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공부 - 자기를 돌보는 방법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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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할 때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자라서 결국 공부가 업이 되어버린 저자 엄기호의 책이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공부하던 그는 이제 자신이 ‘망가지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한다. 공부하느라 바빠 공부를 잊어버린 오늘의 우리에게 자신과 화해하는 ‘공부’를 당부하는 책.

공부를 ‘잘’하고 싶은 사람보다, ‘자신을 배려하는 일에 서투른 사람’이나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p.18) 그렇기에 공부는 언제나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을 바꾸는 자유와 해방의 도구이자 과정이다. 다만 이때 경계해야할 것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데 집중하느라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을 망각해서는 안되는 점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세상을 ‘돌보느라’ 자기를 망각하고 망친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망각하고 망친 채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이들이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모르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건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다. 아니, 세상을 이렇게 바꿀 수록 더 나락에 떨어진 세상이 만들어진다.

엄기호씨 책답게 우리가 무심히 넘겨오는 단어들의 개념 -공부, 배움, 겪음, 자아실현, 자기배려, 다룸, 한계, 자유, 기예 등등-을 엄밀하게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읽다보면 왜 한 말을 또 하나 싶을 때가 있지만, 그 한 말을 또 되풀이 해서 읽는 동안에 그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 했던 것들이 단지 내가 ‘안다고 믿은 것’들일 뿐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그렇게 읽는 이가 모른다는 것-한계-을 알게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지도.

*

거칠게 감상을 적자면, 나는 일반적 의미로서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단,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배워 깨닫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라는 것은 두루뭉수루하게나마 알고 있다. (그래서 이책 저책 뒤적이고 기웃거리는 걸지도) 젊었을 때의 난 어떤 물음표들이 다가왔을 때 골똘히 생각할 줄 몰랐다. 불안해 하지 않으면서 혼자일 줄 몰랐고, 멈춤의 시간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세상 속에서 살기도 했으니까. 공부에서 느꼈을 기쁨의 순간들은 내게서 익어갈 충분한 시간을 부여받지 못함으로 인해 어떤 결실로 연결되지 못했다. 성과없는 배움을 쳐주지 않는 사회속에서 어떤 것도 선택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기만 했다. 즉, 나는 배웠으나 배우지 못했다. 머리-앎을 넘어 손-다룸 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과정을 생략해버린 사회에서 무언가를 ‘익힐’ 충분한 시간이란 - 곧 비용이었고, 비용이 없으므로 용기내기 어려웠다.

다룰 줄 아는 것이 없는 인간.
무언가를 제대로 익혀본 적 없는 인간.
자유를 모르는 인간.

“ (p.241) 익힘의 과정이 부재하므로 자기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어진다. 대신 자기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오로지 외부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문제만 해결되면 자기는 자유롭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기예의 문제를 조건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배움을 넘어 익힘을 통해서만 연마되는 기예가 늘 리 없다. 나는 이것이 지금 한국 교육이 처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조건만을 탓하게 된 불만쟁이.
안타깝지만 그게 지금의 나다.

그러니 이제라도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자아실현이 목적이 아닌, 자기배려가 출발점인 저자가 촉구하는 그 ‘공부’ 말이다.
먼저는 나를 모르는 존재로 대할 것.

“(p.178) 그러므로 자기 배려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모르는 존재, 알 수 없는 존재, 즉 철학에서 말하는 타자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을 제외하면 내가 그를 대할 다른 방법이 없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모르는 존재, 타자로 대해야 한다. 모를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 자기말을 듣기, 이것이 자기 배려의 출발인 것이다.”

시작도 않아놓고 다소 섣불리 언젠가를 다짐하자면... 늦으막에 시작한 나의 ‘공부’가 마지막 당부대로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자기배려에서 안주하지 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_

덧, 엄기호씨 책은 역시 재독-삼독 해야 빛이 나는 거 같다. 세번째 읽고나니 텍스트가 새롭게 보였다. 책 자체에서 저자의 공부 흔적이 역력하다. 다음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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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8-28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않고 꽂아만 둔 책인데, 얼른 읽고 싶어지네요....

공쟝쟝 2018-08-28 21:58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어보세요. 정말 좋습니다 ㅎㅎ
 
[eBook] 한국 소설이 좋아서
50명 공저 지음 / 책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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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관심 갖고 싶어서 봤는데 알라딘 보관함만 .. 아휴 배불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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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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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아팠다. 아프다는 말을 하기 질릴 정도로 계속 아프기만 했다.
8월 첫주 쯤엔 잠도 자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글을 더듬더듬 적는 지금도 미약한 두통 때문에 힘들다.
물리적 고통보단 자꾸 나약해지는 마음이 싫었다. 계속 이렇게 아프기만 하다가 돈도 못벌고 가난하게 늙어가면 어떡해? 불안에 기마저 쭉쭉 빨려들어갔다.
.

아픔없는 세상을 꿈꾸기도 했고,
상처주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아니,
지금도 한다. 종종.

거기에는 고통을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통에도 아픔에도 목적이라는게 있는 것일까.



고통이 자아의 경계 역할을 한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아픈 걸 인정하자고 생각했다.
그래 여기까지가 나다.
꽉 짜여있는 일상이라는 타임테이블에 해야할 ‘일’들, 해낸 ‘일’들 만이 내가 아니다. 몸이라는 공간에 엄연히 실존해 있는 감각하는 주체가 곧 나다.
그러니까,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 ‘몸’에 대해.
몸이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당장 부정해버려야할 증상으로 여기니 불안, 불평만 늘어갔던 거다.

.
.

성숙하게 아픔을 인식하는 것이 서툴다.
부정, 비명, 주저 앉음. 혹은 심각한 낭만화.
있는 그대로 아픔을 인식하지 않은 채, 쉽사리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말했던 적도 있다.
부끄럽지만 타인의 고통을 대상화 했던 적도, 일을 풀어가는 수단으로 여긴 적도 많았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고난을 패기 있게 맞받아쳐나가는 것이 가장 멋지다고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
그런데,
어쩌면.

아픔 없는 세상이라 표현하는 천국이 정말 구원일까.
내가 획득하지 않은 평안과 원래부터 주어져있는 건강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좋기만 한 것일까.

그런 물음이 생겼다.
아파서. 아프니까.
아프지 않았음 몰랐을 거다.

여전히 아픈게 싫다.
근데 싫어하면서도 생각은 좀 해야지 한다.
그 아픔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일지도 모르니.

“나병(한센병)이 생긴 피부는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고통은 촉각과 함께 퍼져있어 ‘자아’의 경계 역할을 한다. 내가 느끼는 것까지가 자아라고 한다면, 말단 부분의 감각이 없어진 나병 환자들의 자아는 손이나 팔 혹은 다리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함으로써 어떤 사회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마치 그 고통을 자신의 것인 양 반응하는 동일시.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사랑의 한계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
#멀고도가까운 6장 감다,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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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조금눈물겨운 #전자책 후기


#크레마사운드 를 구입한 것은 지난 가을.
열린책들 세계문학에 뽐뿌가 와서 한달을 끙끙 앓다가 질렀다. 
정말 이것만 사면 그동안 못읽었던 고전을 다 섭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하필..내가 처음 받은 책은 빅토르위고 의 웃는남자.
(비극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ㅜ.ㅜ)
그냥 선택했는데 굳이 선택한 이유를 떠올리면 레미제라블은 좀 부담스럽고, 준비운동 차원에서??
그렇게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독서 시작.
_

그리고 계절이 3번 바뀔 때 까지
나의 크레마사운드는 잠들어 있었다ㅋㅋㅋ😴
“왜 샀을까..
난 세계문학을 못읽는 병이 있는 건 아닐까..
역시 전자책은 무리인가...”
라는 생각을 할뻔 했지만..
진짜 문제는 책을 잘못 고른 것으로 ㅋㅋㅋ

_
웃는남자 상권을 읽는 초반
나의 의식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

우르수스..콤프라치코스 -> 옷 흥미롭다. 대작의 냄새가 활활.🤔
어린 아이가 바닷가에 버려짐.->불쌍하다..ㅜㅜ이 아이가 우르수스를 곧 만나겠지?😮
아이가 포클랜드 해안을 걷기시작 함. -> 음. 포클랜드 해안이 너무 거대하고 적막하다.😥
아무도 없는 길을 버려진 아이가 계속 걸어감. -> 아.. 좀 지겹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인가 보다. 역시 대작가는 달라. 😓
춥고 외롭게 한없이 걸음. -> 음 의도라면 이미 충분히 난 이 아이만큼 외롭고 지치고 고독해졌는데 이제 그만 우르수스 만나면 안될까?😰
계속 걸음 -> 알겠다고. 근데 빅토르위고 아저씩 좀 tmi 인듯..?😒 ...
...
그리고도 여전히 걸음 -> 설마 애 이렇게 걷다가 죽는 게 이 소설의 내용인가. 😂
안죽고 죽을 만큼 춥고 힘든데 걸음 -> 아... 지금 이 책 상권 1000페이지에서 200페이지 넘도록 걷고 있는거 실화임?😭
갑자기 아이 버리고 튄 배 이야기 등장 -> 애는 어쩌고 갑자기 바닷가로 시점 전환하냐능..😤
17세기 항해 설명 -> 반도 못알아 먹겠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건 무엇인고...🤬
막 끝없이 설명... -> 빅작가 대작가 인정. 근데. 그리고 프랑스 투머치토커로 당신을 임명😨
애는 여전히 걷고 있고 이제 17세기 등대에 그려진 무늬까지 설명 -> 못읽겠다. 포기할까?😨
399페이지까지 읽었으나 여전히 아이는 걷고 있음. -> ...못읽겠다...진심😱
427페이지 문장 “ 우르카가 해변에 아이를 내버려두고 포틀랜드의 정박지를 떠난 지 네 시간쯤 되었다.” -> 화남. 네시간????? 나 이거 4일 넘게 읽었는 데?🤢
아이가 아이를 발견하고 마을에 도착, 그러나 마을에서 아무도 문 안열어줌 -> 와 영국인들 너무 하네. 시발. 포기다.🤮 
_
400페이지동안 주인공이 홀로 걷고 또 걷는 대작가의 묘사 앞에서 나의 독서는 주저앉았고.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과 봄이 가고 여름이 가도록 🍂🍁⛄️🌱🌧🌴
난 웃는남자 속 아이를 고독과 추위에 떨게 내버려 두고 크레마사운드를 봉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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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들어 어깨와 목 상태가 너무 안좋아지면서, 앉아있을 때 독서는 물론 스마트폰 사용까지 힘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못읽는 시간이 아쉬워 아주 .... 오랜만에 전자책을 꺼냈다. (전자책 장점 : 누워서도 읽을 수 있음)
웃는남자를 버리고 다른 책을 읽을까 하다가 오기가 돋아서 다시 정주행 시작.

400페이지 하고도 50페이지 뒤에.. 드디어ㅠㅠㅠㅠㅠ !!!!!!! 
아이와 우르수스가 만났다.
너무 오랜만에 나타나는 인간의 대사 앞에 
(이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그제서야 암) 감격 😂😂😂

그 후로는 재밌게 읽고 있다. 물론 여전히 빅선생님은 투투투머치인포메이션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지만, 여하튼 고비는 넘긴 듯?... 지금 막 700페이지를 넘겨서 소설 주인공 이름이 나왔당!! 너의 이름은 #그윈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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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이 글은 책을 읽기 시작한지 10개월만에 드디어 책 주인공 이름을 알게된 나 자신에 대한 칭찬 글입니다.


*요약 :
여러분 빅토르위고는 투투머치토커입니다.
웃는 남자는 대작입니다. 그러나 전자책 기준 초반 1권 500페이지까진 좀 참고 읽으세요.
“크레마사운드”는 가볍고, 양쪽 버튼이 특히 매우 만족스러우며, 누워서 읽기에 최적화된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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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만한 황소가 사정없이 나를 들이받아댔던 한 달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몸마저 고장이 났는 데, 그게 또 묘하게 현실성이 없어서, 치받는 황소들을 남일처럼 응시하면서 바지런히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생로병사와 관혼상제.
이 것들은 삶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마치 남일인 듯 무심히 지난 삼십년을 살았는 지 모르겠다.
덕분에 삼년전부터 나는 삼십년치의 상수들을 굉장한 변수처럼 겪어내는 중이고,
아무것도
어떻게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 여덟가지가 사실은 삶처럼 이어지는 모든 것들이라는 안 것 만이라도 다행인 걸까.

그 중에 최고는 역시 엄마의 병.
이건 그냥 꿀꺽 숨을 참게 될 만큼, 사실은 회피하고 있는 주제다.
지금은 그것을 깊게 파고들어 생각하지 않아야만 괜찮은 척 지낼 수 있다.

황소같은 폭염과 끝나지 않은 일과 차곡차곡 쌓이는 카드빚과 아픈 몸. 저 밑바닥에는 엄마의 병이 낫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오빠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꽉 틀어막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 번 새어나오기 시작하니까,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배고픈 데 밥 함께 먹어주지 않았다고 부러 쫄쫄 굶고 투정하는 거.
나도 이런 나의 퇴행이 싫지만 꼭 이런 식이다.
뭐,결론은 하루 뒤 삼겹살로 극적 화해를 이루었지만.
화해와 동시에 오늘은 엄마의 통증에 차도가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에어콘이 왔다는 것.
모처럼 누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데우스엑스마키나

알고보니 삶이라는 건 정교하고 거대하게 설계된 절정과 갈등해소의 장 일지도 모르겠다.
무신론자 이지만, 요즘은 간절히 신이 있기를 바란다.
기도하고 싶어서.
아프지않았으면,
건강했으면,
누구라도.
안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라도. 나 자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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