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타일
정성영 지음 / 한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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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신학계에 설교학 전공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박영재 박사(1997,1998,2000)는 설교학 박사 1호(?)답게 한동안 주가를 날렸다. 서울신대의 정인교 교수(2000,2003)와 합신대의 정창균 교수(2002)는 독일과 남아공에서 학위를 하고 모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남아공 스텔렌보쉬 출신인 천안대의 이승진 교수(2001,2003,2004)는 연이어 번역서를 내놓았다. 신 설교학을 전공한 장신대의 김운용 교수(2004)는 월간지에 실은 논문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있다. 여기에 침신대의 정성영 교수(2004)가 명함을 내밀었다.

그의 책은 다른 설교학 책과 조금 다르다. 저자의 말대로 설교 방법론에 관한 책이 아니라 설교 방법론 점검표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1권에서 설교를 작성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책은 2권으로 설교를 전달하는 과정을 다룬다. 사정상 1권보다 2권이 먼저 출판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부록 1. 설교평가를 통해 설교 점검표를 제시한다. 목사 혼자 좋아하는 설교가 아니라 교인과 함께 즐거워하는 설교가 되려면 꼭 피드백 해봐야 한다. 정장복 교수의 [한국교회의 설교학 개론]과 [설교전달의 클리닉]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뤘던 기억이 난다.

저자의 말대로 설교의 작성과 전달을 통합하려고 시도한 책이다. 설교는 글로 작성되어 말로 전달된다. 둘은 구분되지만 분리되면 안 된다. 저자는 전달을 염두에 두고 설교를 작성하라고 충고한다. 작성과 전달을 통합하기 위해 3가지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 흥미. 설교는 관심을 끌어야 한다. 저자는 청중의 귀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제시한다. 내 생각으로 설교의 모든 과정 중에서 서론 부분이 특히 흥미로워야 한다. 명료함. 설교는 알아듣기 쉬워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게 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언해준다. 본론 부분이 특히 명료해야 한다. 역동성. 설교는 설득적이어야 한다. 저자는 청중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결론 부분이 특히 역동적이어야 한다.(저자는 고전수사학에서 3요소를 차용하였다.) 이 책을 통해 강단에서 춤추는 해골이 생령이 되고 좌석에서 늘어진 송장이 소생했으면 좋겠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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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잠언을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IVP) 7
트렘퍼 롱맨 3세 지음, 전의우 옮김 / IVP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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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26일 수요일 저녁 시간에 나는 잠언 29 장을 설교하였다. 이 날의 주제는 자녀 교육 그 중에서도 체벌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15 절과 17절을 읽었다. “아이는 매를 맞고 꾸지람을 들어야 지혜를 얻고 내버려두면 어미에게 욕을 돌린다.” “아들에게 채찍을 대어라. 그래야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에 기쁨을 얻는다.”(공동번역 개정판) 나는 본문을 해설하고, 체벌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잠 13:24, 19:18, 22:15, 23:13-14), 체벌한 자녀와 하지 않은 자녀와의 차이를 설명하고, 체벌의 불가피성을 역설하였다. 나이든 세대는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신세대 엄마는 안색이 굳어졌다.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직감하였다. 나의 적용에 무리가 있던 지 아니면 요즘 부모에게 문제가 있던 지...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잠언은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를 초월하여 적용하는 보편타당한 진리가 아니라고 단언하였다. 오히려 잠언은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원리를 적절한 사람에게 적용해야 보석처럼 빛난다고 충고하였다. 어떤 아이는 질책으로도 충분한 반면 어떤 아이는 체벌하면 역효과를 초래한다. 체벌은 정언명령이 아니었다. 나는 주해는 읽었으나 개론은 읽지 않은 실수를 통해서 지혜를 얻었다. 개론은 본문을 해석하는 열쇠였다. 당신은 나처럼 실수하지 않아도 된다. 본서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탁월한 잠언 개론서다. 잠언이라는 산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산악 안내인(셀파)이다. 저자는 고대근동이라는 베이스캠프를 거쳐 정상에 올라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을 꽂는다. 저자의 노력으로 지혜서와 예수님과의 간격이 한결 좁아졌다. 이 책의 저자는 트렘퍼 롱맨3세다. 그는 최고의 구약성경학자다. 그가 저술한 전도서, 아가, 다니엘 주석은 최고 주석으로 호평 받는다. 그는 지금 잠언 주석을 집필중이다. 이 책은 그것의 맛보기다. 나는 그의 열광하는 팬(Raving Fan)이다. 나는 그가 로버트 건드리(Robert Gundry)를 능가하는 학자라고 확신한다. 이 책의 역자는 해외번역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던 전의우 목사다. 그의 번역은 매끄럽다. 성경을 인용할 때 내용일치 번역을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의 출판사는 IVP다. 편집부는 친절하게도 번역서를 표기해 주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IVP를 신뢰한다. 이 책의 추천사는 김정우 교수가 썼다. 그는 롱맨3세의 제자다. 그는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책 내용을 간추려 주었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읽는다면 등산 루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서비스이다. 이 책은 아마존닷컴에서처럼 별 다섯을 받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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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혁명
빌 하이벨스 지음, 서원희 옮김 / 두란노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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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예배를 관람하는 교인이라면 이 보다 더 열정을 불어넣는 책은 없다. 저자는  목사만 성직자가 아니라 당신도 성직자라고 선언한다. 이 책을 읽고 당신의 소명을 일깨워 보라. 저자는 당신에게 봉사의 유익도 설명한다. 봉사는 당신의 신앙과 육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당신은 봉사를 통해 뇌에서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되어 황홀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평신도 사역에 관심이 있는 목사라면 이 보다 더 영감을 제공하는 책은 없다. 저자는 교인들을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봉사하게 만들지 말고 ‘맛보기 봉사’를 통하여 ‘최적의 봉사 현장’을 찾아서 배치하고,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어 봉사하게 하고,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봉사하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라고 조언한다. 격려는 봉사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에너지원이다.

당신이 만약 까다로운 독자라면 눈에 거슬리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75쪽 3줄의 “주일날”은 주일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88쪽 11줄의 “여기서 아것을 먹게 되다니!” 아것이 아침의 오자인지 아니면 흑인식 아침 식사 이름인지 알 수 없다. 사실 흑인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144쪽 15줄의 “다른 사람들도 하여금...”은 다른 사람들로가 맞는 철자 같다. 두란노 서적 중에서 오랜만에 보는 오자라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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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김운용 지음 /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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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내러티브 설교를 소개한 선구자는 이연길 목사님이다. 그는 한국의 유진 로우리이다.  나는 그를 통해 로우리의 팬이 되었다. 나는 로우리의 이론서와 실제서를 탐독하고 내러티브 설교를 시도해 보았다. 나는 주제에 따라 개념을 배열하는 건축기사에서,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나가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하였다. 아직도 2 %가 부족하였다. 내가 내러티브 설교에 목말라 헐떡이고 있을 때에 신 설교학을 전공한 김운용 박사가 오아시스처럼 등장하였다. 그는 기독교사상을 통해 신 설교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였다. 그걸 손질한 게 이 책이다. 이 책은 신 설교학의 교과서이다. 나는 그를 통해 내러티브 설교라는 좁은 강을 배회하다 신 설교학이라는 넓은 바다로 진출하였다. 내러티브 설교는 신 설교학의 일부였다. 나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신 설교학은 크래독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크래독은 신 설교학의 아버지였다. 나는 설교의 중심사상을 제시하고 강화하는 연역법에서,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복음을 경험하는 귀납법으로 변신하였다. 내가 로우리를 이물에, 크래독을 고물에 태우고 위풍당당하게 항해하고 있을 때에 버트릭이라는 안개를 만났다. 그는 난해하였다. 나는 청중들을 포수로 삼아 말씀을 던지는 투수에서, 마음의 필름 속에 말씀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사진술을 익히기도 전에 캠벨이라는 해양경찰이 길을 막았다. 그는 플롯보다는 등장인물을, 비유보다는 나사렛 예수를 강조하는 신 설교학의 이웃사촌이다. 그는 신 설교학을 성경으로 인도하는 예인선이다. 내가 신 설교학으로의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전통주의 설교학이라는 태풍이 심심찮게 몰아닥쳤다. 신 설교학이 본문을 무시하고 청중의 상황을 우선할 때, 내용을 무시하고 전달에 치중할 때, 신앙공동체를 무시하고 실존적인 문제해결에 매달릴 때에 A급 태풍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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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엘리자벳 악트마이어 지음, 이우제 옮김 / 이레서원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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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문학유형에 따라 설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책"이 출판되었다. 이런 책들은 워더로우(Don Wardlow)가 편집한 [Preaching Biblically, 1983]에서 알렌(Ronald Allen)이 발표한 논문에 영향을 받았다. 어쩌면 피와 스튜어트(Gordon Fee & Douglas Stuat)가 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981,1993,2003)에 빚을 졌는지도 모른다. 나는국내에 소개된 이런 책들과 본서(1989)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여 서평을 가름하려 한다.

저자는 롱(Tomas Long)의 [성서의 문학유형과 설교, 1988]처럼 본문을 문학유형에 따라 분류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롱처럼 비유나 서신서까지 다루지 않고 구약의 모든 장르를 다루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저자는 구약이라는 미운 오리 새끼를 설교라는 아름다운 백조로 만드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저자는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성경해석과 성경적 설교, 1989]처럼 문학유형에 따른 해석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레이다누스처럼 일관되고 통일된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삶 속에 유지되어 있다.)를 발견하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저자는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의 [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2000]처럼 구약과 신약과의 연관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골즈워디처럼 구약학자로서 "프리칭투데이"지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저자는 구약학을 설교학과 결혼시키는데 만족해야 했다.
저자는 카이저(Walter Kaiser Jr.)의 [구약에서의 설교와 교육, 2003]처럼 구약성경을 선포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카이저처럼 본문과 설교를 수록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또 다른 책 [Preaching from the Minor Prophets: Texts and Sermon Suggestions(1998)]과 [Preaching Hard Texts of the Old Testament(1998)]에서 이 작업을 수행하였다. 내가 보기에 위 책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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