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시 써요

 

 

 

 

 

 

오늘처럼 부슬비가 내리면

동물원 김광석이 생각나요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시를 끄적이고 싶어져요 

 

부슬비도 비실비실 쓰러지고

초가을 하늘에 쓰인 시들도

한 자 한 자 흘러내리고 말지요

온 거리가 語로 어지러워요 

 

그래서

저, 시 써요

오늘도 

 

 

 

 

*

 

 

 

비에 젖은 축축한 학교. 어째 3월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이건 이제 일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서處暑 지나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입 돌아간다는 처서가 지났음에도  

어젯밤 창틀에 모기 한 마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 본다 

내 다리 네 다리에 침을 꽂고야 말겠다는 

당돌한 표정으로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박균호 2020-08-2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스럽고 다정한 시이네요.

푸른괭이 2020-08-29 10:28   좋아요 1 | URL
아,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어젯밤에 아이가 한 말을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모기가 눈 뜨고서 자기를 째려본다고 하더라고요 ㅋㅋ

박균호 2020-08-29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보니 귀여운 시이기도 하네요.. 아이들의 시선이란 정말 깜찍하고 기발해요.
 

 

 

처서處暑

 

 

 

 

 

모기가 내 다리 네 다리에 침을 꽂고

그뿐, 입이 비뚤어져 피를 빨지 못해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모기는 입이 비뚤어져 제 구실을 못해

 

더위가 머물 곳을 잃고 방황한다

슬슬 추위에 처소를 내주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이제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나이 들면

착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진다

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물러진다, 터진다

불혹과 지천명이 아이러니라는, 마흔에도 미혹하고 

쉰에도 천명은 모른다는 깨달음에 의기소침해져

 

태어날 때 운 건 아파서였을 거야

아플 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말 걸

평생 속아서 억울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제

불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가난과 희망의 기록을 남기련다

 

 

 

 

 

 

*

 

 

 

 

찾아 보니 박형준 시인, 최근에도 시집을 냈다. 그의 첫 시집을 읽은 것도 신림9동 자취방, 95년. 참 의미심장한 해였다. 컴퓨터를 사는 바람에 소설을 제대로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로부터 2년 뒤인가 그는 모 잡지 기자로서 나를 인터뷰한 적이 있고, 나도 그런 식의 인터뷰를 당하는^^; 인기 신예였다.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대학 시절에 쓴 단편 중 하나 <소희, 기억에 접점에 서다>. 집에서 뇌전증 발작을 하다가 사고사로 죽은(우리는 그렇게 알았던)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실은 그때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는데(과연 어떤 게 진실이었을까) 거기서 시작된 소설이었지 싶다. 다시 읽어볼 용기가^^; 안 난다.

 

 

 

 

 

 

 

 

 

 

 

 

 

 

응답하라 9*년, *에 뭘 넣어야 하나. 아무튼 그때 많이 읽었던 작가(들)의 최근작이 있다. 만감이 교차, 까지는 아니고 몇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이인성은 어쩌면 (김윤식이 쓴) 이인성 연구서로 남을지. 적어도 청년기의 한 권은 남을지. 최윤이 이효석 문학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반가운 이름. 지금 내 나이는, 내가 그들을 처음 읽었을 때 그들의 나이보다도 몇 살 많다. 그러게, 만감 교차까지는 아니고 몇 가지 감정의 교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 시 써요

 

 

 

 

수국을 보면 수국 담은 시가 생각나요

밤하늘을 보면 별 헤는 밤이 떠올라요

그래서 저도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가에게, 번역가에게, 인문학자에게 시란

솎아냈음에도 여전히 빽빽한 봉선화 화분에

겁없이 꽃을 피운 버섯 몇 송이 같아요

나도 엄연히 삶이란 말이에요, 라고 말하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시들고 말지요 

 

그래서

저, 시 써요

 

 

*

 

 

 

 

 

 

 

 

 

 

 

 

 

 

 

 

 

이 시집의 표제작(너무 좋아!)뿐만 아니라 다른 시에도 수국이 자주 등장한다.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는 꽃인데, 이 시집 덕분에 수국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내가 아는 수국은 주로 연분홍(연보라)색인데 요즘 우리 동네는 아주 연두색(?) 수국이 자주 보인다.

 

 

제주에 혼자 살면서 매일 한 편씩 시를 썼다나, 대단하다. 나도 위인전(인물전) 읽는 초등생처럼 다짐해본다. 실은 대학 시절의 꿈-계획이기도 했던바^^;  

 

 

매년 (저서든 번역서든) 한 권씩은 쓴다(낸다)!^^;

겸사겸사, 쓰는 건 내 몫이지만 내는 건 그렇지가 않다. 넓은 의미의 사회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