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홍신 세계문학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광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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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는 말 그대로 역작이다.60여년의 생애를 거쳐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여 얻어낸 걸작임에 틀림없다.무대에서 펼쳐지는 희곡 형식의 파우스트는 실존 인물이었던 파우스트를 내세워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과 욕망,삶과 죽음,진정한 사랑과 맑은 영혼등을 일깨워 주기에 족하다.저자는 모든 학문에 통달한 박식한 자의 매너리즘을 보여 주고 있으며 악마의 화신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사후 영혼을 두고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과 욕망에 대해 기독교의 성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삶의 경험과 지혜를 토로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엮어 나감을 알게 된다.과연 인간은 악마의 화신인지 선의 화신인지는 결국 인간이란 선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고 결국은 사후의 세계에서도 썪지 않는 영혼을 갖을 수가 있다고 보여진다.

2부로 나뉘어진 파우스트는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인물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실이고 본성인지를 깨닫게 해주며 파우스트는 악마의 화신 메피스토펠레스의 꾀임에 의해 욕망의 노예가 될 뻔하지만 황제의 신임을 얻고 권력을 취한 후 시민과 힘을 합쳐 이승의 진정한 사랑(헬레네와 결혼)을 얻으며 첫 연인 그렌트 헨의 기도와 요청에 의해 영혼의 구제를 받게 된다.결국 인간은 귀가 얇은 나약한 미물이고 존재이다.순간의 욕망과 유혹을 떨칠 수가 없을지라도 이성의 잣대와 냉철한 가슴을 지녔다면 그것은 영원성이 없는 일회성 도피성에 불과하며 허탈과 허망에 불과할 뿐임을 깨달으리라.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선 조그마한 좌절과 시험이라도 선한 본성에 입각하여 자신의 목표에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정거장과 같다고 한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살다보면 누구나 유혹과 탐욕,욕망은 있게 마련이다.파우스트처럼 목전에 맞딱뜨린 것들을 담담히 받아 들이고(쾌감,향락,증오,복수등) 이를 자신의 자아로 음미하고 인류 자아까지 확대하여 도전해 나가는 파우스트를 읽어 갈 수가 있었다.또한 인간에겐 이성이 있기에 도를 넘어서는 안되며(도덕과 윤리) 진실한 사랑과 영혼의 구제는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것인지를 사유하게 한다.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인 인간은 늘 도전하고 탐구하여 꾐에 넘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이 승과 저 승의 경계선에 있을 (가깝든 멀든) 맑고 고요하며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을 파우스트는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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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전상국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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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 이미지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그윽한 차와 함께 지나온 시절을 회고하고 성찰하며 말못할 사연을 툭 털어놓고 싶은 분위기이다.남이섬은 총5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으로 작가가 성장하고 사회인으로서 활동했던 지난 세기 한국의 어두운 전쟁의 상흔과 독재정권이 낳은 사회 구성원들간의 소통 부재를 직접적이고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상과 현실 사이를 유머러스하고도 풍자적으로도 다가오고 있으며 인생의 허망과 허무를 인간의 도덕과 윤리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소년시절(10세정도)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을 통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살아 있는 자들을 내세워 들려 주고 어둡게 깔린 마음을 실존하지도 않은 여인(나미)를 내세워 환상적이면서도 마음 들뜨게 하게 하며 이데올로기로 인해 스러져간 희생자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음의 지뢰밭을 경고하고 있으며 원활한 소통의 부재로 인한 사회 구성원간의 간극을 매꾸기 위한 소통의 방법도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꾀꼬리 편지를 통해서는 초원과 우목을 사랑한 한 여인의 일편단심과 같은 정절을 읽을 수가 있었다.살아서 손 한 번 제대로 못잡아 본 짝사랑이 우목의 죽음을 통하여,여인은 한 줌의 뜨거운 재로 변한 연인의 뼈가루를 몸과 마음으로 체휼하게 되고 춘심이 발동하야에선 안병신이라는 주인공의 적절치 못한 처세와 허풍등으로 쓸쓸한 비극의 맛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한국은 외세의 침략부터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인 6.25동란,독재 정권에 의한 소통의 부재,빈부의 격차등으로 사회 구성원간의 위화감 및 사회 불평등 요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주기만 했다.훌훌 털어 버리고 싶어도 털어 버릴 수 없었던 암울하고 속절없는 원망을 이제는 비움과 소통의 자세로 마음의 도약을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마음에 자리잡고 똬리를 틀고 있는 상흔과 원망,수치등을 누군가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진실의 입장에서 털어내고 들려 주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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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버스괴담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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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심야버스라고 하면 왠지 뽀송뽀송하고 그지없는 상쾌함보다는 끈적끈적하여 ’얼른 집에 가서 샤워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해야지’라는 생각이 앞선다.하루의 일과 및 볼일을 마치고 대부분 귀가를 하는 시간이기에 생동감보다는 축 쳐지기 마련이고 신체리듬도 깨질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1999년 실제 서울 분당간을 왕래했던 2002 버스 안에서 만취한 승객의 만용과 행패로 운전기사와 승객들의 동요 및 불안은 가중되어 가고 운전에 정신집중이 되지 않던 기사는 그만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관성의 법칙에 의해 일순 앞으로 차가 쏠리고 취객 및 승객들이 도미노 현상마냥 줄줄이 앞으로 엎어지고 쓰러지며 취객은 숨을 거두게 되면서 죽은 취객 처치문제로 혼란을 겪게 된다.어찌보면 취객이 원인 제공을 한 장본인이지만 법이란 늘 한 쪽으로만 몰아주지 않는 법이다.기사와 승객이었던 최주임은 사체 처리문제를 놓고 격론을 버리다 힘과 논리에 밀린 기사 역시 불귀의 객이 되면서 두 구의 시체를 유기하게 된다.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소심해서 중론에 따랐을거 같다.날이 밝아질 새벽녘 승객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툴툴 털고 각자 갈 길로 가게 되고 젊은 총각 준호는 미나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달래주기 위한 보디가드가 되어 주지만 단순하게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준호와 미나는 뜨거운 원 나이트를 몸으로 불태우고 이제 준호는 어찌된 일인지 눈에 안대를 씌우고 온몸은 포승줄로 묶인 채 마조히즘을 즐기게 되는데 미나 또한 새디즘으로 인해 그녀만이 안고 있던 불안과 공포를 떨쳐 내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IT가 그리 발달되지 않았을 1999년 무렵엔 심야에 사람이 죽어가도 서로 입만 잘 맞춘다면 '모르쇠'로 끝나겠지만 요근래는 쉽게 통하지도 않을 심야버스 사체유기 사건과 모르는 사람끼리의 일회성 몸섞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이 갖고 있는 책임회피와 (누군가에게)기대고 의지하려는 본성의 발로를 작가 특유의 문체로 그려내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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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외삼촌 - 한국전쟁 속 재일교포 가족의 감동과 기적의 이야기
이주인 시즈카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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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해방,한국 전쟁은 현대사에 있어 한국인에게 사상과 이념,국력의 실체,개인적인 삶의 굴곡등으로 점철되어 왔다.특히 일제 강점기시에는 대부분의 민간인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만주로 떠나고 일본으로 몸을 옮기는등 수난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힘들여 농사지어 놓으면 일본인들이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걷어 가기에 '초근목피'로 연명했다는 말이 실질적으로 들려 온다.지주와 일본세력에 빌붙어 살았던 자들이야 먹고 사는 수난을 모르고 살아겠지만 태반의 민간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먹고 지내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저자 이주인씨는 재일동포 2세로서 그의 혈육이 일제 강점기에 겪었던 어려웠던 시절과 한국 전쟁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간 혈육들의 삶과 가족애,조국애등을 서사적이고도 인간미가 넘치는 에피소드, 체제와 이념으로 스러져간 한국 전쟁의 동족상잔을 실감나게 그려 낸 점이 오래도록 남을거 같다.또한 일본과 한국의 지리,산세,지명,(한국전쟁시)이념과 체제의 희생양인 한반도의 실정과 빨치산등으로 알려진 공산당원의 가입으로 체제를 연장하려 했던 이승만정권의 민간인 대량학살,국민보도 연맹등은 지난 역사의 과정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의 주인공 소지로(윤종래) 집안과 부인 요코의 집안의 얘기를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소지로는 둘째 아들로서 큰 형과 어머니가 주신 뱃삯만 받고 혈혈단신 도일을 하게 된다.그는 남자다운 기질에 과묵하면서도 가족을 세세히 챙기는 전형적인 아버지상이며 요코는 남동생 고로를 끔직히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은 누나이며 고로는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이다.고로의 아버지는 염전 사업을 하면서 가계를 꾸려가는데 해방과 더불어 부모님과 함께 귀국을 하게 되고 '국가의 재건'에 힘쓰겠다는 포부를 갖게 된다.

소지로는 군수공장에서 사장으로 일하는등 자수성가를 하게 되고 아들을 낳으려다 내리 딸만 셋을 낳고 네 번째 원하던 '다다하루'라는 남아를 얻으며 삶의 희망과 일에 대한 신념이 커지면서 내외적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거 같은데 고국에서는 힘없는 조선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양분이 되고 이념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소지로는 본가와 처남의 안부가 걱정이 되면서 그의 회사 부하들과 밀항의 계획을 짜고 초계정과 풍랑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적적으로 자기가 살던 고향의 부모님과 처남,장인,장모와 해후하게 된다.

당시엔 젊은이들을 전선에 투입하기 위해 징용 담당자들이 가가호호를 다니며 색출하게 된다.마침 고로가 사는 동네에서 청년들이 군을 피하기 위해 동굴로 숨게 되는데 지나가던 북괴군에 의해 사살이 되지만 고로만 살아남게 되고 동네 이 씨 집안에선 고로를 첩자로 소문을 내고 호시탐탐 그를 죽이려 하는데 고로의 부모는 결혼하지 않은 외아들을 살리기 위해 뒷간에 임시 닭장을 설치하고 웅덩이만하게 흙을 파서 어두컴컴한 곳에서 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받아 먹으며 목숨을 유지해 나간다.

소지로는 처남 고로가 이렇게 된 마당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던중 일본에서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백동림'사단장을 주지스님으로부터 소개받고 소지로는 고로와 함께 산과 내,개울,아슬아슬한 군사도로,군트럭을 이용하여 백동림 사단장을 만나고 고로를 대한의 건아로서 멋진 군인으로 복무해 주기를 부탁하고 그는 다시 오던 길을 되밟아 고향과 처가에 당도하고 부모님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믿음을 보여 주고 고로가 군대 생활 잘 하고 무사히 만기 제대하여 부모님 모시고 잘 살기를 바라며 소지로가 살던 미타지로 돌아가게 되고 그를 기다리던 가족과 지인의 열렬한 환대 속에 묻히게 된다.

시대적으로 어렵고 먹기 살기 위해 혈혈단신했던 소지로의 인생과 대조적인 고로의 삶을 다다하루라는 주인공은 아마도 저자가 아닐까 한다.그가 듣고 자란 부모님 세대의 고초와 어머니를 통해 들은 외가의 삶을 실감나게 서사적으로 전개했다는 점과 한국 전쟁을 기회로 일본은 군수물자등을 통해 경제적 반사 이익과 성장을 거두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또한 어려웠던 시절 매형과 처남이라는 가족사를 통해 끈끈하고도 의리 넘치며 훈훈한 인간 관계의 맥을 잘 살렸다는 점도 이 글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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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아래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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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하게 자라나고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고사리같은 어린 아이들이 유괴 및 성폭행으로 살해를 당하면서 남아 있는 가족과 사회의 불안과 공포감은 한국뿐만이 아닌 전세계적인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또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만 범죄를 저지르고 성폭행을 일삼는 자들은 그들의 뇌 구조가 과연 어떠한지도 심리학적인 면에서 궁금하기만할 따름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어둠'에서 풍겨져 오는 으시시한 공포감 및 전율감은 범인을 찾기 위해 탐문 조사를 하고 추적하고 있는 수사본부 형사반원들 및 살인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물에서 한층 수위가 높아지며 죽는 자는 말이 없고 죽이는 자는 유유히 증거 한 점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치안 부재 및 수사의 한계마저 나오게 되며 주인고 나가세의 등장으로 수사에 대한 기대와 그의 추적과 탐문 과정 및 발언등에서 미묘한 신경전과 함께 사건사고의 전말은 미궁으로 빠졌다가 활기를 띠었다가 엎치락 뒤치락하기를 반복하면서 긴박감과 스릴감,인간의 원죄의식등을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일본의 유괴사건 및 사체 유기등을 접할 때마다 늘 소름이 돋는다.그만큼 잔인하고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자들의 악랄함과 뻔뻔스러움을 알기 때문이며 그들은 자신의 변명거리를 주구장창 늘어 놓으며 범행당시의 정상참작이라는 말도 안되는 구실로 죽어야 마땅한데 몇 십년 콩밥 먹다 다시 출소하고 또 다시 어린이들을 타겟삼아 살인행각을 하면서 인생 전반을 사회의 소외층으로 전락하고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나가세의 여동생 '에미'가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처참하게 죽으면서 자신은 사회의 정의와 범죄자를 소탕하는 형사의 길로 우연찮게 발을 들여 놓게 되는데 그는 후지사와라는 고참 형사의 기대를 안고 형사반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괴범들이 하나 둘씩 잔인하게 욕조 및 호텔에서 죽어가고 그들의 죽음을 당하는 동영상물이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수사대원들을 아연실색케 하며 이는 사회안전망이 허술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나가세는 마음 속으로 자신도 상송이 되겠다는 마음을 품으며 동료 및 상사들에게 눈총을 먹게 되면서 나가세 자신이 과연 형사로서의 자질이 있는지를 자문자답한다.

나이토,키무라,이토라는 유괴범들이 '등불의 마을'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형을 살았음을 나카무라 수사대원들의 탐문에 의해 밝혀지게 되지만 정작 나가세의 동생(에미)를 죽인 범인은 나타나지를 않고 나가세 앞으로 보내져 온 문자 및 전화가 걸려오는데 자칭 '상송'이라고 밝히면서 나가세는 과연 그를 만나야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지만 결국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권총을 들고 남자가 묵고 있는 곳에 당도하며 그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나가세의 동생 에미를 죽인 코사카라는 유괴범이었음이 밝혀지게 되고 나가세는 코사카를 동생의 원혼을 갚는 차원에서 죽이게 되고 나가세는 형사직을 그만 두면서 사법과 정의라는 사회의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고 나머지 판결은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는 없다.하물며 연약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흉악범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일반인과 격리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그들의 본바탕이 어찌되었든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행위로 말미암아 유족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응어리와 심적 고통,삶의 무의미등으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이 글에서처럼 유괴범들을 찾아내 그들을 죽이는 행위 역시 살인의 악순환일 뿐이므로 입법과 사법차원에서 무엇이 가장 옳은 길인지를 저울에 올려 놓고 심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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