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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웨스 앤더슨 - 그와 함께 여행하면 온 세상이 영화가 된다
월리 코발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웨스 앤더슨이 누구인가, 했는데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독이라고 한다. 그리고 책 표지의 사진을 보니 딱 그 영화 포스터가 생각난다. 친구가 좋다고 추천했지만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영화, 라고만 기억하고 있는데 책 표지를 보며 곧바로 영화 포스터를 떠올릴만큼 웨스 앤더슨의 이름이 떠오르게 하는 색감이 있다. 색채에 대한 설명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 내가 받은 느낌은 맑고 선명하고 깔끔하다는 것이다. 색채에 대한 느낌과 설명이야 어떻든 사진 한 장을 보면 웨스 앤더슨스러움이 떠오르는 사람이 많은가보다. 이 책은 그래서 탄생하게 되었다.
영화와 여행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예상했던 사진과 글이 아니라 좀 당황했던 것을 빼면 다 좋았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여행하는 사람들이 찍은 사진에서 웨스 앤더슨스러움이 느껴지는 사진을 모아놓고 그 사진의 장소를 찾아 보여주고 있다.
한동안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을때마다 보던 티비 프로그램의 한 꼭지에 '미스터리가 간다'라는 것이 있는데 사진 한 장을 들고 그와 똑같은 찍는 것이 미스터리의 미션완수인데 같은 사진을 찍기 위한 부단한 노력도 있지만 그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가 그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구성이다. 이처럼 이 책에 실려있는 사진 한 장 역시 단순히 그와 똑같은 모습을 찾아나서는 여행 모험뿐만이 아니라 그 사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삶의 모습이나 역사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냥 스치듯이 사진을 보고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글을 읽었다가 다시 사진을 바라보게 되는 사진들이 많다. 딱히 좋아하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워싱턴 스테이트 페리즈의 사진이다. 커다란 선박 창문 너머로 흐릿하게 잿빛의 수평선이 보이는 듯 하지만 오래전의 옛것처럼 보이는 의자와 테이블 위의 퍼즐조각들은 솔직히 처음 봤을 때 무료함을 떠올리게 했다. 딱히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없는 듯 했는데 사진의 설명은 그렇지 않다. 관광객들이 이 페리 자체를 관광 명소로 여기며 겨울철 페리를 타는 통근자들은 승선하고 바로 퍼즐을 맞추곤 하는 관습에 열광하며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것은 향수 어린 광경이다. 혼자 탄 승객이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휴대전화로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나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 네명이 테이블 위로 머리를 수그리고, 각 구역을 차지하고, 관련있는 조각들을 건네주고 가장 운 좋은 그룹은 함께 끝냈다는 흥분을 나누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페리가 정박하면 승객들은 흩어지며 아마 다음번 여행에서나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55)
등대, 표지판, 호텔, 오래된 화장실까지 세계 곳곳의 여러 풍경들이 담겨있는데 유독 대강당의 빈 의자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다고 느껴졌다. 실제 많아서라기보다는 이 밋밋한 사진이 왜 이렇게 많은가 라는 생각때문에 유독 더 많아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그저 단순한 강당과 의자의 뒷모습이 아니다. 특히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데, 최초의 여학생 입학을 허용한 칠레의 교황청관할 가톨릭대학이라거나 멕시코혁명을 주도하며 농민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유해가 있는 쿠아우틀라 교회, 식민지시대의 유산이 아닌 현대의 기술로 세운 콜롬비아의 로스안데스대학교 강의실의 모습 등은 단지 웨스 앤드슨스러운 색감만으로 이 책에 사진이 실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여지는 색감에 더해 역사와 문화까지 아우르며 보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미스터리처럼 이 책에 실려있는 사진 한 장 들고 사진 속 현장을 찾아가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꿈을 꿔본다. 가본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고 나였다면 눈여겨보지 못했을 모습을 담은 사진은 역사와 문화 등 많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으로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에 대한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시각을 바꿔주기도 한 이 책에 실려있는 수많은 사진들은 그런 의미만이 아니라 그저 사진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그런 사진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이 책은 자주 펼쳐보기 위해 가까운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