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림


학창시절에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책받침을 갖고 다녔다. 하나가 아니라 몇 개씩.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 때문이었다. 흔히 책받침 4대 여신이라고 불리는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왕조현, 브룩 쉴즈 뿐 아니라, 최진실, 이상아, 김혜수 등 한국 언니들도 있었다. 나는 정작 필기할 때 책받침을 받치면 필기감이 썩 좋지 않아서,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책받침은 늘 갖고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름다운 언니들의 사진을 보고도 누군지 잘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어느날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이 마구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같은 연예인의 다른 사진들을 들이밀며,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야?" 묻고 내가 틀린 대답을 하면 다같이 책상을 쾅쾅 내리치며 크게 웃는 것이다. 나는 그게 부끄럽기보다는 오히려 이상했다. "어떻게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야? 분명 다른 사람이잖아!" 그러면 친구들은 다시 크게 웃으며 놀려댔다. "안경은 뭐하러 끼고 다니냐? 눈 갖다 버려라!"


그 시절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친구들은 저 사진들을 보며 죄다 구분한단 말인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확인


학창시절에는 인간관계 폭이 좁고,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강제로 묶여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수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며 누가 누구인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잘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대다수가 나와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간혹 유난히 사람을 잘 기억하고 알아보는 친구들이 눈에 띄긴 했다. 그들이 독특한 것이고 대부분은 나와 비슷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여러번 만나도 쉽게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여러차례 만나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말을 걸거나 아는 체를 하면 그제서야 떠오르긴 했지만, 아주 가끔 오랜만에 만나는 어떤 사람들의 경우, 말을 걸어와도 그가 누구인지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곤란한 상황을 몇 차례 겪으면서 내가 남들과 달리 유난히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쉽게 기억해내지 못하는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했다.


화장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다. 간혹 남성들의 경우도 그랬지만, 대부분 여성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장법과 머리 스타일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추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가족도 못 알아본 경험 때문이다.


언젠가 우연히 티비에서 전유성 씨의 딸이 아빠가 길에서 만나면 자신을 못 알아본다는 얘길 하는 걸 봤다. 그게 마치 한 두번이 아닌 것처럼 말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긴 하구나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를 한 번, 동생을 두세번 못 알아본 적이 있다. 그 모든 경우 길에서 마주쳤는데, 내게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바로 화장의 유무, 미용실, 화장법의 변화 등이 이유였다.


어느날 동생은 버스에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들었는데, 내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도 지나쳐서 뒤쪽 어딘가에 서서 가더라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떻게 동생을 못 알아볼 수 있냐고 따졌다. 나는 동생이 나를 붙잡고 말을 거는 순간까지, 즉 동생의 목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이 여성이 왜 나를 붙잡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낯선 여성이 내게 무슨 볼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익숙지 않은 얼굴이 입을 열자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나는 이 사람이 나랑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동생이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날 엄마도 길에서 자신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나를 보고 내 팔을 덥석 잡았다. 그냥 스쳐 지날때는 얼굴을 보고도 못 알아봤지만, 나를 붙잡고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즉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엄마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생각에 잠겨 걷느라 자신을 못 본거라 여기는 듯 했다.


이때 나는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사람을 못 알아보는 증상이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느낀 것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 저 위에 언급했던 전유성 씨와 딸의 경우를 나도 겪는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뻔 했다.(다행히 '뻔'에 그쳤다!)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요즘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자신만의 화장법을 찾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화장법이 자주 바뀌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어떤 화장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고, 볼 때마다 일정한 즉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 전 어느 단계의 어느 날, 나는 아이와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가 가까이 올때까지 나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아이를 알아보았고 전유성 씨와 같은 경우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아이는 아직 중학생일 뿐이고, 점점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알수 없는 것이니까. 게다가 나는 아직은 어린 작은 아이도 있지 않은가. 그 아이가 자라서 또 어떤 화장을 하고 나타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초성게임


그런데 최근 조합원 캠프를 다녀와서 내가 단지 사람 얼굴만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나에 대한 어떤 본질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은 것 같다. 정말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살아가는 걸까? 과연 내가 아는 내가 정말 내가 맞는 걸까? 어쩌면 남들 눈에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1박2일 캠프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무척 힘들고 피곤했는데, 뭐 그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어서 익숙하긴 했다. 익숙한 것과 힘들고 어려운 건 분명 다른 문제다. 익숙하다고 해서 그 일이 힘들지 않다거나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면서 겹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다행히 마지막 조합원 교류 프로그램은 따로 준비하고 진행하실 분들이 있어서 나는 하루종일 긴장하고 있던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여러 행사에서 자주 초성게임을 접했다. 아마 매년 두세번은 이 게임이 포함된 행사에 참여한 것 같다. 보통 팀을 나눠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느 단위에서 하더라도 보통 나와 같은 팀이 된 사람들은 안심하는데, 내가 아는 게 많아서 이 게임을 잘 할거라고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 게임을 못하는 편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히 잘 아는 단어여도 초성만으로 제시된 시각 정보를 나는 그 단어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나중에 게임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진행자나 문제 출제자가 내게 와서 넌지시 묻기도 했다. "일부러 안 맞춘거야? 금방 맞출줄 알았는데.", "아니, 나는 전혀 몰랐어. 그 단어를 모른 것이 아니라 그 초성이 그 단어라는 걸 몰랐어."


여러차례 초성 게임을 겪으며, 문제나 힌트를 읽어주는 류의 게임과 달리 유난히 맞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번 캠프에서는 혹 이게 내가 늘 '불치병'이라 여기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추리


단서1. 나는 텍스트를 읽고 푸는 문제나 듣고 푸는 문제에서는 크게 어려움 없이 아는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

단서2. 같은 답이어도 초성만으로 단서가 주어지면 전혀 연결시키지 못한다.

단서3. 초성만으로 답을 맞추지 못해 힌트가 제시되면 단서1의 경우에 해당하므로 문제를 맞출 수 있다.

단서4. 어려서부터 유난히 숨은 그림 찾기나 틀린 그림 찾기 등의 게임도 잘 하지 못했다.

단서5. 내가 누군가를 잘 알아보지 못한 몇몇 경우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얼굴, 머리 스타일, 키나 체격 같은 정보들을 내 기억 속의 어떤 누군가와 매치 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서6. 이 경우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린 경험이 있다.

단서7. 인터넷 보안을 위해 이상하게 왜곡된 숫자나 문자 인증을 자주 틀린다. 난 분명히 내 눈에 보이는대로 정확하게 입력했는데, 자꾸 시스템은 틀렸다고 한다.

단서8. 내 기억으로 이런 현상은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였고, 잘 떠올려보면 이전에도 사소하지만 비슷한 경험으로 엮을 수 있는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나는 이런 현상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거나 경험을 쌓아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서9. 앞으로도 시각 정보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해결해야 할 상황이 오면 과연 이 판단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쉽게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서10. 어쩌면 이 증상은 내 시력이 난시와 근시로 매우 나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임1. 마흔이 넘어서부터 노안이 왔다고, 내게 아직 노안이 안 왔냐고 묻던 선배들 이야기를 흘려 들었는데, 요즘 가끔 책을 읽다가 촛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은 증상을 겪는다. 이게 그 노안인건가? 이제 곧 다촛점렌즈 안경을 맞추거나 돋보기 안경을 하나 더 맞춰야 하는 건가? 아니 왜 난시에 근시에 겹쳐 노안까지 찾아오는거냐구!


불치병


언젠가부터 나는 이 증상 혹은 현상을 불치병이라 여겼다. 하나의 글에는 다 언급도 할 수 없을만큼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자신을 못 알아본 사실에 크게 화를 냈고, 어떤 이들은 당황한 후 별일 아닌 것처럼 대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후에 나를 무시하는 방식의 복수(?) 택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적도 수없이 많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누구였는지 궁금한 한 사람이 있다. 내 기억에 분명 한 때 그와 친하게 대화를 나눴던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그를 마주쳤을 때 그가 누구인지, 이름은 뭔지, 어떻게 만났고, 함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그와 함께 있었던 기억의 조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사라질 뿐이었다. 그가 다가와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을때, 나는 그가 선배인지, 친구인지, 아니면 후배인지를 얼른 떠올릴 수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 아! 정말 우리말과 문화는 왜 이렇게 사람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그에 따른 대응을 다르게 만들었던 말인가! 만약 영어였다면 그저 태연하게 "Hi" 한마디 했을면 괜찮았을텐데. 너무 당황했던 나는 그에게 아무 대꾸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고, 반갑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싹 가시더니 이내 황당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고 돌아서버렸고, 이후 그를 아주 가끔 마주쳐도 그는 나를 무시하고 못 본 척 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과연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 여러번 곱씹어 떠올려본 기억으로, 그는 아마 우연한 기회에 친해진 친구였던 것 같다. 짧은 기간에 빨리 친해졌고, 그러다 꽤 오래 서로 마주치지 못했고, 그날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내가 그를 못 알아본 것이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날 내가 널 무시하거나 일부러 그렇게 대한 것이 아니라고. 널 금방 떠올리지 못한 건 분명 잘못일 수 있지만, 내가 늘 그럴 수 밖에 없는 증상을 가졌다는 걸 설명해주고 싶다. 이외에도 길에서 마주쳤다가 내가 금방 알아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어떤 특정한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길에서 내 소중한 가족들을 못 알아보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지하철역 캠페인에서도 잘 아는 선배의 익숙한 얼굴을 보았는데, 한순간 그 얼굴이 너무 낯설어보여 혹시 아닌가? 잘 못 본가 싶어서 인사를 망설였는데, 문득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하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약 한 달 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오늘 아침 일을 계기로 적어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쎄게 매달리기 / 케틀벨 스윙


어제 밤 이젠 키가 많이 커서 내 눈높이 정도까지 자란 큰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왜 나는 쎄게 매달리기 안 해줘요?" 오랜만에 들은 단어라 뜻과 연결시키는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쎄게 매달리기'라는 단어는 작은 아이가 지은 이름으로 실은 아이들을 케틀벨처럼 안고 스윙 동작을 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네를 타는 기분을 느껴 재밌고, 나는 아이 몸무게 만큼의 강도로 운동하는 효과를 얻는다. "너 어릴때 많이 해줬어.", "기억 안 나.", "너 크고 나서도 많이 해줬어.", "지금 해줘.", "지금은 못 해. 너 키가 아빠랑 비슷한데 어떻게 해."


아마 아이는 문득 내가 작은 아이에게 그 쎄게 매달리기를 해주는 장면이 떠올라서 왜 자기는 안 해줬냐고 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농활가서도 동네 아이들을 죄 맡아 돌보고 같이 놀았고, 운동 단체 선배들의 아이들도 늘 데리고 놀았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놀 때는 몸을 움직이며 노는게 가장 좋은데, 그 중 최고는 아무래도 아이의 팔이나 겨드랑이를 잡고 빙글빙글 도는 동작이다. 아이가 순간적으로 공중에 뜨면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 든다. 그때부터 다양한 동작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아이들을 마치 바벨이나 케틀벨처럼 여기고 운동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이는 기분 좋게 놀고, 나는 운동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그런 동작들 중에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큰 아이가 언급한 스윙이다. 작은 아이 말로는 쎄게 매달리기. 자기 입장에선 나한테 매달려 있는 동작인데, 뒤로 갔다가 앞으로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뒤로 떨어지는 동작이 자신에게 '쎄다'라는 단어로 연결되었으리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계속 몸무게가 늘었으니 나로서는 따로 더 무거운 케틀벨을 사지 않아도 운동강도를 높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4~5학년 즈음까지 할 수 있다. 대략 10kg 에서 30kg 가까운 무게로 운동할 수 있다.


이 스윙 동작의 핵심은 케틀벨을 뒤로 당길 때 허리를 펴고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엉덩이를 최대한 접어서 힙힌지(Hip Hinge) 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Hinge 는 경첩이란 뜻으로 접었다 펴졌다 하는 동작을 말한다. 케틀벨 스윙은 힙힌지를 통한 전신운동으로 빠른 속도 많은 횟수를 반복하면 유산소 운동의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이다.


케틀벨은 크기가 작고 내 손 안에서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안은 채 힙힌지를 잘 만드는 것이 이 동작의 핵심이며, 아이의 재미와 나의 운동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이 동작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집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종종 해주곤 했는데, 그럼 어른들도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만약 그 장면을 다른 아이들이 본다면, 우루루 몰려와서 서로 나도 해달라고 난리가 난다. 그럴 때는 줄을 세워놓고 차례대로 서너번씩 해줘야 한다.


하루는 그렇게 몰려든 동네 아이들에게 스윙을 해주고 있는데, 트레이너이자 운동처방사로 일하는 분이 보더니 몸무게와 체형이 다른 다양한 아이들을 해주는데도 자세가 완벽하다고 칭찬했다. 그 당시 내가 스윙이란 운동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나이 차가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꾸준히 해주다보니 키가 크거나 작거나 덩치가 크거나 작은 아이들을 안고 힙힌지를 만드는 과정을 다양하게 해봐서 그랬을 것이다.


목마 타고 앉았다 일어나기 / 백 스쿼트


아이를 바벨 대신 안고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좋아했던 또 다른 동작은 아이를 어깨 위에 목마 태우고 내가 스쿼트 동작을 하는 것이다. 이는 내 뒷목과 어깨 위에 바벨을 얹고 앉았다 일어나는 백 스쿼트 동작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바벨 운동 중에 백 스쿼트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 관심사는 거의 언제나 스내치에 있었고, 스내치를 잘 하기 위한 동작으로 오버헤드 스쿼트가 있었다. 그래서 스쿼트 운동은 거의 언제나 오버헤드 스쿼트나 맨몸 운동인 에어 스쿼트로 했었다.


그런데 바벨이 아닌 아이를 태우고 하면 아이도 재미를 느끼고 딱딱하고 차가운 바를 목에 얹어 피부가 쓸리는 일도 없다. 아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니까. 작은 아이의 경우 어렸을 때는 재밌어하다가 조금 자란 후에는 오히려 무섭다고 겁을 먹곤 했다. 내가 운동 효과를 얻으려면 앉을 때는 천천히 앉고 완전히 쪼그려 앉은 풀 스쿼트 자세에서 잠시 멈췄다가 힙드라이브 힘으로 빠르게 일어나야 하는데, 그 동작이 너무 빨라 무섭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태우고 스쿼트를 할 때는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


백스쿼트는 비교적 무게를 올리기 쉬운 온동이다. 아이가 자라도 꾸준히 해줄 수 있다. 다만 나는 어깨 부상과 무릎 부상 이후로 무게를 드는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해 한동안 해줄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큰 아이는 어려울테고, 아직 작은 아이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위에 앉히고 윗몸 일으키기


지금은 주로 철봉에 매달려 레그레이즈나 토우 투 바 동작으로 복근 운동을 하는데, 예전에 실내 철봉을 사기 전에는 늘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아, 사실 윗몸 일으키기는 순수 복근 운동을 아니다. 상반신 전체가 아닌 복근 위쪽만 들어올리는 크런치 동작이 오히려 복근 단련에는 더 필요한 운동이다.


여기에 무게를 더하려면 주로 바벨 원판을 가슴에 얹고 하거나 덤벨을 얹고 해야 한다. 이는 차갑고 자꾸 미끄러져서 불편하다. 대신 누운 상태에서 아이를 내 가슴 위에 앉히고 양 팔로 잘 안은 후에 윗몸 일으키기 동작을 하면 효과적이다. 이때 아이가 내 얼굴을 자기 다리 사이에 두게 되는데 그래서 큰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안 하겠다고 했다. 아마 부끄럼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 동작은 주로 작은 아이를 올리고 했다.


처음엔 계속 윗몸일으키기 동작을 최대한 정자세로 하려고 노력하고, 힘을 떨어진 후에는 클런치 동작으로 전환해 몇 개라도 더 했다. 완전히 지쳐 도저히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몸을 들어올려야 한다. 이따 가장 주의할 점은 다리를 반동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코어 근육 단련이 필수이고, 이를 위해 벽에 발을 붙인다던가, 의자 다리를 활용한다던가 다양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아이를 배 위에 앉게 하고 아이가 앉은 방향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변형 동작을 해 볼수 있다. 작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 몸 위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나는 그 점을 활용해 아이의 무게로 다양한 코어 단련 동작을 해 볼 수 있었다. 


등 위에 앉히고 팔굽혀펴기


영화에도 종종 나오는 아이를 활용한 가장 대중적인 운동 동작은 등 위에 아이를 앉히고 하는 팔굽혀펴기 동작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무게 푸쉬업에 익숙한 숙련된 사람들에게 가능한 동작이다. 맨몸 푸쉬업을 주로 했고, 무게 푸쉬업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척 어렵더라. 작은 아이를 앉혀 놓고 간신히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억지로 두 세개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정자세로 10회 이상 꾸준히 할 수 있을만큼 힘이 있다면 아이가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텐데, 펌핑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는 그만큼의 팔힘을 갖지 않았다. 아이도 이 동작만큼은 재미가 없다며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예전에 고민해보고 함께 놀면서 다양한 동작을 생각해보곤 했던 것 같은데, 그러지 않은 지도 어느새 몇 해가 지나 이젠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은 사춘기 큰 아이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아직 어린 작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느낀다. 이제 몇 해만 더 지나면 작은 아이도 더이상 나랑 놀아주지 않겠구나 싶다. 아직 놀아줄 때 최대한 열심히 재밌게 잘 놀아야지. 더불어 큰 아이와 잘 놀 수 있는 방법이 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다 나중에 이 녀석들이 성인이 되면 아빠랑 같이 술 마셔주려나? 내게 최고의 선물은 아이들이 사주는 술일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9-08-0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이들고 함께하는 운동이네요.운동도하고 아이들과의 친밀감도 높이고 일석이조인것 같아요^^
 

어떤 주말


하필 마감일이 일요일이었다. 보통은 금요일 저녁 6시가 마감일인데, 왜 일요일을 마감일로 정했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금요일 저녁 7시 50분 무렵 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어딘가 허름한 술집에 구겨진 듯 앉아 소주 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고, 바짝 구운 고기 조각을 씹거나 매끈한 하얀 생선 횟를 입에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감 시간이 되기 전에 서류를 완성해서 제출해야 했고, 주말에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금요일 밤에 일을 해야 했다.


머리 속의 내가 자꾸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를 들이부어서 그런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도 마치 취한 것처럼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자꾸만 손가락이 엉뚱한 자판을 두드리고, 자꾸만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튀어나오고 그러다 문득 잔뜩 두드려놓은 A4 절반 분량을 그냥 통째로 지워버렸다. 속으로 욕을 한 마디 하고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웃 사무실들은 대부분 퇴근한 후로 이 건물에 불이 켜진 사무실은 서너개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며 도박을 하나 걸었다. 평소 자주 술 마시는 후배에게 연락해 만약 시간이 된다고 하면 그냥 확 술을 마셔버리고, 일은 일요일 저녁으로 미뤄버리자. 만약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억지로 머리를 짜내어 일을 마치고 밤 늦게 혼자 집에 돌아가 뭔가 폭력적인 영화를 틀어놓고 술을 마셔야겠지. 어느 쪽이 될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확률은 반반이니까.


후배는 아직 퇴근전이고 다른 일정은 없다고 했다. 즉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얘기. 녀석은 약 1시간 반 후에 내가 앉아 있는 동네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1시간 반 안에 일을 다 마칠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놓고 술을 마신 후 남은 건 주말에 해야했다. 시간은 총알처럼 흘러가 어느새 후배가 도착했고 우린 가끔 가는 양꼬치 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날 어쩌면 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던 건지 모르겠다. 1차에서 후배와 평소보다 술을 더 마셨고, 충분히 마셨다며 후배가 돌아간 후에도 나는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기를 뒤져 이 늦은 시간에 연락이 가능한 사람이 누구일지 살폈다. 누군가의 이름에서 손가락이 멈췄고 나도 모르게 내 손가락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채 다 피우기도 전에 답이 왔다. 나는 2차로 그와 술을 또 마셨다. 평소라면 아마 1차에서 이미 허용치를 넘겨 술을 마신 상태였을텐데, 그날은 스트레스와 비례해 주량도 올라가버린 것 같았다.


떠들고 웃고 잔을 비우고 소주를 또 시키고 맛도 못 느끼며 안주를 입에 집어넣고 다시 떠들었다. 해가 뜰 무렵에야 술집을 나왔다. 술동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토요일 저녁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마감이 일요일인 서류 생각이 났는데, 그 생각을 애써 떨쳤다. 마감은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이었다. 나는 냉장고를 뒤져 간단한 술 안주를 만들었다. 왠지 운동을 하고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잠시 했지만, 오늘은 그냥 스킵했다. 밤새 그렇게 술을 마셔놓고 또 술이 땡겼다. 며칠전 사놓은 보드카와 토닉워터와 얼음과 냉장고를 뒤져 만든 간단한 안주 2개를 놓고 다시 술을 마셨다. 술은 술술 잘도 들어갔고, 절반쯤 남아있던 보드카는 금방 바닥났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고, 라면을 끓였다. 라면과 소주는 언제나 환상의 궁합이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반복하다가 소주병과 라면을 모두 해치우고 자리에 누웠다. 휴대폰 화면은 어느새 일요일이 되었음을 알렸다. 일요일이 마감인 서류를 잠시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일요일 오후 다시 눈을 떴다.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기름때가 묻어서 따로 빼놓은 빨래 두어개를 빨래비누로 문질러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음악을 틀어놓고 설겆이를 했다. 설겆이를 마친고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 마감인 서류를 생각했다. 담배가 땡겨 우산을 쓰고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폰을 열고 밀린 대화들을 확인했다. 중국 여성들, 인도네시아 여성, 브라질 여성, 미국 여성 몇 마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너의 주말은 어때?", "금요일 밤부터 술만 마셨는데, 벌써 주말이 다 지나버렸네." 이런 저런 말들을 주고 받은 후 빨랫대에 지난 일요일 널어놓은 빨래들을 걷었다. 매일 아침 기분에 따라 입고 나갔던 옷들과 양말들을 빼고 남은 것들이었다.


마침내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빨래를 널었다. 그제서야 배가 고팠다. 새벽에 먹은 라면과 소주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였다.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찌면서 다시 이제 마감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서류를 떠올렸다. 금요일 밤 사무실에서 두드리다 만 상태에서 단 한 글자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나 대신 그 일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두를 집어먹으며 노트북을 켰다. 문서를 열었는데, 너무나도 일을 하기가 싫었다. 느려터진 노트북을 보다가 사무실을 나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비도 오고 오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누웠다가, 아니 마감이 코앞이지 생각에 일어났다가, 몇 글자 두드리지도 않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자정이 얼마 남지 않아서야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시간 30분 동안 나는 믿을 수 없는 집중력으로 서류를 완성했다. 만약 금요일 밤에 이 정도 집중력이 생겼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을텐데, 그렇게 서류에 집착하면서도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홀가분하게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했다가 깨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평소와 같은 주말을 보내지 않았을까?


암튼 완성한 서류를 제출하려고 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첨부파일을 넣었는데, 자꾸만 전송 오류가 떴다. 이제 마감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왜 이 놈의 메일은 파일을 자꾸만 뱉어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가와서 인터넷이 문제 안 되나? 낡아 빠진 노트북이 문젠가? 그렇다고 지금 사무실을 나갈 수도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어 자꾸만 전송 오류가 나는 메일 재전송을 누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마감 시간이 지나버렸다. 자정을 넘겨 어느새 월요일이 되어버렸다.


다시 파일을 열어서 검토하다보니 서류에 첨부한 몇몇 이미지 용량이 너무 커서 전송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첨부한 이미지들 십여개를 모조리 따로 저장해 용량을 줄이고 다시 첨부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문장을 다듬고, 몇몇 표현을 고치고, 몇몇 표의 여백과 정렬을 바로잡았다. 다시 서류를 첨부해 메일을 보내니 이번에는 제대로 전송이 되었다. 마감 시한이었던 일요일 밤 자정에서 2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자꾸만 술이 땡겼지만 어제 밤 다 마시고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떤 월요일


그리고 월요일 아침 접수처에 전화를 걸어 내 서류가 무사히 접수되었는지 확인했다. 담당자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확인했다고 답했다. 마감 시한을 2시간 넘게 넘겼지만 받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일을 했다. 회의를 하고, 전화를 걸고 받고 또 전화를 걸고 또 회의를 참석했다. 오후가 되어 문자가 한 통 왔다.


일요일이 마감이던 서류 접수를 일주일 더 연장해 다음주 일요일까지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지만 간신히 욕을 내뱉는 건 참았다. 그저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서류 첨부가 되지 않아 조바심을 내면서 재전송을 무한 반복했던 지난 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첨부한 이미지 전부를 용량 조절해 다시 작성했던 기억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월요일이라 회의가 많았다. 낮에 회의를 두 개나 했고, 여러 기관과 여러 단체와 조율해야 할 일도 많았다. 저녁 7시 반에 시작 예정이었던 회의는 10분 늦게 시작해 1시간을 조금 넘겨 끝났다. 회의가 끝났지만 몇몇 이슈를 갖고 약 30분 넘게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이 건물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몇몇 밀린 일을 처리하고, 화요일 아침 강의 자료를 훑어보며 강의할 내용을 머리 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알라딘에 접속해 몇 개의 글을 읽고 다다다 이 글을 두드렸다. 시간은 또 금방 흘러 다시 12시가 지났다. 화요일이다. 아침에 강의하러 가려면 이제 빨리 집에 가서 자야할텐데. 집 앞까지 가는 버스 막차는 아마 좀 전에 끊겼을 것이다. 중간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도중에 내려 걸을지, 처음부터 집까지 걸을지 고민해 본다. 


왠지 오늘도 술을 한 잔 마셔야 잠이 들것 같다. 과연 나는 집 근처 편의점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ind 2019-07-30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술을 정말 너무 좋아하시는군요. 달달한 술맛에 한번 빠지면 기가 막히게 기분이 좋아지지요. 윗글도 보아하니 술기운의 에너지가 써낸 느낌입니다. 구라 솜씨 좋은 소설가의 소설처럼 읽는 맛이 당깁니다. 재밌게 잘 읽었네요. ^^

감은빛 2019-08-04 14:12   좋아요 0 | URL
˝구라 솜씨 좋은 소설가의 소설 처럼˝이란 말씀 칭찬으로 들리네요.

이 글은 술기운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야근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쓴 글이에요.
고맙습니다!

cyrus 2019-07-30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덜 사게 되니까 편의점에 가서 지출되는 돈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겼어요. 다음 달 휴가를 집에서 보낼 생각인데, ‘휴가 기간에 읽을 책’을 사고 싶다기보다는 ‘휴가 기간에 먹을 것’을 뭘 살지 고민 중이에요.. ㅎㅎㅎㅎ 당연히 ‘먹을 것’에 술도 포함되어 있어요.. ^^;;

감은빛 2019-08-04 14:13   좋아요 1 | URL
책을 덜 사서 지출이 늘었다니!
그렇다고 책을 더 사시라고 말씀도 못 드리겠네요.
휴가 기간엔 뭐니뭐니해도 맛있는 것 잔뜩 먹고 푹 쉬는게 제일 중요하죠!
편안하고 재미있는 휴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루스님.

카스피 2019-07-3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술을 먹으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하던 일도 떄려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리인데 감은빛님은 참 대단하신것 같아요^^

감은빛 2019-08-04 14:15   좋아요 0 | URL
저는 술을 적당히 마셔도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뭐든 다 합니다.
오히려 어떨 때에는 평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게 될 때도 있어요.
가끔 일이 남아있는데 술자리를 꼭 가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날엔 2차 정도까지만 술을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기도 하거든요.
 

어떤 강의


업무상 친하게 지내야 하는 어느 분이 본인 조직의 젊은 직원들이 사회적경제에 대한 공부모임을 갖고 있다며, 내게 발전소 견학과 함께 에너지협동조합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앞으로 두고 두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일이 많은 관계이기에, 당연히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머뭇머뭇거리면서 별도로 비용이 나올 수 없는 비공식 모임이라 강사료를 드릴 수가 없다고 미안해했다. 그래서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까짓 한두시간 떠드는 것 정도야 해줄 수 있다 싶었다. 당장 올해에도 그쪽과 거래가 있을거라 한두시간 투자는 손해가 아니다. 게다가 다른 직원들이 에너지협동조합에 대해 잘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오히려 이득이다 싶었다.


그래서 어제 발전소 설명과 더불어 에너지협동조합에 대한 짧은 강의를 했다. 늘 설명을 하다보면 말이 길어지는 편이라, 어제도 주의하면서 했는데, 역시나 예상보다는 길어졌다. 8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집중해서 들어줘서 고마웠다. 질문도 많이 나왔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어떤 선물


그들이 다들 손에 뭔가 선물 세트 같은 걸 들고 있어서 뭔가 했는데, 다 마치고 나서 강사료도 못 드리는데, 각 단위별로 가져올 수 있는 선물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선물세트 5개와 긴 장우산 하나를 받았다. 다 받아보니 부피도 크고 무게도 제법 나가서 집으로 가져갈 일이 문제였다. 받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해보니 대부분 샴푸, 비누, 치야 같은 것들일 것 같았다.


나는 환경단체 활동가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샴푸를 쓰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머리를 감는 날이 대부분이고, 가끔 비누와 식초 등을 이용하고 EM발효액을 이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비누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즉, 샴푸와 비누 선물세트는 내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그걸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 받아들고 나오다가 그 생각이 들었는데, 무겁게 이걸 집으로 가져가야 하나 싶었다.


어떤 귀가


강의를 했던 공간은 우리집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딱 하나 있는데, 이 노선은 엄청나게 돌아가기 때문에 평소에는 거의 타지 않는다. 그래서 집으로 갈때 걸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강의를 마친 후 본격적인 퇴근시간이 시작되는 6시 반쯤 버스를 타면 완전 만원버스 일텐데, 양손 가득 선물세트를 들고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니 버스를 탈수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거운 선물들을 들고 집으로 걸어갈 수 밖에. 출발하기 전에 경로를 머리속에 그려봤는데, 도중에 만나는 인도를 점유한 재래시장은 사람도 많고 통로가 좁아서 도저히 이 짐을 들고 걸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 경로를 피하려고 골목길을 따라 가는 길을 생각해봤는데,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 어떨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대략 45분쯤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엔 그래도 걸을만 했는데, 전체 경로의 4분의 1도 못 걸어서 벌써 손잡이 줄이 손가락을 파고들어서 손이 아프기 시작했다. 도중에 우연히 버스를 기다리는 친한 후배를 만났다. 후배에게 하나 가져가라고 제일 부피가 큰 선물세트를 하나 내밀었는데, 그 녀석도 자기는 샴푸나 비누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며 제일 부피가 작은 톳 선물을 챙겼다. 크 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아까 선물세트를 잔뜩 받을때부터 다른 건 다 쓸모 없어도 톳은 맛있게 요리해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녀석이 가로채버렸다. 그렇다고 하나 가져가라고 이미 말한 마당에 그건 안 돼!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나 대신 녀석 가족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며 바쁜 발길을 재촉했다.


걸으면 걸을 수록 점점 손가락이 아파왔고, 걸음도 무거워졌다. 이 선물세트들만 없었어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어서 갔을텐데, 땀이 줄줄 흘러내려 윗옷과 속옷과 바지가 다 젖어도 땀을 닦을 손조차 없었다. 게다가 절반쯤 걸었을 때부터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막판에는 손이 아파 좀 쉬다 가고 싶었어도 화장실 때문에 멈출수 없었다. 강의하면서 말을 많이 해서 마치자마자 물을 잔뜩 들이켰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무거운 선물세트를 들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하니 정확하게 45분이 걸렸다. 만약 소변이 급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잠깐씩 쉬었을텐데, 그럼 아마 50분이 넘게 걸렸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배가 고파 간단히 먹을 걸 챙겨 먹고 나서 선물들을 풀어보니 거의 80퍼센트가 샴푸와 비누와 치약이었다. 무거운 선물을 들고 고생해서 걸어온 것이 조금 허무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선물은 텀블러였다. 내가 가진 스테인레스 텀블러들은 모두 크기가 작았는데, 이번에 받은 건 길어서 마음에 들었다. 치약과 칫솔들도 언젠가는 쓸테니, 괜찮았다. 도저히 쓸일이 없을 것 같은 샴푸와 비누는 일단 그대로 다시 넣어놓았다. 선물세트 2개를 다시 원상태로 넣어서 작은 방 구석에 두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줘버려야겠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어제 땀에 완전히 젖어버린 바지를 벗으며, 이제 긴바지를 못 입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공식적인 일정이 있는 날엔 긴바지를 입겠지만, 상황을 봐서 괜찮다 싶은 날엔 반바지를 입고 다녀야겠다.


운동 또 운동


스내치라는 운동에 완전히 매료되어 오래동안 쉬고 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던 게 8년쯤 전이다. 꾸준히 계속 운동을 했으면 좀 달랐을텐데, 도중에 일이 바쁘다는 핑계와 게으름 그리고 2번의 큰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자주 쉬었다. 그 도중에도 아예 운동을 멈춘 것은 아니나 그 강도를 생각해보면 그저 최소한의 현상유지 정도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다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올해 4월이다. 4월부터 워밍업을 시작해서 6월부터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했다. 그래도 3달 이상 쉬지 않고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어느 정도 몸이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는 샤워를 하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렇게 선명한 복근을 다시 본 게 3년 만인가? 그런데 그날 저녁 아이들과 비싼 식당에서 외식을 하면서 작은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어치우느라 과식을 했고, 이번 주에도 저녁 술자리를 비롯해 두세번 가량 과식을 했더니 오늘 아침에는 그만큼 선명한 복근을 볼 수 없었다. 식탐을 줄이지 않으면 복근을 다시 볼 수는 없다. 식탐을 멈출수 없다면 그만큼 운동을 늘려야 하는데, 운동에만 매진하는 직업 운동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직장인, 사회인이 지금보다 운동을 더 늘리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식탐


어려서부터 밥만 많이 먹고 자랐다. 반찬은 거의 먹지 않았다. 어쩌면 그 버릇은 싱겁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에 김치와 같은 짠 반찬이 주로 놓였던 어릴때 밥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김치 한 조각에 밥 두 숟갈. 이런 식이면 최소한의 반찬으로 최대의 밥을 먹을 수 있다. 가난했던 우리 집엔 김치, 깍두기, 깻잎조림 등 짠 반찬들이 대부분이었고, 계란 프라이 조차 자주 보기 어려웠다. 


국민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에서 도시락을 받았는데, 반찬이 죄다 상해있었다. 선생님들은 먹지 말라며 이미 나눠준 도시락을 다시 걷었다. 내가 밥을 먹어보니 밥은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고 밥만 먹었다. 주위의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모두 어떻게 반찬도 없이 밥을 먹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평소랑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갖고 다니던 도시락은 밥통만 남들보다 1.2배 이상 컸다. 그리고 반찬은 아주 작은 통에 넣고 다녔지만, 그마저도 늘 남았다. 그 밥을 다 먹고도 컵라면을 사먹기도 했다. 그렇게 먹어도 키도 작았고, 덩치도 작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짧은 기간에 키가 커서 반에서 중간 가량 되었는데, 그 이후 다시 키가 크지 않았다. 지금 키가 당시 키와 거의 마찬가지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첫 MT를 가서 조별로 밥을 해먹었는데, 우리 조는 밥을 많이 해서 다들 밥이 많이 남을 거라 걱정을 했다. 나는 아닐거라고 말하며 밥솥을 끌어안고 밥을 퍼먹었다. 다들 깜짝 놀랐다. 대학 동기들과 술을 마시러 갈 때 만약 회를 비롯해 비싸고 맛있는 안주를 먹을 예정이라면 친구들은 미리 빵을 준비해 술먹으러 가는 내게 먹였다. 그 빵 다 먹지 않으면 술 못 마실줄 알아라.


서울에 자리 잡은 친구 자치방에 처음 놀러가는 날, 친구가 물었다. 밥만 많이 해놓으면 되지? 이렇게 살았어도 나는 내가 조금 많이 먹는 편이지만, 식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밥을 좀 더 먹는 편이다. 정도로 생각했다.


내가 식탐이 있구나를 처음 깨달았던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포상 외박을 받아서 혼자 밖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혼자 여관방을 잡아놓고 맛있는 걸 잔뜩 사다놓고 밤새 먹다가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돈이 없었다. 당시 상병 월급은 1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외박을 나왔으니 계좌로 돈을 조금만 보내달라고 했다. 아마 10만원 가량 보내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중 5만원 가량 음식과 술을 사는데 쓰고 2~3만원 가량을 숙박비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속초 시내에 허름한 여관방을 잡아놓고, 그 주위 가게들과 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술과 음식을 샀다. 구체적으로 뭘 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다 먹기 어려울만큼 많이 샀던 건 확실히 기억한다. 여관방에 콕 처박혀서 티비를 틀어놓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정말 먹다 지쳐서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나 남은 음식을 마저 먹고 부대로 복귀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 기억을 떠올리며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먹을 수 있었을까 싶다. 더 무서운 건 당시 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30대 중반 즈음부터 먹는 양이 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매 때문에 일부러 양을 줄였고, 이후로는 먹고 싶어도 더 못 먹겠더라. 그리고 4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먹는 양이 줄어들었다. 가끔 만나는 대학 동기는 지금 내가 먹는 양을 보고 예전 대학시절을 회상하면 비교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도 내 기준으로 보면 나는 지금도 많이 먹는 편이라 생각한다. 더 줄여야겠지. 자신은 없지만. 더 줄여서 꼭 필요한만큼만 먹고 살면 좋겠다. 


하지만 이렇게 써놓고도 오늘 저녁 분명 술과 안주를 과하게 먹지 않을까 싶다. 대신 오늘도 운동은 착실히 해야지. 내일 아침에 거울 앞에 설 내 모습이 어떨지 모르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7-1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5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7-1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톳스틸러ㅎㅎㅎㅎㅎ
3년만에 재회한 선명한 복근 축하드립니다.

저는 복근이랑 못 보고 지낸지 올해로 40년쯤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30대 중반입니다.....

다락방 2019-07-19 23:49   좋아요 0 | URL
으으 분하다... 톳 스틸러 같은 거 내가 생각해냈으면 좋았을것을.... 으으 .........

syo 2019-07-20 00:56   좋아요 0 | URL
syo가 더 빠르고 그런 날도 있어야지요.
언제까지 센스애서 다락방님한테 밀리기만 할 수는 없다!

감은빛 2019-07-25 23:35   좋아요 0 | URL
톳스틸러! ㅎㅎ

사실 당시에 좀 표정관리가 안 되었는데,
금방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그 후배 가족이 맛있게 먹으면 다행이죠.

늘 센스가 넘치는 다락방님과 SYO님 덕분에 알라딘 마을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익숙한 일,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해야하는 일


요즘 계속 일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거의 장점이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자신있게 장점이라 내세울 수 있는게 그나마 집중력이었다. 문서 작업을 하거나, 회의에 참여하거나, 강의를 할 때도 내 장점은 집중하는 것이다. 회의에 집중하니,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찾거나, 흐름을 잘 짚는 편이다. 나중에 회의를 복기하면서 회의록을 작성할 때에도 집중했던 만큼 거의 대부분의 발언들과 핵심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 강의를 할 때도 듣는 이들이 내가 집중하는 만큼 열심히 들어주는 편이다. 한번 내 강의를 들었던 이들이 다시 나를 찾는 이유도 집중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일에 집중을 못하겠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하기가 싫다! 벌써 며칠째 서너가지 일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 어제 만난 친한 후배가 곧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사실 그가 그만둘 생각이라는 말을 벌써 몇 달전부터 해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장이 도무지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나도 동의했다. 그가 회사를 옮기는 걸 벌써 여러번 보았다. 능력이 있으니 그리 힘들지 않게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으리라. 다만 오래 일할 수 있는 괜찮은 직장을 만나지 못하고 자꾸 그만두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직장이 과연 있나? 간혹 있더라도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 같다. 

그가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다고 퇴사를 선언하는 걸 보면서 부러웠다. 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서부터 바로 생각이 막힌다. 아이들 양육비와 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무조건 직업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앞으로 최소 10년 정도는 돈 버는 삶을 지속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내 생활비 정도는 일터로 출근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을 듯 하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살면 되니까. 지금 이 일터도 현재 조건에서는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활동비가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최저임금 상승과 함께 올라서 이 정도 받으면 괜찮다 싶다.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있고, 당장은 내가 그만두고 싶어도 나를 대신할만큼 이 일에 익숙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익숙한 일과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과 해야하는 일에 대해 생각이 이어진다.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고 싶지만, 현실은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 다음 선택은? 잘하는 일이어야 할까? 아니면 익숙한 일? 내가 잘하는 일은 과연 뭘까? 익숙한 일은? 막상 냉정하게 따져보면 잘 모르겠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번호 붙여 말하기


회의에서 발언할 때나 강의할 때 번호를 붙여가며 말하는 편이다. 이건 총 3가지인데, 첫째는 어쩌구 저쩌구, 둘째는 어쩌구 저쩌구 이런 식이다. 이렇게 말하면 좋은 점이 3가지 있다.

 

우선 듣는이가 내가 말하려는 핵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번호 다음에 오는 핵심 내용을 잘 듣고, 이어지는 설명은 꼭 듣지 않아도 된다. 둘째로 내 말이 언제 끝날지 예상할 수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말을 듣는 것보다 여기까지 말하면 끝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듣는 일이 훨씬 쉽고 잘 들린다. 처음부터 몇 가지를 말할지 정해줬기 때문에 듣는 이들도 예상하고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잠시 흐름을 놓쳤다가도 숫자를 들으면 다시 듣기에 집중할 수도 있다. 듣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의 말에 무조건 계속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흐름을 놓치기도 하는데, 다시 집중할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은데, 번호를 붙여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금요일은 무척 더운 날이었다. 저녁에 작은 아이를 만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이에게 "오늘 무지 더웠지?" 하고 물었다. 아이의 답은 "어, 근데 아빠. 나는 별로 안 더웠어. 왜 그런지 알아? 이유가 2개 있어" 였다. 그리고 아이는 "첫째는 학교와 피아노 학원에서 에어컨을 틀어줘서야. 피아노 학원에서는 에어컨을 너무 빵빵하게 틀어서 오히려 추웠어." 라고 말한 후 잠시 기다렸다가 "두번째 이유는 학교와 피아노 학원 그리고 학원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서 더위를 느낄만큼 밖에 있지 않아서야." 라고 말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2가지를 떠올렸다. 우선 아이도 나처럼 번호를 붙여서 말하는 구나. 평소에 많은 회의에 참여하면서 안타까운 점은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그들이 말을 하다가 자꾸 엉뚱한 주제로 빠지거나, 배경 설명만 하다가 정작 해야할 말은 잊어버리고 마는 등의 경우를 의외로 자주 본다. 그럴 때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번호 붙여 말하기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벌써 저런 방법을 터득해서 구사하는 구나 싶었다. 두번째는 아이는 저렇게 말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을까? 분명 학교에서 가르쳤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 누군가에게 배웠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그 누군가가 어쩌면 나일수도 있고, 애들 엄마일 수도 있겠다.


암튼 조리있게 말을 잘 하는 아이를 보면서 대견하고 기특하다 여겼다. 물론 내 딸이니까 그런 별 것 아닌 일이 대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잘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리라 확신할 수 있겠다.


기후 위기, 멸종 저항, 폭염, 그레타 툰베리


해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 강의자료를 만들기 위해 해외 문서들을 중심으로 찾아보니 정말 2000년대 초반부터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폭염과 한파, 가뭄과 홍수 등의 이상 기후가 일어나고 있었다. 작년의 폭염에 이어 우리나라도 지금 다시 폭염이 기승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렵에는 45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고, 인도는 이미 50도가 넘었다고 한다. 알래스카에서는 폭염으로 빙하가 녹아 홍수가 일어났고, 산불이 일어났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시에서는 한 여름에 우박이 1.5미터나 쌓일 정도로 내렸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현 상황을 "기후 위기"로 정의하고, 인류 멸종에 대한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겼다. 그레타 툰베리라는 스웨덴의 청소년은 등교를 거부하고 각국 정부가 이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기후 환경 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이 그레타의 운동에 발맞춰 청소년 기후 환경 소송을 준비중이다.


작년 늦여름 북극의 영구동토층에서 관측이래 한 번도 녹지 않았던 '최후의 빙하'가 녹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학자들은 이미 기후변화의 속도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라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국면에 도달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파국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우리나라 정부는 여름철 전기 요금을 내려주겠다는 황당한 발표를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모으기 위한 정책이라는 게 너무나도 눈에 뻔히 보인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전기요금이 저렴한 나라는 없다. 한국전력 경영 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저렴하기도 하지만, 원료비 외에 송전과 배전 비용이 거의 책정되어 있지 않다. 상식적이지 않고 불합리하게 저렴한 가격이다. 


기후 위기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다양하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핵발전과 화력발전에 기대어 에너지를 펑펑 쓸 수는 없다. 표를 모으기 위해 여름에 한시적으로 요금을 낮춰주는 정책 따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정책 결정론자들은 이제는 온대기후라고 말할 수 없는,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을 못 느끼나? 인류 문명이 태풍 앞의 작은 불씨처럼 위태로운 현실이 안 보이나? 만약 청소년들이 정부를 상대로 기후 소송을 걸면 우리나라 정부는 무조건 유죄를 받게 될 것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7-09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9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7-0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감은빛 님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감은빛 님과 완전한 대척점에서 강의를 하시는 분이 정희진 선생님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 분 강의 듣는 거 진짜 엄청 좋아하는데, 이 분의 경우 얘기하다가 엄청 삼천포로 빠지시거든요. 의식의 흐름대로 얘기하셔서 너무 제 스타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가 물론 다시 요점으로 돌아오긴 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 의식의 흐름대로 쭉쭉 나아가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거기에서도 뭔가가 막 쏟아져 나와서. 물론 워낙 많은 걸 알고 계신 분이셔서 그렇겠지만요.

제가 정희진 쌤 좋아하는 건 아마 저도 그런 타입이기 때문인것 같아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해서, 감은빛 님이 말씀하신 번호붙이기... 는 제 인생에 없네요.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고보니 여태 한 번도 글을 쓸 때도 그렇고 말을 할 때도 첫째는, 둘째는..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ㅏ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쩐지 웃김)

감은빛 2019-07-19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정희진 쌤 강의를 무척 좋아해요.
그리고 다락방님 말씀에 완전 동의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댓글을 읽었습니다.
다락방님이 말씀하셨듯이 내용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막 가다가,
어느 순간 딱 원래 흐름으로 돌아오더라구요.
이것도 다 엄청난 내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번호 붙여 글을 쓰거나 말하는 것이 꼭 좋다는 건 아닌데,
최소한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하는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강의에서는 짧은 시간안에 한정된 내용을 다 설명해야 해서,
시간에 쫓기다보니 자주 그러지만,
시민들에게 강의할 때는 늘 그러지는 않습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할 때도 있어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