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주일학교 교리교사들을 위한 교사의 날, 행사가 있어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평소 애들 간식챙겨주고 행사때마다 식사 준비를 해 주시는 어머님들의 고생이 더 많을텐데, 그날도 역시 음식을 챙기는 것은 어머님들이다. (요즘은 선생님들과 사이가 소원해져서 그렇지만 그때당시 자모회셨던 어머님은 여전히 잘 해주시고, 특히 '나'를 챙겨주셔서 고맙다. ㅎㅎ)
아무튼 어머님들이 식사준비를 하고 오실 때 어린 애기들을 떨구고 오기 힘들어 같이 데리고 오실때도 있다. - 물론 교사의 날 행사는 이제 자모회 어머니들까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애기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그리고 그때도 야외에서 미사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각자 여유롭게 즐기면 되는 때였기때문에 애기들이 꽤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때, 같이 따라 온 우리 성당 애기들 중에 모두의 시선을 끈 남매가 있었으니... 엄마는 저~ 쪽에서 식사준비에 정신이 없으셨고 우리는 (잘난것도 없으면서 감히) 펴놓은 돗자리에 앉아 식사준비가 끝나길 기다리며 신부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에 꼬맹이 남매는 중국어를 배운다고 자랑이 심했고, 급기야 알고 있는 중국어를 해 보라고 시키기까지 했다.
그때도 나는 옆에 앉은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딴 짓 중이었는데, 이야기가 잠깐 멈춘 사이에 꼬맹이의 중국어를 듣게 되었다.
- 나, 정말 중국어 못하지만 그때당시 학원을 서너달 다닌 가락이 있어서 애기들의 말 정도는 조금 알아들어버렸다. 이게 화근이었지.
오빠가 암기한 내용을 어린 꼬맹이가 다시 읊고 있을 때 내가 무심코 그녀석에게 '어머나~ 오빠가 열살이라고 했고, 넌 여덟살이니까 그거 바꿔 얘기해야지~'라고 해버렸다. (아, 이넘의 단순함이 문제다. 생각 좀 하고 살지는 ㅜㅡ)
아는가,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싸늘~ 해지는 듯한 느낌.
뭐 다행히 멈칫했던 꼬맹이가 아랑곳하지 않고 쫑알거리면서 알고 있는 중국어 문장을 계속 암기해줘서 그냥 넘어갔지만.
나는 내 생각없이 경솔한 행동에 대해서도 많이 반성했고, 그만큼 더
아이들에게 앵무새처럼 언어를 배우게 하는 학원에 대해서도 분노했더랬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내가 학교 다닐때, 그 중요한 윤리 시간은 따분한 시간이었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서는 자습시간이었고, 지금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 무슨무슨 철학자들의 무슨무슨 사상이 뒤엉켜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학원에서 영어회화 시간에 대화를 나누는 주제는 어떤가.
모의 법정을 열어, -자신의 의견은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끔찍한 폭력에 시달려 온 아내가 어느 날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가해지는 끔찍한 폭행에 견디지 못해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게 되었다. 과연 그녀는 '유죄'일뿐인가?
- 나는 그녀의 정상참작을 해야 되는거예요~ 라고 외쳐댔지만, 정작 가위바위보에 져서 나는 검사가 되어 그녀의 죄를 논리적으로 꼼꼼히 따져야 했다. (아아,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마시라. 유일하게 딱 한 문장, 강사의 칭찬을 받은 건 그것뿐이다. ㅠ.ㅠ)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지혜'를 쌓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학습행태를 보면 지식쌓기도 아닌 점수 쌓기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인가? 점수를 쌓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