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부흥사 이성봉 목사
김덕래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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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인이 있기까지 어머니가 있었다. 이 말은 이성봉 목사님에게도 적용된다. 어머니는 어린 성봉을 신앙으로 양육하셨다. 성봉은 일곱 살 때에 벌써 성경을 일독하였다.
  위인이 있기까지 역할모델이 있었다. 성봉은 열네 살 때에 김익두 목사님처럼 유명한 부흥사가 되고 싶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위인이 있기까지 시련도 있었다. 성봉은 열여덟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악성 골막염으로 쓰러졌다. 성봉은 처절히 회개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인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성봉은 부임하는 교회마다 크게 부흥시켰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일으켰다. 진정한 부흥이었다.
  위인은 가정보다 사역을 우선시하였다.(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사역보다 가정을 우선시하는 추세다.) 성봉은 가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회 부흥회에 전념하였다. '주의 정병은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위인은 처음보다 나중이 아름다웠다. 성봉은 물질에 초연하였다. 이성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권력과 명예를 탐내지도 않았다.

  우리시대에도 이런 부흥사가 출현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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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
데이비드 보건 지음, 김은홍 옮김 / 기독신문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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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웨슬리는 교회사에서 만나는 영적 거인들이다. 에드워즈는 미국에서 제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을 주도하였고, 웨슬리는 영국에서 메도디스트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흥미롭게도 같은 해에 태어났다.(1703년) 그래서 에드워즈와 웨슬리의 삶을 간단하게나마 비교해 보려 한다. [Jonathan Edwards] (David Vaughan, 2000)와 [소설 존 웨슬리]를 참조하였다.

  에드워즈와 웨슬리는 둘 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웨슬리(7월 17일)가 웨드워즈(10월 5일)보다 조금 먼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에드워즈는 1708년(또는 1709년) 부흥회에서 신앙 체험을 하였고, 웨슬리는 1709년 목사관의 화재로부터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대학은 에드워즈가 먼저 입학하였다. 1716년에 코네티컷 대학(예일의 전신)에 입학하여 1720년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1723년에는 석사학위를 받았다. 웨슬리는 1720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1724년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1727년에는 석사학위를 받았다.

  목회도 에드워즈가 먼저 시작하였다. 1722년에 뉴욕에서 몇 달간 목회를 하다가 1724부터 1726년까지 강사로 활동하였고 1727년부터 노샘프턴교회에서 외조부를 도와 본격적으로 목회를 하였고 1729년에는 담임목사가 되었다. 웨슬리는 1727년에 아버지를 도와 몇 년간 목회를 하다가 1729년에 다시 강사로 복귀하여 신성클럽 멤버로 활동하다가 1735년부터 미국 조지아 주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1738년에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회심도 에드워즈가 먼저 하였다. 1721년 봄에 딤전 1장 17절을 일고 구원의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웨슬리는 1738년 윌리암 홀랜드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다.

  결혼도 에드워즈가 먼저 하였다. 1727년 사라 피에르폰트와 결혼하여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웨슬리는 1751년 과부 메어리 버자일과 결혼하였고 자녀를 얻지는 못했으나 메도디스트의 아버지가 되었다.

  부흥도 에드워즈가 먼저 경험하였다. 1734년부터 1735년까지 그리고 1741년부터 1742년까지 노샘프턴에서 놀라운 부흥을 맛보았다. 웨슬리는 1739년에 조지 휘트필드의 뒤를 이어 브리스톨에서 야외설교를 시작하면서 엄청난 군중을 몰고 다녔다.

  시련도 에드워즈가 심하게 겪었다. 몸도 약했고 교인들도 악했다. 여러 차례 질병으로 고생을 하였고 1744년에 교인들과 갈등을 시작하여 1750년에 담임목사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1751년부터 스톡브리지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중요한 신학작품들을 저술할 수 있었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반대에 부디 치자 메도디스트 부흥운동을 더욱 조직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새로운 교파 탄생의 계기가 됐다.

  천국도 에드워즈가 먼저 갔다. 1758년에 사위의 뒤를 이어 프린스턴의 총장으로 취임하였으나 1주일 뒤 천연두 예방 접종을 받고 감염되어 한달 후 프린스턴에서 잠들고 말았다. 웨슬리는 메도디스트의 지경을 더욱 넓혀가다가 1791년 런던의 씨티로드 채플에서 행복하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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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peter 2004-09-18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교회 목사님이 조나단에드워드와 로이드 죤스를 영적 스승으로 생각해서 많이 강조하십니다. 제가 예수가족교회(담임:백금산 목사)에서 청년1부 전도사로 있거든요. 조나단 에드워드처럼 살 수 없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과 같은 책을 읽었는데, 에드워드는 참 대단하신거 같아요. 굉장히 깊이있고, 의지가 강하고, 성경에 탁월합니다. 저도 많이 배우려고요.
 
시대의 분별과 윤리적 선택
신원하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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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구원론)에 관한 책은 많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생활론)에 관한 책은 조금 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기독교적 세계관)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 그래서 크리스챤들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고 있다.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듯이,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변변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던 한국교계에 신원하 교수가 나서서 속시원한 윤리적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비약이 심했나?)

  신 교수는 '독신'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동거'하는 커플에게 결혼관계의 신비를 가르치라 말한다. '입양'은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호주제'는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트랜스젠더'는 반대한다. '대리모'는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공학'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전자 치료'에는 제동을 건다. '정당전쟁과 테러'에는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를 제시한다. '주5일 근무제'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삼으라고 격려한다. '일과 쉼'에 대해 쉼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제시해 준다. '화장과 매장'에 대해 매장을 선호하는 느낌이다. '시민적 교양'은 천국 백성의 마땅한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 '로또복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다단계 판매'의 역기능을 걱정한다. '청부론과 청빈론'에 대해 청빈론에 공감하면서도 청부론이 현실적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한국교계에 바른 윤리적 지침을 제시한 신 교수께 박수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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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론
레이몬드 E.브라운 지음, 김근수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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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브라운.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설다. 그는 누굴까? 그는 1928년 5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나 1998년 8월 8일에 별세한 가톨릭 사제다. 그는 성경에 관한 25권의 주요 도서와 성경 연구와 관련된 15권의 저서를 썼다. 그는 미국 가톨릭 성경 협회장과 성경문학회 회장과 국제신약학회 회장을 최초로 역임한 학자다. 그는 타임지가 '미국 제일의 성경학자'로 선정하였고 미국 가톨릭 신학학회는 '올해의 뛰어난 미국 가톨릭 신학자'로 선출하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신약신학자였다. 우리나라에는 기껏해야 BST시리즈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신약개론. 우리나라에 좋은 개론서가 출판되었다. 로버트 건드리(1981), 룩 존슨(1986), 카슨, 무, 모리스(1992)의 작품이 눈에 띤다. 그러나 이 책들은 너무 오래되었다. 지금은 개정되었거나 개정 작업 중이다. 국내엔 개정판마져 나오지 않았다. 좀더 새로운 개론서는 없을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별세하기 1년 전에 세상에 나왔다. 그것도 저자가 박사학위를 받은지(1955년) 40년도 더 지나서 나왔으니 얼마나 오랜 연구끝에 나온 역작인지 알 수 있다. 학위를 마친지 5년 만에 나온 개론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특징. 이 책은 보통의 신약개론처럼 초기 기독교에 열을 내지 않고 현재의 신약 본문에 정열을 쏟는다. 그렇다고 발전과정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먼저 본문 내용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자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자료와 저자와 기록장소와 연대문제를 나중에 다룬다. 저자의 신중함을 엿볼수 있다.

이 책은 보통의 신약개론처럼 정경 순서내지 연대 순서를 따르지 않고 논리적인 연대 순서에 따라 구성되었다. 요한서신을 일반서신으로 분류하지 않고 요한복음 뒤에 위치한 것을 보면 분명해 진다. 저자는 요한신학의 대가다. 그의 분류는 권위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보통의 신약개론처럼 신약배경사와 복음서와 신약서신에 대한 일반적인 개론을 수록하였다. 그뿐아니라 최근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부록으로 다뤘다. 국내에 예수세미나 멤버들의 책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출판사가 있다. 여기에 나와있는 부록과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를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마지막 멘트. 이 책은 최고 학자가, 평생을 연구하여, 엄청난 분량을 실은, 최신 신약개론이다. (이 글은 2003년 12월 9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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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트렘퍼 롱맨 3세 지음, 권대영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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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렘퍼 롱맨3세! 나는 그의 이름만 보고 책을 산다.(현재까지 8권이 번역되었다.) 내가 이름만 보고 책을 사는 저자는 극히 드물다. 기껏해야 리차드 포스터 정도다. 롱맨3세는 나에게 성경을 보는 또다른(아니 확실한) 눈을 열어주었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론에 젖어있던 나에게 문학적 성경해석의 길로 안내한 장본인이었다. 나는 그를 통해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나는 그에게 평생 빚지고 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예배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라는 부제를 보고야 대충 감이 잡힌다. 그는 구약의 제사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진정한 의미를 조명해준다. 그는 거룩한 공간(에덴동산, 제단, 성막, 성전)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거룩한 공간이며, 거룩한 행위(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 예수님은 단일회적이며 종국적인 제사며, 거룩한 백성(제사장, 레위인)을 통해 예수님은 궁극적인 제사장이며, 거룩한 시간(안식일, 안식년, 순례 절기, 나팔절, 속죄일, 부림절)을 통해 예수님은 거룩한 시간의 존재 근거라고 논증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제사장 신학을 수립하였다. 제사 본문은 십자가의 원형이었다. 그는 그냥 넘겨버리기 쉬운 제사 본문에서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해 냈다. 그를 통해 구약은 히브리인만의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책이기도 하다고 다시한번 되새긴다. 그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가교다.

CLC! 기독교문서선교회는 나의 주거래 출판사가 되었다. 나는 CLC의 책을 읽을 때마다 오자가 많아 불만이었다. 이 책은 예외다. 177쪽에서 한 번 발견하였다. 대단한 발전이다. 앞으로도 오자 없는 책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2003년 12월 9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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