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라는 경이

 여러분들은 경이, 환희라는 용어를 어떤 경우에 사용하게 됩니까.

 이야기 1.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홀수와 짝수를 배웠습니다. 아이가 아버지한테 배운 것을 이야기하며 10이하의 숫자에는 홀수 짝수를 알겠는데, 10, 20이 넘어가면서 숫자들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1부터 10까지 가로로 한 줄에 숫자를 쓴 다음 홀수는 파란색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짝수는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이 다 끝난 다음 아버지는 아이에게 느낀 점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느낀 점이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버지는 1부터 10의 다음 줄에 11부터 20까지 숫자를 쓰고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치기를 다시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줄을 맞추어 50까지 쓰라고 말씀하였고, 다 쓴 다음에 다시 동그라미를 치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50까지 동그라미를 다 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동그라미를 치던 중, ‘아! 알았다. 아빠.’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2. 한 소녀(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는 여느 날같이 마당을 뛰어 다녔습니다. 손에 차가운 것이 닺았습니다. 그것은 물이었습니다. 항상 소녀 뒤를 쫓아다니던 선생님은(앤 설리반Anne Sullivan) 손바닥에 W A T E R라고 썼습니다. 그 때 소녀는 갑자기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 귀찮게 하는 사람이 왜 나를 쫓아다니면, 손바닥에 무어라고 써 왔는지. 그것은 언어였습니다. 이 소녀가 최초를 갖게 된 언어, Water(물)라는 단어였습니다. -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저는 울었습니다.

 이야기 3. 헬렌 켈러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너 뭐하고 있었니?” 친구가 대답하였습니다. “숲길을 산책했어.” 헬렌이 다시 물었습니다. “무었을 보았니?” 친구가 대답하였습니다. “뭐 아무것도 없었어.” 헬렌이 생각하였습니다. 어떻게 숲을 산책하면서 아무것도 없었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잎새 하나를 보더라도 좌우가 대칭적으로 뻗어 있는 맥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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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는 누구나 다 아는 동화입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는데, 토끼가 앞서 나갔지만, 중간에 토끼가 낮잠을 자고 있는 사이 거북이가 승리했다. 이 동화가 주는 교훈은 재능이 있다고 또는 앞서 나간다고 자만하고 나태해지면, 꾸준히 노력하는 이에게 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토끼가 이겼다면, 무슨 이야기가 될까. 부잣집 자녀로서의 배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부모님을 원망해야 하나, 아니면 천재적 재능을 내려주시지 않은 하나님을 원망해야 하나?, 과연 낮잠을 자는 토끼는 얼마나 되는가? 노력하면 무조건 다 성공하는가? 그래서 내린 결론이 더 있습니다.

 동화의 작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성실성외에, 정당한 게임의 규칙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곳에서 재능을 발휘하자 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공정한 게임은 육상에서 달리기를 한 번 경주하고, 물에서 헤엄치기 경주를 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거북이라면, 잘 못하는 달리기를 연습하느니 보다 잘하는 수영으로 승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거북이가 사회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 달리기 경주에 내 몰릴 수 있습니다. 이 때 원망만 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토끼인데 거북이와 달리기 경주를 하게 되었다면, 한번 거북이의 입장을 생각해 볼 여유가 필요합니다. 거북이가 게을러서 늦게 뛰는 것이 아니고, 짧은 다리를 비롯한 체형 때문에 늦게 뛰는 것을 이해주었으면 합니다. 공부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공부 잘하는 사람이 나중에 아랫사람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가 본인이 쉽게 공부한 경험만 생각하여, 아랫사람을 다그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 다시 느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공정한 게임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해’라는 새로운 교훈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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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호,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드가 등 몇 서양화가들은  좋아하기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서양미술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루벤스Peter Paul Rubens하면 떠오르는 장명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인상깊게 봤던 장면, 눈물까지 흘리며 봤던 장면......

 '플란다스의 개 A dog of Flanders'의 네로가 파트라슈와 함께 루벤스 그림 밑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던 장면

하나 더 루베스가 그린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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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우유 2004-02-2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갑자기 생각; 이런; 성당그림에 갑자기 신들이 생각나다니; 그리고 아래그림을 보니 예전에 서양인이 그렸던 오천원짜리 율곡이이의 그림이 생각나네요; 서양인이 그리면 왠지 서양인을 닮은 그림이 나오는것 같아요;; 나만그런건가;;
 


 초등학교 시절 (어쩌면 중학교)에 다보탑과 석가탑을 비교한 글이 국어 책에 실렸습니다. (현진건님의 불국사 기행)

 다보탑을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대로 꾸민 성장미인에 견준다면

 석가탑은 수수하게 차린 담장미인이라 할까.

 

 

 

 당시 저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실제로 보지 못했고, 그림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으로 볼 때는 석가탑보다 다보탑이 훨씬 멋있게 보였습니다. 담장미인보다야 성장미인이 낫지. 어떻게 촌색시가 대감집 따님과 견주겠어.  그러나 고등학교때 실제로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고 나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겼습니다. (감동 받은 이야기를 마이페이퍼에 올리지만 실제로 저는 목석같은 사람입니다.) 석가탑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다보탑은 실망을 주었습니다. 다보탑은 돌사자도 깨져 있고 화려한 외양때문이지 풍화작용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당연스럽게 다보탑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니 석가탑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모두 아름다운 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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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1-08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마립간님은 신라의 왕 다우십니다.섬세함만 보는분은 여성적인 다보탑을 좋아하지만...신라 석탑의 정형인 석가탑은 점과 면과 선이 절묘하게 조화된 알맞은 비례를 가진 석탑으로 힐끗 보면 가벼워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조금만 살펴봐도 빈틈 하나없는 완벽한 석탑일겁니다. 妙相莊嚴......無影塔이라...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부처를 찾는 眞空妙有를 담은 한송이 석조미술의 상좌가 바로 석가탑이 아닐까요?? 문화재적 심미안에 놀라움을 감출수 없군요..
 

 내가 좋아하는 여인 - 나혜석羅蕙錫

 정월晶月 나혜석이란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최초의 서양 여류화가입니다. 무엇이든지 최초는 매력이 있지요. 선구자적 이미지가 있습니다. 문필가로 소설 ‘경희’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혜석씨는 서양화가로서보다 여권운동자로서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렬하였습니다. 요즘에도 공개하기 쉽지 않은 이혼고백서라는 글을 썼다는 것은 그의 저항정신을 느끼게 합니다. 나혜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불합리에 대한 저항정신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오히려 그 저항의 대상이 남성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년이 불행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사회와 타협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혜석의 변 ‘현모양처란 교육가들이 자성없이 상업적으로 내세우는 주의에 불과하며, 온양유순을 가르치는 것도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며, 정조는 취미와 같은 것이어서 도덕이나 제도로 강제할 일이 아니다.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결혼을 하더라도 각자 배우자 이외 다른 이성을 만나 사교를 하는 것이 쉽사리 권태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 지금 들어도 너무 파격적입니다. 불꽃같은 여자라는 수식어가 매우 잘 어울리죠. 최근에 나혜석 평전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는데 한번 읽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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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2-2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혜석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