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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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울 인구의 56.9%가 아파트에 거주한단다. 울산이나 대전, 대구는 그보다 더 높은 64%이다. (나는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 의지가 담긴 것은 아니다. 주거 형태의 다양화를 위해 아파트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가 하는 논의들이 거론된다지만, 그러거나 어쩌거나 간에, ‘언제 한번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살아보나 하는 로망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아이들 키우기에는 -아이들의 동네 친구들을 만들어준다거나 하는 점에 있어서- 대단지 아파트에서 키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점들에 미련을 갖고는 한다.)  

그렇다면, 시골은 어떨까?  친한 친구가 올초 결혼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 전주 인근에 내려가 살고 있다. 처음에는 직장에서 제공하는 관사에 살다가 불편함이 많아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대도시 사람만 아파트를 편리한 주거 환경으로 꼽는 게 아니다. 그런데, 논가운데 있는 아파트이다 보니, 자연의 냄새(?) 말고도 다른 냄새(농약?)를 맡으며 살아야 하는 게 애로 사항이라서 얼마전에 필터값이 눈돌아가는 고가 말고, 물로 씻어 쓸 수 있는 착한 가격에 속하는 공기청정기를 눈물을 머금고 질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 호흡기도 고려하고 해서, 한번 구해봄이 어떤지 하면서, 자신의 쌔끈한 공기청정기를 찍어 전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한국 사회는 아파트 공화국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시설이나 주거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현대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일종의 내시경으로 간주했다. 아파트를 알면 오늘 한국 사회의 특성과 추이가 보인다는 예단에서다. 우리 시대 한국 사회의 영욕은 물론,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대저택 역시 주인을 잃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틈바구니를 비집고 새로 성장한 도시 중산층이 귀족의 대저택을 아파르트망별로 나누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날 아파트의 기원이라고 한다. "

"르 코르뷔지에는 도구로서의 주택 개념을 제안하면서 주택을 '거주용 기계'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그는 거주용기계로서의 주택이 건축행위를 통해 궁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

"아파트가 도시생활의 전형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았지만, 물론 도시 사람들만 아파트에 살고 도시 사람들만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농어촌 지역에서도 아파트거주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읍면 소재지치고 고층 아파트 몇 동 들어서 있지 않은 농어촌 지역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아파트를 흔히 '논두렁 아파트'혹은 '밭두렁 아파트'라고 부른다. 주변 외관이나 풍광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혼자 높이 솟아 있다는 뜻에서 '나 홀로 아파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나홀로 높아진 아파트가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망친다고, 가끔 농촌을 찾는 도시인들이 불만을 토로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항변은 "우리가 시골에 산다고 아파트에서 살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느냐'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떠도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농촌에 노총각이 많은 이유도 현대적 주거양식인 아파트가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한국의 중상층계급에게 있어서 아파트란 단순한 주거공간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자신들의 신분이나 지위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보여주는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다. 서구사회의 전통적 상류계층에게 있어서 문화자본은 상속이나 학력 등을 통해 지식이나 교양, 기능, 취미, 감성 등이 체화된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것은 급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되는 경향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쉽게 흉내 내거나 범접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이에 반해 최근 수십 년 동안 국가주도 압축성장과 동반 성장한 한국의 지배계급에게는 그와 같은 온축과 내공을 갖춘 문화자본이 없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왕 신분을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보다 절박한 것이며, 이때 특정 지역 내 고급아파트 집단 거주야말로 그것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기 쉽다. "

"1990년대까지도 소설가 이외수는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넷"이라고 핍박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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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1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산이지만, 끝자락인지라 앞뒤로 우리 마을 빼고는 논밭이예요.
결국 농지를 점령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아파트들인거죠.
공기가 좋아서 좋아라 하지만, 한번씩 비료(?) 냄새가 진동을 하죠.

음, 페이퍼를 읽다보니
제가 참 위선적이구나 그런데 어떻게 해결을 못 할거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대단위 아파트가 사실 살기 편리하거든요. 정원있는 집을 꿈꾸지만,
단독 주택이 무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제가 자연을 갉아먹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면 또 그것대로 심란하구요..........

인간으로 산다는게, 항상 부조리의 연속같아요. 그래서
더욱 따스한 시선을 유지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

icaru 2011-10-12 15:48   좋아요 0 | URL
ㅎㅎ 맞는 말씀야요!
부조리할 수밖에 없죠.
환경생물학적으로는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더미들이 끼치는 오염과 파괴가 만만찮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요. 참, 주거 문제라는 게 부동산이라는 재산가치와 맞물려서도 그렇고 많은 화제거리를 갖다 주네요...
뭐니뭐니해도 일상은 단순하고 쾌적해야...
노후에는 전원 생활을 꿈꾸기도 했었거든요. 그럼 다들, 아플 때 병원 가는 것도 그렇고, 불편한 점이 많아 되려 나이들수록 도심으로 나와 살아야 한다고들 말해요~

어찌 살게 되려나 그때 되어봐서 대책이 나올듯 하긴 해요 ㅎㅎ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폴 방키뭉 지음, 김미선 옮김, 남희섭 감수 / 서해문집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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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쪽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이거나 충분한 자원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세계 인구의 25퍼센트를 차지하는 선진국 -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일본 - 의 주민들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의 80%를 소비한다. 이들 한 사람이 1년간 의약품을 사는 데 쓰는 돈은 305유로가 넘는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으로 눈을 돌리면 그 액수는 15유로를 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주민들이 스스로 의약품을 구비해야 하는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경우에는 3유로에 불과하다.

67쪽
"의약품은 인간의 기본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바로 건강하게 살 권리다. 이런 점에서 의약품은 의미 심장한 사회적 역할을수행한다. 그리고 그때문에기본 생필품의 범주에 든다. 대다수의사람들이 ㅡ이 약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78~79쪽
의약품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남반구의 미래는 에이즈라는 재앙과 대규모 전염병으로 위협받고 있다. 구매력을 이유로 제약 회사들은 말라리아 백신보다는 비아그라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

191쪽
하지만 에이즈라는 전염병과 제 3세계를 휩쓸고 잇는 질병들이전 지구 차원의 치료라는 해답을 얻지못한다면, 이것은 단지 운명이나 지리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세계화가 불러온 결과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기업들의 이윤 논리, 연구 전략, 선진국들의 무관심이야말로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 결정적인 요인들이다.
(...) 인간의 기본권이라 할 수 이는 의약품 접근권을 인정받기 위해 빈곤한 나라들의 환자들은 날마다 투쟁하고 있다. 과연 얼마나 더 지나야 이 투쟁이 끝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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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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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독자분께 > 중에서 

세상에는 당신의 능력(용모나 학력이나 부모님의 부와 명예 등, 사회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속성을 포함한) 을 높이 사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일 관계로 연관된 사람의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 자체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능력만을 평가해주는 사람들은, 당신이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떠나간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의 평가에만 모든 것을 걸고 살다 보면, 당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소비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것들 중에 더없이 소중한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결과, 당신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졌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 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170쪽
시게마츠 : (...) 현대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만 좋아하고, 더러운 것 싫은 것은 전부 외면해버리고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더럽고 싫은 것 안에도 뭔가 구원이, 인간을 안심시켜 주는 뭔가가 반드시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
후쿠오카 : 더러운 것, 싫은 것을 생활에서 배제시킬 것이 아니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자연순환의 구성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더러워도 좋다, 흠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시죠? (...)
시게마츠 : 좋은 것만 취하고 산다면, 인간의 정신도 정화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은 좋은데 저것은 아니라고 부분적으로 평가된다면, 인간은 결국 분열되고 말 테니까요. 나는 이대로 좋다. 더러움이나 흠집까지 포함한 이대로의 나라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지요.

272쪽
타인에게 싸고 편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싸고 편리한 것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그럴수록 소비자들이 그런 것을 소비하지 않고 외면하게 될 때, 비로소 사회는 변하게 될 겁니다. 자기는 여유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면서, 타인에게는 싸면서 편리한 물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추궁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런데도 싸고 편리한 물건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손이 가고 말죠.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275~276쪽
유럽에 가보면 3층 도로를 흔히 볼 수 있어요. 길이 3개의 층으로 나 있어서, 맨 아래는 자동차, 중간 층은 자전거, 가장 높은 곳은 보행자 전용의 길이죠.

320쪽
확실히 사느냐 마느냐는 자유라고 말하면서, 전화가 없으면 학교 연락망에서 빠지기 십상이고, 시골에 살면서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기운 옷이나 유행이 지난 옷을 입으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유명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장래의 인생설계가 쉬워지고, 그래서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진해서 사게 되고 마는 거죠. 이반 일리치가 말했듯이, 상품이나 서비스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사회 속에서 주체화된다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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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외 지음, 정재곤 옮김 / 세상사람들의책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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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56쪽
그라민 은행은 사람이 정직하다는 전제 조건에서 출발을 한다. 행여 우리가 순진하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신념하에 엄청난 양의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수고를 덜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신회는 99%의 원금 상환율로 보답받고 있다.
우리 은행엥서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비율은 불과 1%를 넘어서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은행은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을 부정직한 사람으로 보지않는다. 우리는 특별한 개인적 사정이 있어서 돈을 갚지 못했을 뿐이라고 간주한다. 실상이 이러한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변호사를 찾아나서는 수고를 한단 말인가? 융자의 0.5%는 원금을 상환 받지 못하지만, 이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아닌가?

301쪽
그라민 은행은 언제나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좌파는 우리 그라민 은행이 미국의 사주를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의 싹을 심으려 하는 음모 집단이라고 비난하였다. 좌파는 그라민 은행의 목표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없애게 함으로써 혁명 의지를 초토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어느 대학교수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약을 조금씩 나눠 주는 셈입니다. 그들은 정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융자를 받으면 밤에 잠이나 편히 자고, 아무런 불만도 표출하지 않게 되지요. 혁명 의지는 모두 사라지고 말입니다. 그라민 은행은 혁명의 적입니다."

305~306쪽
발전과 성장을 동일한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 둘 사이가 내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여러 사회계층들이 마치 객차 칸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관차가 앞으로 전진을 하게 되면 나머지 객차들이 같은 속도로 뒤를 따르게끔 되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러 사회계층은 같은 속도로 전진하지도 않을 뿐더러, 만일 방심을 하게 되면 서로 다른 방향을 뿔뿔이 헤어져서 나가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319~320쪽
나는 전세계적으로 가난이란 사실 경제적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다. 또한 가난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까닭은 우리가 가난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가난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방책으로 우리는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더 일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을 따름이다. (...) 진정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누리는 똑같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우리 스스로 이들과 똑같은 무기를 들고 세상과 싸울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377쪽
역설적이게도 돈을 매개로, 돈으로써 이루어지는 우리의 소액 융자는 사실상 돈과는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무관한 것이다. 소액 융자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소액 융자란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인간적 자산을 일깨우는 수단이다. 소액 융자는 우리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써,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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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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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쪽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될 때마다 쓰는 방법은 항상 똑같다.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 복지 정책이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란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른 존재, 즉 능력이 부족하거나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 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가진 존재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에 기초한 복지정책은 그 사회에 매우 분명한 이득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쥐꼬리만한 임금으로 부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키면서 말이다.
(...) 인문학을 부자와 중산층이 독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만들어 놓은 채, 그저 훈련만 시킴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순종적인사람들로 묶어놓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때때로 물건을 훔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건(이것도 대개는 그네들 사이에서 발생한다)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교육받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 세력들에게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72쪽
가난의 이유에 대한 비니스의 대답 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은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현실 진단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진단은 거꾸로 그들만 움직여질 수 있다면 가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암시가 된다. 즉,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비니스는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197쪽
인문학과 성찰적 사고, 그리고 정치라는 세 가지 개념을 하나로 통합한 말이 많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공적인 인간 세계의 기질이나 경향을 잘 나타낸 '자기 통제'만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인류가 주어진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치'를 실행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정치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자기 통제'의 개념에서 추적해낼 수 있다. '자기 통제'라는 개념 속에는 인문학, 평온함,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지워낼 수 없는 어려움들을 성찰을 통해 극복하는 것 등과 같은 뜻들이 담겨 있다. '자기 통제'는 무력에 맞설 수 있는 방어 수단이며, 진정한 '힘'에 대한 정의이고, 인간다움 그 자체이다.

418쪽
사실 우리는 눈송이들만큼이나 차이가 나면서도 눈만큼이나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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