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시는 기다렸다 국가방위군의 기갑사단 행렬을 더 지켜보자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그런악독한 무리 근처에는 얼씬도 하기 싫다고 했으나, 거대한 탱크가 덜컹거리며 대로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맹세컨대 야노시는주인이 남은 음식을 제 밥그릇에 붓는 소리를 들은 개처럼 침을흘리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쳤다. 다 큰 어른이 탱크를 보겠답•시고 어린애처럼 사람들 머리 위로 방방 뛰어대고, 아마도 훗날우렛소리와 함께 유럽을 짓밟을, 산 자와 죽은 자의 뼈를 으스러뜨리고, 대륙에 들이닥쳐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방식으로 우리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굶기고 고문하고 몰살한 나치의 무력 기습을 이끌게 될 바로 그 죽음의 차를 얼빠지게 쳐다보며손을 꺾어대는 모습은 정말로 섬뜩했다. 괴이한 기계에 정신이팔린 그를 보면서, 그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잘 알고있었던 나는 그에게 희망은 거의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우리모두에게 희망은 거의 없었고, 나에게는 분명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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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량생산 때문에 원본, 유일한 것, 대체할 수 없는 물건의 가치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높아졌다(역설적이지만 대량생산된 책의 초판본, 저자나 유명한 예전 소유자의 서명이 담긴 책도 여기에 포함된다).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아주 먼 과거의 물건이 아니더라도 원본을 도서관과 미술관에 보존하는 일에 계속해서 상당한 자원을 쓴다. 대량생산이 쉬워지고 널리 퍼질수록 원본은 더욱 귀중해지는 듯하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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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고, 명료하게 쓰고, 최후까지 수호할 것. 볼츠만의 좌우명이던 이 말을 제자 파울은 가슴에 새겼다. 에렌페스트가 난다 긴다 하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존경받은 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선명하게 정제하고 그것의 근본적인 본질을 포착해내는능력 덕택이었다. 그는 이 앎을 열정과 정력을 다해 전파했고,
듣는 사람들은 흡사 마법에 걸린 양 그의 생각에 빨려들어갔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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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는 수도원이 문화를 저장하고 전파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문화 저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새로운 지식과통찰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읽을 수 있는것은 대부분 기독교가 선별하고 베네딕토회 도서관 체계가 걸러낸책밖에 없었지만 의학 등 수도원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유형의 지식도있었다. 심각하거나 희귀한 질병을 앓는 사람들은 수도원에 축적된지식이 치료법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배움의 중심지인 수도원에 몰려왔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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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해태
조 메노스키 지음, 박산호 옮김 / 핏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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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라고 한다. 영물이라고 할 수 있는 해태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라고 하니 서양의 용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신화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더구나 이 소설은 한국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가는 스타트랙 시리즈의 작가 겸 프로듀서인 조 메노스키라고 하니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화와 전설이라는 것은 그 스토리를 잘 안다고 해서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닐텐데, 한국의 신화와 민속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하기까지 꽤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하니 뭔가 좀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98년 4월 7일, 한 오피스텔에 불이 나고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든 소방관 허종남 대장은 그곳에서 아기 한명을 구해낸다. 그 아기의 이름은 윈디. 윈디가 있는 곳에서는 불이 꺼져버리곤 하는데, 그것은 윈디가 불을 잡아먹는 해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해태가 윈디를 숙주(?)처럼 이용하며 그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윈디가 해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숙주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 사실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간단한 줄거리를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우리의 해태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를 '불'이라는 매개로 연결을 시키고 한국에서는 그리스의 어떤 신보다도 도깨비가 더 우위에 있으며, 아프로디테가 제주의 해녀들을 위로해주고...


영상으로는 어떻게 표현될지 모르겠지만 윈디의 등장과  윈디를 구해내며 방화사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허대장, 핀란드의 민속학자 할코의 개연성이 필수요소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서 주제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읽었는지 확신할수가 없다. 


이 소설은 실제 읽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런 묘한 접점들이 너무나 많아서 뭐라 정리를 하지 못하겠다. 처음 소설 속에서  우리의 신화 전승과 유럽 문화의 기본이 되는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연결고리를 읽는 순간 어이없어,라는 속내를 가졌었다. 그런데 소설을 계속 읽으며 내가 오히려 우리의 전승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들의 신화에 우리의 신화를 견주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 소설이 아주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생각의 전환을 갖게 하는 멋진 작품인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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