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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postfile/2/2011/06/16/11/jk325636_0986684018.JPG)
20세기에 들어서 2번의 세계 대전 속에서 제국주의의 팽창 및 민족주의의 우월성을 부르짖다 비극적인 종언을 고하고 새로이 헤쳐모여식으로 이념과 체제가 짜여지면서 현대에 이르면서 신자본주의라는 극도의 국가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결국 약육강식의 생존 논리가 20세기와 지금과 비교하면 영토 확장,민족주의의 우월성등으로 총과 칼을 휘두른 무(武)의 철혈 정책이었다면 현대는 지구의 환경 오염과 기후 온난화,생태계 파괴등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자연을 거스르는 정책이 결국엔 인류가 자연의 대재앙이라는 역습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예측하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맹위를 떨치고 연합군의 프랑스 노르망디 작전이 성공적으로 치달으면서 독일은 아리아라는 그들 민족의 우월성과 히틀러라는 인물의 영웅적이고 기회주의자에 의해 떠돌이 유대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극이 독일을 비롯하여 폴란드,소련등지에서 자행되고 배가 고파 인육을 씹어 먹는등 참극의 연출이 레비라는 작가에 의해 서사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실제 그가 그 무시무시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생환을 맞이하여 그때 겪었던 유대인의 비극과 참상을 빨치산 내지 레지스탕스라는 저항 부대를 내세워 인간은 왜 살아야 하고 삶의 근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시간이 되었다.
역사 이래 전쟁은 이긴 자든 진 자든 후유증이 심각했음을 알게 되는데 특히 제국주의의 영토 확장정책과 피제국주의의 백성들에게 자행한대학살 정책은 일국의 심각한 트라우마 및 적개심을 낳게 하고 국가간 원만한 관계개선은 겉으로만 치유되는 모양새를 띠지만 속마음은 언젠가는 복수의 칼날을 드리우게 마련이다.역사가 말해주는 독일의 유태인 홀로코스트,루꺼우챠오사건으로 비화된 중일전쟁과 남경 대학살,인체해부(마루타) 사건,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 대학살사건등이 제국주의의 오만한 정책과 영웅주의의가 빚은 결과물이고 희생자의 대다수는 선량한 일반인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유대인 빨치산 부대의 주요 인물 멘델과 레오니르는 러시아 남부 벨로루스,우크라이나를 떠돌며 나치 근위대 및 그 세력들을 잡고 처단하며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에 항거의 깃발을 내세운 전위대원들인데 노볼셸키 빨치산 수도원의 도브 원장,율리빈 대장,게달레대장,시슬,라인등이 강과 숲과 습지,평원등을 이동하면서 때론 나치의 이동을 막기 위해 보급품 수송 열차를 폭파하기도 하고 나치대원들과 불심 마추침에 총격전이 이어지며 섬광같은 불바다와 귀가 찢어지는 총탄 세례등이 공감각적으로 다가온다.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나도 부모님에게 들은 6.25전쟁의 참상과 잠을 자다 갑자기 날아든 총탄이 흙벽담을 뚫고 날아갔다는 섬득한 얘기,군에 갔다 온다던 오빠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전쟁이 낳은 희생은 근본적으로 참다운 인간의 삶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산 자들은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는 갖고 있어야 하다.우리는 곧 무장해제 되어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최후의 권리는 죽임인데 자기옥쇄에 들어가 결사항전으로 맞서는 최후의 방법인데 죽어도 사는 것이다! 이게 바로 유대인 빨치산 요원들의 필사적인 항거법이었다고 생각한다.2차세계대전이 말로를 걸으면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암살이 되고 히틀러는 궁지에 몰려 결국 자살을 함으로써 독일의 유대인 학살극은 끝을 내게 되고 빨치산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길을 향해 떠나게 된다.
이념과 체제 아래에서 민족의 우월성과 영토 확장을 도모했던 히틀러 및 스탈린의 제국주의의 음모는 사필귀정으로 끝나게 된다.작가 또한 유대인으로서 게토,아우슈비츠,카틴숲등의 유대인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으로서 또는 살아있다는 자체가 같은 동족에 대한 회한으로 다가섰을지도 모른다.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광기,잔혹성,살아남기 위해 나치에 빌붙어 동족을 죽여야 했던 유대인의 이중성등을 통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폴란드 시인이 쓴 시다.
마리아여,
아이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으면
이 폴란드에서 아이를 낳지 말아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손톱으로 십자가를 그을 것이니
깊은 슬픔의 바다는 경계도 없고 바닥도 없으며 깊이도 알 수 있는 참극이고 형언할 수 없는 나락으로의 진혼곡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