읽어 내려간 내용에는 극악, 최악의 인류 종말의 모습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교활하게 좋게 말하면 현명하게 새로운 현실에 새로운 질서와 방법을 제시하는 인간들의 모습도 보였으며, 좌절만이 남아있을 암담한 사태에 시각이라는 비교적 자극적인 매체에 매달리지 않으며 근본적인 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까지.. 소설이 거의 끝나갈 무렵 보는 각도에 따라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마져도 경험하게 되었다.

책 제목에서 보여 주듯이 단지 눈이 멀었을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싶었다.
눈이 멀었다는 재앙보다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질적인 인간의 모습만큼은 변질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이 시력을 상실했다는 공포보다 더 무섭고 소름 끼친다. 극악으로 치닫는 전개에 치우치지 말아달라는 듯 긍정적인 인식표까지 여기저기에 심어준 작가의 노련함이 빛나는 한권의 책이였다.

단, 야한 책도 아니면서 그 빽빽함 때문에 숨이 가빠지는 단점만큼은 꼬집어 주고 싶다.
(좋게 생각하면 양심적이라고 해야 할지도..두권으로 만들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6-09-14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백 늘렸으면 얇은 페이지로 두권 가능했겠죠. 이 책 참 독특해요. ^^

Mephistopheles 2006-09-1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이라는 책도 사놨는데...좀 쉬었다가 읽어야 겠습니다..이 책역시 엄청 빽빽하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6-09-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땡스 투씩이나요..그냥저냥 평범한 리뷰인데요.^^
 
죠지왕의 광기 - [초특가판]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 이안 홀름 외 출연 / 네오센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잘나신 미국이란 나라가 영국에서 독립이란 걸 했을 때. 영국의 왕은 조지 3세 였다고 한다.
엄청난 크기의 식민지를 통째로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에 금이 가거나 흔들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외적인 압력과 정적들이 아닌 내부적인 붕괴로 그의 왕권에 금이 가고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왕이 미쳐 날뛰는데 거들떠도 안보는 저 포스터 속의 위병들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성격이 대번에 드러낸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정신병(포르핀증)을 앓았다고 전해지는 조지 왕 3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국 절대왕정의 최고봉 조지 3세는 왕치고는 제법 긴 통치기간을 자랑하고 있다. 무려 60년이나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 조선의 왕인 영조와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주지육림과 기름진 음식, 그리고 과로로 인해 그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직종인 왕의 위치에서 저 정도의 통치기간이였다면 대단히 오래 제위에 머물렀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만큼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적들을 숙청하고 제거했을 것이며, 나이가 가득찬 자신의 아들(왕세자)마져도 역시 이러한 정적들의 부류에서 예외일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찌 우리나라 영조와 기가막히게 비슷한 스토리 아닌가..?)

하지만 이 영화 `조지왕의 광기' 이런 자신의 지위를 위해 살벌하게 자행되었을 숙청의 의미는 눈꼽만큼도 안보여준다. 제위기간 중 최대 위기였었던 정신병에 걸렸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유머로써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으니까. 더불어 그 고귀하다는 로얄 패밀리들에게 날리는 조롱과 풍자도 가득하게 말이다.

영화 초반 의복을 준비하는 시종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풍자가 서곡을 알린다.
의회에 출두하기 위해 왕관과 의복을 준비하는 시종들은 왕관에 묻어 있었을 잡티를 제거하기 위해 그 신성한 왕관에 침을 퉤~! 뱉어서 자신의 더러운 옷소매로 쓱쓱 문지르는 장면이나 정신병의 증상 악화로 배출행위의 조절이 불가능해 여시종의 침실에 속옷바람으로 쳐들어가 배뇨를 하는 모습이라던지.....자신의 꼭두각시 격인 의회의 인물 앞에서 또 쌌어~! 를 연발하면서 흐느끼는 왕에게서 위엄과 기품은 이미 쓰레기 통에 쳐박아 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왕뿐만이 아니다. 평소 왕에게 뚱땡이 소리와 온갖 잔소리를 들어왔던 위축되어 있는 왕세자는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드러난 왕권찬탈을 위해 아버지의 정적들과 손을 잡고 차근차근 왕권에 근접해 나가는 모습또한 비장미는 커녕 우습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거기에다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왕세자의 약점을 잡고 흥정을 하는 대법관까지.....

결국 측근의 소개로 알게된 야매정신과 의사의 강압과 구속에 의한 치료로 점점 정상적으로 돌아간 왕은 멍청한 왕세자의 야심을 꺽고 의회의 정적들에게 카운터를 날리면서 자신의 왕위로 완벽하게 복귀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왕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끝까지 지켰던 측근들은 왕의 추한 모습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죄다 해고 되버린다.

그시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할 국왕과 그의 일족들...그리고 의회의 정치인들까지....
분명 영화속에서의 모습과 말하는 모습까지 결코 평민이라고 볼 수 없는 특권층에게 감독이 날리는 원투 스트레이트 로우킥 콤비가 섬광처럼 터져 나오는 영화였었다. 영화가 끝나고 암전속에서 허연 글씨로 나오는 조지왕의 구체적인 병명과 그 병이 주기적으로 발병하며 예측 불가능이면서 유전된다는 문장에서 이유를 알수 없는 웃음이 실실 흘러 나왔다.

뱀꼬리1 : 영화에서 나오는 권력의 열외자인 여성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현명하고 똑똑하게 보여진다. 첩없이 왕의 아내로 12명의 자식을 나은 왕비는 왕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왕세자의 정부는 결국 왕의 압력으로 결혼은 못하지만, 언제나 바른소리와 바른생각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왕비의 측근 펨브룩 부인 역시 왕과 단절된 왕비를 왕과 만나게 하기 위해 왕의 시종경비를 유혹하면서 왕의 복귀에 결정적인 역활을 해준다. 물론 나중에 뻥 차버리지만~~

뱀꼬리2 : 영화속에서 양쪽으로 갈라선 채 논쟁을 펼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의 모습일 것인데 왜 우리나라 국회보다 민주적이고 선구적으로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뱀꼬리3 :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했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9-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강력한 뽐뿌이옵니다..^^
영국의회의 토론문화는 정말 부러워요

마노아 2006-09-1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보고 싶어지네요. 추천!

토트 2006-09-1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영화 재밌어요. 메피스토님 덕분에 생각나네요. ^^

Mephistopheles 2006-09-1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 // 영화 속의 한장면만으로도 영국이란 나라의 의회민주주의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마노아님 // 예 2시간이 조금 못되는 영화고 나름대로 즐겁게 볼 수 있을 껍니다.^^
토트님 // 전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어제 저녁에 다시 보니까
거의 다 기억이 나더라구요..암튼 혼자서 낄낄 거리면서 봤습니다..^^
 
사랑의 블랙홀 - [할인행사]
해롤드 래미스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닌 일 때문에 오게 된 낯선 지역에서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하루의 일상이 6개월이 넘도록 24시간마다 반복된다면....??

미쳐버리거나 돌아버리는 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Groundhog Day는 이 영화의 배경인 펑수토니라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성촉절 행사(경칩)를 말한다. 펑수토니는 실제로 존재하는 동네이름..

이 영화의 주인공 필은 앞에 말한 현실에서는 이루어 질리가 절대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잘 나가는 기상 통보관이며 지 잘난 맛에 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쥐뿔도 없는 인간이 그랬으니 그 자괴감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대단했을 것이다.

아니면 또다른 기회가 온 것일지도.....하루의 일상이 반복이 되지만 다른사람들은 필이 24시간동안 벌이는 일상을 다음날에는 기억을 못한다. 반복되는 비디오 테잎의 내용처럼 오직 필만이 그 전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할 뿐이다. 우연히 만난 고교동창인 진드기 보험외판원에게 펀치를 날려도 그 친구는 다음날 그 시간에 어김없이 밝은 낯짝으로 아는 척을 하면서 다가오니까. 더군다나 처음 만난 매력적인 여자의 신변잡기를 알아내고 다음날 마치 옛 친구마냥 접근하여 원색적인 밤을 보내도 다음날 아침 6시에 그녀는 귀신같이 사라져 버리니까.. 죄를 짓고 유치장에 쳐박혀도 아침 6시에는 어김없이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객실의 침대 위에서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똑같은 음악을 듣게 되니까...죄를 짓고 여자를 유혹해도 내일이 없는 필에게는 죄책감이 생길리도 없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이런 일탈행위도 갈때까지 가면 권태와 우울이 동반한 자살충동으로 이어지나 보다.이젠 차를 타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빌딩에서 떨어지거나 달리는 화물트럭에 몸을 날려도 그는 어김없이 아침 6시 알람과 함께 똑같은 장소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이 작은 마을에서 요상한 저주에 걸린 필은 반복되는 긴 시간동안 마을의 하루 일상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경지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도 절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취재를 위해 같이 온 여자 프로듀서 리타만큼은 오랜 시간 노력을 하고 학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그녀를 유혹하는 건 실패하게 된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진실되게 고백하고 그녀의 이해를 구해도 어김없이 아침 6시엔 사라져 버린다. 그녀가 점차적으로 가지게 되는 자신에 대한 호감도 같이 날라간다. 미치고 돌아버리기 앞서 사랑하게된 사람을 매일 아침 6시에 잃어버려야 한다는 심정은 가슴을 후벼 팔 것이다.



작업의 대상이 사랑의 대상으로 다가왔지만 그에게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루동안만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을 간직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필에게 이 반복되어지는 수많은 2월2일로 인해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느 노인의 죽음을 계기로 변화가 찾아온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남들보다 수 많은 시간을 벌었다 라는 개념으로 말이다. 피아노도 배우고 15세기 프랑스 시와 문학을 배우고 사고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구해주거나 곤경에 빠진 마을 할머니들까지 도와주는 이 마을의 슈퍼맨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빌 머레이라는 배우의 매력과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영화.  피아노를 몰랐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피아노를 익혔다고 한다. 천재일지도 모르고 배우의 근성이 대단한 걸지도....

아침마다 반복되는 성촉절 취재 역시 처음의 그 시니컬하고 삐딱한 시선이 아닌 안톤 체호프의 글까지 인용하면서 지적이면서 따뜻한 취재로 시작되는 그의 따뜻한 일상은 결국 작업의 대상이 아닌 진실한 사랑의 대상으로 리타와의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어김없이 아침 6시에 똑같은 일상이 일어날꺼라는 체념과 달리 알람을 꺼버리는 리타의 모습이 보이면서 그의 기나긴 저주가 끝났음을 알게 된다.



하나도 유치하지 않았던 해피엔딩..
왠지 모르게 앤디 맥도웰이라는 배우의 키스씬과 포옹씬은 언제봐도 따뜻하다.
그린 티켓에서도 그랬고, 4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에서도 그러했다.

그의 팔에 애교스럽게 매달리면서 졸린 목소리로 오늘이 무슨날이냐고 묻는 리타에서 필이 던진 한마디..

`오늘은 내일이야..!!'

다시 봐도 역시 즐겁고 유쾌한 로맨틱 코메디라고 생각된다. 이 기발한 스토리와 냉소적이지만 웃음을 끊이지 않게 하는 빌 머레이의 연기와 잇몸을 드러내고 웃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앤디 맥도웰의 모습까지 13년이 지났지만  `사랑의 블랙홀'의 위력은 여전했다.

저주라고 생각되어지는 반복되는 일상이 한사람의 행동방식을 바꾸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건 저주가 아닌 축복이 아닐까? 비록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도돌이표가 동반되긴 했지만 말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우와 연우 2006-09-1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맨틱코미디의 달콤함이 질투나는 아침이군요...
주말쯤 행복한 그들을 훔쳐봐겠네요...^^

비로그인 2006-09-1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압권이었죠. 빌 머레이가 가장 멋있게 나온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비자림 2006-09-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찜해 둬야겠네요^^

moonnight 2006-09-1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너무 재미있죠. >.< 빌 머레이도, 앤디 맥도웰도 참 멋지게 잘 어울렸던 작품. ^^

Mephistopheles 2006-09-1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쓴다고 속삭이신 분 // 그런데 사재낀 물건이 다음날이면 다 없어지는 걸요..??
건우와 연우님 // 안훔쳐보셔도 됩니다..그냥 봐도 뭐라 안그럴껍니다..^^
사야님 // 예 제가 생각해도 비교적 젊었을 때 빌 머레이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비자림님 // 재미있습니다..^^ 찜만 하지 마시고 한번 보시길...^^
달밤님 // 예 둘이 잘 어울렸었죠..마지막에 앤디 맥도웰이 알람 끄면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참 정겹더군요...^^

클리오 2006-09-1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댓글 남기려다 타이밍을 못맞췄는데, 이 영화 정말 좋았어요.. 분위기도 좋구요, 남자가 진지해져서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Mephistopheles 2006-09-1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먹겠다고 속삭이신 분 // 그래도..위장의 영역이 있는데...푸드 파이터처럼 내 위장은 우주다~! 가 아니면 힘들지 않을까요..^^
클리오님 // 예 그 천천히 변화하는 모습을 빌 머레이라는 배우가 아주 기가막히게
연기를 했었죠..^^
 
철십자 훈장 - [초특가판]
샘 페킨파 감독, 제임스 코번 외 출연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인간을 소멸시켜도 법적으로 어떠한 처벌을 받지 않는 장소는 아마 전쟁일 것이다.
인간성 깡그리 무시되고, 내가 죽기 싫으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이 비정한 공간을 샘 페킨파 감독이 구경만 하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영화가 `철십자 훈장' 이라 보고 싶다.



이 멋있는 원래 포스터를 마다하고 조잡한 국내용 포스터와 DVD 표지를 보며
경악했다.

유럽에서 만든 이 영화의 재미있는 사항은 근세기 인류가 치뤘던 굵직한 전쟁사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을 승전국의 시점이 아닌 패전국 독일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하필 장소도 그때 어느 전장보다 처참하고 잔혹했다고 전해지는 소비에트 연방과 대치되는 동부전선이며, 밀리고 밀리는 팽팽한 대립이 존재했던 레닌그라드 전선이다. 그리고 적의 개념인 소련군과의 대치보다는 독일군 내부의 계층 갈등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었다.

필요없는 살상을 가급적 줄이면서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소대원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슈타이너 상사는 지루하게 펼쳐지는 전선에서 어떻게 보면 선을 긋고 전쟁에 임한다. 시기가 되면 떨어질 퇴각명령을 기다리는 상황속에서 그와는 대립되는 반동인물 스트랜스키라는 자신의 직속상관을 만나면서 영화의 갈등은 시작된다.

전장의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자신의 목숨뿐만이 아닌 동료 혹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상급장교의 목숨까지 구해준 전력이 있는 백전노장 슈타이너에 비해 한가롭게 프랑스에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유유자적하던 군인 귀족주의로 똘똘뭉친 프로이센 귀족출신 스트랜스키는 첫 만남부터 물과 기름의 사이임을 서로 직감하게 된다.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그시대 독일군의 최고 명예인 철십자 훈장을 위해 이 피비린내 나는 곳에 자원을 했다는 소리에 이미 그는 부임 첫날부터 경계와 열등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자신의 찬란한 신분과 지위에 비해.....

보는 관점에 따라. 무의미한 쇳덩어리 훈장 때문에 슈타이너는 생일을 맞은 동료 상사를 바로 그날 잃어버리는 비극과 비이성적인 편집증을 보이는 상관(스트랜스키)에 의해 무리하게 치뤄진 전투에서 소대원과 함께 낙오되고 귀환하는 도중 역시 스트랜스키의 충실한 개였던 그의 부관에 의해 대부분의 소대원을 적의 총이 아닌 아군의 총에 의해 잃어버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냉정을 지켜왔던 그의 자제심은 폭발하게 된다.

살아남은 소대원과 명령의 의미로 떨어져 나온 슈타이너는 이제 그가 강제적으로 맞이한 새로운 소대원 스트랜스키를 대동하고 이미 퇴각명령이 떨어진 전장에서 그들의 적과 대치하면서 마무리가 된다.



오른쪽이 슈타이너로 열연한 `제임스 코번, 왼쪽은 바보 스트랜스키역의 막시밀리언 쉘

시종일관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우리나라에선 동요로 쓰인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의 원음으로
흘러나오는 이 비정한 전쟁영화는 감독의 다른 작품처럼 여러 장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다.

초반에 생포한 소련군 소년병에게 살상이라는 방법보다는 공존을 택했던 슈타이너는 아이러니하게 그 소년의 동족에게 우발적으로 살상당한 장면 직후 영화 중 가장 평안한 시간인 병원으로 후송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패닉상태의 소대원에게 여성스런 딥키스로 진정을 시키는 모습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대의 최고위층 대령에게 `난 당신들 장교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고 일갈하는 모습. 마지막 비워진 탄창을 재장전하지 못하는 스트랜스키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장면. 폭력으로 얼룩진 모습보다 대립하는 인간관계가 더 잔혹하게 보여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잔인한 장면보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비정한 전쟁이라는 공간속에 박혀있는 이기적인인간군상들의 예리한 대립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적인 결말이 더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졌던 전쟁영화의 수작이라고 판단되는 영화이다.

뱀꼬리1 : 독일군들이 주인공인 영화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영국배우여서 그런지 독일군이 내뱉는 대사가
독일어가 아닌 영어였다. 이건 좀 어색했다.

뱀꼬리2 : 1978년에 상영된 영화이다 보니 그 표현이나 효과는 요즘영화와 비교하긴 힘들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음해에 발표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살펴보면 이 영화에서 표현된 많은 기법과 장면들이 재등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댓글(4)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 영화 &lt;철십자 훈장&gt;에서 슈타이너 상사가 달고 있는 메달들
    from deutsch`s Web Cafe 2008-09-09 00:49 
    오늘 DVD로 영화 샘 페킨파 감독의 (원제:Cross of Iron)을 보다가 문득 슈타이너 상사의 군복에 달린 기장류가 눈에 띄어 찾아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사 카테고리도 만들어놓고 "관심이 많다"고 줄창 외쳐대지만,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다보니 자료 찾는데 애로 사항이 많다. 아래 기장과 훈장들은 영화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별로 신경써서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이상하게 이렇게 작은 것에 눈길이 잘 간단 말이지.....
 
 
비로그인 2006-09-0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탈린그란드가 기억에 남는데요.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다수의 영화들이 미국의 입장에서(당연히 미국에서 만들어거 그러겠지만) 영화를 전개한다면 이 영화는 독일군의 시각에서 보고 있죠.

sayonara 2006-09-0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사이트에서 초저가에 할인중이라 살까 말까 고민중인데... 영화 한 편 관람료도 안되는 돈을 아끼기에는 너무 좋은 작품 같네요.
셈 페킨파 감독이라면.. 리뷰에서 언급한대로 이 작품도 '피가 튀고 살이 튀는'...?!

Mephistopheles 2006-09-1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 군의 국적을 따져 어딜가도 있는 이기적인 인간군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요나라님 // 그래도 요즘 영화들에 비하면 참으로 얌전한 편입니다..^^기존의 샘 페킨파의 영화에 비하면 좀 수위가 낮다고 해야 하나요..^^

TexTan 2007-08-26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와일드 번치가 떠오르네요. 평화로운 멕시코 숲길을 가는 장면과 마지막에 지독한 총격씬.. 철십자 훈장에서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군을 향해 총을 쏘는 안타까운 장면이 잠깐 스칩니다. 편집의 리듬이 약간 묘한 감독이란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