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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일의 시간 -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인생수업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 북폴리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함께 근무하던 분이 한동안 몸이 안좋다 하시더니 결국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1년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일상업무를 하시면서 주변 정리를 하던중에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결국 퇴사를 하시고 나중에 호스피스 병원에 가 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호스피스라는 개념은 천주교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니면서 익숙해진 말이다. 나는 아직 호스피스 병동에 가본적이 없는데 그곳에 가봤던 지인은, 죽음을 앞둔 가라앉은 분위기의 병동이라기보다는 주변정리를 하면서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잘 보내려는, 뭔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환자들이 입원해있는 병원같은 느낌이 아니라 참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그건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와는 거리가 먼 타인의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블루베일의 시간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병원인 갈바리의원에서의 100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방송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을 영상으로 다시 새겨보면서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보게 된 말은 우리의 삶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축복같은 선물이라고 한다면 죽음 역시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 또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수녀님의 말씀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누구에게나 닥치게되는 죽음이 또 다른 선물이라고 생각해본다는 것은 전존재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호스피스 병동의 이야기는 그저 막연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았고 슬프지만 또 기쁘게 가족과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지도 못했고, 돌아가시기 전에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드렸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잘해주셨으니 걱정하시 마시고 편히 가시라는 말씀도 못드렸다. 친구의 병문안을 갔을 때, 뇌종양으로 이미 가망없음 판정을 받아 의식을 잃고 투입하던 약도 중단된 아들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네가 있어서 우리는 행복했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친구어머니의 기도같은 말씀은 더욱더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었는데...
그때부터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나 자신의 죽음뿐 아니라 가족의 죽음... 타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자꾸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래도 생각이 날 때마다 후회없기를 기도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된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야한다고 하지만, 정작 일상생활을 하면서 죽음은 나와 관계없는 일처럼 여겨져버린다. 블루베일의 시간을 읽는 동안 시한부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던 분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그 상황에서 그처럼 준비를 잘 할 수 있을까?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나의 죽음... 죽음을 삶의 또 다른 선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보고자 한다. 이제 내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에는 죽음이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블루베일을 쓴 수녀님들의 수도생활의 의미도,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 봉사자들의 삶도, 그곳에서 마지막 삶의 여정을 보내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 모두의 삶의 의미도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서 후회없이 기쁘게 마지막 삶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