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땅-제주!

   올해도 기어이 떠나왔습니다. 작년까지는 김의주선생님이 훌륭한 동행자가 되어 주었지만, 중요한 연극 공연을 앞둔 탓에 저 혼자만 달랑 떠나왔습니다. 아침 9시 제주도에 도착해서 저녁 7시에 숙소를 구했습니다. 여기는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입니다.

   저는 떠나기 전날에 꼭 잠을 설치는 징크스가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새벽에 깜빡 졸았습니다. 다행이 김의주선생님이 배웅해 주신다고 해서 아주 편하게 김해공항에 갔습니다. 의주샘이 약간 아쉬워하면서도 평소대로 담담하게 잘 다녀오라고 했답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새벽 같이 일어나 저를 챙기는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갚아야겠죠?

   마침 제가 배정받은 비행기 좌석이 비상구 옆이라 승무원과 마주 앉게 되어 좀 어색했습니다. 어색함을 푸느라 평소에 비행기 승무원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인터뷰'식으로 꼼꼼하게 물었는데 대답을 무척 잘 해 줬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가니까 제주도에 금방 닿았습니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제주해안과 군데군데 구름에 가린 한라산을 사진기로 열심히 담았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일로 출발이 무척 순조로운 느낌입니다. 역시 사람에게 받은 배려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가 봅니다.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이번 여행 끝까지 아무런 걱정없이 제주도와 잘 엉키다가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제주공항을 나서자마자 제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약간 멍해졌습니다.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덮고, 도로에 차들은 너무 쌩쌩 달리고. 사람은 안 보이고... 겨우 근처 상점에서 나눠주는 부실한 지도 한 장을 얻어 방향만 잡아서 무작정 걸었습니다.

   갑자기 혼자 떠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왜 걷고 있지?', '내년에 같이 올 걸!',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더울까?', '오늘은 어디서 잘까?', '다 돌아보는 데 며칠이나 걸릴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눈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길가에 핀 잡풀의 날카로운 가시에 손등 부분을 긁히고 말았습니다. 한눈 팔고 있거나, 제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꼭 이렇습니다. 긁힌 부분이 무척 쓰리고 따가운데 누구에게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하소연한다고 제 아픔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도 이런 일과 꼭 같지 싶습니다. 늘 정신을 딴 곳에다 쏟고, 그러다 상처 받고, 또 그 상처를 삭히느라 혼자서 끙끙대고..

   어느덧 제 발걸음은 제주도의 북서쪽 일주도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제가 걷는 왼쪽은 아직도 구름에 가린 한라산이 계속 보이고, 오른쪽은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도로 옆에는 때 이르게 핀 코스모스 천지고, 최근에 예쁘장하게 지은 펜션도 바닷가 전망 좋은 곳에 듬성듬성 보입니다.

   3시간을 꼬박 걷고서야 식당을 찾았습니다. 아주머니와 이러저런 이야기를 해 가며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근처 초등학교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잤답니다. 어제 밤에 잠을 못 잔 탓인지, 천성이 게으른 탓인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더 자고 싶은 그 유혹을 떨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오후부터는 머리 속에서 잡념이 없어지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직 오늘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 뿐!

    열심히 걸었습니다. 이제 왼쪽으로 까마득하게 보이던 한라산 정상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한라산 너른 품에 기대서 살고 있는 이 땅 사람들의 삶터이자 일터인 밭들이  야트막한 돌담에 둘러싸여 드문드문 드러납니다. 제가 오늘 제주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이 바로 이 돌담이었습니다. 제주도에 많은 것 중의 하나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돌을 쌓아두고 사는 줄은 몰랐습니다. 집 둘레도 그렇고, 밭 주변에도 어김없이 주변에 흔하디 흔한 돌을 그냥 쌓아다가 돌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돌담 너머, 돌담, 돌담......

   처음엔 '야~! 신기하네?'라고만 생각하다가 점차 '어? 저렇게 허술한데 어떻게 무너지지 않지?'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다가, '아! 저 엉성한 돌틈 사이 구멍으로 바람을 통과시켜서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옛말에도 강하면 부러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멘트로 꽉 막아둔 담장은 바람이 빠져나갈 틈이 없어 무너져도,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 듬성듬성 쌓아 놓은 돌틈으로 바람이 다 빠져나가니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돌담은 끄떡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세상사 거친 바람에 그냥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시멘트 담장이 되지 않으려면, 허허롭게 비워두고 서 있는 저 돌담처럼 서 있어야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정작 '담'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려면 현명하게 판단해서 행동해야 함을, 오늘 저 제주 돌담을 보고 느꼈습니다.

   오늘은 북제주군을 걸어왔습니다. 이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이 곳 사람들은 옛날에는 콩, 보리를 주로 심었지만, 요즘은 주로 참깨, 마늘, 감귤 같은 특용 작물을 재배하며 살고 있습니다. 토질과 기후가 감귤의 당도를 그렇게 높이지 못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이 더 부지런한가 봅니다. 상대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도 없어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 마을들이 이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모습이 일상이지만 제주도도 이렇다는 게 약간 이상합니다. 제주도 하면 온통 '관광'하는 사람들 뿐인 줄 알거든요. 덕분에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절하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 사투리를 하는 염색을 예쁘게 한 청년들의 순박함이 더 돋보이는 곳입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늘 행복하셔요.

  2003년 8월 21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에서 느티나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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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3-12-0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 여름에는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요. 내년에도 여행을 해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살면서 아주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된 기간이었습니다. 아껴주신 분 모두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오랫동안 잊지 않고 갚아 나가겠습니다.
 

만남

   어젠 쪽방에서 늦게야 잠들었지만, 편하게 잘 잤습니다. 우리가 잠든 방은 어제 말씀드렸 듯이 씻을 곳이 없는 방이라 아침 세수를 복도 끝에 있는 싱크대에서 조심조심 합니다.(다른 사람이 깰까 봐서요.) 기분이 묘하더군요. 자꾸 주변을 살피게 되고-돈이 없다는 건 이렇게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잠깐 해 봅니다.-, 여행을 떠나 와 처음으로 제대로 씻지 못한 날이지 싶습니다. 오늘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숙소를 나오고 나서는 마음이 가볍습니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평소보다 약간 짧고, 날씨도 해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숨었다 하는 터라 걷기에 적당할 것 같아서 입니다. 숙소 근처에서 빵과 우유로 아침을 먹으며, 주문진 읍내를 돌아서 나옵니다. 일요일 아침, 밤새 들뜬 모습으로 북적대던 관광지가 푹 잠이 들어 있습니다.

   도로에 올라서니 어제처럼 차가 씽씽 달립니다. 차들이 무서워 갓길에 바짝 붙어서 조심스럽게 걸어갑니다. 상황이 어제와 꼭 같습니다. 저에게는 이제 차가 정말 공포스러운 '흉기'로 느껴집니다. 저도 돌아가면 운전하고 다니겠지만, 이전과는 느낌이 좀 달라져 있을 것 같습니다.

   도로 오른쪽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입니다. 어제처럼 날이 흐리지 않아서 코발트빛 바다 색깔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람의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그 빛깔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아득한 저 수평선과 그 선에서 밀려올수록 점점 선명해 지는 바닷물, 그리고 하얀색 파도...사진기로 찍어서 보내드려야 하는데, 걸어가는 동안 저는 아무 것도 하기가 싫습니다.

   도로 왼쪽은 야트막한 야산들이고, 저 아득히 먼 곳으로는 구름이 가득 퍼져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제 멋대로 만들어 내는 구름 모양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초록색 들판이 이어지기도 하고, 한가로이 '왜가리'같은 새들이 논에서 쉽니다. (오직 차만 너무 바쁘게 씩씩거리네요!)

   걸어가다 보니 도로 공기가 이상합니다. 바다에서는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가 언덕쪽으로 퍼지고, 언덕 쪽에서는 후끈한 공기가 밀려와 딱 도로중간에서 만납니다. 몸의 반쪽은 차갑고, 반대쪽은 후끈거립니다. 걸어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점심은 현남면에서 먹습니다. 값싸게 먹을 수 있고, 만만한 게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라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아직 선뜻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안 납니다-결국 된장찌개로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면사무소로 옮겨 짐을 풀고 앉습니다.

   일직하시는 분-두 아이의 어머니-이 두 아이를 데리고 면사무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의주샘은 바로 옆 건물인 '주민정보화교육장'으로 가고, 전 움직이는 게 성가셔서 그 두 아이랑 놉니다. 큰 녀석은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인데 너무 귀엽습니다. 저랑 같이 그림도 그리고, 숫자 놀이도 하고, 곰인형을 가지고 노는데 정말 재미있네요. 제 수준이 딱 맞는 거 있죠? 아마 며칠 동안은 오늘 놀았던 그 생각을 하면 흐뭇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재미있게 노는 동안 잠시 '강원일보'를 슬쩍 보니, 도교육청에서 '특기/적성교육과 자율학습'을 학교 자율로 시행하도록 했다는 기사가 크게 나오더군요. 얼마 전까지는 일정한 시간을 두어 제한했는데, 이번에 그 시간제한을 없앴답니다. 그게 학교 자율이라는군요. 정말 좀 제대로 잘 할 수는 없는지 답답합니다. 휴~! '해인(6살)'이와 '해찬(4살)'-같이 논 그 녀석들-이가 중학교에 갈 때쯤이면 좀 나아질까요?

   오후엔 휴게소에서 처음으로 도보여행자를 만나기도 합니다. 춘천에서 3일 동안 걸어서 양양까지 왔다는 대학생 3명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잠도 교회에서 얻어 자고, 돈도 거의 안 가지고 나왔답니다. 시커멓게 탄 온 몸을 보며,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내밉니다. 연신 고맙다며 수줍어하네요.

   다시 길을 나서 한참을 걷습니다. 처음엔 1km가 짧은 게 아주 크게 느껴졌는데, 25km나 30km가 별다른 차이가 없이 느껴집니다. 저녁쯤엔 다리 근육이 항상 뭉쳐집니다. 오늘은 중간에 적당하게 쉴만한 곳이 없어 계속 걷습니다. 한참을 걸어도 적당한 곳이 나오지 않아서, 도로 옆 인도에 짐을 풀고 잠깐 눕는다는 것이 아마 잠이 들었나 봅니다. 제법 시간이 많이 갔는지, 일어나니 다리 근육이 많이 풀려 있습니다. 이제 다시 힘차게 걸을 수 있겠습니다.

   7시 20분. 평소보다 약간 빠르게 양양에서 숙소를 구합니다. 값도 싸고, 괜찮은 곳입니다. 어제 못한 빨래를 다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습니다.

   지나온 날, 밤마다 지도를 펴놓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지도보다 왜 걷느냐에 대한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싱겁겠지만 '즐기기 위해서'라는 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누구나 즐기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겠지요?

2002년 8월 18일, 강원도 양양에서

느티나무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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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힘!

   안동시내 한 복판의 여관에서 잠이 깨자 창 밖부터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아니, 아직은- 비가 오지 않습니다. 서둘러 짐을 꾸려 아직 잠이 덜 깬 안동시내를 걸어나옵니다. 여전히 아침은 빵과 우유입니다.

   오늘 걷기로 한 길은 안동에서 북쪽으로 난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서원까지입니다. 오늘은 아마도 거대한 안동호가 우리와 함께 걸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안동호는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로 숨을 고르고 있겠지요. 징그러울 수도 있고, 안쓰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게걸스러움에 돌을 던질까요? 그 넉넉함에 푸근히 잠겨볼까요?

   안동시내를 벗어나 서원으로 가는 길 입구는 참 예쁘게 나 있습니다. 안동 북쪽은 전형적인 시골길입니다. 예쁜 길 주변으로는 엄청난 비에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벼와 포도, 호박, 고추, 수박들이 보입니다. 다들 이제는 비가 그만 와도 괜찮다는 표정들입니다.

   단조롭고, 긴장감이 별로 들지 않는 길을 걸으니 무엇이든 자세하게 보려는 버릇이 생기는 가 봅니다. 주의할 게 적은 길에서는 마음도 풀어져서 한눈도 팔게 되고, 콧노래도 부르고, 도로 주변을 왔다갔다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은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시선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눈은 아스팔트 주변으로 고정되고,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이야~! 정말 대단하다!  그곳에는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습니다.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말입니다. 땅을 숨막히게 덮고 있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와서는 참았던 숨을 내쉬듯 싱싱하게 잡초들이 자랍니다.

   아스팔트를 뚫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잡초 뿐인가 봅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다른 것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아스팔트를 뚫은 잡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요? 정말 그 힘이 대단함과 신기함을 넘어 두려운 생각까지도 들게 합니다. 사실, 잡초는 제가 보는 풍경의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식물의 대부분이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들입니다. 우리는 포도, 사과, 고추, 호박, 수박을 보고는 감탄하지만, 흔하디 흔한 잡초에게 눈길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잡초를 보며 '우리 모두'의 삶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냥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열심히 제 몫을 하며 사는 것! 누군가가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해야할 일을 하는 것! 자존감(自尊感)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서는 것! 잘난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세상의 허한 구석을 채워야 할 운명 같은 것!(도무지 잡초를 빼고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중간 중간에 일하시는 분들께 이것저것 여쭙습니다. 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이 분들의 말씀마다 수줍은 듯이 ‘했니껴’로 끝나는 이 지역 말투가 너무도 순박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면 가야할 길을 잊은 것처럼 마냥 퍼질러 앉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 점심은 아주 특별합니다. 옛날에 살던 마을이 안동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되어 집단으로 이사온 마을에 들렀습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이  나그네식당 이랍니다. 이 식당에 들고 보니 하나하나가 다 신기합니다. 허름한 간판하며, 가격표하며, 해 주시는 음식하며...이렇게도 장사를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지역에서는 메밀묵을 '메물묵'이라고 하신 답니다. 그리고 노란색 조가 많이 섞인 밥을 내 주시면서 묵밥을 만들어 주십니다. 덤으로 할머니의 구수한 말씀이 곁들여져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점심을 먹습니다.

   도산서원은 그냥 지나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한참을 더 북쪽에 있는 토계면에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면사무소에 들러 쉬면서 잠 잘 곳을 여쭈니 이 마을엔 여관이 없다고 합니다. 좀 전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여쭈었을 땐 분명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다시 안동까지 돌아가서 자야할 것 같아서 난감합니다. 그래서 서둘러서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바로 앞에 숙소가 보입니다. 황당해서 헛웃음만 나옵니다.

   바로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왜냐면 내일 걸어야 할 거리가 만만찮은 까닭에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걸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6km를 더 걸어서 갔다가 옵니다.

   이 곳은 떠나와서 처음으로 pc방이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입니다. 오는 길 내내 그 흔한 '여관' 하나 없는 그런 곳입니다. (요즘 국도를 가시다가 큰집을 짓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러브호텔'이더군요.)

   저번 편지에 안동의 힘! 말씀을 드렸지요? 안동의 힘은 곳곳에 자리잡은 고택이나 문화재가 아니라 아직은 저질 소비문화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선 논과 밭에서-아직은 러브호텔로 변하지 않은 논과 밭에서, 그리고 그 밭에서 정직하게 땀흘리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봅니다. 바로 그것이 잡초의 힘이겠지요. 안동의 힘이기도 하구요.

   밤하늘에 별이 총총한 그 날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늘 함께 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2002년 8월 11일

경북 안동시 토계면에서 느티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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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행복 찾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작할 땐 날씨 얘기를 하는가 봅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오늘 문득 어쩌면 날씨가 우리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당하면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까요. 우리를 요즘처럼 불편하게 하면 그제야 다들 날씨 얘기를 호들갑스럽게 하게 됩니다. 이렇게 날씨 얘기를 쓰고 보니까 우리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다시 한 번, 직업병이 도지는 걸 허락하신다면 저도 우리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기 전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이 금방 여름 땡볕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아이들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곧 아이들 때문에 근심해야 할 때가 올 것 같습니다. 론 제가 편하자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요.

   저도 날씨 얘기부터 하자면 오늘은 약간 흐리면서도 바람이 조금씩 부는, 걷기엔 더 없이 좋은 날입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온 곳도 있나 봅니다. 쪼그만 나라-걸어다녀 보면 이런 말 절대로 안 나오지만-에서도 이렇게 날씨가 다르니-방금 서울에 계신 한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는데, 비 오지 않았냐며 걱정하셨습니다-신기합니다.

   오늘은 밀양시내에 있는 밀양교에서 영남루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밀양시내를 한바퀴 돌아 나와, 밀양 긴늪이라는 곳까지 걸어 청도쪽으로 방향을 잡고 상동면까지 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꼬박 12킬로미터를 오전에 걸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점심 먹고, 잠시 쉬었다가 청도 방면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오늘은 청도군까지 와서 숙소를 잡고 경산 쪽으로 좀 더 걸어갈 예정이었습니다. 큰 고개도 없었고, 밀양강 상류를 좇아 계속 걸어가는, 강을 끼고 도는 길이 으레 그렇듯이, 이 길도 너무 예쁩니다.

   다른 얘기지만 오늘은 도보여행의 매력에 대해서 든 잡다한 생각을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본질적인 부분은 첫날에 잠깐 말씀을 드렸기에, 오늘은 여행길에서 소박하게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걸어다니니까 무척 아픕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지만, 우선은 너무 다리가 아픕니다. 종아리 근육은 뭉쳐 있고, 발가락에 물집은 잡혀서 걸을 때마다 따끔거립니다. 발목도 너무 많이 걸으면 시큰거립니다. 또 큰 배낭을 지고 가니까 허리도 아픕니다.

   날씨가 너무 더운 날은 피부가 햇볕을 그대로 받아서 저녁이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옷은 입은 지 30분이면 땀에 흥건하게 젖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채로 하루를 계속 입고 다녀야 합니다.

   잠자리도 영 불편합니다. 물론 돈을 많이 내면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 우리가 내는 돈으로 선뜻 방을 내주는 곳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피로가 점점 쌓이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집에선 부모님이 해 주시는 많은 일들이 힘들어도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편한 것에 너무 익숙해서 잘 몰랐던 일이 제 일로 다가오는 것도 무척 힘듭니다. 그러니 하루 일과가 아무리 빨라도 11시쯤에야 겨우 납니다.

   그래도 이 모든 불편을 이기는 도보여행의 재미도 쏠쏠합니다. 길가 아무 곳에나 쓰러져 쉴 때 받게 되는 뜻하지 않은 환대는 그간의 힘든 고통을 모두 잊게 합니다. 오늘도 밀양시 상동면사무소와 우체국에서 받은 호의-매실냉차와 커피 한 잔이지만-에 무척 행복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개울이 나오면 발을 담글 수 있는 것도 멋진 일입니다. 오늘 걸은 길은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새로 고속도로를 만든다며 산의 곳곳을 헤집어 놓았지만, 그래도 강물만은 넉넉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얘긴지 잘 모르겠지만, 유천 부근의 밀양강에 배낭을 풀고 강에 발을 담글 때의 기분은 걸어다니는 사람의 특권이리라 믿습니다. 물 속엔 피라미들이 저희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살더군요. 완전히 자기들만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을 뒤집어 은빛 비늘을 보이기도 하고, 물살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며, 물에 담긴 제 발을 스치기도 했습니다.(이런! 세상에~! 고기가 제 발을 치고 갑니다.) 그네들의 행복한 모습은 무언의 압력으로 제게 '제발 이대로 내버려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수 만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이 생물들을 몰아내고... 또 그곳에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아무튼 오늘 그 공간에서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도보여행의 좋은 기억인 거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 가끔씩 놀라게 될 때도 무척 행복합니다. 오늘 도로를 걸으며 길옆으로 서 있는 과실수를 보며, 이 많은 과일을 누가 다 먹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천으로 널린 복숭아나무...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복숭아를 본 것은 아마 오늘이 처음이지 싶습니다. 맨 가장자리는 감나무가 심겨지고, 다름으로 복숭아나무, 그리고 저 안쪽으로는 파란빛의 사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많은 분들의 도움이나 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정말 저 혼자 다니는 거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과(더구나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은 이 여행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오늘 드디어 제 친구 가락중학교 장준호샘이 중국 실크로드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서 전화를 해 왔습니다. 반가운 목소리를 듣고 나니까 몇 킬로미터는 거뜬해 집니다.

   또 내일 아침엔 위로방문을 오시겠다는 전화도 저를 너무 기쁘게 합니다. 길 위를 걸어가는 두 청년이 안쓰러워 같이 걸으시면서 도움을 주시려는 분들의 마음씀씀이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해지기부터 합니다.

   이제 그만 쓰고 씻고 자야겠습니다. 별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괜한 말씀만 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꼭 후회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은 길을 걷는 제가 실을 꿰고 가는 바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걷는 걸음이 바늘이 실을 매달고 지나가면 한 뼘 한 뼘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옷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옷이 만들어지는 날까지 열심히 걸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무더위에도 좋은 꿈꾸시며 행복하시기를 뵙니다.

2002년 8월 5일

경북 청도에서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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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와 동행해 주실 거죠?

   불볕 더위에 건강하십니까? 이렇게 한더위마다 길을 나서 힘들게 걸어가는 것은 제 팔자가 늘어진 탓인가요? 아니면 남들처럼 편안함을 즐기지 못하는 제 못된 성격 탓인가요? 어느 것이든 상관없이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작년 여름, 남도횡단을 마치고 마음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도 앞으로 힘차게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저와 동행해 주실 거죠?

   이제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어쩌면 마음 졸이시고, 한참을 걱정하시면서 먼저 간 제 길을 뒤따라오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니면서 힘들었던 일, 답답한 일을 모두 마음에 담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끔 가다 만나는 운 좋은 경험도 나눌 겁니다.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이지만 저와 함께 한 해 주시는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이 좀 늦었습니다. 2002년 8월 3일 아침 8시 40분. 동행자를 만나 아침을 먹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편의점에 들러 김밥을 말없이 먹으며 가벼운 마음을 먹도록 애를 씁니다. 좋아서 떠나는 길이지만, 이렇게 가볍게 맘을 먹도록 애를 써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에겐 낯익은 덕천교차로를 지나 똑같은 아파트만 늘어선 화명동을 지납니다. 벌써 땀이 나고 다리와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아마도 제 눈에 익숙한 마을을 보는 것은 여기가 마지막이겠지요. 한참을 걸어 도시 같지 않게-어쩌면 도시 변두리의 일반적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잡초들이 도로 옆 인도까지 점령하고 나선 금곡동을 지났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한껏 멋을 낸 2호선 지하철 역사(驛舍)와 우리와는 반대로 편안하게 내려가는 낙동강 줄기를 건너다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호포역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제 번잡한 국도를 버리고 양산시 물금읍으로 난 갓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경부선 철길을 건너니 이내 도시와는 전혀 다른 곡식들의 세계가 나타납니다. 땡볕에도 씩씩하게, 믿음직하게 자라는 벼, 키만 멀쑥하게 컸지 아직 알은 성긴 옥수수, 하얀색 꽃을 뽑아 올린 참깨, 수더분하고 낯익은 콩, 고추, 땅속에 보물을 감추고 시치미를 뚝 떼고 땅을 기는 고구마, 양산을 쓴 것 같은 연과 토란. 모두가 제 각각의 모양으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곡식과 채소들의 은혜의 원천인 태양이 저도 함께 키우려는 하는 것인지 열을 내뿜습니다. 이 햇볕을 안으며 걸어가는 길이 끝날 때쯤이면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까요?

  1시간 30분을 더 걸어 물금읍에 도착했습니다. 물금읍은 제 어릴 적 기억이 많이 남은 곳입니다. 외가(外家)가 있어 외할머니가 계실 땐 방학마다 며칠씩 묵었다가 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 외갓집에 대한 기억은 멈췄지만, 더 보탤 추억이 없는 옛 기억은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몇 년 전부터는 낙동강이 바로 보이는 마을 입구 쉼터에 수 백년을 지키고 선 나무 밑에 서서 강물을 보는 버릇도 생겼습니다.(밤에 가끔 차를 몰고 갔다 온 길입니다) 이곳은 여러 가지로 제 삶에 무척 소중하고 아픈 기억들이 담겨진 곳입니다.

   점심을 먹고, 쉴 곳을 찾아 근처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물금초등학교. 작은 시골마을 학교가 대부분 그렇듯이 아름드리 나무가 학교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 큰 나무는 언제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요? 운동장 옆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는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그 때는 아마 제법 이 시골 초등학교도 아이들로 복작거렸을 겁니다. 운동장을 뛰어 놀던 그 아이들 틈으로 자그마하지만 참하게 생긴 여학생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아마도 또래 아이들과 재잘거리며 신나게 학교를 다녔겠지요? 그 여학생이 학교 담을 대신해서 심어진 작은 묘목이 학교의 역사를 말해주는 아름드리 나무로 자란 것처럼 한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셨답니다. 바로 저를 낳아준 분이십니다.
   문득 잠에서 깨어 나무에 가만 손을 갖다 대어 봅니다. 그 때는 어렸겠지만 이 나무에도 우리 어머니의 손자국이 남아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나무도 그 시절의 수줍고 마음 여린 여학생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지난 학기 내내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을 우리 학교 학생들도 언젠가는 누구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겠죠. 그보다 더 세월이 한참 지난다면 또 누군가가 지금의 나처럼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자기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저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의 우리 학교가 학생들에게 응어리진 상처를 남기지 않고,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시 40분. 만만한(?) 물금읍파출소에서 물을 받아 원동으로 가는 지방도(1022번)에 섰습니다. 좁은 갓길에다 차는 많고-특히, 시멘트 공장이 근처에 있어서 대형트럭이 많습니다.- 또 날도 무더워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딱 하나! 오르막을 올라선 덕분에 고갯마루에서 본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의 해질 무렵의 풍경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는 힘이 됩니다. 

   해는 설핏 지는데, 바다를 향해 내려온 수 백 리를 흘러온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지는 햇빛을 받아 강은 은색 비늘이 반짝거리기도 하고, 점점 해가 져서 강물에 검붉은 염색이 점점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덩달아 저희들의 발걸음도 느려집니다. 그러나 저러나 우린 강으로 치자면 아직 발원지를 벗어나지도 못한 물인데- 부지런히 가야할 듯 합니다.

  작년 편지에 제가 길은 참 정직하다고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길의 정직함을 믿어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은 그리 심지가 굳지 못한가 봅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고갯마루를 올라서면 사람을 붙잡고 원동까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기어이 물어보고야 맙니다. 오늘도 물론 속았지만요.(?) 아저씨께서 재미있는 표현을 하셨는데 ‘30분이면 뒤집어쓴다’고 하시더군요. 우린 ‘그 30분이면 뒤집어 쓸’ 그 길을 1시간 30분을 걸었습니다.

   원동은 생각보다 훨씬 멀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모든 길이 생각보다 훨씬 멀지 모릅니다. 제 머리 속엔 있는 생각은 항상 ‘차’를 기준으로 한 거리일 테니까 말입니다. 원동에 도착해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배내골 입구 마을인 원동은 여느 관광지처럼 시끌벅적합니다. 이런 곳일수록 자는 데 돈이 많이 드는데. 운 좋게도 ‘오늘 여관을 인수한’ 주인 내외를 만나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잠자리를 구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다리가 벌써 작년의 기억을 잊어버린 듯 합니다. 발목과 발바닥이 시큰거리고, 종아리 근육이 약간 뭉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다리도 다시 옛 기억을 떠올리겠죠. 아마 튼튼하게 잘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오늘은 작년과는 달리 발가락에 물집은 잡히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동행자와 라면과 김밥으로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합니다. 중간에 먹은 간식과 비싼 숙박비로 예산을 초과한 탓에 약간 부실한 듯 했지만 예산도 빠듯한데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벌써부터 가지고 온 책이 걱정입니다. 겨우 두 쪽밖에 못 읽었습니다. 작년에는 한 권을 가지고 와서 반 밖에 읽지 못해서 이번에는 열심히 읽으려고 굳게 다짐했는데.

  떠나기 전에 말씀드린 대로 길을 걸을 때 피하지 않고 제 속에서 건네 오는 많은 목소리들과 이야기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이제는 진정으로 제 자신과도 화해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런 다짐으로 다른 사람들도 걷는지, 길을 걷는다는 것을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제 메일을 받으시면 가끔 지도책을 펴놓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마디도 안 되는 짧은 길을 온 천지에 가득한 햇볕을 받아 종일 기진맥진해서 걸어가는 두 청년을 생각하시고, 이 무더위와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 너무 염치없는 부탁입니까?

   다시 한 번, 저와 동행해 주실 거죠? 건강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2002년 8월 4일
 느티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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