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레스토랑 Less Than Nothing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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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하다고 밖에 표현 못 하겠는 지젝 식의 헤겔 독해와 그 의미심장한 내기에 경의를 표한다. 나에겐 책을 깊게(강조) 오독할 자유가 있다는 계시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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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4-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646)모든 해석은 부분적[당파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우연적인 해석자의 주관적 입장에 ‘끼워 넣어져’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우연성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철저하게 돌파해야 할 필요성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해석된 텍스트의 보편적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는커녕 해석자가 텍스트의 내용의 보편성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해석자의 우연적인 주관적 입장은 추동력, 충동 또는 절박함을 제공해 주며, 그것이 본래의 해석을 지탱한다. 만약 해석자의 관여적인 입장을 우회하고, 지우고, 무시함으로써 해석된 텍스트의 보편성 — 이것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을 직접적으로 얻기를 바란다면 패배를 인정하고 역사주의적 상대주의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실제로는 텍스트에 대한 특수하고 자의적인 독해인 것을 고정된 보편적 즉자 존재로 격상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식으로 도달하는 보편성은 추상적 보편성, 특수성의 우연성을 포괄하기보다는 배제하는 보편성이다. 『안티고네』(또는 성경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같은 위대한 역사적 텍스트의 진정한 ‘구체적 보편성’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독법들의 총체성 자체에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핵심적 특징은 구체적 보편성은 자체 내에 보편성이 지각되는 특수하고 우연적인 점으로서의 독자-해석자의 주관적 입장[위치]을 포함하지 않고는 진정한 구체적 보편성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앳(at) 시리즈 3
신성아 지음 / 마티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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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촛불, 미투와 엔번방, 팬더믹 이후에 정치와 한국사회가 진지하게 묻고 논의했어야 할 거의 본질에 가까운 질문들. 혹은 읽었어야(읽어 온)할 책들. 페미니즘은 사랑을 없애지 않는다. 기만없는 사랑과 정치를 더 요구하고 기꺼이 책임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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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3-25 1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 모르겠으면 아니 모르니까 책부터 읽자.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앳(at) 시리즈 3
신성아 지음 / 마티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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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의 잘한 일:
이 책을 이웃의 글에서 발견한 일.
책을 공유한 문장에 몸을 떨고 당장 도서관에 가서 펴서 읽은 일.
그리고 이 책을 돌보면서, 초조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읽는(었던) 이들에게 선물한 일.
우리에겐 내 삶을 억압하는 말들을 찢어낼, 삶과 일상과 사유에서 건져올린, 더 많은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필요해요. 

언니, 안 읽고 뭐해요? 안 쓰고 뭐해요?



“(100) 그는 알아야 했다. 그를 비롯해 이 시대 남자들의 돌봄에는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그들이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는 천편일률적이고, 현실을 외면한 채 관념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키치다. 소도시 변두리에 느닷없이 들어선, 먼 나라의 르네상스 양식을 조야하게 흉내 낸 왕궁 예식장 같은 키치다. 책에서 본 성평등을 흉내 내고 아직 실현되지 못한 인간해방을 추종하고 있지만 결국 그 본질은 가부장제인 가짜 성곽이다. 또한 그것은 밀란 쿤데라의 키치, 똥을 부정하다 못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태도로서의 키치다. 돌봄의 현장은 어디나 처절하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똥기저귀처럼 추하다. 그런데 이 체험에 동참하지 않고 부정하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돌봄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한국식 라떼파파의 태도가 바로 키치다. 독박 육아의 현실을 부정하고 말뿐인 가사분담, 공동육아를 앞세우며 좋은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으로 행세하려는 허위가 바로 키치다. 그들은 돌봄이 어떤 것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끝내 모른다. 이 키치적 돌봄은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라는 키치의 특성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모성이 타인이 만든 환상이라면 부성은 스스로 만든 키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여전히 이해하고 싶다. 용서나 체념은 답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남편에 비해 부당할 정도로 과도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또 그가 잘한 것도 아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남자가 자행하는 ‘남녀차별’을 철폐할 수 있을까? 내가 힘들 때마다 스스럼없이 기대온 바로 그 어깨에 언제쯤 정치적 잣대도 나란히 드리울 수 있을까? 아포리아다.”


그는 알아야 했다. 그를 비롯해 이 시대 남자들의 돌봄에는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그들이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는 천편일률적이고, 현실을 외면한 채 관념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키치다. 소도시 변두리에 느닷없이 들어선, 먼 나라의 르네상스 양식을 조야하게 흉내 낸 왕궁 예식장 같은 키치다. 책에서 본 성평등을 흉내 내고 아직 실현되지 못한 인간해방을 추종하고 있지만 결국 그 본질은 가부장제인 가짜 성곽이다. 또한 그것은 밀란 쿤데라의 키치, 똥을 부정하다 못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태도로서의 키치다. 돌봄의 현장은 어디나 처절하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똥기저귀처럼 추하다. 그런데 이 체험에 동참하지 않고 부정하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돌봄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한국식 라떼파파의 태도가 바로 키치다 - P100

모성이 타인이 만든 환상이라면 부성은 스스로 만든 키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여전히 이해하고 싶다. 용서나 체념은 답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남편에 비해 부당할 정도로 과도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또 그가 잘한 것도 아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남자가 자행하는 ‘남녀차별’을 철폐할 수 있을까? 내가 힘들 때마다 스스럼없이 기대온 바로 그 어깨에 언제쯤 정치적 잣대도 나란히 드리울 수 있을까? 아포리아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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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3-20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맹이 없는 돌봄이라도, 그런 돌봄의 시늉이라도 내는 남성이라도,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공쟝쟝 2024-03-21 10:29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을 곰곰 생각해보아요. 시늉과 위악과 선의와 의도. 구조와 언어. ☺️🥹

자목련 2024-03-20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출연한 다큐를 보고 책이 궁금했는데 쟝쟝 님은 바로 읽으시네요. 기민하게 실천하는 모습!

공쟝쟝 2024-03-21 10:30   좋아요 1 | URL
궁금하게 많은데 그걸 모참는 조급한 사람을 기민하다 해주시니 몸 둘 바!!ㅋㅋㅋ
 

-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참고 살아야지. 여기 말고 어딜 가겠어. 너 땜에 산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물론 할머니는 대체로 내게는 천사셨다) 관절 마디마디가 부어오르는 병에 걸리도록 같이 사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견뎠는데 엄마가 우리에게 했던 아주 많은 조언의 말이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주문이었다는 걸 이젠 안다. 그 말은 딸들에게 겸손의 미덕, 자기 한계 짓기, 엄마 때문에 살아야 할 것 같은 저주로 작용해서.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낮은 자존감과 알 수 없는 분노에 허덕였다. 


페미니즘이 필요했다. 엄마를 죽도록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처음엔 엄마의 노동(돌봄)은 안 보였고 나를 억압한 말들이 작용하는 지점들이 보였다. 엄마라는 제도에 묶인 엄마의 말들. 그러니까 언어. 그 자신을 살리기 위해 타이르는 말이 자신을 죽이는 말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를 살리는 동시에 죽이기도 한다. 


일기 너무 쓰면 자의식이 오만해져서 (주체가 되어버려서) 안되니까 기록 남기지 말고 그냥 물 흐르듯이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서양 철학의 한계 어쩌고 글로 먹고사는 인문학을 한다는 남자들이 실은 자기 삶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한테 하던 말. 들은 삶에 언어가 부족해서 지식인(가끔은 스님…)의 고견을 들으러 온 여자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을까. 여성으로 호명하기도 전에 미리 엄마로 호명하고, 부르는 자신의 위치는 탐색하지 않는 채로 들어주는 대상을 넘겨짚음이 역력한(그때는 몰랐다) 마이크의 말들. 나는 또 불리는 대로 불렸고 유명인의 말을 유명해서 탐욕스럽게 섭취했다. 그 남자들은 나에게 공부를 독려하지 않았다. 그건 지들에게도 힘든 거니까. 아니, 엄마가 될 사람은 엄마를 공부해야지. 오은영 선생님께로 떠밀려진 것 같기도. 여튼 내가 쓰지 않아도 될 까닭은 너무 많았고 넘쳤다.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까지는.



서른 이후의 일기 쓰기. 아니 페미니즘.


가끔, 글을 쓰는 까닭을 거창하게도 살기 위해서라고 썼던 것은. 가부장제라는 판타지, 아버지라는 보호막이 찢어져 버린 imf 이후를… 시어머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엄마의 말들만으로 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들이. 다른 대타자의 말들이 필요했다. 평범한 한국 여성에게 쏟아지는 아주 많은 무거운 중력을 지닌 말들은 돌처럼 날아와서 나를 퍽퍽치고 휘청이게 하였다.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말로 일기를 써야 했다. 그 인문학자의 말처럼 주체가 되기 위해서 자의식을 갖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칫하면, 내가 나를 돌보는 말이 없으면. 타인의 말들에 자기를 검열하다가 뼈를 말리면서도 베이글녀가 돼야 하고. 너무 똑똑하면 안 되지만 개념은 장착해야 했던 20대를 지나. 


남부럽지 않은데 취직은 하되 특정 나이 대부터는 일하지 않기를 독려 받으며… 혹… 안정적 직장이라면 워킹맘이라는 이중 노동을 감당하면서도 자책하고, 전업주부라는 사실로는 기생충 취급을 받고, 노처녀라서 히스테리인가 봐. 시집가 시집이나 가. 좋은 남자 만나야지. 사랑 못 받는 여자들은. 그런 너를 누가 사랑해 주니. 여자는 여자는 여자는…. 그것도 아니면 돈 성공 돈 성공.


<서른 이후의 일기장들. 많이도 썼다.>


나를 말에 맞게 더 바꿨다간 흉측한 히드라가 될 것 같아서. 공부. 모든 말들을 어쩌면 30년 치를 한꺼번에 급속하게 찢어내는 과정에서 내 삶은 유달리 심각해졌고 결과적으로는 남들이 뭐라든 무서울 게 별로 없다. 120살까지 80년. 이제는 공처럼 날아오는 말들을 라켓으로 팡팡 튕겨내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 다만 억압이 여성 하나만은 아닌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성별은 정말 거대하고도 기본적인 억압이다. 여남 모두에게.) 겹겹이 싸인 다른 담론들. 


나는 나를 잘 보호하고, 나의 곁을 이루는 나와 손잡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분석하고 사유하고 적합한 저항의 말을 함께 찾아보고 싶다는 나름의 욕망이 생기게 되었다. 


저 말들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셀프 자아 규정을 해야겠다 / 주체가 되어야 합니까? 해체되기 위해서? / 주체가 되고자 하는 나는 본질주의자인가? / 정체성의 정치는 불가능 한가? 


라고 좌충우돌 물었던 질문들을 지나. 


1월에는 책으로 라캉과 바디우를 만났고. 사건으로서의 주체에 대해 힌트를 얻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기를 쓰지 말라는 인문학자들의 말은 (부분적으로) 맞다. 모두를 끊임없이 소비자로 호명하는 자아 중독의 시절, 근대적 의미의 주체는 인류세의 원흉이며 해체되어야 한다. 그래도 나는 감히 쓰고 싶다. 재현의 윤리, 잘 모르지만 그것도 탐사해가면서 읽고 쓰면서 내게 맞는 말들을 찾는 재미, 쾌락. 내 공부. 인생은 생각보다 더 길고. 이 재미를 멈출 수는 없으니. 찬찬히 더듬더듬 읽는 나는 진지하고 쓰는 나는 좀 허심해지자고 같이 읽고 쓰고자 하는 친구들과 말했다. 


지금의 최선. 나의 적정선.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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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3-20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지 않아도 될 그 많고 많은 이유를 넘고 넘어서 이제 읽는 인간, 쓰는 인간이 되신 거 축하드려요.
여성이라는 하나의 억압만 존재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성별억압의 그 음흉하고 끈질김을 우리 같이 파헤쳐봐요.
주체와 해체와 전략적 본질주의와 정체성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나는 시간이 많아요…. 🤔🤪

공쟝쟝 2024-03-21 02:27   좋아요 1 | URL
분명 2월에는 읽고 쓰기 따위 … 이러면서 돈이나 벌자고 하던 나는…. 막상 못하게 되자 너무 그리워졌고… 청개구리 ㅋㅋ 저도 시간이 많아요 😫😩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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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정한 발명품의 비뚤어진 파괴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폰 노이만 나쁜 쉑. 인간은 진보를 치유하지 않았고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겼다. 인간 스스로가 치유하지 못한 것을 인공지능에게 맡기자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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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2-23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폰 노이만 나쁜 쉑. 쉑쉑버거.
얼굴은 잘생겼다. 쉑쉑버거.

공쟝쟝 2024-03-04 13:32   좋아요 1 | URL
아... 독후감 쓰고 싶네요. 진짜 잼나게 읽었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