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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강희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8월
평점 :
금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이 소설을 며칠동안 붙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가 담겨있으리라는 건 예상을 했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다. 너무 끔찍하다. 허무하게 끝이 나버리는 건가, 싶었을 때 섬뜩한 결말이 다가온다. 이건 예슬이만의 운명이 아니다. 우리들의 운명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은 투렛증상이 있는 예슬이가 대마에 취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쏟아지는 욕설과 대마와 그녀의 원조교제 이야기에 슬그머니 책을 덮어놨다. 이게 현실인가, 비현실인가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판타지는 아닌게 확실하다. 어느 농촌에선가 대마를 재배하다 들켰고, 어느 아파트에서는 대마를 수경재배하다 검거됐다는 뉴스는 나도 언젠가 본듯하기 때문이다. 이주 여성들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서는 말해무엇하겠는가. 바로 얼마전에도 베트남 여성을 폭행한 사건이 공분을 사지 않았는가. 이 무서운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카니발,은 축제라고 하지만 사실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의 살육제의 느낌도 있었는데 이 소설이 왜 카니발,인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예슬이의 엄마는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어쩌다 실연을 당해, 딱 그시기에 예슬이 아버지를 만나 한국의 산골마을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 무지랭이가 되어버렸다. 아니, 무지랭이 취급을 받는다. 따갈로그어가 아니라 한국인 영어 선생보다 더 월등한 영어실력이 있어도 영어 못한다고 무시당하고, 고향에서 부부간의 사랑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한국에서는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것도 손가락질 받는 요부, 화냥년이 되는 걸 모르는 바보인 엄마는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이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트렛증후군이 있는 예슬이를 위해 한국을 떠나 필리핀으로 가려 하지만 정작 똑똑해서 적응을 잘 하리라 믿었던 둘째 예진이가 그녀의 고향 친척들을 무시하고 싫어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별 소득없이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그들은 이방인이 될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선뜻 할수가 없다. 작가의 묘사가 끔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누군가의 죽음만 섬뜩하다고 느꼈었는데 마지막의 대반전을 깨닫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는 아버지와 동생 예슬이와 할머니. 그들이 끔찍한가? 단지 그들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것일까?
개를 잡아죽이고 도축하던 백정인 아버지는 개를 잡는다는 혐오스러움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카니발은 즐길만한 축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외면해볼 걸 그랬다. 이제 출퇴근길에서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나갈 때도, 집앞 골목길을 잠시 걸을때도, 동네 목욕탕에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외국어는 여전히 그들이 우리에게 이방인일뿐인가 생각해보자. 시골이 고향인 친구는 삼촌이 베트남 여성과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작년에는 남동생도 베트남인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이제 그들은 외국인이 아니라 가족이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현실의 변화를 위한 우리의 실천도 필요한 때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을 두번 읽고 싶지는 않다. 여름철의 호러보다 더 무서운 이 소설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어딘가에서 판타지를 가장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는 걸 떠올리게 하는 호러...니까. 난 호러를 좋아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