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조직의 입장에선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치명적일 때가있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만 개인에겐 결과보다 노력이 중요할 때도 있다. 이상론, 낙관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렇다. 갈수록 재능이니 결과니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력과 성실을 저평가하는분위기가 나는 아주 고깝다. 뭔가를 성취해낸 사람을 보면 노력의방향을 잘못 잡았을지언정 바보 같고 우직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했던 사람들인 경우가 훨씬 많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실제로 주위에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노력과 성실도 재능이라는 걸 언제쯤 이해할는지.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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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
오경아 지음 / 몽스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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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님의 생활에세이이다. 사실 '생활에세이'라고 했지만 오랜 세월 정원을 가꾸며 식물과 함께 하는 삶에서 깨달은 지혜는 새겨들을 이야기가 많다. 식물과 동물을 구별할 필요없이 모든 생명체는 닮은 꼴로 살아가고 있으며 각자 나름의 수고로움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지만 구체적인 식물의 성장과 같이 비유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한꼭지 한꼭지가 다 마음에 남는다. 


"가드닝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가 뭔가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이런 대답도 한다. '그런 거 없습니다. 저 역시 아무리 배워도 매번 풀한테 이겨본 적이 없는데요'... 필요한 건 노하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어쩌다 들여다보는 정원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속에 정원이 자리하면 그게 가장 좋다"(142)


어렸을 때는 꽃이 피는 것만 좋아했었는데 - 물론 지금도 꽃을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 지금은 쑥쑥 자라나는 다육이들도, 잎의 모양과 색이 독특해서 꽃처럼 보이는 관엽식물, 공기정화를 한다고 해서 키우기 쉽다고 해서 등등 꽃이 피는 녀석들보다 오히려 다양한 식물을 더 많이 키우고 있다. 솔직히 정원이라고 할 수는 없는 화분 몇개를 놓고 간혹 너무 크게 자라서 큰 화분으로 옮긴 후 마당에 방치해두는 식물들도 하나 둘 늘어가고 있어서 내가 가꾼다 하지 않고 얘네들이 알아서 잘 커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오경아님의 가드닝을 잘 할 수 있는 노하우에 대해 '매일의 일상 속에 정원이 자리하면 그게 가장 좋다'라는 말을 새겨 보게 된다. 


특별히 식물을 살리기 위해 약을 쳐본적이 없지만 거의 말라 죽어가고 있는 식물을 포기해본적도 없기는 하다. 벌레를 없애기 위해 약을 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식물은 자체 화확물질을 생성해내어 올해는 벌레에게 먹히더라도 벌레가 번식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생성해 미래를 도모(?) 한다고 하니 오늘을 사는 식물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식물이 아닌가. 이런 놀라운 이야기들은 새삼스럽게 식물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지구환경의 변화로 많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 중 하나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었다. 약을 치는 것도 그렇지만 양봉을 하며 설탕으로 벌을 키우고 있어서 꽃이 피면 수정을 하는 역할을 하는 벌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꽃 사진을 찍으려면 늘 찍히는 꿀벌이 어느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그래도 우리 집 마당에 비파나무 꽃이 필 때쯤이면 꿀벌이 모여드는 모습을 확인한 것으로 조금은 위안을 삼아본다. 꽃이 피어 사진을 찍으려면 늘 벌이 모여들어서 꽃과 같이 찍었으니, 올해도 지구환경을 위해 소소한 행동 하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당의 비파나무는 비파를 먹다가 씨를 묻어뒀는데 내 키만큼 자라났고 5년이 되어가도록 열매를 맺지않아 잘라버리자는 것을 1년만 더 기다리면 열매가 열린다고 하며 기다렸는데 그 해에 첫 비파열매가 많이 열려 내심 뿌듯해했었다. 해피트리도 꺾어진 가지를 물에 담궈뒀더니 뿌리가 나와 화분에 옮겨심고 지금은 나무로 성장해가고 있다. 물론 실패도 많지만 이렇게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 식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늘 성격이 급한 사람들에게,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나 교사들에게 나의 이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진즉에 죽어버렸을 것 같은 식물이지만 끝까지 정성을 다하고, 몇년이 지나도록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같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열매를 보게 된다고. 그리고 사실 나무는 내가 가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고 자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올해도 나는 맘대로 안 되는 정원이라는 우주에서 라벤더에게 잘 살아보라고 독려도 하고, 쑥에게 너는 왜 이렇게 사냐고 원망도 하고, 꽃 피면 찾아오는 벌들에게 그 꿀은 어디에 모아두고 사냐고 묻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 볼 참이다"(67)

나도 그렇게 살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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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이런 대답도 한다. ‘그런 거 없습니다. 저 역시 아무리 배워도 매번 풀한테 이겨본 적이 없는데요.‘ 그런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때론 지지고 볶고, 때론 구질구질하게, 때론 맘먹고 깨끗하게 그냥 정원생활을 하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한다. 필요한 건 특별한노하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어쩌다 들여다보는 정원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속에 정원이 자리하면 그게 가장 좋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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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시간은 우리에게 미래를 준 적이 없다.
내년 봄을 약속해 주지도 않고, 대비하라는 경고도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만 줄 뿐이다. 그런데 우린 이 보장 없는 미래에 늘 발목이 잡힌다. 그렇다고 미래를 그리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방법이 있나? 내 소박한 답은 이렇다.
지금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 예쁜봄을 상상하는 지금이 행복하다면 그 미래가 오든, 오지않든 상관없이 지금의 나를 위해 꿈꾸어 볼 일이지 않을까. 설령 봄이 와주지 않아도 오늘 내가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 P33

인생의 정점을 언제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쉰을 넘기며 이제는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욕심과 성장의 불을 끄고, 천천히 식어가도 괜찮을 수 있는나를 종종 그려본다. 늙어감이 서러워서인지 ‘동안 얼굴,
‘동안 몸매‘에 집착하는 세태에 나도 흔들릴 때 있지만, 다시 또 맘이 돌아선다. 내 삶에 찾아오는 가을을 막을 이유가 있겠나. 정원에 찾아오는 가을처럼 나의 나이 듦도 충분히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니 잘 철들어보자고, 그렇게 나의 늙어감을 가을과 함께 다독여 본다. - P44

식물의 강력한 힘은 저항이 아니라 순응하여 진화하는 데 있다. 식물들은 우리가 심어준 자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기에서 살아갈 방법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고, 정말 강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우리만 애절하게 반려라고 우길 뿐, 식물 입장에서는 우리와 함께할 맘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만만했던 정원이 화초, 잡초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걸 깨닫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이기심이가득한 정원이지만, 그래서 반려가 될 수 없는 곳이지만,
정원은 내 삶과 묵묵히 동행하는, 내 맘대로 안 되는 작지만 커다란 우주이기도 하다. - P67

우리도 일생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에 쾌재를 부르며 즐거워도 하지만, 좌절하고 후회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 모든 선택에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선봉에서서 싹을 틔웠던 씨가 잘못이 없듯이, 영양이 부족하여꽃 피우기를 포기한 식물에게도 잘못이 없듯이, 우리의선택도 그저 최선만 있을 뿐 그 결과의 값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잘 생존하였다면 그걸로충분히 잘했다고 위로해 주면 된다. - P89

장미만 예쁠까. 마의 정원에 피어난 모든 꽃은 다 예쁘다. 나의 정원에 내가 심은 모든 꽃처럼, 이 우주에서의 나의 존재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는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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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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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여주 잔혹사,라는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동화이야기에 담겨져있는 메타포를 헤집어놓고 분석하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은 내용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면서 일부러 천천히 읽은 책이다. 

사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이야기에서 도널드 바셀미의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으로 썼다는 소설의 내용은 - 백설공주가 낮에는 가사노동에, 밤에는 일곱난장이들의 성노예로 착취당하며 살아가고 이웃에 살던 왕자는 누군가 백설공주를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다 자신이 그녀를 구할 왕자인 것을 끝내 알지 못하고 계모의 독에 죽임을 당하는데 왕자의 죽음을 모르는 백설공주는 영원히 왕자를 기다린다는 - 비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였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확장되어 유리관에 놓여진 백설공주의 시신에 담겨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던 것이었기에 솔직히 말해 뭔가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느낌에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에서 용이 나타나 공주를 납치해가고 왕자가 나타나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낸다,고 하지만 용이 악의 분신이 아니라 공주의 분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상 주체적인 공주가 용의 모습으로 자신을 구속하는 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옛이야기에 담겨있는 은유적인 표현을 알게 되면 알수록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들었던 놀라운 은유는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다리밑에서 줏어온 아이'라는 말이었다. 선배가 의미심장하게 옛어르신들의 지혜로움은 그런 말에서 느껴진다고 말을 할때만 해도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다리밑에서 줏어온 자식이라는 놀림을 받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좀 웃음이 나오기는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신기하고 재미있어 이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을수밖에 없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실을 잣고 이야기를 짓는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보니 오래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속 댈러웨이 부인이 뜨개질을 하는데 그 뜨개 바늘이 자신을 지키는 무기 역할을 한다고 했던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그 말의 의미가 더 깊이있게 느껴지고 있다. 

뜨개질을 하고 옷감을 자아서 무엇이든 뜨고 싶은 것을 뜨듯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는 것은 우리가 왕자의 구원만을 기다리는 깊은 숲속의 공주가 아니라 용감한 용이 되어 자유롭게 세상으로 날아오르거나 자신의 이름을 찾아 돌아오는 치히로가 되거나 또 다른 무엇이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거나 등등의 '나는 나'를 당당히 외치면 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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