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날개만 읽다가 운적 처음. 아빠 생각나서..심호흡하고 마음 갈때만 조금씩 꺼내 읽는다. 책으로나마 아빠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여하튼 거대한 억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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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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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이번 소설이 너무 좋다. 영혼이 통하는 거 같은 느낌 ㅎ 내 일기장 같은 문장들 500개 발견했다ㅠㅠ 물론 모든 팬이 그렇듯 이 절절한 영혼의 공명은 나 혼나만의 것이겠쥐만.. 내맘같은글써줘서고마워여자까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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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해주 길,
내가 태어났던 날 그 한 겨울에도
눈이 아닌 진눈깨비가 내렸다고 했다.

한강은 분명 여수에 여러번 왔다 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 고장의 눈이 대부분 진눈깨비라는 것도, 기차가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땅의 색이 황톳빛으로 붉어진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테니까..

“집이 여수입니다.” 라고 하면 서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아주 먼 곳. 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의~ 끝.

나의 고향은 여수다. 19살때 까지 떠난 적이 없다. 야자시간에는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렸고, 뒷산에 올라가면 한려수도가 널찍이 펼쳐졌다.
배경음악 같은 뱃고동 소리가 없다는 것도, 산에 올라가면 바다가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도, 겨울에 눈이라는 것이 쌓이면 사람이 미끄러져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스무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내가 바다를 그리워 한다는 것도.


<여수의 사랑>
집이, 바다가, 여수가 그리워서 읽었고, 두번 읽었고, 천천히 읽느라 
아직 세편의 단편이 남아있다.

그리고
여전히 바다가 보고 싶다.
요즘, 잘 안풀리나보다, 나..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 거에요. 난 너무 기뻐서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죽는 게 무섭지 않다는 걸 그 때 난 처음 알았어요. 별게 아니었어요. 저 정다운 하늘, 바람, 땅, 물과 섞이면 그만이었어요 .... 이 거추장스러운 몸만 벗으면 나는 더 이상 외로울 필요가 없겠지요, 더 이상 나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내 외로운 운명이 그렇게 찬란하게 끝날 거라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큰 소리로 그 기쁨을 외치고 싶었는지, 난 그 때 갯바닥을 뒹굴면서 마구 몸에 상처를 냈어요. 더운 피를 흘려 개펄에 섞고 싶었어요. 나를 낳은 땅의 흙이 내 상처난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 오게 하고 싶었어요. (p.49)”

피를 내서라도 섞이고 싶은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외로움을 적게 느끼는 편인데, 이 부분을 읽을 때는 극단적인 외로움 - 강렬하게 섞이고 싶음- 이라는 감정이 궁금해서 외로워지고 싶더라.
자흔이라는 캐릭터가 으엄청 매력적이었다.
내 팔이 닿는 힘껏, 꽉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_

여수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두드러진 소설이지만, 소설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짧은 코멘트를 달아두고 싶었다.
내 고향 여수는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라고. 눈이 내리다가도 녹아 없어지는 따뜻한 바다가 있는 곳이라고. 그날 자흔이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바다가 따뜻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여수같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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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08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에서 20살 가까이 나이먹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뒷산 바다‘의 애수..... 크- 부럽습니다.
당최 뭐가 부러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요 ㅎㅎㅎ

공쟝쟝 2018-07-08 09:22   좋아요 0 | URL
바다를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게 제 자랑입니다. 저두 당최 그게 어떻게 자랑인진 모르겠지만요 ㅎㅎ^.^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 학살의 문화에 대한 어느 목회자의 수기 통일역사문화신서 1
최태육 지음 / 작가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의식 과잉의 20대는 가고, 일상을 조근조근 밟아나가는 것이 새삼스러운 요즘. ‘무엇’보다 ‘왜’보다 ‘어떻게’라는 물음이 따라 붙는다. 이 물음표의 단어는 삶이 조금 축적 된 후라야 중요해지는 것 같다.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것들 - 방법과 시간을 들였을 때 천천히 나타나는 류의 어휘랄까.


그때는 ‘무엇’이 중요했다. 뜻, 혹은 명분 어쩌면 실리였을 수도 있겠고. 그러나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어떤’이다. (그 무엇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만 기억에 남는다.

_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단종.
많은 것을 이루어낸 세조.
그러나 사람들은 세조의 업적보다 영월로 유배된 단종의 산책길을 기억한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것은 세조가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단종이 ‘어떻게’살았느냐이다.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었던 단종에게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적이 있었겠는가?
이 땅의 세민도 단종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억할 뿐이다.
단종과 세조의 삶은 이른바 좋은, 심지어 효율성이 있는, 그래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목적을 달성할 때조차도, 어떻게 행동했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p.19)”

_

최태육 목사의 수기이다. 그러나 목회수기가 아니다. 그는 강화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도중 교인들의 삶에서 한국전쟁과 학살에 관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기독교와 학살 관계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과정에서 들은 바와 느낀 바를 적은 책이다. 특이한 것은 정리된 논문 형식이 아니다. 읽으면서 나는 마치 시같다. 라고 생각했다. 쉽게 읽히지 않았고 머릿속에 ‘어떻게’로 생생해졌다.

그런 것 같다.
가까운 과거에서 그들이 무엇을 위해서 싸웠고, 또 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당시를 살다간 이들에게는 그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를 살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는 그들이 벌인 ‘어떤 참혹함’만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만이 전해지겠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어떻게 그런 짓을 시킬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잔혹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역사를 지배하고자 하는 이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두환이 광주학살을 저지른 데에도 ‘무슨’ 명분은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없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두환을 여전히 믿고 따르는 이들은 ‘무엇’을 보라고 말한다. 당시의 ‘북괴’를 보라고. 그가 구현한 ‘업적’을 보라고.
역사를 살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로 바라본다.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어떻게 학살했는지에 먼저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두환, 네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네가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를 보라.
우리는 기억한다. 그들의 가치관과 이념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을. 

_
“환기라기도 하고, 만기라기도 알려진 백정,
경찰 황씨가 총살을 하다가 힘들면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만기에게 쏘라고 했다.
정신연령이 낮았던 만기.
정신지체 장애인을 이용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살해도구가 되어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었던 경찰은 빌라도처럼 막걸리에 손을 씻었다. 그렇게 최소 120명이 살해되었다.(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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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증언자들은 각양각생이다.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노파, 사람을 다시는 믿을 수 없는 피해자, 70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증언하기위해 평생 사건을 곱씹었을 할아버지, 남의 일 인양 관찰자의 시점에서 말하는 학살 가담자, 죄의식이 있는 자, 죄의식이 없는 자. 북을 치는 할머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낀 사람. 끝까지 반성하지 않으며 본인에게 도래할 천국을 위해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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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서산·태안에서는 무엇인가를 관철시키겠다는 두 가지의 목적이 충돌하였다.
그 결과 사람의 상식과 양심, 그리고 일상적 삶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무엇인가 이루겠다는 목적의식이 경직되면서 사람들이 학살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실상의 일부를 조사하고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를 기록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아마 무엇인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목적의식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람들, 기업, 회사, 시민단체, 학교, 신념에 넘치는 종교단체, 이념에 넘치는 국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무엇이라는 목적이 삶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 일 것이다.
강화 교동면에서는 한국전쟁이 발생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 가해자 씨족과 피해자 씨족이 함께 농사를 짓지 않는다. 소원면에서 정씨와 국씨는 한 그릇에 담겨 있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다소 불분명하고 지엽적이지만 전쟁과 학살의 영향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전쟁과 학살이 사람들에게 남겨 놓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국가가 국민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아저씨가 조카를 죽일 수 있다는 것, 제자가 선생님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친구가 친구를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바로 이 두려움이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한 것이다. 학살은 사람에게 두려움에 뿌리를 둔 근원적 불신을 심었다. (p.177)” 
_

개인의 삶을 대하는 방식은 사회·역사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작동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분류, 배제하는 사고방식은
‘어떻게 사느냐’ 보다 ‘삶에서 무엇을 더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의 일부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만나 타자를 절멸시키는 ‘학살’의 옹호자·가담자·가해자로 수렴되었다. 

_
책을 통해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배웠다. 
‘학살’의 역사를 제대로 치유하기는커녕 직면조차 한 적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혐오, 분류, 배제는 당연한 귀결이다. 국가와 이웃에 의한 직접적인 살해 – 살해에 대한 입 뻥긋 하지 못함 까지도- 그야 말로 ‘존재의 소멸’이라는 공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을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은 그냥 그저 세대가 간다고 해서 사라질리 없다. (그것은 또한 나의 무의식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해법을 찾아야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 개인은 더러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낸다.
당장 쉬운 태도를 갖추지 말아야지. 내가 쉽다는 것은 이미 의식화조차하지 못한 채로 생각이 끝나 버렸다는 것이고, 그것은 멈춰버렸다는 것. 어떤 완고함. 그것을 경계 해야지.

삶에서 ‘어떻게’가 중요해진다는 것은 만들어 가겠다는 시간을 염두한 다짐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비워야 하고 물렁물렁해야하고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_
_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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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xo 2020-07-20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연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늦게 나마 귀한 글을 써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더 정확하고 풍성하게 전해주신 것같습니다.
저는 요즘 한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 본 후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분의 삶과 마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메모를 남깁니다.
제가 알면 연락을 드릴 터인데 죄송합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공쟝쟝 2020-08-08 00:46   좋아요 0 | URL
오, 설마 저자 목사님이신가요? (이런 영광이 ㅜㅜㅜ)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아서 남겼던 리뷰였는데 이렇게 친히 글까지 달아주시다니요. 다음에 쓰실 글도 꼭 찾아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의 중간까지 읽었다.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밑동터진 쌀가마니 쌀들처럼 줄줄 흘러나온다. 

그때를 생각한다. 유난이 억세고 지기 싫어했던 이층집 셋째 딸 아이와 그의 막내 남동생. 호호 게임팩을 불면서 종일 슈퍼마리오를 해도 좀처럼 제지하지 않으셨던 그 아이들의 엄마. 자기들끼리는 양보하지 않는 게임턴을 가끔 내게 넘겨줄 때면 게임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게임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거의 매일 놀러갔다. 몇판째의 6-1을 깰 때 쯤이면 정작 그집 아이들은 관심도 없는 공부방 책들을 꺼내 읽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어린이 과학만화 같은 것들. 종래에는 게임보이말고 책들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책은 커녕 준비물 살 돈을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집은 곤궁했다.

그집의 억센 셋째 딸은 동갑내기인 내 동생과 종종 다투었는 데, 얼굴에 손톱자국이라도 나서 올라치면 엄마는 “지는 게 이기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생이 스물여덟살쯤에 울면서 그랬다. 엄마가 자꾸 지는게 이기는 거라고 해서, 자기 자꾸 지기만 하고 이겨본 적이 없다고. 매번 먼저 사과하고 참고만 살았다고. 

그리고 나는 또 그 때의 엄마가 생각난다. 새학기에 받은 열몇권의 교과서를 낑낑대며 들고 왔고, 엄마가 남산만큼 커다랗게 부른 배를 하고 분홍색 임부복을 입고 학교가 파한 나를 마중나와서, 무거운 새 책들을 들어주었다. 다른 애들은 다 부모님이 데리러 왔는데, 난 집까지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가지? 서럽지 않으려고 씩씩한척 하면서도 몇걸음에 한번씩 쉬면서 하염없어 하는데 엄마가 마법처럼 학교에서 멀지 않은 백화점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줘서, 행복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2학년 때의 나는 정말 외로웠고,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아들을 꼭 낳아야 하는 엄마는 몇년째 항상 배가 불러있었다. 난 동생이 싫다고 그만 낳으면 안되냐고 물어봤었단다. 

3학년 때 부터는 제대로 언니 노릇이 시작되었다. 동생을 학교 안에 있는 유치원에 통학시키는 것까지 내몫이 되었다. 동생이 귀찮고 싫고 미웠다. 특별히 예뻐서 더 그랬다. 청소하러온 고학년 선배들에게 동생이 둘러싸여 예쁘다고 구경당(?)하고 있던 기억이 난다. 데리러온 나한테 언니냐고 물어보았다. 동생이 예쁜 언니는 언제나 곤란하다. 기대치가 있으므로 더 못생기게 느껴진달까. 난 못생겨서 부끄러웠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기억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래서 생각하느라 잠마저 달아나더라.

좋아하는 걸 해보지는 않고 구경만 하는 것.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딸려오는 묘한 죄책감.
서럽지않기 위해서 더 씩씩해지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만들어진 성격은 많은 부분 그대로이다.
외로울 때마다 눈이 시리도록 구경했던 하늘과
외로운데도 귀찮았던 동생들이 생각났다.
유치원이 끝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보다 더 방치된 어린 동생의 녹색 유치원복까지 선명하게 기억났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그저 귀찮아 하는 나에게 영문 모를 사과를 하며 같이 가자고 하는 두 걸음 뒤의 동생과 어쩐지 대답하기 싫던 어린 내가.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왜 그때 더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걸까.

열살이 안된 아이에게 사랑과 돌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또 생각한다. 나에게 사랑과 돌봄이 충분했다면, 동생이 덜 미웠을 거라고.
그때의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했었다. 어쩌면 엄마 자신 보다 더.

어떤 부분에서 세상은 더 나빠져왔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아이들이 주희와 윤희처럼 지금도 어디선가 “가슴이 뻐근할 만큼 고통스러운 즐거움(p.98)”으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른이 된다.
가슴 아프게 추억할 수 있는.
미안해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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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8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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