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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ㅣ 홍신 세계문학 2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일본 홋카이도 도카치 연봉을 둘러싼 분지 아사히가와는 빙점의 주무대이고 시대는 일본이 종전을 마친 1946년의 무더운 여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빙점하면 비유적으로 몸도 마음도 싸늘하고도 차갑게 굳어져 버린 상태가 아닐까 한다.게이조와 나쓰에라는 부부의 사랑과 질투,증오,복수,용서,화해가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으며 일본 국민성의 특성상 왈가닥하면서도 호탕한 맛보다는 속으로 느끼고 속에서 감정이 쌓아져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는 그들만의 혼네도 충분히 엿볼 수가 있었다.미우라 아야코식의 사랑과 절망,응어리와 오해와 질투가 어른들의 심리 세계를 마음껏 이해하고 음미해 보는 인간 심리 드라마라고 생각한다.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졌을지라도 살다 보면 외도를 할 수가 있고 발각이 되면 서로 씻을 수 없는 배신과 응어리로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헤어짐도 이어지고 맞불작전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게이조와 나쓰에는 전형적인 일본인상이라고 생각된다.
소설은 늘 하나의 사건이 크게 확대되어 진행되다 소멸해 가는 불씨마냥 우리 주변의 삶을 반영한다고 보여진다.병원장을 하는 게이조는 무뚝뚝하고 신경이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그를 내조하는 나쓰에는 겉으로는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이지만 남편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늘 도사리고 있었던듯 싶다.게이조의 병원 안과의인 무라이와 나쓰에는 깊어갈 대로 깊어져 간 사랑의 늪에 빠지고 마는데,그의 딸 루리코가 죽던 날도 둘만의 만남과 대화가 일본식 목조가옥의 어슴푸레한 거실에서 진행이 되고 가족 누구에게도 사랑과 관심이 엷은 루리코는 그만 밖으로 쫓겨나게 되며 결국 사이시의 손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면서 빙점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사태에 빠지고 만다.
생후 1개월밖에 안된 영아를 촉탁 받아 기르던 다카키는 게이조의 친구로서 영아를 루리코 대신 키우겠다고 데려 오는데 이름은 요코이며 나쓰에는 루리코에게 못해준 사랑을 정성을 다해 쏟는데,남편 게이조의 서랍에서 발견된 요코의 정체를 알고부터는 요코에 대해 목을 조르고 요코가 중3 졸업식때 답사를 백지로 바꿔치기 하는식 남편에 대한 미움과 질투를 요코에게 돌리게 된다.요코는 비록 데려온 자식이지만 밝고 예의 바르며 자신의 앞가림을 또래들보다 일찍 깨닫게 된다.월사금을 주지 않아 그녀 혼자 우유 배달을 몇 달 다니던 모습도 친자식이라면 그리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요코는 그런 자식을 책망하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되고 어느덧 대학을 앞둔 고3이 되면서 오빠인 도루의 친구 기타하라에게도 연정을 품으며 진정으로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데,양엄마 나쓰에는 요코와의 관련된 것들은 참견하고 가타하라와의 관계마저 실을 끊듯 끊으려 하게 된다.요코는 오빠 도루에게도 친오빠의 감정으로 좋아하고 오누이의 정을 나누는데 도루가 외할아버지 댁에 간 사이에 결국 사단이 벌어지고 만다.기타하라가 요코를 만나러 찾아 오던 날,나쓰에는 요코의 모든 정체를 밝히면서 그간 힘들었던 내막을 모조리 쏟아 붇게 되고 요코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딸이라는 원죄 의식 및 살아 오면서 느낀 얼음장 같은 빙점이 있었음을 자각하면서 자살을 결행하는데 결국 미수로 끝나게 되며 나쓰에는 요코가 살인자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다카키로부터 새롭게 알게 되고 요코에 대한 그간의 속죄를 원없는 눈물로 푼다.
과연 인간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값진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 비단 게이조와 나쓰에의 낭과 패와 같은 성격도 문제이지만 사랑을 못받아 외도를 하고 한쪽에서는 심한 질투와 복수로 상대를 할퀴려 하는 세태가 전후 일본사회의 단편적인 인간의 일상을 스케치한 것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간사하다는 점도 간파할 수가 있다.게이조 가족이 죽은 루리코 대신 양녀로 데려와 키워 왔던 요코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티를 내지 않고 살아 갔던들 요코에겐 감정이 얼음장마냥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빙점은 없었을 것이다.요코는 회생하여 오빠인 도루와 한 인생을 멋지게 살아갔으면 하는게 개인적인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