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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een_포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열 세 살 무렵까지 나는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다. 생활기록부에 '교우 관계의 폭이 좁다.'고 기록되던, 새학년이 되면 도시락을 같이 먹을 단짝 하나 구하는 것이 굉장히 피곤한 일이던...그런 아이.
그러던 내가 평생지기가 될 친구들을 만나고, 성격 또한 180도로 바뀐 것은 열 다섯 살 때였다. 열 다섯 살의 나는 친구들의 고민상담과 연애편지 대필, 수정에 하루가 짧던 바쁜 아이였다.
그렇다면, 열 네 살은?
열 네 살의 나는 어땠지? 급격한 변화가 열 네 살을 지나가며 이루어졌다는 결론이 나오건만, --------- OFF. 암전. 다시 태어나기 위한 치열함이 벅찼던 것일까? 피곤하고 힘들었던 열 세 살도, 즐겁고 유쾌했던 열 다섯 살도 생생한데, 유독 열 네 살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때의 나는, 도대체 어떤 아이였을까?
각설하고.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나는, 열 네 살, 그 무렵의 남자아이들이 싫다.
출근길 마을버스에 바글바글 들어 찬 중학생 소년들은 불균형, 혹은 어떤 부조리의 표상들 같아 보인다. 아직 어린 몸에서 겉도는 양복 스타일의 교복, 잘 씻지 않기 때문인지, 요동치는 호르몬 때문인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체취, 입만 열면 게임 얘기, 뇌 전부를 컴퓨터 하드웨어에 심어 놓고 온 듯한 그들의 대화.
하긴, 만원의 마을버스 안에 몰아 넣으면 소년 아닌 그 어떤 존재도 그리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어리지도 않고 어른도 아닌 애매한 시기의 그들에게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정말, 각설하고.
여기, 괜찮은 네 녀석이 있다. 조로증으로 입원한 친구녀석을 위해 원조교제 하는 소녀를 선물하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면. 아, 맞다. 그 녀석들은 폭력서클에 잘못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한데 뭉쳤지 않은가? 의리 있는, 괜찮은 녀석, 맞다.
게다가 더 이상 완벽할 수가 없는 구성이다. 뚱보, 비실이, 뿔테 안경의 똑똑이에 '평범한' 화자까지. 이제껏 봐 왔던 책, 영화, 어린이 드라마에서 수 없이 되풀이되었던 진부한 구성이 전혀 지겹지 않고 신선하기만 한 것은 왜일까?
아마도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열 네 살의 평범한(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닥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은 묘한 흡인력이 있어서, 순간순간 독자를 자신의 열 네 살로 끌어내린다.
열 네 살의 그들과 나는 실상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가지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들 나이의 두 배가 넘는 나. 나는 그 의문들을 모두 해결했나? 그 혼란들을 다 정리했나? ------- NO.
그 의문과 혼란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들과 항상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 졌을 뿐.
열 네 살, 그들은 순수하다. 포르노 잡지를 달고 살고, 유부녀와 바람이 날 뻔, 동급생과 섹스를 할 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순수하고 정의롭다.
'웃음, 눈물, 감동과 재미' 진부한 영화의 선전문구처럼 모든 것을 겸비한 그들의 이야기는 내 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들을 일깨운다. 그리고 책을 덮은 순간, 내겐 불가해하고 매력 없던 열 넷이, 4teen, 마법의 숫자로 변모했다.
버스 안의 소년들도, 식별 불가한 교복 깃 그 안에 생생하게 날뛰는 가슴을 가졌다고 믿고 싶어진다.
암전상태였던 나의 열 네 살, 그 때의 나도 이토록이나 생생하게 날뛰는 가슴을 가졌다고 믿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