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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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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포르트, 에트르타] 1883, Monet,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무래도 19세기 후반 프랑스에는 '인상파의 神'이 강림을 하셨던 모양이다.

감상적인, 그러나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진, 어딘가 들떠있는 프랑스 남자의 목소리.

책을 펼쳤을 때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장면들과 함께 뭔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수다스런 남자 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바람과 햇빛,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매 순간 끊임없이 출렁대며 변화하는 바다의 표면, 그처럼 울렁이며 들떠있는 목소리라니.


쥘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와 어느정도 동일한 시공연속체를 공유했을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와 물을 즐겨 그린 그의 그림으로 <La Mer (라 메르; 바다)>의 한국판 표지와 삽화 일부를 장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번역자도 출판사도 두 사람의 작품 사이에서 유사한 무언가를 느꼈던 것일까?

외광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묘사 …
동일주제를 아침·낮·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 …
  - 네이버 백과사전 :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中에서


모네의 화풍에 대한 설명이 미슐레가 묘사한 <라 메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흡사 '글로 그려낸 인상파 그림' 같은 느낌이다.

'변하기 쉬운 자연의 순간적 표정을 파악하여 직관적인 표현과 함께 주관적인 감각을 반영'하는 글쓰기 방식은 영락없는 19세기 인상파 회화의 그것이다. 바다와 관련된 온갖 생명들과 현상에 대한 설명들이 하나 하나의 붓자국이 되어 점묘법처럼 전체 그림을 형성해낸다. 묘사되는 대상의 윤곽선은 때로 불분명하지만, 자신만의 감상과 표현이 붓자국 처럼 뚜렷이 남아있다. 열띤 감정으로 글 전체에 '밝은색'을 구사하고, 생생한 묘사로 '자연의 빛'을 대신한다. 사실적인 묘사와 자유로운의 표현이 인상파 화가들의 '빛과 색의 진동'처럼 독특한 밝음과 깊이를 함께 만들어낸다. (아, 그런데 이 양반, 붓질이 너무 잦다...)



[에트르타, 일몰] 1883, Monet,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크기와 힘에서 모두 감탄할 이 짐승은 피는 뜨겁고 젖은 따뜻하며 선의에 넘친다. 오로지 생존 수단만 부족하다. 그 수단은 이 지구의 전체 규모와 무게에 불가피한 법칙도 고려하지 않았다. 거대한 뼈대로 받쳐진 거죽은 아름답다. 거대한 늑골은 가슴을 자유롭게 열리도록 할 만큼 튼튼하지 못하다. 땅에 올라와 바다에서 적을 피하자마자 곧바로 폐의 무게라는 적에 짓눌린다.
멋지게 10미터 높이로 뿜어올리는 물기둥과 분수구멍은 바로 유치하고 야성적인 기관이라는 표시이자 증거이다. 힘껏 공중으로 분수를 쏴 올리면서 그 '숨 가쁜 통풍기'(수플뢰르 에수플레'라고 고래의 한 종에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오, 자연이여, 왜 나를 노예로 만드셨나이까?" (p.219; 고래)
 
   


내용물이 '무엇(what)'인지를 설명하기에 이 책은 참으로 부적절하다.

묘사하는 대상과 범위, 그리고 표현의 방식이 너무나 다양하고 폭이 넓기 때문이다. 바닷물 그 자체부터 그것이 품고 있거나 그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다채롭게 생동하고 요동친다. 작디작은 티끌과 미생물부터 사람과 파충류, 어류를 거쳐 고래에 이르기까지,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비와 파도와 폭풍과 달과 태양에 이르기까지, 서양과 동양의 여러가지 장소, 옛날부터 지금과 알 수 없는 시간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온갖 것들이 정신없이 득시글 거린다. 실제의 바다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더더욱 온갖 '묘사와 감상'들이 사실(fact)의 틈들을 메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가 그러하고, 작가의 <라 메르>가 쓰여진 방식 또한 그러하다. <라 메르>가 '무엇(what)'을 다루고 있는지 설명하기보다는 '어떻게(how)' 어떤 문장으로 쓰여졌는지를 묘사하는 것이 합당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래서 만약 제 3자에게 이 책을 설명하려면
(1) 상당히 많은 부분을 직접 '인용'하여 소개해주거나
(2) 글이 쓰여진 '방식'에 대해 추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만이 대체로 가능할 듯 싶다.

따라서 (그럴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 책의 내용을 사실(fact)의 측면에서 접근하려 한다면 작은 혼란을 맛보게 될 것이다. 1861년 출판이다. 과학적 사실 여부나 남성이 봐도 불편한 19세기 남성 우월주의적 표현 같은 것을 차치하고라도 작가는 이미 달빛에 취한 시인처럼,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사실과 감상과 추측과 창작을 뒤섞으며 자신만의 풍성한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다. 무언가에 단단히 필(feel) 받은 것이다.



[벨일의 폭풍] 1886, Monet, 개인소장

 
<라 메르> 전체에 흘러넘치고 있는 이 열띤 감성과 같은 것의 정체 어쩌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쥘 미슐레' 항목의 설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슐레는 〈프랑스사〉를 다시 쓰기 시작해 르네상스부터 대혁명 직전까지의 제2부(11권, 1855~67)를 완성했다. 불행히도 그는 성직자와 국왕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문서를 성급하게, 마음대로 다루며 상징적 해석에 심취했기 때문에 이 책들은 내용이 왜곡되어 환각이나 악몽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왜곡은 마녀를 신에게서 버림받은 영혼이며 교회의 반(反)자연적인 금지령에 희생이 된 것으로 보고 마녀에 대한 변론을 전개하고 있는 책 〈마녀 La Sorcière〉(1862)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그뒤 더욱 새롭고 행복한 영감에 사로잡혀 〈새 L'Oiseau〉(1856)·〈곤충 L'Insecte〉(1858)·〈바다 La Mer〉(1861)·〈산 La Montagne〉(1868) 등 자연에 관한 몇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들은 1849년 자신보다 30세 어린 아테나이 미알라레와의 재혼에서 자극받아 쓴 서정적인 작품으로, 최상의 산문작가가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구를 담고 있다.
 
   

 
3개 국어를 구사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4개나 가지고 있던 프랑스계 캐나다 교수 한 분이 떠오른다. 그가 영어에 프랑스어와 다국적 유머를 섞어가며 신나게 이야기 할 때면 남자도 저렇게 수다스러울 수 있구나 감탄(?)하곤 했다. 때론 너무 현란한 표현과 제스처에 질릴 때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분을 자주 떠올렸다. 당신 같은 분이 19세기 프랑스에도 계셨던가 봐요 라고. (아, 그러고보니 그분에게도 거의 띠동갑의 젊은 아내가 있었더랬지. 그것 참...)

 


[Coming into Port-Goulphar, 벨일] 1886, Monet, 개인소장

 
무엇보다 번역자와 출판사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원래 미슐레의 문장 자체가 그렇다고 들었지만, 우리말로라도 흔하게 접할 수 없는 현란하고 감수성 풍부한 표현들은 새로 글을 창작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게다가 클로드 모네의 표지 그림을 비롯하여 원서에도 없었다는 저자 당대의 삽화들을 골라 넣으면서까지 쥘 미슐레의 유명한 '바다(La Mer)'를 새롭게 되살려 내었다. (외국의 다른 표지에 비해서도 한글판이 본문의 실제 느낌을 잘 반영한 듯.)




   
  바다라는 큰 세계의 일은 현실적이다. 바로 사랑하고 번식하는 일이다. 사랑은 그 밤을 풍요롭게 채운다. 사랑은 깊은 곳으로 잠수하고, 가장 작은 생물에게서 더욱 넘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정말 원소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것을 붙잡아 보면, 여전히 사랑하면서 또 다른 개체로 분리된다. 생명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어떤 유기적 기관도 없는 그런 것에서, 이미 모든 생식 형태가 완전하다.
이것이 바다다. 바다는 지구의 거대한 암컷이다.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영원한 수태로 새끼를 낳는다. 절대로 끝이란 없다. (p.103: 풍요로운 바다)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출간이 거듭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펴 보기 전까지는 이런 느낌의 책일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소설도 아니면서 이처럼 페이지마다 숱한 묘사와 감상이 출렁이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산문과 운문, 사실과 허구를 현란하게 뒤섞어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뚜렷이 갈릴 수 있는 독특한 표현들. 불확실함, 감흥의 과잉, 근대 유럽의 정신, 기이하게 들떠있는 열정, 다양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특이한 묘사의 호흡... 이런 온갖 것들이 뒤엉켜 형성해낸, 여전히 책을 열면 와르르 쏟아질 듯 출렁이는 무엇.

<라 메르>는 그 자체가 말들로 넘실대는 수사적 표현의 '바다(La mer)'이다.
이 책은 정말로 바다의 그 무언가를 기묘하게 닮아있다.



[벨일 해안의 폭풍] 1886, Monet, 오르세 미술관

 

P.S.

웹서핑을 해봤지만 이 책 표지에 사용된 클로드 모네의 원작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책날개에 1886년작 <벨일 해안의 폭풍>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검색으로 발견되는 그런 이름의 작품은 바로 위의 그림뿐이고, Belle-ile 이나 Monet, Tempete 등으로 연관 검색을 해보아도 표지의 바다 일부를 담고있는 그림은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 공개되지 않은 개인 소장가의 희귀본 같은 것일까 못내 궁금하다. 덕분에 130여점 모네 그림을 실컷 감상하여 눈이 호사한 하루.

P.S. 주의 : 배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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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0-12-2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회에 오는 사람 중에 제일 미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꽃다발 들고 오는 사람이예요. 그 어떤 훌륭한 그림이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라두 자연 그대로, 예를 들면 꽃이나 나무 바위 돌 같은거요, 그런 거에는 못당해요. 그림 보러 오는 사람이 그림보다 더 주목 받을 꽃다발을 들고 오는 것처럼 센스 없는 짓이 없는 거죠. 반대로 제일 고마운 사람은 누굴까요? 그림 사 주는 사람이죠."

현직 화가한테 들은 얘기예요.

바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림은 못 사드라두 책은 사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바보~ 뭐하러 그래. 30분만 달려가면 진짜 바다를 볼 수 있는데! 이러고 있네요. 제가.. ㅋ

2010-12-27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바다와 관련된 그림들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던거 같아요.
바다가 생각나면 한번쯤 읽어보면 참 좋은 책인거 같습니다.
바다와 관련된 모네의 그림,, 찾기가 어려우셨을텐데
글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herenow 2010-12-27 23:25   좋아요 0 | URL
원서엔 없었다는 그림들을 골라서 실은 번역자와 출판사의 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표지의 원작 그림은 아직도 못 찾았답니다.
(누구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시면... ㅠ.ㅠ)
이 책 서평에 퍼놓은 모네의 그림들이
메리포핀스님이 말씀하신 '꽃다발'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랍니다. ^ ^;

ashilver 2016-08-03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표지 그림: Claude Monet _ Sea Study (1881)
 
<왜 도덕인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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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봐야 하나요?"

올해 중순, 트위터의 독서 관련 모임에 누군가 올려놓은 질문이었다.
곧바로 여러 개의 멘션이 달렸다. 대부분은 너도 나도 가볍게 "네, 한번 읽어보세요."

이상한 것은, 당시 질문을 올린 사람도 답변을 올린 사람의 대다수도 피차 그 책을 확실히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고 있더라는 거다. "무슨 책인지 잘 모르지만 유명하다고 하니 한번 읽어볼까요?" 라는 질문에 "무슨 책인지 잘 모르지만 유명한 것 같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라는 기묘한 답변들... 문득, 책상 위에서 힘겹게 진도를 달리고 있던 <정의…>가 빼꼼히 내다보는 것 같아

"본인이 직접 내용을 살펴보고 결정하는게 어떨까요?"
라는 지극히 당연한 멘션을 달았더니, 질문자를 포함해 해당 타임라인이 오히려 뜨아해 하는 분위기다.(뭥미?) 내친김에 몇 마디 말을 섞어본 즉, 평소 윤리/철학 분야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도, 롤스의 <정의론>을 들어본 적도, 사회적 이슈에 별반 고민한 적도 없는 평범한 20~30대 젊은이라 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하도 여기저기서 이 책을 들먹이니 읽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이 되어 남들에게 대신 선택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책인지 서점 가서 직접 확인해볼 생각은 딱히 없으면서 말이다...)





2010년 대한민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나의 '패션'이었다.

왜 그토록 이슈가 되었을까에 대해서는 단행본 <'정의란 무엇인가'는 무엇인가>라도 한 권 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했다. '정의에 목말라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부터 한국사회에 대한 자조적 분석, 현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미국 출신 엘리트에 대한 한국사회의 동경, 딜레마 문답식의 교수법, 하버드大라는 상징성, 인상적인 강의실 장면,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베스트셀러를 부채질한 출판시장, 동일 저자/유사 도서의 출간과 해명, 정의에 대한 무수한 담론과 도서 리뷰, 마이클 샌델 교수의 방한과 5000명 공개강연의 열풍, 그 강연에 대한 취재 기사 등등등...

이유야 어쨌건 놀라운 것은 이 책의 '알맹이'보다는 거기 붙은 '라벨'로 인한 관심 자체가 엄청났다는 점이고, 평소 정치철학이나 윤리철학, 정의론 같은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조차 부담없이 이 책을 손에 들더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따분한 개념들을 딜레마 상황을 통해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강의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책 제목만을 가지고 그 내용을 지레짐작하면서 나름의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경우를 접할 때면 뭔가 좀 떨떠름했다. 저자가 원하던 '시민사회의 자발적 고민'보다는, 귀에 익숙해진 '제목'만으로 이미 <정의>의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말의 거품들... <정의란 무엇인가>는 어떤 면에서 책으로서의 '내용'이 휘발된 채 유통되는, 일종의 'Must have' 아이템이나 대중문화의 기호품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더랬다.





역시 복합적 이유로 이 책을 접했고, 운좋게 평화의 전당에서 저자의 공개강연까지 듣게 되었다.
나름 경험해본 <정의>의 미덕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을 던져준다는 것.

내 관점과 가치관이 상황에 따라 교묘하게 말을 바꿀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주고,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다른 사람의 입장과 관점에도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 막연하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던 정치/사회/윤리적 이슈들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해볼 직접적인 기회를 제공하더라는 것.


경희대 강연에서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는 그랬다.
"이게 뭐야. 말만 빙빙 돌리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는 않네."



2010.12.13. 경향신문 만평



자, 누군가 하버드 모범답안을 떠먹여 주길 기대하며 한번의 되새김도 없이 널부러져 있을 동안, 대한민국 정치권은 "이것이 정의다!"하며 '그들만의 정의'를 강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한번, 책상 위에서 진도를 나가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새책은 표지에서부터 그 당위성을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왜 도덕인가?>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저자의 다른 저서 <공공철학(Public Philosophy, 2005)>으로 언급된 바로 그 책이다. (척 봐도 이렇게 한국판 책제목을 뽑아낸 그 사람에게 판매이익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지급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도덕>은 다행히 <정의>보다 쉽게 진도가 나아간다. 

그리고 마이클 샌델 자신의 견해가 직접적으로 더 뚜렷이 제시되어 있다. <정의> 책이나 강연에서 '그러니까 당신의 주장은 무엇인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반가워할지도 모를 일인데, 앞서 문답식 강연에 너무 깊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조금은 낮선 느낌이다. 질문을 통해 딜레마에 빠트리고 독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기 보다는, 한달음에 술술술 관련된 사건과 이론들을 끌어와 설명하면서 다양한 이슈들을 훑고 지나간다. 굳이 서문을 읽지 않더라도 쌍방향 소통의 강의가 아니라 잡지에 기고한 일방통행 칼럼의 느낌이 곳곳에 배어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대체로 생소하지가 않다.

낙태, 동성애, 존엄사를 비롯하여 배아복제, 환경오염, 역사 유물, 핵전쟁, 소수집단 우대정책, 공공기업의 상업화, 공정한 법 집행 같은 이슈들은 <정의> 뿐만 아니라 TV나 논술지문 같은데서도 흔히 접할 수 있던 것들이다. 다만, 상당 부분 미국사회 고유의 주제와 시각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러한 정치/문화적 배경들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용은 크게 3부로 나뉘어진다.

- 1부는 지난 20년간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던 위와 같은 도덕적 현안들을 다루고,
- 2부는 현대의 다양한 자유주의 정치이론을 본격적으로 비교 분석하며
- 3부는 미국 정치의 전통과 미국 정치사의 주요 논쟁을 짚어보면서 질문을 던진다.





'왜 도덕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발견하려고 샅샅이 훑어보게 되는 1부까지는 그다지 학술적인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워밍업 단계.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근사한 부제가 붙은 2부 부터는 롤스, 칸트, 벤담, 밀, 듀이 등 이 분야의 낮익은 슈퍼스타들과 함께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실용주의 등, 역시 낮익지만 쉽게 친해지긴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 사이에 본격적인 비교/분석이 펼쳐진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따지고 그러세요.' 라든지, '그렇다 한들 실생활에서 이런 개념을 인지하고 써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라는 볼멘소리가 불쑥 입밖으로 튀어나오려 할 즈음, 그는 꽤 근사한 설명을 통해 학습동기를 부여한다.
 

   
  우리의 관행들과 제도들은 이론의 구현이다. 따라서 정치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론과 연관되는 것이다. 정치철학의 궁극적인 문제들, 즉 정의와 가치, 좋은 삶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들에는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바로 항상 '모종의' 답에 따라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행과 제도에 내재된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그것이 어떻게 철학으로서 유지되고 있는가? 그리고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 그러한 정치철학의 불안 요소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오직 하나의 정답을 모색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반면 우리는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답에 따라 살아간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이 여러 개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일종의 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답을 허용하는 정치이론이 바로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p.175~176; 관행과 제도에 내재된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책의 딱 절반쯤, 위의 인용문이 포함된 8장章 23페이지 분량의 내용은 알쏭달쏭한 개념들에 지쳐갈 무렵 다시금 눈을 번뜩 뜨이게 만드는 부분인데, '옮음과 좋음'이라든지 '정의와 공동체' 등 자주 언급되는 마이클 샌델의 논제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마침 알라딘 '로쟈'님의 서재에서 이 챕터와 책에 대해 언급한 글을 발견하여 반가움에 링크를 걸어둔다. 언급된 영어 원문은 여기로. 놀랍게도 1984년에 쓴 글이다.) 
 




일견 엇비슷한 개념과 이론들에 대해 날카롭게 그 차이점을 도려내고 그 사이에서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걸어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작업들은 해당 분야 전공이 아닌 독자에게 몇 번이나 앞 뒤를 들쳐보는 독서를 요구한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 자신은 그런 단락에서 오히려 신나게 글을 써내려 갔을 것 같아 그의 미소짓는 얼굴이 자꾸만 오버랩되니 참으로 묘한 기분.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것은 존 롤스와 그의 <정의론>이다.

이 책 2부의 절반은 아예 롤스가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불의에 맞서는 정의'쯤으로 가볍게 집어 들었다가 생뚱맞은 사고실험(!)과 겹겹이 둘러싸인 이론에 질겁을 하게 만들었던 그의 <정의론>. 고작 '무지의 베일'이나 대충 주워담을 정도이지만 그나마 이 이론이 친숙하게라도 느껴지게 된 것은 김영사 지식인마을 <정의로운 삶의 조건> 이래 <정의>와 이 책의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는 1975년 옥스퍼드 대학원을 다닐 때 처음으로 <정의론>을 읽었고 그의 책은 나의 논문 주제가 되었다. 이후 나는 자유주의에 관한 그 위대한 저서의 주인을 만나지도 못한 채 하버드대 정치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그런데 하버드에 도착하자마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선 반대편에서 주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 존 롤스, R-A-W-L-S입니다." 신께서 몸소 전화를 걸어 점심을 함께 먹자고 말하면서 자신이 누군지 모를까봐 자기 이름의 철자를 일일이 말해주는 것에 버금가는 상황이었다.  (p.266~267; 롤스를 기억하며)
 
   


'신께서 몸소 전화를 걸어'라고 했지만, 주지하다시피 마이클 샌델은 롤스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옮음(권리)이 좋음(선)에 우선한다"는 롤스의 주장 하나만 가지고도 그는 롤스의 '자유주의'와 견해를 달리하는 소위 '공동체주의'의 편에 서 있다. 그의 명성이 롤스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일정 부분 얻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떤 식으로건 롤스와 대립각을 세우며 반목하는 관계는 아니었을까 하는 섣부른 짐작도 해봄직하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롤스의 이론을 다각도로 비교 분석하고, 미국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나 개인적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에서는 오히려 해당 분야의 대선배에게 바치는 은근한 존경의 마음이 내비치어 신선한 느낌이었다. 견해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정당한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모습을 본다는 게 그리 흔치 않다는 새삼스런 발견도 함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1830년대에 "문명세계에서 미국만큼 철학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나라는 없다"(p.266)고 했다지만, 역시 그에 못지않게 철학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한 한국을 돌아보면 인물과 상황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온갖 뭐뭐 '~주의'로 뒤범벅 되어 있던 롤스 고개를 넘어와 책 후반의 3부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다]에 다다르면,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제-정치-시민사회가 직조해낸 미국의 '민주주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본주의와 경제 논리에 침식당해 자유와 도덕적 가치를 위협받고 있는 시민과 공동체의 현실... 결국 마이클 샌델이 다시 역설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 시대의 민주주의를 떠받칠 수 있는 '시민의식'의 회복이다. 그럼 무엇을 통해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이웃에서 국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애매모호한 통치권에 저항하고 다중적인 연고적 자아로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민들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에 특히 두드러지는 시민 덕성은 때로는 주어진 의무를 수용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자신의 길을 협상하고,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p.303~304; 시민의식은 과연 회복될 수 있는가 - 시민생활 회복을 위한 과제들)
 
   


그리고 그 시민의식이 정치철학과 맞물려 운용될 수 있는 공간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community)'로 제시되고 있다.

그의 책에서 반복적으로 접했지만 아직도 왠지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공동체'라는 용어. 미국이 연방정부 체제라서 그런가 싶다가도,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거치는 동안 '전통적인 공동체' 개념을 고작 '옛날엔 그랬었지' 내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된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면 미국의 사례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신자유주의도 일종의 정치철학(?)인양 '미국 무작정 따라하기'에 빠져있는 어느 '국가공동체'의 현실이 어느새 1부 내용들과 자꾸만 교차 편집되어 떠오른다.
 

   
  통치와 상업주의가 지나치게 뒤섞이는 현상은 우려의 수준이다. 정치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면 정부 관리들은 대중문화와 광고, 오락 등을 이용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를 높이려 애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처럼 위장된 권위가 실패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확실하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중략) 하지만 국민은 고객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단순히 국민들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올바르게 시행된 정치는, 국민들이 자신의 욕구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올바른지 판단한 후 그 욕구를 수정하도록 이끈다. 고객과 달리 국민은 때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와 상업의 차이점이며 애국심과 브랜드 충성도의 차이이다.
(P.40~42; 공공기관이 상업화돼가는 현상)
 
   

 




2010년 8월 20일, 경희대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개인 메모)
 

- 경제를 우선시하면 윤리, 정의, 도덕과 같은 의미있는 주제들이 잘 다루어지지 못한다.

- 도덕적 질문들이 정치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그들에게 맡겨두면 안된다. 시민참여가 필요하다.
   정의에 위배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을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 삶을 통제하려고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 하나의 획일적 정체성을 설정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생활터전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고민해보야야 한다.

- 적극적이고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시민들이 서로 다른 신념을 들어주고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미 2005년에 펴낸 에서도 이런 생각은 고스란히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수많은 '뭐뭐' 주의와 개념들이 분명 생각의 방향과 범위를 넓혀주지만, 이러한 기본적 뼈대를 숙지하고 그의 글을 읽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철학적 개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최소한의 지표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가져보게 된다.




재미난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때와 마찬가지로 <왜 도덕인가?>라는 한국판 제목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처럼 슬그머니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 ← 원제
<왜 도덕인가?>    ← 원제

아마 이번에도 미처 내용을 챙겨 읽지 않은 사람들까지 제목에 자극을 받아 '왜 지금 도덕을 이야기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되먹여보고 있지 않을까?

<정의>가 안겨준 독서체험과 말로만 듣던 하버드 명강의가 만족스럽긴 했지만, 마이클 샌델이나 그의 저작들에 막연히 열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열광이 원서 제목에 덧붙여 창작된 '번역본 제목'에 어느 정도 힘입은 것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등 이 책들이 펼쳐놓은 다양한 정치철학의 세계에 빠져들어 그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해보는 것은 분명 색다른 체험이다. 그러나 '가정'과 '조건'에 의해 다양한 견해차가 곁가지로 뻗어가는 '개념'들에 휩쓸린 나머지, 그가 몇 년째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공동체의 위기'나 시민 각자의 자발적 고민, 그리고 여러 가지 답을 허용하는 열린 대화의 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책 제목이 건드려놓은 '정의'와 '도덕'에 대해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과 '공동체적 관심'이 한데 모여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가만히 빌어본다.

책을 덮으면, 이제 스스로 생각을 해보아야 할 시간이다.




 평화의 전당 앞, 내한 강연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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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0-12-21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금 추천을 눌렀지만, 이 리뷰는 좋은 리뷰일까요?
리뷰를 읽고 책이나 저자에 대한 관심은 생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정의-도덕-철학-정치-,,,
평소엔 관심없던 단어가 종일 머릿속에서 맴돌게 생겼네요.
생각하게 하는 리뷰인건 확실해요.

herenow 2010-12-22 15:01   좋아요 0 | URL
엥.. 좋은 리뷰일까요? 라는 부분에서 한 순간 삐질...
다행히 책이나 저자보다 '주제'가 관심을 끌어 당겼다면
꾸역꾸역 힘들게 읽고나서 리뷰 적은 보람이 있네요. ^ ^;

2010-12-22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0-12-23 17:01   좋아요 0 | URL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자'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 같은 표현을 보면
원문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긴 합니다.
같은 개념을 문맥에 따라 달리 말한 것인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개념인지 헷갈리지요.

'옳음(권리)이 좋음(선)에 우선한다'(p.219 등)는 식으로
'옳음=권리', '좋음=선' 관계로 대부분 의미를 풀어가지만
'선(옮음)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p.176)이라고 일부러 괄호안에 '(옳음)'을 넣어
'옳음=선'이라는 관계를 표기해놓은 경우에는 이게 오타가 아닌지,
원문에선 어떻게 적고 있는지 역시 확인해보고 싶어집니다.

번역자가 서로 다른 것도 분명 글의 느낌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0-12-2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 책도 읽어볼까 생각중인데
herenow님께서는 <정의>보다 <도덕>이 더 쉽게 읽혀진다는 내용을 보면서,
또 한 번 머리 아파 오기 시작하네요. 살면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간단한 주제이면서도
막상 책으로 읽을 때는 여간 쉽지가 않네요.
도서관에서 빌려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기에는 어려운 책인거 같습니다.

herenow 2010-12-23 07:50   좋아요 0 | URL
순전히 제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직접 책을 펴서 확인해 보시기를... ^ ^;
<정의>는 딜레마 상황을 통해 독자 스스로 생각해볼 여지가 많아서 쑥쑥 진도가 덜 나간 것이구요,
<도덕>은 읽어 보셨겠지만 대체로 일방적인 설명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일일이 고민 안해보고 그냥 읽어 나간다면 <정의>가 오히려 <도덕>보다 쉬울 수 있을테지요.
제목이 그냥 '정의'와 '도덕'이지, 사실 저 양반이 다루는 내용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볍게 다루는 그 '정의'와 '도덕'이 아니잖아요. ^ ^;;;

2010-12-2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 캐주얼 플래너 위클리 48절 B형 - 브라운

평점 :
절판


휴대하기 좋고 가장 실용적인 크기 + 가격 + 디자인. 부담없는 선물로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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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0-12-13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수첩을 많이 쓰는 사람만이 알 수 있죠.
저 크기가 가장 실용적이란걸..
그나저나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르답니까? ㅜㅜ

herenow 2010-12-17 00:0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연말되니 더 가속이 붙은 것 같네요.
(ㅠ.ㅠ)
 
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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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몸으로 말야, 직접 체험해 보고,
그 중에서 자신이 느낀 것과 생각한 것,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잖아?
그런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을 존경해. 신용도 하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척이나 하는,
타인이 만든 것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기만 하는 인간일수록
잘난 척만 하지.
-124쪽

난 말야, 타인에게 죽여 달라고 하고는
죽이는 법에 불평하는
그런 인생 보내기가 싫어졌어.
여길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코모리 사람들...그리고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오셨구나 라고.
-127쪽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집중해.
다치기 쉬우니까.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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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강 회복 기념 선물
    from 제발 제발 2010-12-11 20:33 
                  서재 이웃 herenow님 선물, 리틀 포레스트1,2  수술하고 45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수술 자리가 남의 살 같은 느낌이라 저는 병원에서 보낸 9일을 매일 기억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한테는 이미 멀고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번에 서재 이웃 herenow님께서, 수술 회복 기념으로 이 책을 선물
  2. 만화책입니다. 요리책이구요, 에~ 또~ 귀농일기? 전원일기? 그 중간 어디쯤.
    from 제발 제발 2010-12-13 17:22 
    작가도 몰랐어요. 출판사도 그닥 유명하지 않아요. 처음 보는 표지라 신간 서적인줄 알았어요. 심지어,  만화책이라는 것도 책을 받고 알았어요. (저는 밑그림같은 만화, 단순하지 않고 이렇게 수채화 밑그림 같은, '만화'라는 느낌보다 '스케치'같은 이런 만화책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책엔 그런 만화 취향이 문제가 안될 정도로 저를 확- 끌어당기는 한 방이 있어요.)  이웃(herenow) 서재에 놀
 
 
잘잘라 2010-12-0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무조건 사서 봐야겠어요.
밑줄만 그어놓은 리뷰가 이렇게 강렬할수가!!!

2010-12-07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8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3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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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가 꽤 높다.

"한 권으로 읽는 인문학 147권" 따위를 예상했다면 그건 좀 아니라고 살짝 말씀드리고 싶다.

그 책들의 핵심 내용만 쏙쏙 뽑아 알기 쉽게 간추려 주는 책도 아니다.

어떨 땐 리뷰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비평 같기도 하며, 어떨 땐 책 그 자체의 내용보다는 그때그때 자신의 감상과 하고픈 말에 더 많은 비중이 실린다.

그의 글은 엄정한 '비평'과 가벼운 '리뷰' 그 사이를 자유롭게 산보하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해, "로쟈"를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온라인 서점에 올라와 있는 책소개와 목차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설명은 대충 끝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를 안다면 상당수는 그의 블로그(로쟈의 저공비행)도 알 것이고, 그의 글 쓰는 스타일도 알 것이며, 책소개와 목차만 훑어보아도 눈에 익은 글들이 많을 테니깐. 한국의 '책 좀 본다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터이다.

그러나, 대뜸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부터 물어본다면 설명이 좀 길어진다.
아니, 사실은 그럴 때에도 블로그 주소부터 알려줬을 것 같다. 



 

뒷표지에 '매일 천 명 이상의 사람이 들락거리는 강의실'로 표현된 그 블로그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에 대한 글'이 올라온다. 처음에는 정말 무슨 '책 읽는 기계'이거나 '로쟈'라는 이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독서집단 같은게 있는 줄 알았다.

가만히 보면, 올리는 모든 글이 온전히 그의 글들만은 아니다.
주요 일간지에 실린 괜찮은 도서 소개를 하나 슥~ 갈무리해온 다음, 관련된 원서 표지나 주제에 관련된 이미지를 큼지막하게 붙여놓고 기사의 앞 뒤로 짤막한 멘트를 다는 경우도 많은 그의 블로그 스타일은 다른 '인터넷 서평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그의 블로그 주소를 알려준다는 것은, 웹툰 작가가 웹툰을 엮어 책으로 내었는데 공짜로 그걸 볼 수 있는 온라인 주소를 알려주는 기분과 조금 흡사하다. 하지만, <한겨레21>, <시사IN>, <출판저널>, <텍스트>, <공간> 등등 다른 매체에 기고된 글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그런 걱정일랑 안 읽어본 글들을 읽는 데에 돌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제법 많이 덧붙여진 [P.S.]들도 재미와 부담을 함께 가중시킨다.  



그가 작심하고 쓰는 글에는 정교하게 켜켜이 쌓아올린 섬세한 독서의 흔적이 있다.
빵으로 비유하자면, '바움쿠헨'이나 특수한 종류의 '패스트리' 같은 것인데, 한 가지 결과 맛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문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자연과학, 정치, 심리학 등 다양한 재료가 서로 얼기설기 엮여서 독특한 지식의 결을 구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학자적 자세와 양심이 마음에 든다. 오타나 오역에 대한 가차없는 지적과 비판,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용어를 곰씹어 사용하는 그 태도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어색한 번역을 가지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 것은 알라딘 서재에서도 늘상 보아왔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다른 글들에서도 여전하니 반갑다.

그는 요컨대 '발췌독'의 대가이다. 워낙 많은 책을 건드리니 당연히 구석구석 다 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도, 남들이 잘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점을 그 책에서 찾아내어 또 다른 지식과 연계하여 소개해 준다. 이미 봤던 책인데도 하나 이상은 꼭 새로 건질 것이 있다는 점이 그의 글을 찾아읽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자유>를 쉽사리 '한권으로 읽는~' 류의 책으로 부르지 못하게 한다. 이들은 모두 '로쟈에 의해 선별되고 재해석된' 것이므로 이 책을 다른 147권에 대한 소개서 쯤으로 여기는 것 또한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책 앞쪽에 실린 "책머리에"와 "프롤로그 :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는다"를 읽고 그닥 쫄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글들이 원래 그렇듯이, 평소보다 멋있고 좀 거창한 멘트를 집어넣은 느낌이다. 그냥 본문에 실린 그의 글들부터 읽기 시작한다면 심리적 부담이 덜해지지 않을까, 라는 사족.


여기 실린 글들은 기본적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뭔가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 자체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 법. 분명 이해의 질을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 '책' 자체를 직접 읽어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리라. 그것 역시 "책을 읽을 자유".


P.S.

"아따, 그 양반, 눈알도 부리부리하고 수염도 텁수룩한게 한국어를 아주 잘 하데~. 귀화한 러시아 사람인가?"

이건 또 무슨 소리? 인문학에 관심 있다길래 <로쟈의 저공비행> 블로그를 소개해 주었더니 며칠 후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아니 왠 러시아 사람? 아하.. '로쟈'는 <죄와 벌>에서 봤는지 어땠는지 러시아 이름인줄 안 것이고, 블로그 대문 왼편에 앉아있는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의 사진을 바로 주인장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 사람은 슬라보예 지젝이라구요, 지젝... (ㅠ.ㅠ)


☞ 로쟈 =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
☞ 로쟈의 저공비행 = http://blog.aladin.co.kr/mr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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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1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분땜에 책값 장난아니게 나갔어요~~ㅎㅎ

herenow 2010-11-23 01:41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maggie님.
정말 중요한 멘트를 빼먹었군요. ^ ^;

도란도란 2010-11-1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herenow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히어나우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덧글남기고가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herenow 2010-11-23 01:51   좋아요 0 | URL
방문하여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딜 다녀오느라 이 글을 이제야 봤네요 (이벤트 기간 만료 ㅠ.ㅠ)
흥미로운 내용인 것 같은데, 알찬 서평 받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