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드는 아이들

 - 안준철

이렇게 가다보면 내 일생도
떠드는 아이들과 싸우다가 끝나겠지
아이들 나무라는 일도 지겨워
목청을 조금씩 높여 수업을 하다 보면
선생 하는 일이 약장수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말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말로 풀어먹어야 하는 약장수는 괴롭다
눈을 부아리고 핏대를 올려도
슬슬 눈치 보며 떠드는 아이들이
손가락 하나로 불러내면 냉큼 나와
무릎 꿇고 손까지 들고 앉아 있다
손을 내려 주고 무릎도 펴 주고
콩나물 교실이 죄지
너희들의 죄가 아니라고
사람 소중한 줄 모르는 세상에서
그렇게 길들여진 것뿐이라고
등을 다독여 제자리로 돌려보내면
돌아가서 다시 떠드는 아이들
나는 다시 눈을 부아리고
핏대가 오르고.

   순천 효산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는 안준철 선생님의 詩다. 글쎄, 시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이것은 교사의 삶이다. 시에 대해서는 萬人의 만 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나는 시는 말만 잘 부려쓴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을 밑바탕으로 해서 나온 표현이라야 거짓됨이 없는 언어가 아닐까?

   이 시를 읽는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 쓴 웃음을 지을 것이다. 왜냐면 보통의 '선생들'은 자기 자신이 저렇게 살고 있고, 우리반 교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교실에서 떠드는 아이들을 보면, 그 녀석들이 안쓰럽다고 느낄 때 문득, 이 시가 생각난다. 그러면 어쩜 그렇게도 돌아가서(또는, 내 눈을 피해서) 떠드는지!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 준 적이 있었는데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었다. 선생이나 학생, 모두 공감한다는 의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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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0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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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 도종환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이 땅의 사장 순박한 아이들 곁으로
나룻배 타고 강 건너며
강물 위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 만지며 오는 아이
등굣길에 들꽃 여러 송이 꺾어와 교탁에 꽂는 아이
논둑밭둑 땀으로 적시고 풀잎냄새 풍기며 일하는 아이
과일냄새 흙냄새가 단내로 몸에 배어 달려오는
그런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파도를 가르며 이 땅의 가장 궁벽진 섬으로 갑시다.
어젯밤 갱도에 아버지를 묻고 검은 눈물 자국
아직 지워지지 않은 아이들 곁
지게마다 가득가득 빈곤을 지고 한평생 땅을 파다
얼굴빛 흙빛이 된 아버지를 둔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그들이 삼킨 눈물
그들이 귀에 못박이도록 들은 신음소리 곁으로 갑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거짓이 없는 학교로 갑시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 속이지 않는 학교로 갑시다.
올곧은 말씀 진실한 언어로 가득 찬 교과서 들고
교실문 들어설 수 있는 학교로 갑시다.
끝종소리 들으며 진리를 바르게 가르친 보람으로
가슴 뿌듯해오는 그런 학교로 갑시다.
가서 티끌 만한 거짓도 걷어내는 선생님이 됩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휴전선 철조망 바로 아래에 있는 학교까지 갑시다.
바람 부는 중강진, 개마고원 그곳까지 갑시다.
가서 우리가 새로이 하나되기 위해 몸 던지는 선생님이 됩시다.
어떻게 이 나라 이 만족 역사가 그릇되었으며
어떻게 진정으로 하나 되는 젊은이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치다
청정하던 젊음 백발이 될 때까지 가르치다 쓰러져
그 곳에 뼈를 묻는 선생님이 됩시다.


- 오직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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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3-12-1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도 어렵게 찾았는데,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무슨 문제가 있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어제 밤에는 무척 운 좋게, 깔끔하고 편한 숙소를 구했습니다. 어줍잖은 글이나마 써 놓고 숙소를 잡았으니 무척 여유도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내일 일정을 정하고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잠도 일찍 잤습니다. 
   이른 새벽 저도 모르게 잠을 깨고 창 밖을 내다보니 날이 잔뜩 흐립니다. 이것으로 성산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어제 잡은 일정은 어그러진 셈이지요. 그래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답니다. 한참 후에 깨어보니 어느덧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늦어지는 걸 보니 이젠 몸도 제법 피곤한가 봅니다.
   여전히 빵과 우유로 늦은 아침을 먹습니다. 가방을 챙겨들고 느릿느릿 성산봉 아랫동네를 돌아 성산항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햇살이 따갑습니다. 오늘도 날이 푹푹 찌려나 봅니다. 성상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타고 우도를 둘러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로로 들어가는 배에서 보니 일출봉의 모습이 마치 코뿔소가 바닷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인 모습입니다. 먼저 소머리 오름에 올라서 제주도의 모습을 보니, 어느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한라산이 수많은 오름들을 품에서 벌려놓은 듯한 모습이 장관입니다. 소머리 오름에서 바라본 바다는 막힘 없어 보는 눈맛이 시원합니다. 오름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은 찍습니다.

제주도의 오름들(우도에서)


   이후에 그 옛날 고래가 살았다는 동안경굴을 지나 고운 산호모래로 유명한 서빈백사를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우도의 모습은 때가 덜 묻은 순박한 마을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제주도가 원래 모습이 이랬지 싶은 생각이 들어, 뱃길로 15분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 세월의 시간 차이를 느꼈습니다.
   성산읍으로 나오는 배에서는 그냥 드러누워 또 일정을 잡습니다. 배는 야속하게도 금방 닿고 저는 점심을 먹고 움직이려고 어슬렁거렸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이리저리 머뭇거리다가 번잡한 거리를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다시 해는 구름 속에서 나왔고, 곧 이어 땀이 쏟아집니다. 그나마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다 바람 덕에 쓰러지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는가 봅니다. 한참을 걷다보는 조개잡이 체험장에 들렀는데, 저는 물집 잡힌 발이 걱정이 되어 사람들이 조개 잡는 모습만 구경하다 빠져나왔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동작이 굼뜨는 것 같아 걱정이 슬그러미 들어 이제부터는 발걸음을 좀 빨리 놀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빵빵! 하는 차소리. 누가 길을 물어보나 싶어 의아해하고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선생님”하고 부릅니다. 이은경선생님께서 여행하시다가 알아보시고 내리셨더라구요. 일행들 때문에 시원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금방 헤어졌지만, 이런 곳에서도 반가운 사람을 만난 기쁨으로 또 얼마 동안은 힘내서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점심을 제대로 먹기 위해 찾으려니 또 제법 큰 마을이 안 나타나네요. 오후 4시쯤에야 겨우 구좌읍내에 닿았습니다. 일단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학교가 개학을 했는지 하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로 좁은 읍내가 무척 활기찹니다. 학생들이 예뻐서 몇 마디 말도 붙여 보았는데, 답하는 목소리는 또 얼마나 경쾌한지...
   점심을 먹고 내일 돌아갈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은 아무리 걸어도 더 큰 마을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숙소를 구하려고 했답니다. 발에 물집이 더 심해지고 발목이 시큰거려서요. 하루만 푹 쉬면 좋겠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 그럴 수도 없고 걸음은 더 걷기 힘들고... 그러나 지금 숙소를 잡으면 방값이 조금 비싸거든요. 얼마 전에 만난 변경석선생님의 추천대로 근처에 있는 다랑쉬오름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가방은 마을 끝 빵집에 맡겨두고 가볍게 몸만 움직이기로 했지요.
   저 멀리 비자림(榧子林)들 돌아서 다랑쉬오름에 오르려고 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였던 날이 더욱 흐려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다랑쉬오름의 입구를 못 찾아서 여러 번 헤매고 있었으나,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앞은 점점 더 안 보이고... 겨우 찾은 입구는 철망으로 막혀져 있었습니다. 더 어찌해 볼 엄두가 안 나서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는 산길을 그냥 오르기로 하고 가파른 길을 꾸역꾸역 올라갔습니다. 암팡진 막사발을 엎어 놓은 듯한 다랑쉬오름의 오르막 길을 오르며 얼마나 쉬었는지 모릅니다. 그 사이에도 구름은 더해서 이젠 다랑쉬오름과 이웃한 아끈다랑쉬오름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러다 길을 잃지 않을까?' 걱정을 무척 했습니다. 그래도 구름 속인지 안개 속인지를 혼자 걷는 맛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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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서 잠들다 

   오늘은 편지가 좀 이르지요? 조금 더 가야하는데 성산봉 앞이라 그냥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내일 걸어야 할 길을 생각하면 마음은 조금 급하지만 내일 우도에 들어가 볼 거라면 역시 여기(성산읍)서 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과는 달리 오늘도 늦게 일어나 '시간아, 네 마음대로 흘러봐라!'는 듯이 느릿느릿 챙겨서 숙소를 나왔습니다. 서귀포 시내 중심가-그래봐야 200m 정도지만-가 월요일이라 약간 활기찹니다. 우유, 음료수와 과자를 사서 버스를 탔습니다. 어제 걸었던 곳까지 가는데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저는 그런 길을 하루 종일 걸었으니 미련스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제주군 남원읍 신흥리에서 11시부터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날은 잔뜩 흐려서 곧 비가 내릴 듯했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걷기에 무척 편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자전거 여행팀을 많이 보았습니다. 오르막길을 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올라가는 일행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건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건데 무척 고마워하기에 '다른 여행자에게 꼭 갚으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이 아이스크림이 다시 저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요?

   도로는 다시 전형적인 농촌마을들을 연결하며 지나갑니다. 덕분에 이것저것 구경할 것들이 많습니다. 감귤 농사가 여전히 대부분이고 파인애플도 좀 재배하고, 여러 종류의 밭들도 많이 보입니다. 해안 마을에서는 양식업과 낚싯배로 살아가시는데 어딜가나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하십니다.(외지인에게 너무 엄살부리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시간을 걸어 표선해수욕장이 유명한 표선면에 들어와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모처럼 곱배기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또 하나 입에 물고 길을 나섰습니다. 한라산 쪽에서 내려온 구름은 점점 더 짙어지고 낮게 내려와서 이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합니다. 곧이어 장대 같은 비가 조용한 도로의 정적을 깨우며 엄청나게 퍼붓습니다. 달리 피할 곳도 없어 목소리만 더 키워 노래만 불러대며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앉았습니다. 조금 후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전거 여행팀(2명)이 비를 피하려고 정류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얼굴과 몸 전체가 완전히 새까맣게 탄 걸 보니 집을 나선 지 오래되었나 봅니다. 

   제가 들고 있던 과자를 건네면서 '어떻게 여행오셨냐'고 물으니까 인천에서 '술장사'를 하다가 1억여원을 날리고 상심한 나머지 자전거를 끌고 완도까지 왔다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왔답니다. 자전거로 이곳 저곳을 다니시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비는 더 퍼부어 대고 엄청난 번개와 천둥(정류장 바로 옆에 번개가 내리쳐 죽는 줄 알았습니다)때문에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서 1시간 동안이나 그분들과 이야기를 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자전거팀은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서둘러 떠났고, 전 날이 갤 것 같아서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왜 이번엔 비오는 거에 대한 준비를 아무 것도 안 해 온 것인지... 비는 조금 있다가 그쳤고, 날이 개자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신나게 잘 걸었습니다. 어제 붙인 밴드가 별로 효과가 없었지만 그래도 덥지가 않아서 제가 아는 노래를 메들리로 쭉 불러가며 걷는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비가 쏟아지고 가늘어졌다가 다시 폭우...이렇게 반복되는 상황이라 비를 피하기도 어렵고, 이미 옷은 다 젖었고 비를 맞고 걸어도 이젠 별로 손해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걸었습니다. 한 두어 시간을 갔을까? 또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비도 피할 겸 다리도 쉴 겸해서 앉았습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이겨낼 수가 없어서 온 몸이 뻐근하게 아프다는 걸 느끼면서도 얼핏 선잠이 들었나 봅니다. 그 때 갑자기 "안녕하세요?"하는 목소리. 아까 본 그 자전거팀이 민속마을에 들렀다가 내려온 길이라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계면쩍게 웃고, 여러가지 정보도 물어보고,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헤어졌습니다.

   저는 멍하니 그 정류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갑자기 왜 왔을까?' 왜 내가 여기 앉아서 이렇게 졸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서글펐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등받침대도 없는 간이 의자에 앉아서 졸고 난 다음 마음이 허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걸어오는 내내 노래만 불렀습니다. 내가 가사를 알고 있는 노래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비는 더 세차게 오고, 제 발걸음도 더 힘차게 내디뎠습니다.

   저녁 6시. 성산읍에 닿았습니다. 오늘은 맛난 저녁을 먹기로 하고 해물 뚝배기를 먹었는데, 우리 동네 해물탕이랑 똑 같더군요. 뉴스를 보니 오늘 비가 80mm가 내렸다네요. 성산읍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내일 우도로 들어가려면 항구쪽이 좋을 것 같아서 지금은 2km 정도 더 걸어서 성산포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이야 말로 일찍 자야 내일 일출-날이 맑으면-을 보고 우도-배가 뜨면-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제주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 오름'과 '비자림'도 둘러보고 싶은데 시간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덕분에 건강하게 잘 걷고 있습니다. 내일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2003년 8월 25일

제주도 성산포항구에서 느티나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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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드 2003-12-04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헛+_+ 오타발견 !!//어딘지 말은안해드림 (*__)ㅋ
근데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사서 나눠주시는건지 =ㅋㅋ

느티나무 2003-12-05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이아드님, 열심히 읽어주니 고맙네요. 아이스크림은 제가 시골 가게 앞에서 쉬고 있을 때 자전거 여행팀이 지나가고 있기에 불러서 건네줬답니다. ^^ 너무 고마워하던데요. 이제 시험문제 완전히 정리하고 자렵니다. 낼 퉁퉁 부어 있겠네요. 걱정~!
 

   사회의 물질 문화는 급속히 변하지만, 정신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유교적 전통이 강한 사회로, 미혼 남녀의 순결 여부가 여전히 개인적, 사회적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전통적 순결의 규범을 버리고 미혼의 남녀에게 완전한 성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순결은 남성들이 여성을 지배하고 예속시키는 성차별적인 규범으로서 떨쳐버려야 할 과거의 인습(因襲)인가?하는 문제를 두고, 순결은 이제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성적인 권리는 인간의 아주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권이다. 여성에게 순결이 강요되던 시대와 장소는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남성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던 사회였다. 이런 사회의 여성들은 단지 남성들의 성적인 소유물로만, 아니면 종족 번식의 매개자로만 인식되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는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가 제한 받지는 않는다.(형식상 그렇다) 따라서 여성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순결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미혼 남녀의 순결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행동을 결정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 성인이라면, 공동 사회가 편견으로 대하는 것은 부당하다. 개인의 행동이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인 법에 위반되거나, 윤리적 규범에 반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을  사회집단이 규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성인 남녀의 순결 문제가 간통죄와 같은 사회의 다른 법률적, 윤리적 판단과 별개라면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미혼 남녀에게 완전한 성의 자유를 허용한다면(사실 누구에게나 성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미혼모의 증가, 성병의 전파, 성범죄의 증가 등의 사회 문제와 가정의 결속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이혼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이런 성과 관련된 문제가 순결 의식이 약해진 현재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현상이 순결 의식의 약화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은 순결 의식의 약화가 가져온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성교육의 부재와 음성적이고 삐뚤어진 성문화, 아직도 유교적 전통이 강한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낳은 사회 문제이다. 이런 다양한 원인이 낳은 문제를 단순히 개인에게 순결 의식을 강요함으로 해서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문제의 본질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 된다. 따라서 순결 의식을 개인에게 강요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미혼 남녀의 순결 의식을 지켜야 할 미덕인지, 버려야할 인습인지를 문제로 해서, 이러한 순결 의식은 현재의 시대 상황과 맞지 않고,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인정해야 하며, 현재 많은 사회 문제와 가족 제도의 결속력 약화 등의 원인이 순결 의식의 약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여성에게 강요되어 왔던 순결 의식은 이제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강요된 순결 의식은 이제 없어져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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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3-12-0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갑자기?... 이 글은 논술 연수를 받을 때 내가 쓴 숙제였다. 우연히 학교의 내컴퓨터를 뒤지다 보니 별별 게 다 나와서 ^^ 논설문이든, 생활문이든 내가 직접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함부로 이야기해선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