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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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덟 단어를 통해서 인생을 대하게 하는 책이다.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다 읽고 난 후, 읽으면서 어느 주제에 제일 밑줄을 많이 그었나, 그냥 시간이 많아서 ^^ 앞장으로 넘겨봤더니,  "견"과 "인생"이 제일 많다. 지금 내 상황에서는 "보는" 일과 "인생"이 생각만큼 쉽게 정의되어지지 않는 주제인듯 하다.

 

생각의 탄생에서 "발견은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고 했다. 진짜 멋진 말이다. 이게 잘 되는 사람이 천재이지, 누가 천재이겠니. 하하. 나 촉 좋아, 라고 동료 형사는 말한다. (개콘에서..) 그 좋은 촉으로 동료 커플 놀려 먹는 재미도 좋지만, 덤덤하지 않게 풍요롭게 삶을 만들자.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하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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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05-1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이 보려하지 말고, 본 것들만 소화하자.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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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5 13:54



 

 

 

그의 글을 편히 읽지 못한다. 문학 평론을 하는 그가 쉽게 글을 써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몇 줄만 읽어도 알 수 있기에, 나도 편안하게 그의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가 보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라는 이명원의 이 책.

마음이 소금밭인 것은 어떤 것일까.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소금밭일 때, 이명원은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나는 어떻게 대처했던가 생각해본다. 나는 그저 조용히 무덤 속 같은 몇일 보내고는 서서히 나를 괴롭힌 심각한 사안에 대해 잊어버리는 방식을 택하며 살았던 거 같다.


지금의 내 마음도 전전긍긍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책은 내 이해의 맥락에 닿는 부분에 한해서는 아픈 곳을 위무해주고 또한 깊은 울림까지 주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직함은 문학비평가이지만, 이 책은 그가 문학을 포함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러 매체를 접하면서 품은 여러 단상이랄까 생각들을 엮은 책이라서, (소금밭 같은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 책을 읽고 쓴 이 글들일지라도) 사실은 허리끈 조금 풀고, 편안한 자세로 읽어도 된다.

 

 

그의 지적에 크게 공감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던 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문학계에서의 통칭 ‘후일담 문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그의 말. 이 용어는 80년대에 정력적으로 진행되었던 진보적 실천행위를 냉소적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90년대 이후의 현실을 환멸적으로 추수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끄덕끄덕...)

 

영어를 공용화해야 한다는 복거일의 주장과 유사한 것이 수백년전 박제가에게서 있었다. (그의 책 <북학의>를 읽고) 복거일의 주장과는 또 조금 다른 뉘앙스지만, 시대적인 맥락은 이랬다. 당대 조선사회의 위기를 청나라 문명의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돌파하고자 했던 박제가의 의욕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박제가는 중국어가 문자의 근본이며, 문명어이며, 언문의 일치가 중요함을 강조, 조선이 청나라와 같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언문으로 표상되는 조선어를 버리고, 중국어를 국어로 활용할 필요하기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인재 등용의 루트를 다변화할 것을 주장했다. 

박제가의 이 글을 통해 한 사회의 타락과 몰락을 제어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사회적 모순이 심각하게 돌출되고 있는 그 순간에 이미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고, 이 등잔 밑의 정책 대안을 지배층이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민중의 고난은 감당할 수 없이 심화되곤 했다는 사실이다.

박제가가 고뇌 속에서 정책적 대안을 구상하고 있던 때나,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지금의 현실이나 민중들의 고통은 여전하지만 지배층들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권력 투쟁은 그 끝을 모르고 전개되고 있다. (끄덕끄덕...)


이 책이 흥미를 발하는 결정체를 사실 나는 다음과 같은 장에서 꼽고 싶다. 무언고 하면, 비평을 하는 비평가 자신(이명원)이 도데체 독자들이 비평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하고, 답한  것.  이것은 어쩜 비평가 스스로에게 거는 가혹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한다.


첫째, 인식의 새로움에 기여하는 비평을 발견하기 힘들다.

지적 쾌락을 선사하는 좋은 비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사유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둘째, 육성이 담겨 있는 비평을 찾기가 힘들다.

깊은 감동을 주는 비평은 싸늘한 분석적 논리에 기반을 한 것들이 아니라, 비평에서 비평가 자신의 고통스런, ‘육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체취를 내뿜는 것이었다. 비평에서 육성이 사라질 때, 한편의 평론은 수학능력시험 대비용의 문학 자습서와 비슷한 운명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셋째, ‘지식 잡화상’과 같은 비평가의 태도도 문제다.

지식 잡화상인 비평가는 기이한 열정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잡다한 지식을 동원하여, 지랄탄을 쏘아 댄다고. 독자들은 이러한 비평에서 자신의 무식이 추궁당하는 느낌에 빠졌다가, 시간이 지나 그것이 한갓 언어의 사기술에 불과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비평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거두어 들인다. 무관심이 복수라고.


넷째, “주례사” 비평의 토양에서 자라난 비평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밖에 끄덕여지는 구절들이 많았다. 모방송사의 <느낌표!>라는 프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생각들. 아, 그리고 언론상에서 ‘사회지도층’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한국사회가 언어 생활의 측면에서 보자면 중세적 신분사회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지도층'이라니,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는 것인지.)


‘사회지도층’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 이 뿐일까. '경쟁력, 퇴출, 왕따, 조폭, 홍위병'과 같은 유쾌하지 않은 단어가 세상에 버글버글하다.

언어를 순화한다는 것. 글쎄.....

언어가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더욱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또 그러한 세상을 열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제대로 존중받는 사회가 온다면, 우리들의 국어사전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왜냐 하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니까.


밑줄 친 문장

 

 

"그들(김현과 김윤식)이 패배자인 것은 그들의 문학과 삶의 실천이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승리를 불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것은 그들이 패배자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오만한 승리의 잔을 들게 된다는 사실에 있다. 스스로 패배를 자인하는 것은 운명을 거역하는 자의 오만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오만함은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패배에 우리가 마음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비평에 깃들인 이 근본적인 불가능성을 가장 예민하게 사유한 비평가는 김현이다."


 

 

"멋부린 문체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글을 읽기에 내 인내심은 걸맞지 않다.

기형도의 어조를 흉내내, 잘 있거라, 짧았던 읽기여!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느낌표가 따발총으로 이어지는 문자들을 발견하면, 숨가쁘기보다는 안쓰러워진다. 전혜린이 살던 시대나 어울릴 법한 새벽의 감상은, 역시 완연한 올드 패션이다. 소설가 김훈의 문체를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 아득한 뱀을 연상하게 만드는 문장들은, 언어적 페티시즘이다. 적어도 소설은 문체의 충만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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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2,3권을 작가 중심으로 골라 그때그때 읽고 있다.

작가를 인터뷰하는 기자(?)가 훅훅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내가 실제 읽어본 작가가 많지 않은게 통탄해마지 않을 뿐이지 나머지는 다 좋은 책이다.

 

지금 2권에서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작가는 도리스 레싱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예요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번이라도 읽기만 하면, 그 독특한 여운이 오래간다. 도리스 레싱의 글만 읽고 나면, 내가 평소 얼마나 읽어본 작가만 치우쳐 읽는 편이지, 그닥 비판의식 없이 소설의 경우에는 쭈욱쭈욱 글자를 쫒아가는 글읽기를 하고 있을 뿐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도리스 레싱은 나로 하여금 '왜 이런 소재로 글을 썼을까, 주제가 뭘까',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게 만드는 힘이 있다. 메시지가 명쾌한 감동의 화제작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편에 손을 들어주는 건지, 저 편을 옹호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문제작을 쓰고 있다. 도리스레싱의 성정도 꽤 꼬장꼬장한 됨됨이일것 같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 작가의 부모님과 작가의 어린시절을 알 수 있었는데,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적인 있는 군인의 자녀였다. 영국의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셨던 아버지가 지원한 부임지를 따라 페르시아, 아프리카(짐바브웨이)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풍요롭고 유복하게 보낸 듯하다.

아버지는 비실용주의자였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극단에 위치할 만큼의 실용주의자였으며, 어머니는 자신이 갖고 있던 능력을 발현하지 못하고 좌절한 상태에서 남매에게 모든 에너지와 삶을 헌신하였다고 한다.

도리스레싱을 수피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 ( 수피즘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분파. 금욕 청빈 명상을 실천하며 일체의 형식을 배격한다.)

 

인터뷰 당시 미국현대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우주 오페라'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필립 글래스와 도리스 레싱이라는 조합 때문에 이 페이퍼를 지금 급조하고 있는 중.)

 

버니지아 울프의 동명 소설과 그녀의 생애를 오버랩시킨 영화 디아워스(세월)의 오에스티를 만든 이가 아니던가. 필립 글래스..

 

둘의 조합이 이상하리 만치 잘 맞는다. 필립 글래스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인데, 단순한 화성과 반복되는 리듬 아프리카의 타악기를 연주를 연상시키는 연주기법.

음악으로 최면 당하는 것 같아, 처음엔 듣는게 그리 유쾌하지 않기까지 했던 필립글래스.

작가로서의 도리스레싱과 마찬가지로 여운을 길게 주는 음악가이다. 찻잔은 애저녁에 치워졌는데, 공간에 차의 향취가 머물러 있는 느낌.

 

 

 

 

마무리는 

 

위키백과사전에서 찾은  필립 글래스

 


 

 

 

 

 

 

 

 

시카고 대학과 줄리어드에서 공부하고, 유럽에 건너 가서 나디아 블랑제와 일하고, 1967년뉴욕에 돌아와 이듬해 필립 글래스 앙상블을 조직해 그들을 위해 그의 초기 작품들을 창작했다. 대표적 음반으로는 《해변의 아인슈타인》(CBS M4 38875)이 알려져 있고, 《댄스 1 & 3》(TOMATO 8029)'와 그의 대중적 성공을 알린 음반으로 《GLASSWORKS》(CBS 37265)등이 있다. 크로노스 4중주단과 린다 론스타트와 더글러스 페리와 같은 가수가 연주한 《SONGS FROM LIQUID DAYS》(CBS FM 39564)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유대교도이자 도교도이자 힌두교도이자 톨텍교도이자 불교도'라고 서술한 바 있으며, 티베트 독립의 후원자이다. 그는 1987년에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로버트 서먼, 배우 리차드 기어와 함께 티베트 하우스의 공동 창립자이다. 그는 채식주의자이다.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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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4-0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Philip Glass의 The Hours OST는 제가 정말 자주 듣고 있답니다.
위의 저 CD도 구입할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데, 찻잔 없이도 차 향기를 음미하고 싶어서요.

icaru 2015-04-02 16:41   좋아요 0 | URL
아... 나인님!!!
제 인생의 영화 다섯편 꼽으라면 들어가는 영화가 디아워스인데, 영화음악도 딱 깔맞춤이죠...

필립 글래스는 자주 듣지는 않아요. 근데 무척 인상적인 감명을 받고는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후폭풍이라 할까요... 평화로운 수면을 건드리고 물밑을 보게 하는 참 묘한 거시기 음악.. ㅋㅋㅋㅋ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책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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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에서, ‘진정한 독서가는 서너 번 다시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많이 가진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 책도 내 속에는 희박한, ‘독서가의 본능’을 깨우는 책인 듯하다. 저자의 이야기에 구구절절 공감해서가 아니고, 재독을 하게 되면,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읽힐 여지가 많아서. 그리고 다소 솔직하고 야시시한 매력도 있고, 이 듣보잡인 독자에게 미국소설 작품에 대한 날렵 촌철살인의 비평을 해댈 때면, 당최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미지의 그 작품을 번역되어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지 조차 파악할 수 없는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고, 데이비드 실즈와 같은 느낌을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나게 하는 부분조차 있다.

그럼에도 내가 소리내서 웃을 수 있는(그러니까 웃으라고 쓴 글이라는 파악했던) 부분은 부시 대통령과 자신의 공통점을 말하는 부분 중 일부.

“그는(부시) 가난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잘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감수성이 나와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책을 잘 못 읽는 편이다.”

두 사람은 모두 응당 그 직함이라면 알아야 할 적어도 아는 척 해야 할 부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음 솔직하는 말하는 사람. 남에게서 보는 경멸스러운 모든 특징이 스스로에게서 경멸하는 특징임을 말하는 부분.

진정,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요’ 라고 답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자신이 브라운 대학을 나왔는데,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이나 외면에 집중하는 쉬운 방법보다는 안팎을 뒤집는 방법을 택하라고, 자신을 조롱하라고, 자신을 진지하게 여기면서도 그런 자신을 허물어뜨리라고. 같은 맥락인 듯하다.

그러면서 그는 

"글을 쓰는 방법은 화살이 바닥났을 때 자기 몸을 과녁에 던지는 것이다."(_에머슨) 라는 말을 인용한다. 에드먼드 윌슨의 '상처와 활'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영웅 필록테테스 이야기. 뱀에 물린 상처 때문에 버림받았던 그는 결국 뛰어난 활 솜씨로 복권된다. 월슨은 작가들이 성장기에 겪었던 심리적 상처가 훗날 훌륭한 글을 남기는 요소로 작용하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이 비유를 끌어다 썼다. 


 “내가 저널리스트 부모에게 가한 사소한 반항은 픽션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더 나중에는, 별스러운 논픽션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저명한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인 딘티 무어는 <그린진스 씨의 아들>에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절실히 딸을 원한다. "남자아이는 조상의 형질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선행의 동기가 쉽사리 악행의 동기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를 끔찍한 곤란에 빠뜨린다는 사실.

 

우리가 품은 야망에는 반드시 비극적 결함이 따라 붙는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의 몰락을 가져오는 데 이끌리고야 만다. 실즈는 <달라일러>-이게 작품인지, 뭔지 알 수 없는데, 앞뒤 문맥으로 봤을 때는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인듯-를 언급한다. 진행자 달라일라에게 어떤 남자에게 끌리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 눈치 빠르고, 영리하고, 재미있어야 해요. 그리고 연쇄살인범이어야 하고요. 나는 십대 때부터 결국에 내 가슴을 찢어놓을 남자만 고르곤 했죠." (달라일러의 자식들 세명은 직접 낳았고, 아홉명은 입양했다. 그들은 대부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거나, 아프리카 출신이거나, 히스패닉 혈통이고, 그녀는 세번 이혼했다고 한다. )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병들게 한다. 성공은 자기 탐닉을 낳는다. 효과적으로 달콤쌉쌀했던 것이 독으로 변한다. 경계해야 해.

 

관련 명구

프로이트 : " 살아 있는 것은 다시 죽기를 바란다. 그들에게는 삶 충동도 있지만, 죽음 충동도 있다."

쿤데라 : "누구든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젠가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현기증이란 무엇일까? 추락을 두려워하는 마음? 아니다. 현기증은 추락을 두려워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우혹하고 꾀는 공허의 목소리다. 그것은 추락하고자 하는 욕망이고, 우리는 그  욕망에 대해 겁이 나서 스스로를 보호한다. "

 

자기 눈에 끔찍한 것들 때문에 오히려 남들 눈에 뻔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어야 한다고 회상한다.

 

"결혼, 아이, 집, 친구, 경력.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것은 썩어가는 잔교에 붙은 따개비와 같다. 비밀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비밀의 힘이 어떻게든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그가 누리는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감정적 자산이 많을수록, 비밀을 들켰을 때 잃을 것이 더 많다."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낱말을 결합하여 문장과 단락과 시와 이야기와 책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린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패턴들을 생성해냄을써 글의 구조를 만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버니지아 울프가 장면과 인물을 구상할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패턴을 인식했다.

"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것들을 결합하고 있다는것을 강하게 느꼈으며... 쓰면서 나는 내가, 무엇이 무엇에 속하고 있는지 발견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런 느낌으로부터나는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것은 내가 소유하게 된 항구적인 관념이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영위하는 일상사에도 어떤 패턴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미안하지만, 신경 말단을 노출시키지 않는 책은 전혀 읽지 못한다. "

 

"책의 모든 단어가 저자의 '창작물'이 아니라 인용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런 형태의 책으로 내가 주장하려는 바는 '현실'에 사중으로 인용부호를 치는 것이다.

 

* 앞에서 길게 주저리주저리했지만, 각설하고 강조하면, 이 책은 내 인생의 책에 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에 재인쇄되는 책이 천의무봉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눈에 걸려 들었던 오타 두 개. 기록한다.

 

136쪽 맨아랫줄     캐나가 출신의 문예 비평가.-> 캐나다 출신의 문예 비평가

165쪽 5째줄      모든 뒤, 각각의 파편이 -> 모은 뒤, 각각의 파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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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3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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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층은 세대를 아우르겠지만, 이 책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20,30대에서 사랑받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세대에 대한 항변을 해 주고 있다. 사회 경제 시스템은 비운의 젊은 세대들을 양산했다. 사회 경제 시스템이 젊은 사람들에게 가하고 있는 규격화와 표준화는 그 기준점이 평범을 가장한 어마무시이다. 세상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피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풍요속의 빈곤이다.

그럼에도 김영하는 내부(20,30대)의 안목이 단단해야 철옹성 같은 외부(사회 제도를 위시한 국가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항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읽힌다. 그러나 외부가 변하지 않는 한 내부의 상황도 개선되기 요원하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다른 유명 작가들처럼 희망 고문을 하지 않는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예비 작가들에게 넌지시,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는 드문 작가이다.  

 

 

인간사가 정의와 무관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씁쓸하다. 아이가 자기를 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더 노력한다거나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반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를 사랑하지 않은 부모는 아이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어려서 불행하게 자란 사람일수록 연인과의 관계가 더 원만하다면 얼마나 바람직할까. 그런데 불행히도 인간사는 정의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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