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Littor 2018.8.9 - 13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문학잡지는 처음 사보았다. 그래도 주제가 여성-서사 라는데.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플래시 픽션도 좋았지만, 의외로 인터뷰도 꽤 재밌었고, 실려있는 단편 소설들도 집중해서 읽었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것은 ‘여성-서사’와 관련한 평론들.
소설도 이제 막 읽고 있는 나에게 평론이란 신형철의 책에 나온 몇 페이지 읽은 정도라 할만큼 낯선 분야(?)이지만, 요즘 점점 읽어가면서 취향을 발견중이기 때문에 ‘난 이런류의 글을 좋아하는가봉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텍스트 자체의 해석or주석도 좋지만, 소설-문학이 담지한 현실과의 맥락들을 짚어내는 부분들이 매우 흥미롭게 읽히는 듯 하다. 꽤 오래전 부터 알고 싶어했던 것은 ‘세상과 나의 생겨먹음’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둥둥 떠다니는 상념들이 어떤 계기로 꿰맞춰질 때 (기왕이면 언어로) 약간의 쾌감을 느낀다.

삶과 세상을 더 깊고 다채롭게 이해하는 것이 내 목적없는 독서의 목적(?)이라면 그 이야기들을 분류ㆍ연결 시켜주는 이야기(평론)를 좋아하는 것은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릿터에 실린 몇몇 평론가들 평론집도 뒤적여볼까? 생각 중. (그렇게 또 한번 알라딘 보관함은 갱신되고...) 평론 마저도 재밌고 풍부하게 읽으려면 일단은 문학 작품들을 더 많이 봐야겠지 만은.

여하튼 가성비 갑이었다. 만원의 행복. 릿터~
다음 호는 ‘난민’이 주제라고 하눈데...살까말까... 하다가 오늘 지른게 있어서 참음...
사는 속도와 읽는 속도와 쓰는 속도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읽고 느끼고, 느낀 점을 정리하고 적어둘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p.29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1997년의 외환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한국경제는 호황을 이루지만 그녀의 주인공들은 시종일관 "내 생은 쭈욱 악화일로였다."라고 쓰라린 비명을 토해 낸다는 점에서 공선옥 문학은 무섭고도 불편하다. 모자 가정의 어미로 공장에 다닐 처지도 되지 못해 불법적으로 생존을 영위하기 때문에 민중이라는 이름조차 가질 수 없는 ‘서발턴’인 그녀들은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외부이자 노마드적 주체의 자유에 들뜬 1990년대 페미니즘이 외면한 자매이기 때문이다. - 민주화 이후의 여성문학 : 억압된 것의 회귀와 성차화된 여성 주체의 등장, 김은하"

"(p.31 ) 어떤 픽션과 조우했다는 건 이미 익숙함이 아니라 낯섦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를 고정/확정하는 체험이 아니라 "분열하고 변이하며 증식하는 체험"을 통해 이야기는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 당대의 여성서사가 우리를, 백지은"

"(p. 38) 뻔하다는 말은 결국 지겹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텐데, 정말 끔찍하도록 지겨운 것은 클리쉐로 이루어진 소설이기 이전에 현실 그 자체임은 분명하다. -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 2018년 한국 문학의 여성 서사가 놓인 자리, 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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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 개정판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7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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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수가 그리워서 사들였다. 또박또박 한 편씩 아껴 읽는 동안 작가 한강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소년이 온다’ 정도를 제외 하고 지금까지 읽은 한강의 소설들은 아리까리 난해하다고 생각했었다. 아직 나에게 그 책들이 열릴 때가 아닌가 보지. 지금 나에겐 20대의 한강이 더 잘 맞는 듯.

다시 이 소설을 꺼내 읽는다. 정선의 결벽이 그립고, 인규의 어머니의 절규가 생각나고, 또 <어둠의 사육제> 속 베란다 풍경들을 생생히 떠올리고 싶어서. 나는 이 소설이 그립고 또 아린다. 내 고향 여수처럼.

20년도 더 된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가족-타인-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무의식 밑바닥에 잠궈둔 ‘나’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문제의 해결이나 치유의 형태로 성급히 이어지진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러나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데에서는 일치하는 태도로- 지켜볼 뿐이다. 어떤 단단한 인내도, 대단한 깨달음도, 드라마틱한 해결도 없다. 새로운 관계로 이어지는 가능성?! 따위 없다. 응시. 지켜봄. 천천히 곱씹으며 들여다 봄. 타인은 거울일 뿐이다. 나의 고통을 비추는, 혹은 그 자신의 고통에 허덕이는. 그러나 타인이 없다면 나 또한 나의 상처를 들여다 볼 수 없다. 없었다. 나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채로 원인 모를 어떤 병증에 허덕이는 것이다.

그 지점이 초창기 한강의 어떤 탁월한 인간과 관계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스무살의 한강은 깨달았지만 난 이제 겨우 서른에서야 알듯 말 듯한. 고통에 대한 태도, 앓음을 응시 하는 것에 대한 미덕.

허겁지겁 관계를 집어삼키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내가 요즘 타인을 대하는 방식.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아픔을 가진 존재로서 평등해지기, 관계 혹은 이질감에 대해 조급한 해결없이 머무르기, 당신의 앓음으로 인하여 아니라고 거부했던 내 상처와 병을 깨닫기. 그러니까, 그 깨달음 없이 - 무엇을, 어떤 것을, 누구를 안다고/해결한다고 할수 있을까.
용감함의 덧없음. 자신을 모르는 자가 휘두르는 무기.
젊은 나는 그것으로 인해 전진해왔으나, 중년을 향해가는 나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조금은 거창하게) 한때의 인류는 그것으로 인해 발전해 왔으나, 지금의 인류는 더는 용감하지 않을 것. 해결하기 전에 멈추어 바라볼 것.


채식주의자였나. 한강은 글을 쓸 때, 여전히 직접 손으로 쓴다고 했던 것 같다. 94년의 무려 첫 소설집이므로 그녀는 더욱더 원고지에 꾹꾹 눌러썼으리라. 한문장, 한단어, 토씨하나 대충 쓰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소장각. 구매각. 일독각. ~
장범준의 여수밤바다 만큼 좋을 여수의 상징?!? (이라기엔 너무 우울한가....😭) 한강의 여수의 사랑! 꼭 읽으세여. 두번 읽으세여!


덧, 잘 적어보고 싶었는 데, 다 적고나니 무척이나 어수선한 글. 무언가 아주 깊숙히 느낀 걸 표현하고 싶었는 데 ㅠㅠ 이걸 쓴 나만 이해할 수 있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듯한 독후감ㅋ 킁~ 그래도 여하튼 썼다는 데 의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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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10-21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 너무 공감되네요. 저도 대학 때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읽으며 그 축축 처지는 세계가 아리까리했는데...그땐 아직 열릴 때가 아니었나 봅니다. 공장쟝님 글 읽으니 다시 시도할 용기가 생기네요-

공쟝쟝 2018-10-22 16:35   좋아요 1 | URL
오 검은사슴... 좀 쉬었다 읽어야 겠어요 크크~!!
 
[블루레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일반판
루카 과다니노 감독, 아미 해머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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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자연과 벗삼아서 좀 더 오감을 개방하며 막살걸 그랬나보다... 막막 두 청춘이 산 타면서 뛰어다니는 데, 뭔가 펄떡펄떡 한 것이.. 대자연과 젊음은 참 좋은 조합이지 싶다 🤤 (막상 젊을 때 산과 야외활동을 증오했던 본인을 반성함)
_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_

느끼는 것. 삶의 감각. 열어두는 것.
그 중요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사회는 그 경험의 기회들을 미래의 어느 날로 미루라고 주문했고, 우리는 훗날의 기약으로 유예하느라 현실마저 유예 하는 삶을 습관 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를 살거나 미래를 살거나 아니면 가상의 관계망을 살거나.
_
느낌을 느끼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요즘 많이 느낀다. 그 날이 오면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의 힘듦을 합리화하는. 결국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했던 지난 날이 급 억울해지는 밤. 영화를 보고 나니 펄떡펄떡 선득선득 살아있는 몸 느끼고 싶다. (쓰고 보니 야한데..)
어쩔 수 없지, 스쿼트 좀 하고 근육통이나 느끼며 자야겠다. 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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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0-19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면서 저는 왜 여름이 청춘을 대표하는 계절인지 알겠더라구요.
수영도 자전거 타기도 못하는데 그 두 가지를 막막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ㅋㅋ
두 사람의 열정을 고스란히 닮은 이탈리아의 여름 풍경에 흠뻑 취해서 봤던 영화였습니다. ^^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 자존감이란 몸으로부터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디아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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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내 아팠다.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놓을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을 알았다. 찌는 듯한 더위의 시간들을 후끈한 파스로 겨우 버티었다. 일이 다 끝난 후에야 통증들을 돌 볼 수 있었다. 엑스레이니 CT니 했다. 부담스러웠다. 그 흔한 실비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험을 든다는 것은 어쩐지 현실에 정박한다는 느낌이었다. 그 보다는 이자며 생활비도 빠듯한데, 보험들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고나면 그냥 죽는 거지 뭐. 쉽게 여겼다. 젊었으니까.
아프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무사해야 한다.
무사하고 싶다.
_

밤새 더위와 저림으로 뒤척이고, 낮에는 약먹으면서 모니터 앞에 앉았고 이삿짐을 날랐다.
쉴때도 고개를 숙이기 어려웠다. 거실 에어콘 앞에 정좌하고 앉아 아무생각도 없이 있을 수 있는 마블 영화를 마스터했다. 이 상태가 영원하지는 않겠지. 더위만 물러가도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나를, 내 몸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어느 날부턴가 폭우가 쏟아졌고, 가을이 성큼 와있었고, 드디어 일을 줄였고, 병원에 갔고, 체육관에 갔다. 열심히 다녔다. 그 일만이 내 일인 것 처럼 몸에 몰두했다. 나는 무사해야하니까. 건강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_

한참 안좋을 때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p.7) 몸은 단지 머리를 이고다니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완벽한 지성을 갖고 있다. 몸은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살면 좋은지 속삭여준다.˝

몸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걸까. 삶의 세팅을 다시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삶에서 감각하는 삶으로.
발산하는 삶에서 응축하는 삶으로.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보고, 자신 부터 존중할 수 있기를.
_

곰곰이 읽었고, 천천히 읽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엉엉 울었다. 무한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방치한 내 몸에게, 잊어버린 내 몸에게 많이 미안했다.

˝(p.44) 몸은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마땅히 희생을 치러야 하는 도구인가?
몸은 내 감정의 배출구인가?
그렇다면 몸이 존중받을권리가 있는가?˝


몸을 나에 속한 어떤 소유나, 브랜드가 아닌 하나의 ‘지성‘을 가진 어떤 인격체(?)로 대하는 저자의 관점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내 것‘이라고 여기면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처럼, 몸도 그러했다.
따로 떨어져있는 존재로 내 몸을 바라보니 - 저질체력이라고 원망하고, 호르몬의 노예라고 못마땅해 하던 - ‘몸‘에게 사과부터 해야지 싶었다.
_

행복은 어떤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일 수도, 관계에서 오는 충만함일 수도 있다. 동시에 행복은 내 몸과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 나의 ‘몸‘이 감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행복이다.
“(p.56) 행복은 몸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이다. 몸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식물이 햇볕 쪽으로 온몸을 향하듯이, 행복한 감정을 일으키는 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산다. 행복에 대한 센서는 살아 있는, 더 생생하게 살고자 하는 몸에서 나온다.˝
_

˝(p.189) 일상에서 숨을 자주 의식하면 고요해진다. 고요한 순간에는 나를 보고 있는 또 다른 나에 대한 시선을 얻을 수 있다. .. 숨으로 자주 고요를 불러오면, ‘나‘가 넓어진다. 나를 포함한 풍경이 곧 나임을 볼 때,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책에는 몸을 의식하는 법, 숨을 잘 고르는 법 등 일상에서 응용할 수 있는 작은 팁들과 그 배경이 되는 원리들이 빼곡하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몸 자체에 대한 사색과 설득력있는 정보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나는 책에 따라서 몇가지 루틴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호흡하기, 의식하기, 움직이기.(그 전에 잘못 잡혀있는 일상의 습관을 몇가지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 싶다.) 쭉 잘해왔는데~ 요즘 또 바쁘다는 핑계로 좀 지지부진 해졌다. ˝많은 청정한 하루˝들을 쌓아야한다. 몸이 내지른 여름의 비명을 단단히 새겨듣자. 내 정신머리야, 라고 다그치기 위해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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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9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는 데 집중도가 좀 필요하긴 하지만 몹시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근래의 헬(탈)조선 담론과 청년들의 높은 자살이 오버랩되어 혼자 피식거리다가 가져와 본다.
_
때는 구한말, 망하기 초직전의 조선, 지금의 헬조선이 아닌 진정한 헬이나 다름없던 대혼란의 시기. “신소설” 이라는 근대소설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전근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는 괴랄한 소설 문학이 등장한다.

저자는 보통은 “문학적 수준이 결여된 낮은 작품”들로 이해되는 이 소설들이 어쩌면 “조선 말고는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나타났기 때문에 시작된 예술장르였는지 모른다.(p.73)”라는 관점을 건넨다.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사건들, 도통 정상을 찾아보기 힘든 등장 인물, 그리고 그들의 엽기적인 행동들. 신소설에 나타나는 천태만상은 픽션이 아닌 당시의 조선사회의 진짜 모습이었고, 조선의 20세기 첫 10년은 “홉스적 자연상태”에 가까웠다는 추측.

붕괴된 사회, 분해된 개인. 등쳐먹고 살거나, 죽지 못해 살거나, 그렇게 생존이 목적이 되는 인간들만이 보이는 세상.
그 시절을 살아본 적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지만,
난 문득 2010년대의 초반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우리들이 자살을 하거나 탈조선을 외쳤던 것 처럼 구한말의 조선인들도 “최고의 선택은 한반도를 떠나는 것 특히 유학이었고, 그다음은 자신의 개화된 의지를 증명하는 자살(p.132)”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두가지 선택지 조차 가능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세상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은 거의 삶을 포기한 채로 악행에 서슴없어지거나, 세상을 닮지 않기 위해 자기를 걸어 잠구고 겨우 자기 하나 정도를 지키는 것에 집중하는 “‘에고 과대증, ‘독불장군’의 비사회적 인물(p.132)”이 되어갔다고 한다. 뭐지 이 뼈때리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전형?!?! 1900년인데.. 100년동안 뭐한거니 우리..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인물들이 만들어간 조선은 ^결국^ 망했다!!! !!! !!!!! 정말로 역사는 되풀이 되는 건가.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희극이겠지? 희극일거야. 희극으로...


“(p.124-6)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에 신소설에 등장하는 최고의 해결책은 한반도를 떠나는 것이었다. (...) 우리 민족에게 한반도를 떠나는 꿈은 이때 공식화 되었고 아직도 해외 유학의 열정은 뜨겁기만 하다. 우리민족의 디아스포라 diaspora는 이미 1870년을 전후해서 시작되었고 (...) 이런 현실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유교사회에서 자살은 부모에 대한 최악의 죄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자살이란 갑오경장 이후에 개인의 권리와 자유라는 관념이 등장한 이후에 ‘개화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목숨이란 ‘자기의 것’이라는 생각은 갑오년 이전에는 불가능 한 것이었다. (...) 하지만 평소에 존엄성과 적극성을 증명하지 못하던 여성들이 마지막 단 한번 만이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가 강물에 뛰어드는 자살이었다. 이 내면의 극적인 꿈틀댐이 바로 신소설이 보여주는 이 시대 여성들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신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자살은 한반도에서 여성들이 깨어나는 몸부림이었다.”

“(p.132-3)
한반도에는 영웅, 주인공이 먼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의 배경이 될 현실로서의 자연상태가 먼저 나타나있었다. 근대 사회 또는 근대성이란 다양한 얼굴을 갖지만, 한반도에서는 중세가 망가지고 흩어진 파편들로서의 개인들이 근대로 나타났다. 그곳은 지옥같은 ‘정글’이었으며 거기에서 처음 발견된 근대의 생명체는 속 빈 넝마 인형 같은, 인물성이 부정된 ‘피해자 여성’들 뿐이었다. 그러나 몇년 후 그 지옥의 정글에서 자라난 생명체, 즉 한국인은 생명력 그 자체였다. 생존의 대가survivalist로서의 최초의 한국 근대인, 특히 여성은 누가 창조한 인위적인 피조물이 아니라 그 지옥같은 자연에서 살아남고 진화한 최적fittest의 생명체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인물성이 부정된 껍데기 밖에 없던 피해자에서 그런 존재성이 다시 부정되어 진화한 강한 자의식과 개성을 갖춘 강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나타난 고독한 남성 투사는 가족생활에 무책임하며 능력 없고, 사회정치적 행위의 합리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에 자존심을 앞세우는 그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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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 조선,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우리 한국인은 태어났다!해방 한국, 한국인은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 예뻐할 수 없는 신소설 속 인물들이 망한 조선에서 어떻게 진화하는 지 더 읽어나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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