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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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책만을 낙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기대하던 작가가 새책을 냈다는 소식만큼 흥분되는게 있을까?  게다가 이번엔 책이 좀 두껍다.  솔직히 더 두꺼운 책이었으면 했다.ㅎㅎㅎ   전날밤의 숙취로 몰려나온 아침잠도 내쫓고 이책을 놓지 못하게 한 정유정작가 정말 대단하다. 

  마치 어딘가에 존재 할 것 같은 세령호.  한 눈에 그려지는 수목원과 댐, 꿈속의 수수밭 풍경..등등.  첫 책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서 알아챘던 작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스며 들어 있다.  우선 충격적인 소재와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독자를 당황하여 체념시킨 다음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어놓는 작가의 정교한 솜씨에 감탄하고 말았다. 

  시작은 주인공인 서원과 함께 가슴에 돌을 묻고 책장을 넘겼는데 언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믿음직스런 승환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이처럼 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믿음이 가기 시작하고 서원의 심정과 한마음이 되어 한가닥이라도 아버지에게 믿음을 갖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실은 존재했다.  서원이 인정하기 싫었지만 진실인채로 늘 그곳에 있었듯이.... 서원의 아버지인 현수가 그 대단원의 사건이 일어나기전 시발점이 되는 사건으로 최책감의 몸살을  앓을때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우린 순간순간의 선택을 하고도 그 선택이 잘된것인가 잘못된것인가 고민을 하고 후회를 한다.  자그마한 볼펜을 살때도, 실수로 누군가를 차로 치이고도 당황해 뒷수습을 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 안의  나는 갈등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우리 뇌가 스스로 그 기억을 놔버릴때까지 후회할 것이다.  현수가 놔버릴 수 없는 그 기억은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며 실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자신이 지금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들어와 있다고 자각을 때가 있었다.  그 순간엔 나의 마음은 내몸을 떠나 나의 몸뚱이를 내려다 본다.  이제 과연 내가 무엇을 하게 될까?  나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마치 도플갱어처럼 존재하는 나의 의식. 

  정유정작가의 책을 읽으면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를 읽다가 놀라운 스피드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마디 하게 된다.  

  "이런 영화같은..." 

  그런데 실제로 이책이 영화로 제작된다니 흥분이 된다.  나처럼 느낀 사람이 또 있었군.ㅎㅎㅎ 아마 책의 치밀한 묘사로 영화로 만들어 내기가 좀 더 쉽지는 안을까하는게 또하나의 나의 추측이다.  이책을 사들이고 정유정작가와의 대담같은 TV프로그램을 보고 시간을 충분히 들여 호기심이 안달나도록 한다음 이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3분의 1이 넘어가 버렸을때 제일 아쉬운 순간이 왔다.  아이들이 집에 왔고 아이들의 등장은 곧 밥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나의 의식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널브러져있는 이불들, 쌓여가는 책들, 바닥에 쌓인 고운 먼지들하며.... 내가 가정주부라는게 싫어지는 순간이다.   

  하여튼 그 난관들을 뚫고 며칠만에 다 읽은 나의 책[7년의 밤]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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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추적한 충격 에세이
오쿠노 슈지 지음, 서영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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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이런 끔찍한 내용의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나의 아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여러가지 교육서를 뒤지고 뒤지는 이유도 내 아들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서 점점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 나의 아들을 붙잡고 싶다. 

  어쩌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엄마로서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 했다고 그렇게 행동해야 했다고 합리화 시키는 나를 발견할때면 비참해진다.  수많은 교육서에서는 말한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를 이제는 한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이해해 주라고..... 정말 어려운 주문이다. 

  이책은  일본의 한 청소년이 범인으로 같은반 친구를 무참히 살해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그 사건후 몇 십년동안 피해자의 가족이 어떻게 생활했고 그 사건을 이겨내고 있는지 제 삼자의 입장에서 담담히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글의 앞부분부터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 나오고 범인이 다 밝혀지는 내용이어서 나도 읽기시작하면서 단념부터해야했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아들의 친구에게 잃은 슬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또한 이글의 배경이 아무리 일본이라고 해도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한번도 눈물을 보여준 적이 없다니 참 그 감정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이 가장이니까 연약한 아내와 딸을 지켜주려면 자신이 행동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감정을 억누르고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내고 죽지않는 한 살아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아무렇지도 않은척하고 무조건 듣지않고 피하고 이런행동들로 그들은 죽을때까지 살았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아들을 죽인 아들의 친구가 어떻게 죄를 심판받았는지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그저 남은식구들끼리 더이상 아픔을 주기 싫어 모든것을 덮어버린 생활을 해 나간것이다. 

  남겨진 엄마는 날마다 죽은 아들이 눈에 보여 차라리 하루종일 잠들어있는걸 택했다. 늘 약에 의존해 잠들고 자살 시도도 하고...하나남은 딸은 돌보지 않은채...  

  남겨진 누이동생은 늘 모범적이었던 오빠, 엄마아빠의 자랑꺼리였던 오빠를 대신해 자신이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그때부터 주욱 그렇게 한탄하며 살아왔다. 학업을 제대로 못한것 직업을 제대로 못가진 것 그 모두가 그 사건이후로 낮아진 자존감때문일 수도 있다. 

  남겨진 아빠는 아들이 죽을때 차고 있었던 피투성이의 시계를 죽을때까지 손목에 차고 다녔다. 아들이 좋아하던 등산잡지를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구독했다.  

  이 가족에게 서로를 이해해줄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그냥 습관처럼 같이 살았을 뿐...스스로의 슬픔에 짓눌려 그것을 풀어줄 그 무엇도 이 가족에겐 없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들이 잃은것은 아들만이 아니었다.   

  왜 이가족의 아들이 친구에게 살해를 당해야 했을까?  사건이 일어난 직후 친구가 몇몇남자가 휘두른 칼에 찔렸다며 구해달라고 학교로 달려온 이 범인은 자신이 범인이란걸 들킬까봐 자해까지 하고 달려왔다고 한다. 친구를 죽인 범인학생은 사건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이부분에서 어디까지 인권을 인정해주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우정이란 성인으로 가기위한 관문같은것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있어서 위로받고 여가시간을 같이 보냄으로써 아무 가치없는 일도 이들에겐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성인이되어서 이런 감정들이 그들에게 가득차서 매몰찬 사회에서 다른이에게 부딪히지만 이겨낼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그치만 그 우정이 제대로 쌓이기 위해선 가정교육,가정생활이 제대로여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수없이 고민해온 가정교육은 그 어디에도 답은 없다. 다만 아이들에게 좀더 도덕적인걸 바라는 부모도 있을것이고 성공이 중요하냐 돈이 중요하냐 이런것을 택하는것은 부모의 주관이 많은 영향을 준다고 본다.  

  하지만 나같은 부모는 복잡하다. 아이가  때로는 정의로왔으면 좋겠고 때로는 성공으로 내달릴수 있게 치열하게 공부에 전념했으면 좋겠고 어떨땐 다른이에게 자상한면모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럴때마다 사춘기의 날뛰는 감정을 해아려주지 못해 나는 아들과 부딪힌다. 어디까지나 부모가 중심을 잘 잡아주어야 올바른 한 인간으로 성장할텐데 말이다. 참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우리부모란 자리는 아마도 모든진리를 습득할 즈음엔 지팡이를 짚고 지는 노을을 보고 있지싶다. 

  이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집에서 보는 내 아이의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아이들이 학교에서 또는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할까를 한번더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또 깨달은것은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이제 표정하나 안바꾸고 나를 꼴딱 속여 넘어가게 할수도 있다는거..ㅎㅎㅎ 돌이켜보면 나또한  그랬으므로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자.... 

P.S: 해피트리에게 자꾸 셔틀콕 날리지 마라고 으름짱을 놓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화도 내어보았으나 아들의 뻔뻔한 거짓말에 매번 나만 K.O패!  그래서 생각끝에 이렇게 하기로 했다. 9만원짜리 해피트리가 중요하냐 15살난 내 아들의 소중한 취미가 더 소중하냐...음 아무래도 난 야구방망이로 셔틀콕 날리며 너무 잘친다며  우쭐해하는 아들의 그 행복한 모습이 더 소중한것 같다. 그래서 어제 낑낑대며 해피트리 화분을 질질끌어서 작은방 베란다에 유배시켜버렸다. 최근들어 제일 잘한 짓 같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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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생활 방식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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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에 눈동자가 들어있는 구멍하나가 인상적인 이책은 처음엔 아주 가볍게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골랐다.  하지만 읽다보니 어느순간 동감하게 되고 열망하게 된다.  어떤점이 이렇게 이끌리게 하나... 작가는 주인공 앨리스가 은둔하게된 사연을 한편한편 영화를 되돌리듯 들려주다가 결국엔 현실과 딱 맞물리게 한다.

  남자에게 투쟁의지를 불러일으킬만한 미모를 소유했던 앨리스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두남자와 계약연애를 하다  결국 자신만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신은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주었지만 행복은 허락할 수 없었나보다. 그렇게 야기된  비극으로 10년동안 은둔해 온 주인공 앨리스다.  그녀가 은둔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삶에서 비켜앉은 한 친구의 도움때문이다.  그 둘이 어떤마음의 교류를 해왔는지는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진않다. 단지 모든 주목의 대상이던 앨리스와는 달리 그리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는것...하지만 어쨌든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며 그녀 앞(?)에 서 있어 준다.  앨리스는 사회에서 이미 잊혀진 존재인 것이다. 그녀 스스로 그렇게 만든거고.

  306호에 이사오는 첫날 루이스라는 닉네임을 하사받은 주인공은 그날로부터 괴로운 입장이 되어버린다. 시도때도 없이 긴 파이프를 이용해 현관문을 두드리고 무언가를 사다달라고 아주 당연한 듯이 요구하는 305호의 앨리스..남자는 305호 앨리스를 윗층에 사는 코끼리만한 거구인 여자처럼 몸이 거대해서 집밖으로 나오길 꺼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앨리스는 남자에게 마트에서 물건을 사다달라거나 택배를 받아서 투입구에 넣어달라거나 하면서 그의 삶을 아주 귀찮게 만들어버린다. 루이스도 자신이 원하는 맛있는음식을 그 대가로 받아서 나름 만족스럽긴하다.  하지만 루이스에게도 그만의 사생활이란게 있다.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아주뜨거운 사이인 애인 지나가 있고 독일에서 살다온 그에게 한국에서 유일한 가족같은 친구인 수연도 있다. 그렇게306호에 들락달락거리며 모든일상이 풀리기도 하고 엉켜버리기도 하고....  

  앨리스는 자신의 집에 붙어있는 인터폰을 통해 자신의 집앞을 지나는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안에 철저히 숨어서 옆집남자인 루이스와의 대화를  즐기기 까지 한다.  루이스의 친구인 수연은 인터폰너머의 앨리스를 관객삼아 마임연기를 정기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오히려 얼굴이 보이지 않고 순수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그녀를 편하게 생각한다.  어쩌면 늘 그 인터폰은 켜져있을지도 모른다. 숨죽인 텔레비젼처럼 때로는 CCTV처럼 그녀가 감시할 대상은 자신의 현관앞인것 같다.  사회에 있을때 그녀가 주목의 대상이었듯이 그대로 똑같이 돌려주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녀의 복수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반부를 넘어서서 이야기는 점점 속도를 더해간다. 등장인물들이 감추고 있는 것들이 서서히 보여지고 그들이 어디쯤에서 이해를 구하고 넘어가는지 어떻게 극적인 순간에 욕망을 표출하는지... 306호 루이스는 옆집여자와의 사이를 의심하는 애인이 생각과는 달리 쿨한성격이 아니어서 지니고 있던 사랑의 감정이 반감되고 오히려 얼굴없는 앨리스에게 새로운 감정이 싹트는걸 느낀다.   번역일을 하는 루이스도 일을 할땐 자신의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아야 일이 잘된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은 비슷한 부류일지도?  이렇게 쓰고보니 나또한 비슷한 부류인가?  아침에 식구들 밥챙겨주고 내보내고 나면 하루종일 틀어밖혀 집안일이나 하고 뜨개질놀이나 인터넷을 서핑하는 나는 낮보다는 밤에 산책하는걸 더 편하게 즐기고 가끔 퇴근하는 남푠이 물어오는 뉴스거리를 통해 저런 이슈가 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보다 더 요즘 유행하는 가요나 가수를 잘 알때 과연 나도 그런 은둔형 외톨이가 아닐까? 단지 다른점이라면 그들은 자기가 주도적으로 세상을 왕따시키지만 나는 언제든지 문밖으로 나가고 싶다는거, 단지 귀찮을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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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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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의 날개를 벗겨내니 빨간색만 남았다. 막막하다. 독특한 문체다.. 엄마가 말하는 너는 바로 나이다.우리다. 엄마에게 수많은 세월동안 엄마를 말하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엄마가 아버지를 놓친 순간  엄마는 세살적일만 기억이 났다고 했다. 수많은 세월을 살다가 최근에는 순간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뭘하려고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던 엄마는 그렇게 잊고 지내던 기억속의 일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었다. 사람들이 살면서 누구에게나 시련이 닥친다. 평탄하게만 살아온 사람이 있었을까? 그 시골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엄청난 큰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엄마에겐 살아온 세월만큼 남모르게 고통받은 일들이 있었다. 다만 꼭꼭 눌러놓고 꺼내지 않았을 뿐... 

  아내가 실종되고 자식들이 전단지를 뿌리고 큰딸애가 경찰서며 병원의 응급실을 뒤지고 다니는 사이 아버지는 자책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자신을 따라서 지하철에 오르지 못한 그 순간 조금만이라도 빨리 뒤돌아볼 것을...늘 뒤쫒아 오며 조금만 천천히 가자며 보채던 아내의 말을 그제사 떠올리며 말이다. 혹시나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시골의 집으로 내려가 보았지만 집안 어디에도 아내는 없었다. 평소에도 자주 하지 않던 말.  

- 나,왔네.- -안에 있는가?나, 왔네!- -나, 왔단 말일세-  아버지가 웅얼거린말... 이렇게 남겨진 가족에게 엄마의 부재는 잃어버림은 너무나 큰 자리이다.

  아내를 잃어버리고서 결혼하기전 아내의 얼굴을 처음보던 날이며 아내가 그렇게 중학교에 보내고 싶어했던 시동생이자 아내가 유일하게 의지했었던 자신의 남동생의 자살을 아내와 가슴터놓고 얘기나누지 못한 일, 자신이  집을 떠나 떠돌다가 기별없이 집에 돌아와도 아내는 아무소리없이  밥상을  차려내던 일.... 자신이 이제는 늙어 몸이 아프기 시작할때 쯤 아내도 아프기 시작했을거라는 것, 가끔 머리가 너무 아팠던 아내가 혼절한듯이 아무곳이나 쓰러져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실종되기 몇해전부터 고아원에 기부를 하고 그곳에서 청소를 해주고 특히 한아이와 사이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는것 그아이 이름이 죽은 시동생의 이름이었다는 것.....그곳의 여자에게 자신의 딸의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것까지 알게되는 아버지. 아내가 글자를 읽지 못하는걸 그동안 무시하고 살았던 것...그것을 자식들은 알고 있을지 그것도 모르겠다는 것... 자식이 크면 부모의 품을 떠나는 거라고 이제는 뒷방 늙은이취급이라고 남편에게 제발 당신이 사흘이라도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한다며 남편을 걱정하던 아내는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의 힘은 자식들이다. 큰아들에게 꼭 검사가 되어야한다며 힘을 북돋아 주었던 엄마..초등학교를 졸업한 셋째딸을 큰아들에게 데려다주며 여자는 더 배워야 한다며..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삼키며 큰아들에게 그런 큰 짐을 지우는게 미안한 엄마..자식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했던 엄마.자식과 남편만 돌볼 줄 알았던 엄마.  

  힘이 들때면 죽을만큼 괴로울때면 마음의 동무를 찾아갔던 엄마...여자로서의 자존심은 지긋이 지킨 엄마...그러나 정말로 자신이 머리가 깨질만큼 아프고 얼마 안 있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거라고 예상되어지던 그 때 그동무에게  찾아가 위로받는 것을 끝까지 꾹 참아낸 한 여자인 엄마.  

  나의 엄마는 나의 아내는 정신을 그렇게 쉽게 놓을 사람이 아니라고 치매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이다.  아무리 부정해도 인정하기 힘들어도 흘러간 시간들이 품을 떠난 자식들이 그렇게 엄마를 잊어가는 동안 엄마는 그렇게 세상을 잊고 다시 어린 박소녀라는 이름의 여자로 돌아갔다. 17살 아버지와 결혼하기전 네 아이를 낳기전의 한 여자로 살고 싶었던... 늘 엄마곁에 머물고 싶었던 한 소녀로.... 

  책을 읽는 내내 엄마에 대한 측은함이,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서글픔이 밀려와 나를 울게 만든 책이다.  실제 나의 시어머니도 치매가 있는지라 이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어머님이 너무나 보고싶고 죄송했다. 어머니의 일생이 이책에 있는 것 같았고 지금의 어머님이 왜 그런상태인지 나름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세대가 부모세대를 이해하려고 애써봐야 힘만 든다. 그저 그 시절엔 다 그렇게 사셨잖아요.. 뭐 그정도이다. 이책은 이런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분들에게 이해의 폭을 넓혀 줄 수 있을 것이다.

  *더~리뷰* 

리뷰를 올리고 계속 고민되더라..정말 이대로 이책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나....며칠동안 머릿속에서 멤도는 생각들을 더 써봐야 겠다는... 

엄마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이제는 남편에게 갔다가 큰아들에게 갔다가 딸들에게 가 닿는다. 그처럼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집에서 홀가분하게 자유롭게 떠나갈 수 있게 된것이다. 새처럼 가볍게 훌쩍 떠나는 엄마의 영혼은 긴 세월 닫아 두었을 뿐 전혀 무겁지도 슬프지도 않다. 이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엄마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을 둘러본다.  

셋째딸에게는 어린나이에 서울에 내보내어(물론 큰오빠집이기는 하지만) 고생을 시켰다는 죄책감에  미안해 했고 늘 책만 파고드는 모습에 내심 부럽기도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까막눈이라는게 어느덧 딸과의 장애물이 되어버린것이다. 그것은 엄마 스스로 느낀 자존심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셋째딸은 엄마에게 있어서 꿈같은 것이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것.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말이다. 막내딸은 자신과 취향이 다르던 셋째딸과는 달리 엄마뜻대로 이쁜옷 입히며 곱게 그리고 영특하게 자라준 딸이기에 더욱 마음이 간다. 그 막내딸을 금전적으로 더이상 쪼들리지 않게 키워내서 엄마는 행복했다. 막내딸에겐 공부할만큼 시켰고 능력껏 얼마든지 살수 있는 뒷바라지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내딸이 선택한것은 엄마가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엄마의 자리였다. 세아이를 기르며 비지땀을 흘리는 막내딸을 보며 생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막내딸은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자식들을 위해 모든것을 희생한 엄마에게서 배운것은...어째서 그렇게 능력이 넘치는 딸이 모든것을 버리고 아내로 그리고 둘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 아이를 낳고 지난날의 어여쁘던 용모를 버리고 머리질끈 묶어버린 모습을 하고있을까,...어느덧 자신을 닮아버린 막내딸...엄마는 그런 막내딸이 더욱 애틋하다.

엄마에게도 손을 놓고 싶지않은 엄마가 있었다. 언제나 엄마의 딸이고 싶었던 엄마..이대목에서 여성들은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늘 엄마의 딸이고만 싶었다고... 

우리가 죽기전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슴터놓고 이야기 할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아니다 우리들은 그 시간이 알게 모르게 주어진다 한들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마음이란것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변하는가. 꼭 이야기 해주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것들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아봐야 그 모든것은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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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
앨리스 세볼드 지음, 공경희 옮김 / 북앳북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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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겨우 14살이다 수지는.... 바로 아래인 여동생과는 엄마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싶어하는 라이벌관계이자 오직 자매만이 가질수 있는 시간들을 가지고, 아직도 손을 빠는 4살짜리 남동생에게는 엄마다음으로 잘 돌봐주는 누나이다. 수지가 살해되는 시기는 1973년 12월 6일 이웃의 옥수수밭 ....  며칠뒤 이웃집개가 수지의 팔꿈치를 물고 나타나자 수사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수지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발견된것은 책과 수지에게 반한 레이싱이라는 소년이 그날 수업시간에 수지의 책에 살짝 끼워놓은 연애편지조각...이 연애편지조각으로 레이싱은 살인범이 될 뻔했다. 그리고 수지의 모자....수지의 엄마는 딸의 팔꿈치가 발견이 되었어도 딸이 살아돌아오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렸어도 어딘가에 살아있을거라고 믿었다. 그런 환상은 간절히 바라면 절대 의심하지 않으면 이루어질것만 같았다. 사건은 지긋지긋하게 끝을 보지 못한다. 그 시간들을 수지는 이곳저곳을 헤매며 사람들을 살피는데 보낸다. 이 이야기는 살인을 당한 가족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내느냐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쉽게 극복되어질 수 없다는걸 모두 다 안다. 표면적으론 잊어버리려 애쓰지만 그 누구도 잊을 수 없고 언제나 예민한 부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장 가까웠던 부모님마저도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봐 다가가지 못하게 되고....여동생린지는 그애만의 영민함으로 단단한 철옹성을 쌓고 그누구도 자신에게 상처주지 못하게 한다. 어린남동생 버클리는 큰누나를 자꾸만 찾는다. 자신을 달래주던 다정했던 누나를 말이다. 죽음은 떠난것이지만 떠난사람은 늘 돌아온다고 알고 있는 버클리는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에서 어느 하나도 덜 중요시 되는건 없다. 수지가 사랑한 아빠, 유일하게 수지와 단 둘이서만 만들던 배를 병속에 넣는 의식....수지만이 그 일을 신기해하고 도와주었었다. 큰딸이라는 개념은 엄마와 아빠에게 참 다른 의미일 것이다. 수지의 아빠에게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위대하게 바라봐주는 자식이며 자신이 죽어서라도 보살피고 싶은 작은 핏줄이다. 그런딸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기에 아빠는 한순간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남은 자식이 어떻게 될까봐 최선을 다해서 보듬는다.그리고는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아빠만의 예민한 감각으로 이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이웃집 하비가 살인범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하지만 아무 증거도 없어서 번번히 경찰에게 무시당한다.  

 그리고 수지만의 엄마, 겉으론 현실로 받아들이는 모습, 수지의 모자가 발견되고 빠르게 포기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런모습은 빗나가는 구석이 있다. 해소되지 못하는 슬픔은 가끔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버린다. 경찰관 렌과의 관계로 아예 남편과 자식들을 버리고 죽은딸로부터 도피를 하게 되는 엄마. 엄마의 외도를 눈앞에서 뻔히 보고도 미움보다는 슬픔과 애절함이 앞서는 수지...그런 엄마를 이해할만큼의 여유가 없는 가족들, 그들조차 비난할 수 없는일...그저 기다리기만할뿐 그들이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엄마는 남동생 버클리가 중학생이 되도록 집을 떠나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살게 된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외할머니였다. 엄마와는 다르게 세상을 살았던 할머니다. 오랫동안 남편의 외도를 화려한 사치와 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셨던 그런 분이 자신의 딸이 죽은 손녀로 방황하게 되자 남은 식구들을 챙겨주게 된다. 이렇게 한 가족구성원의 평범하지 않은 죽음이 가족을 해체시키기도 하는 반면 다시금 모여살게 하고 그 유대가 남다르게 만든다.  작가가 만든 The Lovely Bones라는 말은 아마도 이런요소에서 나왔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지는 계속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지만 않았다면 좋아하던 레이싱과 아름다운 입맞춤을 했을 것이고 사랑을 키워나갔으리라...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다시 되돌릴 수 없는 10대 시절이다. 죽어서 천국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지게 된것이겠지만 그것보다 더한 고통은 자신은 더이상 자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레이싱의 주변을 서성거려도 대학을  들어간 여동생옆에 있어도 이젠 그들과는 같이 할 수 없는 시간들, 그들은 서서히 어른이 되었고, 사랑을 했고, 서로에게 위로받았다. 레이싱에게는 첫사랑을 느낀 여자아이로 남았지만 수지에게는 여전히 사랑하는 남자친구일 수 밖에 없다.  자기때문에 슬퍼하고 상처받은 가족들의 옆에서 그들의 마음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수지는 이제 강간살해 피해자가 아닌 카운슬러가 된 기분이다. 어서 빨리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떨쳐버리고 일어서야 할텐데하는 심정으로 그들주위를 멤돈다.  

 글의 후반부는 판타지같은 일이 일어난다. 수지가 죽어서 천국에 가기전 수지의 영혼은 같은 학년인 루스에게 스친다. 그일로 루스는 자신이 뭔가 특별나다는걸 알아차린다. 죽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장소까지 알게된다. 자신이 본것이 수지라는 것을 깨달고는 레이싱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며 수년간 친구로 지내게 된다. 세월이 흘러 레이 싱과 고향을 방문하게 된 루스는 수지의 시신이 버려진 구덩이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수지를 명확하게 느낀다. 루스가 묻는 말 그 한마디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린다. -"넌 바라는게 없니 수지?"-그순간 우연히 그곳을 지나쳐가는 살인범 하비씨...그가 죽인 여자들이 루스의 눈에 보여진다. 자신이 버려진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던 수지...그 순간 루스의 몸속으로 수지는 떨어지게 된다. 천국에서 말이다....왜 이때인가?  왜 하필 루스의 몸속인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다. 과연 14살 여자아이 수지가 바라는 게 뭐였을까? 궁금한 독자는 이책을 읽어보면 알 것 이다.

 우선 중요한 소재가 강간살인이기때문에 꽤나 폭력적이고 심각할꺼라는 나의 예상을 뒤엎고 이야기는 아름답다고 표현할만큼 서정적이다. 주인공 수지는 옆집아저씨에게 살해당한다. 이 남자가 죽인 사람은 수지뿐만 아니다. 호기심이 강한 그또래의 아이를 어떻게 현혹시키는지 예민한 감각으로 알고있는 이 남자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성격이다. 그동안의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나는 연쇄살인범의 유형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단순한 사이코라고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글은 죽은수지의 영혼이 천국을 떠돌아 다니면서 본 수많은 것들을 나열한다. 그중엔 이 살인범의 어린시절도 보여진다. 아주 담담하게 그 장면 하나하나를 보여주는데 수지는 전혀 이 살인범을 증오한다거나 죽이고 싶어하거나 하지 않는다. 예로 늘 또박또박 하비씨라고 호칭을 쓴다. 어쩌면 죽음이 그런 감정들을 모두 사라지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이 자가 외롭게 어린시절을 보내며 어떤 내면을 갖추게 되었는가가 수지의 이해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수지는 우리에게 이사람은 이런감정이었을 것이다라고 친절하게 이해시켜주려고 까지 한다. 그리고 수지가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이 찬찬히 나열되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다. 어떤 아픔도... 아마도 아픔과 분노는 수지의 천국을 표현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을것이다. 수지는 너무나 살고팠으므로....

 수지는 죽기 하루전 한눈에 반한 레이 싱과 살짝 입맞춤을 했었다. 그 또래 여자아이에겐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감수성이 뛰어난 수지에게는.... 수지는 엄마의 어린시절을 본다. 그런 수지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이 미래에 어떻게 될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시절 수지가 본 엄마는 자신을 임신함으로써 자유롭게 살 이상을 버리게 되었고 이때문에 수지는 엄마에게 연민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엄마는 엄마이기전에 한 여자였다. 아름답기 그지없는....수지의 어느 생일날아침 우연히 정원의자에 앉아있는 온전히 여자인 엄마를 찍게 된 수지는 그 사진한장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그모든것이 다 수지가 죽기전의 일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전히 수지는 엄마와 같은 아름다운 한 여인이 되고싶었을 것이다.

  글의 배경은 30년도 더된 시대지만 미국의 10대들은 언제나처럼 나에겐 감당하기 힘든점이 있다. 미국부모의 태도 또한 우리들의 부모와는 아주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마약을 한다거나 성적으로 아주 성숙해져 버리는 등 그 시기가 어른도 아이도 아닌점은 이해하지만 우리처럼 부모가 간섭하지 않는 부모자식간의 관계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점에선 난 너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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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3-0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영화를 보고 왔는데 해리포터님 리뷰를 보니까 영화가 더 잘 이해가 되는 느낌이에요. 영화에서는 14세에 살해됐다고 나오는데 책에서는 12세였군요. 아름답고 슬픈 작품이에요.

해리포터7 2010-03-0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아니에요. 제가 잘못 봤어요. 14세 맞아요.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