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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1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금빛을 함빡 머금은 붉은 표지가 화려하다. 책 속의 황진이는, 이 중국비단같은 표지보다는 한산 세모시가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그와는 별개로 볼때마다 시선을 잡아당기는 아름다운 표지다.
새로운, 아주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역사 속의 인물을 되살리는 일이 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고증과 창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할 것이다. 저마다 머리 속에 잡고 있던 <황진이>라는 인물의 이미지.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서 신선했다 할 수도 있지만 어이없다고 매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하던 바와 똑 들어맞아서 뿌듯하다 할 수도 있지만 진부하다 흉보기도 쉬울 터이다.
나? 나로 말하자면....후자의 전자, 즈음이다. 내 머리 속에 그리던 <황진이>라는 여인이 그대로 걸어나와 책이 된 듯 하였다. 머리 속 어설픈 상상은 가끔 아귀가 잘 맞지 않고는 했는데, 전경린의 황진이가 그 네 귀퉁이를 반듯 반듯 포개어 깔끔하게 개켜준 듯 하다.
파리하니 대쪽 같은 양가의 규수에서, 넓은 치마폭 주름마다 서리서리 한 없는 사랑을 포개 안을 수 있는 여자로 거듭 난 그녀. 혹자는 황진이가 절개 높은 기생이라 한다. 하지만 절개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그녀의 남자로 규정된 위인들의 명단이 너무 길지 않은가? 그 모순에 대한 전경린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황진이, 그녀는, 매번의 사랑에 충실했다.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믿고 따랐기에 그 순간의 사랑에 지조있게 몰두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명절이면 단골로 틀어주던 프로그램 중, 장미희가 주연한 <황진이>도 있었다. 극 중 황진이는 사랑때문에 자멸하여 결국 끼니와 몸을 바꾸는 처연한 처지가 되었다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와중에 쓰러지고 만다. 그 결말은 별로 마음에 들질 않았다.
제 아무리 역사 속 위인이라도, 여자에게는 사랑이 전부라고, 결국 사랑에 스러지는 존재라고 폄하하는 듯 싶었다.
그런 속쓰림을 전경린의 황진이가 풀어주었다. 세상의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그랬기에 무언가를 초월한 듯...이제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도,당당한 황진이의 노년이 보기에 좋았다.
딱히 새롭거나 치열한 구석은 없다. 하지만,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는 소설이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봤을 때 줄거리보다도 인상적인 화면에 매료되었던 것 처럼, 읽고 나면 아취 있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