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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트 ㅣ 다빈치 art 13
장 뒤뷔페 지음, 장윤선 옮김 / 다빈치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아르 브뤼트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1945년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창작작품을 지칭한 말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미술제도 바깥에서 창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1972년 로저 카디널이 아르브뤼트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 머리말 중 -
이 책을 통해 '아르브뤼트'라는 장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질 좋은 종이에 큼직하고 풍부한 도판, 많지 않은 분량의 글은 수월하게 잘 읽힌다.
사실 나의 부족한 눈은, 제도권 안 화가들의 의도된 미숙함과 아르브뤼트 예술가들의 천진한 미숙함을 쉽게 가려낼 수 없었다. 게다가 '미술을 감상하는 법 = 많은 화가의 이름과 작품을 외우는 법'이라는 엉터리 공식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머리 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나보다. 이 신선한 그림들이 전해오는 날것의 느낌 그대로를 즐기려 들지 않고 빌 트레일러의 작품을 보고서는 애써 키스 하링을 떠올리고, 매지 길이 그린 음울한 눈빛에서는 뭉크를 찾아내려고 덤벙댔다. 이후로도 계속 리히텐슈타인, 조지아 오키프, 클림트....머리 속의 빈약한 화가 색인들을 뒤지며 하나 하나 끼워 맞추려고 기를 썼다.
BANG~~~ 바보. ㅡ.ㅡ
완벽한 균형미, 붓자국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매끈한 화면, 금방이라도 살아 숨쉴 듯한 생생한 눈빛...그런 '명화'들에 경탄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명화를 그려낸 화가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미술사, 미술기법, 미술심리 등 수 많은 걸림돌을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브뤼트 예술가들의 작품에 다가서는 길에 장애물 따윈 없다. 빤히 들여다 보이는 거친 스트로크와 미숙한 붓놀림을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도 그림을 그린 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지루한 수업시간, 붙박혀 움직일 줄 모르는 시계와 싸우느라 만화주인공의 한삼자락에 촘촘하게 그려넣었던 무늬들이 책 속에 있었다. 윗사람에게 꾸중듣느라 울적하게 가라앉은 회의실, 낙서 속의 우울한 얼굴들이 바로, 여기,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술은 장식품, 혹은 지성을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 준 멋진 책이다.
아르 브뤼트 작품에는 타오르는 듯한 정열의 고양, 끝없는 창의성, 강렬한 도취감, 모든 것들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같은, 인간이 예술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어떤 유명 예술가의 작품에서보다도 넘쳐 흐른다. 물론 광기도 함께. 하지만 광기를 품지 않은 예술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니체의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 속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예술'이다. 여기서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광기'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다. 누가 정신 병원의 창살 안과 밖, 어느 쪽이 미쳤다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근거를 알고 싶을 뿐이다. - 머리말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