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북부지역 중등학급운영연구모임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선생님들과 각 학교에서 희망한 학생들이 함께 야영을 했다. 8월 6-7일, 금련산 수련원에서 열린 연합야영을 꼼꼼하게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으로 똘똘뭉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선생님들! 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교실, 즐거운 학교를 꿈꾸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아이들에게 들이는 정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 연합야영 함께하기는 5번 나누어서 정리할 것이고, 혹시 청소년들과 야영하는데 작은 도움울 줄 수 있는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1. 친교(모둠) 활동, 모둠 도우미, 생활관 모둠방 (이하 활동 이름, 담당자, 장소)

8월 6일 오후 13:00 - 14:00 (13:30-14:30) (예정시간 (실제시간))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먹으면서 모둠 식구끼리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다. 우선 모둠 선생님부터 약간 길게- 선생님이 너무 간단하게 소개하면 아이들은 더 간단히 이름과 학교만 달랑 말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모둠 식구들끼리 인사했다. 1박 2일 동안의 야영 동안에 부탁하고 싶은 말을 아주 짧게 덧붙였다. 우리 모둠은 모두 7명.(김정훈(고2), 이종훈, 공태준, 박성경, 최종현(이상 고1), 박민지(중1), 그리고 느티나무) 다들 착하게 생겼다.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둥글게 앉아서 후라이팬 놀이를 했다. 후라이팬 놀이는 요즘 텔레비전에도 나오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은 것이고, 게임을 해도 생각보다 어색한 분위기가 잘 누그러지지 않았다. 틀린 사람한테는 벌칙으로 간식으로 나온 '갈아만든 배' 한 잔! 그러나 역시 친해지는데는 몸으로 하는 게임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두번째 게임인 新제로(zero) 게임으로 옮겨갔다.

   다 같이 엎드려 누워서 한 손은 귀를 잡고, 다른 손은 제로게임을 했다. 신제로게임은 제로게임과 비슷한데 돌아가면서 숫자를 말하고 엄지손가락의 갯수가 숫자와 일치하면 일제히 손을 바닥에 내밀어서 겹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제일 먼저 낸 사람 순서대로 제일 마지막 사람의 손등을 때리는 게임이다. 신체 접촉을 할 수 있는 게임이라서 하고 나면 금방 친해지는 장점이 있다. 아이들이랑 히히덕거리면서 新제로 게임을 하고 나니 한결 분위기가 좋았다.

   이 분위기를 살려서 이제는 모둠 이름과 모둠 구호 정하기 단계다. 그러나, 모둠 이름과 구호에서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녀석도 있고, '폐인', '독수리 오형제' 정도만 나왔다. 그렇게 한 20분을 헤매고 났더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직 이름도 못 정했는데 조바심이 자꾸 났다. 그 때 민지(중1)만 여학생이고-성경이는 나중에 왔음- 나머지는 모두 남학생들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민지네 오빠들'이라고 모둠 이름을 정했다. 모둠 구호는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먹어, 배고프니까!! 놀아, 심심하니까!!'로 정했다. 같이 일어나서 연습해 보니 제법 구호로 쓸만 했다. 자연스럽게 모둠장은 민지가 되고, 모둠 소개도 맡게 되었으나, 무척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친교마당은 계획된 대로 진행했으나 분위기가 좀 문제였다. 전체 여는 마당을 위해 강당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이 썰렁한 분위기가 오래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모둠엔 소극적인 아이들만 모였네'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도 되었다.

 

2. 여는 마당, 장김준호(느티나무), 대강당

8월 6일 14:00-14:30 (14:30-15:10)

   이거야 말로 걱정인 프로그램이다. 진행을 맡기로 한 장김준호선생님이 야영 30분 전에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늦게 온다는 연락을 해 왔다. 우리는 아무 준비도 없이 허둥대다가 내가 억지로 대타로 나서야 했다. 우선 야영에 참여한 선생님들 소개하기가 끝난 후 모둠별로 돌아가면서 간단하게 자기 모둠 이름과 구호를 소개했으나, 좀 허술하게 발표한 모둠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둠은 모두 자기 소개도 잘 했고, 준비한 모둠 이름과 구호도 무난하게 했다. 이 때부터 야영 내내 우리 모둠의 컨셉은 '거만, 오만 모드'가 되어 모든 모둠의 비난과 질시를 한 몸에 받았으나, 우리 모둠 내부에서는 아주 유쾌하고 즐거웠다.

   드디어 여는 마당의 대타로 나선 내가 허겁지겁 준비한 여는마당의 프로그램은 클론의 '월드컵송'이었다. 테입도 어렵게 어렵게 구한 것이다.(여는 마당 10분 전에 레코드 가게에서 진행 도우미 선생님께서 사 온 것이었다.) 전체가 빙 둘러서서 신나는 '월드컵송'에 맞춰서 간단한 손동작을 하는 것인데 분위기를 띄우는데는 최고다.(내가 이 프로그램으로 실패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ㅋㅋ) 아이들이 어색해 하지 않을 만큼 무난한 출발이었던 것 같다. 그리나 마지막에 내가 시간을 착각해서 모둠 게임을 하나 더 해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게임은 모둠별로 야채가게게임인데, 후라이펜 놀이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고 모둠 전체가 한 팀이 되어 움직일 수 있는 놀이다. 점점 분위기가 달아올라서 이제는 모둠 식구끼리 어색한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친교마당과 여는마당을 통해서 모둠 식구끼리 친해지기는 성공한 것 같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모둠별 놀이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각자 모둠별로 강당 곳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8-1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참가하고 싶은 야영프로그램이네요. 자유롭고 진지하고 정겹고 재밌어요. 앗. 근데 이제 알았어요. 느티나무님 성함이 장김준호님이시구나..준호..좋은 이름입니다요. 흘..

느티나무 2004-08-1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 이름 장김준호 아닌데요 ^^;; 제 친한 친구이름입니다. 원래 진행을 맡기로 했는데 사정이 있어서 못 온 탓으로 제가 대신 맡았다는 표시랍니다. 제 이름은 이주형입니다.

비로그인 2004-08-1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준호는 친구 남편의 이름이군요.
더 예쁘고 좋은 이름, 주형..침만 꼴깍 ..흠흠..ㅡ_ㅡ;;
 

   이 글은 방학하기 전 1/2학년 학생들에게 나눠준 성장소설 목록집입니다. 원래 원본은 오래 전에 PC통신에서 구한 송승훈선생님의 자료인데요, 도서 목록은 제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앞의 서문은 아이들에게 좋은 읽을 거리가 될 것 같아서(사실은, 서문 쓸 능력이 안 되어서 ^^; 그냥 두었구요.) 나름대로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골랐는데, 이 목록은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책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그래도 지겹지 않게 읽으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뭐, 제가 만든 것도 아닌데, 생색만 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광동종고/ 송승훈선생님

   사람은 처음 아가로 태어납니다.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기에 큰 사람들이 보살펴주어서 살아갑니다. 아가는 자기 욕심만 있습니다. 제 몸만 챙기고 제 몸만 생각하지요. 그 이상 힘이 없습니다.

그러다 조금 있으면 어린이가 됩니다. 철없이 뛰어놀기 바쁘지요. 그렇게 놀면서 어린이들은 남과 제 욕구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 사람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이 더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고, 여럿이 힘을 모으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내는 일도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 크면 겉보기에 대충 어른처럼 생긴 청소년이 됩니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커지고, ‘나’에 대한 생각과 ‘남’에 대한 생각이 깊어집니다. 비로소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그러기에 여러 고민이 생겨납니다. 자기 자신 또한 모순이 느껴지기에 갈등이 많습니다. 이 시기를 통과하면 어른이 되는데, 이때 자신에게 쌓이는 불만을 어떻게 푸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책들은 주로 청소년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철없이 뛰어놀던 시기를 지나, 비로소 자기 삶과 자기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바깥에는 장사꾼들이 만들어낸 ‘성과 폭력’의 문화가 떵떵거립니다. ‘재미’에서만은 이 상업 문화를 당해낼 상대가 없습니다. 재미 그 자체를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재미만 쫓고 다른 것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예비하는 일이 됩니다. 현실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행복하게 살고자 때로 재미를 참아야 합니다.”

상업적 책이 마취제라면, 진정한 책은 의사의 손입니다. 진통제는 아픔을 잊게 하지만, 아픔을 낫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심각한 병을 알지 못하게 해서 일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합니다. 의사의 손은 상처를 째서 썩은 고름을 뽑기에,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상처를 낫게 하는 고통이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긴 여름, 책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인생과 현실에 참되게 눈뜨기 바랍니다.


󰏘 이렇게 하세요 󰏘


아래에 있는 소설 가운데, 서너 권을 고른 다음, 서점에 가서 살펴보기 바랍니다. 여러 책 가운데 한두 권은 사서 읽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사는 일은 공부하는 사람이 익혀야 하는 중요한 습관입니다. 살림살이가 빡빡하다고 해서 지금 투자할 곳에 투자를 게을리하면, 영영 그런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모름지기 학생이라면 책 사는 데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이 발전하고 공동체가 행복해집니다.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실천문학사 ②

박상률, 봄바람, 사계절출판사 ♥

양귀자, 희망, 살림  ① ☺ ♥

이순원, 19세, 세계사  ① ☺

채지민, 내 안의 자유, 사계절출판사  ②

공지영, 봉순이 언니, 푸른숲  ①

김한수, 봄비 내리는 날, 창작과비평사  ② ☺ ♥

최시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문학과지성사  ③  

안도현, 연어, 문학동네  ①

김별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답게  ②

이산하, 양철북, 시공사   ① ☺ ♥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②  

조영래, 전태일 평전, 돌베개  ① ☺ ♥



표시 기호

 읽기 편한 책 : ☺         감동이 있는 책 : ♥

 생각이 필요한 책 :  

 난이도 : ①②③ (숫자가 높을수록 어려워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상이최고야 2004-07-2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름지기 학생이라면 책 사는데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이 발전하고 공동체가 행복해집니다.
딱! 선생님 다운 말씀이시네요.
책을 사랑하는 느티나무님! 행복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안준철선생님께서 교육잡지 우리교육에서 주최한 교사연수에 발표하신 원고입니다. 다시, 읽어도 감동적이네요. 며칠 전에는 선생님께서 제가 쓴 리뷰를 보고 메일도 보내오셨더라구요.(가문의 영광입니다.ㅋㅋ) 빨리 연락드려야겠네요.

 부적응 아이 구출 작전

안준철 / 전남 순천 효산고 교사


 1. 몸 풀기

시 한 편의 여유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는다

허리를 숙일 때의 천천한 동작을 즐긴다

땅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도 좋다

작은 것들이 커 보인다

겨울을 나려는 듯, 함께 먼길을 가는

땅에 사는 작은 생명들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다보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자연이 낙엽 줍는 손길도 늦어진다

성급히 쓸다보면 쓰레기가 되는 것들이

허리 숙여 천천히 주우면 낙엽이 된다.

- 졸시 ‘낙엽 줍기’ 전문

 

   오늘 강좌 제목이 좀 거창합니다. ‘부적응 아이 구출작전’이란 제목은 우리교육에서 정해 준 대로 따른 것인데, 영화 같은 제목에 이끌려 자칫 과속을 할 것도 같은 예감이 들어 시 한 편의 여유를 부려 봅니다. 허리 숙여 천천히 주우면 아름다운 낙엽이 될 것을, 입시위주, 지나친 목적위주의 경박한 교육 풍조에 함께 휩쓸려 너무 성급히 쓸다가 부적응 아이들을 만들어온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해 보면서…….

   오늘 강의는 어떤 이론적인 접근보다는 지난 15년 동안 학교 현장에서 직접 만난 아이들과의 생생한 경험들을 살려 구체적인 지도사례를 중심으로 엮어가되, 치료보다는 예방에 착안하여 학교나 교실 현장에서 부적응 아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려고 합니다. 또한, 교사의 아이들에 대한 몰이해와 그릇된 태도로 인해 부적응 아이로 길러지는 과정도 주목해 보면서 새로운 인식과 뜨거운 실천력을 함께 얻어 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 몸 만들기

  

   얼마 전 한 교생 선생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교생들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은 아이들과 친해지기가 어렵고 아이들도 자기를 잘 따르지 않는 것 같아 슬픈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떠들기만 하고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잘 이해되지 않고 자꾸만 미운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아이들을 떠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어서 속이 상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교사생활을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는 말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 중에서도 그 교생 선생님과 비슷한 경험을 하셨거나, 지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그런 고민에 빠져 있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날 교생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해드렸습니다. 인간관계에서의 실패는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사실, 그 교생 선생님이 아이들과 잘 융화될 수 없었던 것은 너무 평탄하고 모범적인 생활만을 해 온 탓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규범 안에서만 살다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큰 시합을 앞둔 운동선수가 몸을 만든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부적응 아이 구출작전에 임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먼저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세 편의 사례를 먼저 소개합니다.         

  

 <사례1> 

   첫 담임을 맡던 해의 일입니다. 한 아이가 분만 예정일을 불과 며칠 앞둔 여자 친구를 데리고 저를 찾아 왔습니다. 초임교사로서는 너무도 황당한 일이어서 끝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에는 양쪽 집안에 연락을 취하여 가족끼리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날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양쪽 집안이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결론은 분만 후 곧바로 사회단체를 통해 입양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중절수술을 하기에도 시기가 너무 늦었고, 아직 학생신분이니 당장 결혼은 시키지 못하더라도 아기만은 친가 부모가 맡아서 키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사자들의 난색으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결론이 내려지자 제자 아이는 오랜 고민에 시달렸던 터라 내심 마음을 놓는 눈치였고, 제자의 여자친구도 여자 특유의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저도 헝클어진 실타래가 풀린 듯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문득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빠뜨린 듯한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마침내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어날 아이였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순전히 어린 부모의 불장난으로 인해 불행의 씨앗이 되어 버린 그 아이를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그 아이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의 내부에 자신의 열악한 환경과 유전적인 모든 것들을 초월할 수 있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이 마련되어 있지 않는 한, 부모와 친지들로부터 축복을 받기는커녕 애물단지로 태어난 그 아이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보통 아이들처럼 자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 아이에게 다가가 한 순간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즉각적인 행동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오만(아니면 무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치료할 때 먼저 그의 병력을 살펴봅니다. 병력이 깊으면 그만큼 치료의 기간도 길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 교사들도 학기초가 되면 전임 담임을 통하여 소위 문제아이들에 대한 정보(역사)를 캐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용도가 문제입니다. 치료를 위해서 그 아이의 역사가 필요했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 때문이었는지….  



<사례 2>

   어느 날 아침 명상의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2와 60의 차이는 얼마입니까?”

   “30배요.”

   “그럼 20조 2와 20조 60의 차이는?”

   “…… ???”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에게 저는 이런 말을 해 줍니다.

   “차이가 거의 없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와 60 앞에 붙어 있는 20조라는 숫자가 너무 큰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앞에 붙은 큰 숫자를 저는 생명 값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뒤에 붙은 2나 60이라는 숫자는 공부를 좀 더 잘하고, 얼굴이 좀 예쁘고 하는 여러분의 조건들을 의미합니다. 그 차이가 30배가 된다고 해도 그 앞에 붙은 여러분의 생명 값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하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누가 좀 더 예쁘고 누가 공부를 좀더 잘하고 하는 것은 저에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생명 차제가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선생님이 매기신 아이들의 생명 값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 교육의 실패는 바로 아이들의 생명 값은 제대로 매기지 않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거에 비해 왕따(집단 따돌림)와 같은 부적응 아이들이 대량 발생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사례 3>

   학기 초 다정이란 아이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되어 교무실 복도에서 온종일 벌을 서고 있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는 얼굴에 화장을 하고 와서 지적을 받기도 했던 아이입니다. 방과후 저는 그 아이에게 무릎자세로 다가가 말없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약속의 다짐을 의미하는 손도장을 찍고 나서는 그 아이와 팔짱을 낀 채 교정을 걸어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갑자기 어떤 절박한 마음에 사로잡혀 운동장에 쪼그려 앉아 땅바닥에 큼지막한 네모를 하나 그려 놓고는, 저를 따라 쪼그려 앉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이쪽 왼편 그림만을 그려 왔어. 네가 담배를 피우면 피우지 마라, 화장을 하면 화장을 하지 마라. 너희는 그리고 나는 지우는 그런 불행한 그림만 그려 온 거지. 오늘도 너는 이 왼편에 그림을 그렸고 나는 그것을 지웠어. 그것 뿐이야. 사랑으로 지웠지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이제 이 오른편에 그림을 그려 보자.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명 깊은 책을 한 권 읽었다든지, 아무도 줍지 않는 저 교정의 휴지를 주어 본다든지, 집에 계시는 부모님을 한 번이라도 기쁘게 해드린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야. 그것이 오른편 그림이야. 아무도 지울 필요가 없는… 이제 선생님은 너의 오른편 그림이 보고 싶구나.”


<생각해 봅시다>

   학교 현장에서의 생활지도나, 부적응 아이의 지도가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지우기만 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오른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3. 부적응 아이 지도에서 얻은 5가지 교훈

1) 반응이 더딘 방법이 좋다


<사례 4>

   5교시가 끝나면 아무 말도 없이 학교를 나가 버리는 아이. 전 담임교사에게 자문을 구하자 1학년 때에도 그런 행동을 일삼았는데 매를 들어도 소용이 없다고 말함. 약간의 심리적 장애가 의심됨. 그에게 물리적 힘을 가하지 않고 14일 동안 공개 지도함. 무단 결과를 한 그 다음날 아이들 앞에서 내일도 절대로 매를 대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반복해서 무단 결과의 잘못만을 지적하며 자신 내부의 힘으로 극복해 보라고 당부함. 하루 이틀 사흘… 열 사흘, 행동의 변화 나타나지 않음. 열 나흘째 되는 날 종례시간에 그 아이가 눈에 띔. 그 후 졸업식까지 단 한 차례도 무단 결과가 없었음. 대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들 중 유일하게 강의를 빼 먹지 않는다고 함.

  


<사례 5>

   부모의 생업 때문에 혼자서 동생과 함께 자취하면서 이성과 자유의 맛을 알아 버린 아이. 규제가 심한 학창시절을 생략하고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끝내는 가출하여 수원 모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함. 벌써 세 번째 가출이라 부모도 포기한 상태에서 토요일 연가를 내어 수원에 올라감(여비는 부모가 마련해 줌). 4시간 동안 택시를 대절하여 주유소를 다 뒤져도 눈에 띄지 않음. 가출하여 그의 숙소에서 잠을 잔 적이 있는 한 아이에게 전화, 숙소의 위치를 알아내어 근처에서 밤 10경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만남. 남자 친구의 생일이라 꽃다발을 준비하고 순천에 가려고 집에 들렸다고 함. 그날 밤 11시 20분 기차로 함께 순천에 내려옴. 하지만 학교에 돌아올 의사가 아직 없다고 하여 그대로 헤어짐. 다음날 아침 반 아이들에게 한 통씩 편지를 쓰라고 부탁하여 그것을 모아 매일 다섯 통씩 그 아이 숙소로 편지를 보냄. 일주일이 되는 날 순천이라고 하면서 전화가 옴. 만나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 주며 스스로의 결정으로 학교에 돌아올 것을 종용함. 3일 후 스스로 학교에 돌아옴.



2) 생각이 없는 아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사례 6>

   -제가 누군지 밝히고 싶지는 않아요... 애초부터 밝히려고 했다면 닉네임도 바보라고 써놓지 않았을 거예요.. 선생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에요.. 자리 한 번만 바꿔 주시면 안 돼요? 요즘 넘 힘들어요..학교 오기도 싫고요..

   -자리를 바꾸어 달라는 네 부탁 들어 주고도 싶은데 마땅한 구실이 생각나지 않는구나. 그래서 너에게 지혜를 얻고 싶은데... 불과 얼마 전에 자리를 바꾸었는데 왜 또 자리를 바꾸어야 하냐고 아이들이 물으면 선생님이 어떻게 답해야하는지 말해주겠니?

   -선생님... 선생님 멜 보구 많이 생각해 봤어요...근데 저 정말루 자리 바꾸고 싶어요.. 애들이 움직이면 불평도 할 테지만 (이유를) 지금 모두 다 좋아하는 애들하고만 앉았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다시 바꾸면 되잖아요... 원래 저 아침 7:40분쯤에 오는데 요즘은 오기가 싫어서 8시를 자주 넘기게 되네요... 정말 학교 오기 싫어요.. 저만 친구들에게서 소외된 것 같고 가만히 있어도 괜히 눈물이 나오고 그래요. 선생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안될까요? 아님 7월 달에 다시 한 번 바꾸던지... 선생님 부탁이에요.

   -너의 두 번 째 메일을 받고 나니 마음이 짠하구나.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네 말에 모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친한 사람들끼리 앉았으니까 새로운 친구도 사귀어 보라는, 네가 제시한 그 이유는 내가 너에게 지금 할 수 있는 말이잖니? 자리가 새로 바뀌면 또 누군가는 친구와 떨어질 수도 있고.. 그러면 너처럼 또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문제는 같은 학급 공간 내에서도 친구와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서 또 친하지 않은 급우와 함께 같이 있다고 해서 외로워지고,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야 하는지, 그렇게 너희들이 약하기만 한 것인지, 선생님은 그것이 걱정이구나. 그래도 인사도 없이 시작해서 인사도 없이 끝낸 첫 편지에 비해서 선생님의 입장도 헤아려 주는 것이 네가 많이 발전했다는 느낌이 들어 기쁘고 고맙단다. 아직도 네가 누군지를 몰라야 한다는 것이 담임으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네가 부탁한대로 7월에 다시 자리를 바꾸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보마. 이 기회에 선생님도 네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네 자신이라는 것! 이번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으면 모처럼 내 안에 있는 너와 친구 해 보는… 네가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도 내 안의 친구와 친해지면서 시인이 될 수 있었지. 갑자기 친구들이 나를 떠나도 내 안에 친구가 있어서 덜 외롭기도 했고… 다음 편지에는 네가 너의 사랑스러운 이름을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안녕!

   -선생님 멜을 받고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오직 저만 생각하고 그런 멜을 보낸 것 같네요...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구요...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들 잘 새겨들을 게요...그리고 선생님... 좀 섭섭하시겠지만 제 이름을 밝히긴 좀 그렇네요... 선생님께 이름 말할 용기도 없는 저 한심하죠?? 밝은 성격이 아니라서.... 선생님, 이제부터는 저만 생각하지 않고 속 좁은 생각도 하지 않을게요... 선생님 정말 존경해요~~~~~



3) 교사는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의 메신저   


<사례 7>

   두 아이가 가출 후 다방에 취업함.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아버지가 주벽이 심하고 술만 드시면 끝없는 잔소리와 함께 때로는 손찌검을 함. 또 한 아이는 부모가 이혼 후 아버지가 맡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주거부정의 상태에서 가끔씩 학교로 아이를 찾아 용돈을 줌. 어머니는 호프집을 경영하면서 남편의 문제로 화가 나면 아이에게 화풀이 함. 한 아이 어머니에게 전화하자 아이의 행동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퇴학을 시키라고 함. 또 한 아이의 아버지는 음주 상태로 나와 대화를 나누다 폭언을 해 옴. 다음 날 한 아이의 남자 친구가 발신지 추적 장치로 아이들이 있는 인근 도시의 이름을 알아내어 전해 줌. 아이들의 부모들을 만나 두 아이의 장점과 가능성,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아픔에 대하여 말해 줌. 한편으로는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일탈행동을 일삼은 자녀들로 인한 상한 마음을 위로해 주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함.

   아이들이 집을 나간 지 8일 째 되는 날, 두 가정이 모두 합세하여 아이들을 찾아 나섬. 다방 세계를 잘 알고 있는 한 아이의 아버지의 활약으로 작전 5시간만에 두 아이가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일보직전에 극적으로 구해 냄. 아버지의 눈물에 부모의 사랑을 확인한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가정과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됨.  



4)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라.


<사례 8>

   자기 자신을 ‘왕따’라고 자칭하면서 결석을 자주 하는 아이. 처음에는 어머니의 전화로 병결로만 알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어머니를 다그치니 사실을 털어 놓음. 중학교 때에도 한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함. 심리적 장애가 의심되기도 했지만 우선은 보통 아이처럼 대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되어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온 아이에게 잘못을 지적하며 반성문을 써 오라고 요구함. 그러자 다시 학교를 나오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전화도 받지 않고 모든 대화를 거부함.

   며칠 후, 어머니가 대신 학교에 와서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딸의 의사를 전해 옴. 가정방문을 할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말하자 반장이 자기들에게 맡기라고 너무도 쉽게 말을 해서 꾸지람을 줌.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어 반장과 간부 아이들을 보내기로 허락함. 대신 반 아이들에게 편지 한 통씩을 써서 방문할 때 가지고 가라고 말해 줌. 반장은 나의 편지가 포함된 38통의 편지를 들고 복학생 혜정이를 비롯한 간부 아이 몇을 데리고 그 아이의 집을 방문함. 혜정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 있는 괴로움을 전해 주어 마음을 돌리게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함. 그날 이후 아이들은 식당에 갈 때나 매점에 갈 때 절대 혼자 가지 않도록 배려하며 친구가 되어 줌.      

  


5) 생활지도는 학과지도와 병행해야 성공한다.     


<사례9>

   초임교사 시절에 만난 환우는 개학 첫날 조회가 끝나자마자 교무실로 나를 찾아와 자퇴원을 내겠다고 하여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아이. 그런데 자퇴원을 내겠다는 그 이유가 아주 엉뚱하여 또 한 번 어리둥절하게 함. 어머니가 점을 쳐 보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점괘가 나왔다는 것. 그래서 선량하신 분 같은데 담임 속 썩이고 학교를 그만두느니 미리 자퇴원을 내겠다는 것이 이유. 환우는 그 해 가을까지 두 번 유치장 신세를 진 뒤에 담임의 끈질긴 설득과 자신의 단호한 결단으로 불량서클에서 발을 빼게 됨.

   그 후 어느 날 수업시간, 환우의 책상 위에 책도 공책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눈에 띔. 소위 문제아의 생활지도는 나쁜 짓만 안 하고 학교만 잘 나오면 된다는 식으로 흐르기 쉽지만, 그러다 보면 언제든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과거의 습성으로 되돌아가기 쉽기에 환우로 하여금 학과공부에 취미를 갖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됨. 다음은 그날 나와 아이들 사이에 오고간 대화임. 

“이 세상에서 청소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무엇일까요?”

“성폭행요” 

“마약 복용요”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 하는 거요”

무슨 말을 해도 농담으로만 응수하려는 아이들. 폭소가 터진 뒤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칠판에 이렇게 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고 그 이유를 묻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줌. 

   “밭에서 모가 잘 자라다가 가뭄을 만나든지 아니면 병충해에 걸려 바싹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농민은 애가 타다 못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농부는 그러한 쓰라린 경험 속에서도 그해 농사를 어느 정도는 거두어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논에 모를 심었는데 처음 그 상태로 조금도 자라지 않고 그냥 성장을 멈추어 버리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이보다 더 기가 막힐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실수할 수 있는 특권이 있고 그것이 좀 심하다 보면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범죄는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엄청난 죄악입니다. 하지만 무언가 모색하고 고민하면서 커 가야할 여러분들이 성장을 멈추어 버린 모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만큼 더 큰 죄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자신을 위해 선생님의 말을 깊이 새겨들었으면 합니다.”

   그날 환우는 내 말에 관심이 있는 듯 귀를 쫑긋 세우더니 다음날부터는 책과 공책을 가져오는 보통학생이 됨. 뿐만 아니라 공부에 조금씩 취미를 붙여 성적도 많이 향상됨. 환우가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되면서부터 생활지도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됨.   



4. 치료보다는 예방 / 부적응 아이를 줄일 수 있는 비결 7가지  


1) 편견을 없애라                     


<사례 10>

   올해 복학생으로 들어온 혜정이란 아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 선생님이 자기가 복학생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자기를 보면 먼저 복장상태를 훑어보고 이상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이상이 있을 때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잘하고 싶어도 그런 선생님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선생님이 제 고향 후배가 되어서 쉽게 일이 풀리기는 했지만 모처럼 적응을 잘 하고 있던 아이가 한 순간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사례 11>

   종호라는 아이는 입학식부터 얼굴을 내밀지 않더니 열흘이 넘어서야 요란한 사복에 더부룩한 머리로 교무실에 나타나 저를 찾더니 절을 꾸벅하고는 자퇴원을 내러왔다고 말을 했습니다. 가만 보니 일견 불량해 보이지만 어딘지 순박하고 심지가 있어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둘 것이라면 그냥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될 텐데, 일부러 자퇴원을 내려고 학교까지 올라오다니, 넌 참 예의가 바른 아이구나. 너처럼 훌륭한 아이를 학교를 그만두게 할 수 없지.”

그리고는 그대로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 한 시간 동안 설득을 하여 학교를 다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이가 다시 자퇴원을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보니 학교 간부 중 한 분이 그 아이에게 정말 학교를 다닐 수 없다면 선생님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네 길로 가라고 말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그 선생님을 만나 따져보니 아무리 봐도 학교를 계속 다닐 아이 같지 않아 저를 생각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전날 사복을 입고 교무실에 나타나 자퇴원을 내겠다던 불순한 행동을 두고 그런 편견을 지우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종호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차례의 결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종호는 애당초 부적응 아이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도가 용이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부적응 행동을 보인 것도 확실합니다. 그리고 부적응 아이로서의 조건도 갖추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우는 관광기사였고, 친모는 돌아가시고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은 부친의 동거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가 중학교 때와는 달리 그런 조건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넌 예의가 바른 아이구나.”라고 자신을 재평가해 준 그 한마디가 아니었을까요? 

       

        

2) 규제를 줄여라


   학기초가 되면 아이들의 용모나 복장지도 때문에 학교가 진통을 겪습니다. 아이들이 교사의 생활지도에 잘 따라주면 좋겠지만 반항을 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부적응 아이로 분류될 만한 아이들은 과도한 생활지도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 흔한 일입니다. 

   저는 학기초에 상담시간을 늘리는 대신 머리에 무스를 바른다든지 귀걸이를 차고 다닌다든지 하는 경미한 일탈행동은 가능하면 못 본 체하고 넘어갑니다. 지적하더라도 그 한 가지만을 가지고 문제를 삼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규정을 위반한 학생수가 좀 많은 편인데 그것 때문에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습니다.

   한번은 10여 명의 아이들이 교무실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걸이를 차고 왔다가 생활검열에 걸려 학생과 선생님에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목걸이를 차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도 아이들과 같은 생각인데, 학교 교칙이 그리 정해져 있어서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종례시간에 이렇게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목걸이를 차는 것은 허락한다. 하지만 학생과 선생님께 걸리면 그대로 빼앗기도록 해라. 그게 불만인 사람은 차지 말고. 내 힘은 거기까지.”

   그러면서 목걸이도 차지 않고 용모가 단정한 한 아이를 불러 아이들 앞에 세워 놓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줍니다. 규정을 위반한 아이들을 비난하는 것보다 규정을 잘 지키는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합니다.        

  


3) 작은 위로라도 기회를 놓치지 마라


다음 글은 소설가 공선옥 씨가 <전라도닷컴>에 올린 ‘삶에 필요한 것, 작은 위로’란 제목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바로 저희 반 아이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사례로 소개합니다. 


<사례 12>

   순천에서 청소년 백일장의 문예부문 심사를 봐 달라는 청이 있어 오랜만에 순천 나들이를 갔다왔다. 순천 KBS에서 주최한 백일장이었는데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아이들은 그 모습 그대로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거니와 그 아이들이 쓴 글 또한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상관없이 그 글을 읽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즐겁다는 것은 그러니까 내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순간까지도 포함해서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요즘의 어른들 세계가 아이들의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것이었다. 유독 눈에 띄는 건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에 또는 어른들의 폭력 앞에서조차 아이들 특유의 맑은 마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그 얼마나 따뜻한 어른의 말 한마디를 갈구하는지를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아이는 집을 나왔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는데 엄마는 아이더러 아빠한테 가 살라 하고 아빠는 아이더러 엄마한테 가 살라 하니 아이는 이쪽저쪽을 왔다갔다하다가 결국 갈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이는 시골의 할머니한테 갔지만 할머니는 아이를 거두어서 키울 만한 여력이 없다. 아이는 그리하여 거리의 아이가 되었다. 거리를 휩쓸어 다니다가 밤이 되어 갈 곳이 없어진 아이는 피시방에 들어가 하룻밤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낸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에게 답장을 보내 왔다. 아이는 선생님이 제게 답장을 보내온 사실만으로도 비록 거리의 아이가 됐지만 마음조차 함부로 놓아 버리지는 않을 만한 용기를 얻는다. (이하 생략)



4) 사랑의 메일 편지를 최대한 이용하라


다음은 그날 제가 보람이에게 보낸 메일 편지의 내용입니다.


<사례 13>

   너의 메일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구나. 오늘 5명이 결석을 했단다. 현정이는 늦게 와서 다행이지만… 보라는 토요일 이후 오지 않는데 오늘 집에 가 보니 집에 거짓말을 하고 학교를 오지 않았구나. 실망도 실망이지만 어서 만나 왜 학교에 오기 싫은 것인지,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구나. 녀석, 혼을 내주어야지 하지만 미운 마음은 정말이지 없단다. 네가 지금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를 선생님은 알고 있단다.

   어제 네 아빠께서 학교에 오셨거든. 아빠 말씀이 네가 한 순간에 많은 것을 잃었는데 그래도 잘 참아준 것이 늘 고마웠다고 하시더라. 아빠가 다혈질이어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화를 내고 만다고 하시면서 눈이 빨개지시더라. 그 동안 네가 얼마나 학교 생활을 잘 했는지 선생님은 그 얘기만 했단다. 수학여행 때 바닷가에서 너와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던 이야기도 들려드렸지. 쓰다 보니 새삼 그때가 그립구나. 선생님은 우리 보람이를 조금도 나무랄 생각이 없단다. 오히려, 너에게 큰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구나. 그것이 담임 선생님의 한계이기도 하단다. 하지만 이번에 담임을 맡으면서 마음이 기쁜 것은 너희들이 선생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거야. 너무도 작은 사랑인데도 너희들이 크게 받아주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아니?

   보람아, 방황은 오래하면 지치게 된단다. 그리고 혼자서만 서럽지. 이 편지를 받는 즉시 선생님께 전화해 주지 않겠니? 오늘 너를 만나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주고 싶구나. 선생님은 너를 어서 만나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 뿐이야. 너무 늦게 연락이 오면 화가 날 거야. 지금 너무 보고 싶거든…. 그럼 곧 만나게 되길 바란다. 사랑하는 선생님이.



5) 편애나 차별대우를 하지 마라

   교사의 편애가 부적응 아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학기초 쪽지 만남에서 상당수의 아이들이  차별대우를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을 보면 교사의 편애가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아무리 잘 해주어도 반항기가 엿보이거나 비협조적인 경우, 그것은 어떤 특정 아이에 대한 교사의 편애가 가져 온 결과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교사도 사람인데 편애를 전혀 안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편애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업시간마다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는 것도 효과가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출석을 부를 때마다 눈을 맞추고 서로 환하게 웃기로 약속을 하면 처음에는 좀 어색할지 모르지만 차츰 아이들 개개인에 대한 깊은 정이 느껴지면서 특정 아이에 대한 편애가 극복되기도 합니다. 교사가 편애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생명 값’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보는 것도 편애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6)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라.


   음악은 악인도 좋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책 읽기를 따분해 하는 아이들은 많아도 노래듣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아니, 부적응 아이들일수록 더 음악을 좋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저는 아침 자율학습 시간은 물론이고 아침 조회 시간에도 이런 저런 잔소리 대신 최근에 가장 뜨고 있는 가수들의 노래를 틀어 놓고는 아이들과 눈이나 맞추고 다닙니다. 신세대 노래를 쉰세대 선생님이 따라 부르면 아이들은 매우 신기해하고 좋아합니다. 자기들의 세계를 이해해주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도 하곤 합니다. 



<사례 14>

   몇 해 전 일입니다. 저희 학교 댄스 그룹인 유토피아 리더를 맡고 있던 종선이라는 아이가 3일 째 결석을 해서 집을 찾아가 보니 행상을 하시는 그 아이 홀어머니께서 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십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그 아이가 너무 춤에만 빠져서 공부를 하지 않기에 그 댄스그룹에서 빠지라고 했더니 집을 나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 다행히도 시내에서 종선이를 만났지만 태도가 완강합니다. 학교를 그만두었으면 두었지 춤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저는 그 아이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종선이는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이입니다. 춤을 그만둔다고 해서 지금보다 공부를 더 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춤이라도 배우도록 해 주십시오. 언젠가는 공부에도 취미가 생기도록 제가 잘 지도하겠습니다.”

   결국 담임인 저의 중재로 모자간의 화해가 이루어졌고, 그날 이후 종선이는 하고 싶은 춤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되어 학교 생활에도 충실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전국 댄싱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수상했고, 그러한 수상실적으로 대학에 댄스 특기생으로 입학하는 행운도 안았습니다.               



7) 칭찬을 아끼지 마라


<사례 15>

   지금 3학년에 재학중인 환이라는 아이는 1학년 때 저희 반 반장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짱이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의 꿈이 반장 한 번 해보는 것이었는데, 학업성적이 좋지 않아 그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실업학교인 저희 학교에 와서 드디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조회 시간이 되면 꼭 이 아이만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도 매점에 들렸다가 늦게 들어오기가 일쑤입니다. 청소시간에도 교실 감독을 해야 할 아이가 매점에 가 있습니다. 치마 길이도 짧고, 머리도 규정보다 길게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언제나 늘 있기 마련이어서 크게 신경을 쓸 일이 아닌데도 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꾸지람을 자주 주다 보니 저와의 사이는 갈수록 나빠지고 행동이 개선되기는커녕 아예 자포자기식으로 더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하게도 그 아이의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부모와 전화를 하게 되면 꼭 그 아이의 칭찬을 한 가지 이상 말해 주고 전화를 끊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아이가 아주 상기된 표정으로 저에게 다가와서는 의미 있는 웃음을 한 번 짓고 가더니 그후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회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늦는 버릇도 깨끗이 없어지고 치마 길이도 길어지고 머리 모양도 단정해진 것입니다.    

   

다시, 시 한 편의 여유


주번교사 하던 날이었지

흰 종이 쓰레기 한 점

장마비에 젖어

측백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었어

누군가 손에 쥐었다가

무심코 버렸으리라,

생각하며 허리를 굽히는데

세상에, 그게 흰 장미인 거야

이슬 같은 물기를 머금고

생글 웃고 있지 않겠어?

자세히 보니 제 몸에 가시를 박은

한 줄기 초록빛 가녀린 선이

측백나무 울타리 속을 비집고 올라와

흰 장미 한 송이를 후끈 피워놓은 거야

나는 생각했지, 처음에는 그 장미가

정말 흰 종이 쓰레기였을지도 모른다고

장마비에 젖어 측백나무 울타리에 걸린

찢겨진 한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허리를 숙여 다가가지 전까지는 말이지.

                                                  

                                                                                       -졸시 ‘하얀 장미’ 전문


   아이들에게 허리 숙여 다가가는 선생님이 된다는 것! 부적응 아이의 지도에 있어서 그 이상의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발~* 2004-07-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느티나무 2004-07-2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좋지요? 저도 이렇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처럼 되고 싶답니다.
 

   나는올해 3학년 4반 부담임이다. 명색 부담임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없다. 언제나 담임이 모든 일을 다 하니까. 그런데도 지난 스승의 날 반장 녀석은 슬그머니 무엇을 두고 집에 가 버렸다. 부담임이라고 챙긴 것이다. 그 이후로 늘 찜찜했다. 이름만 있고, 활동이 없는 불구의 상황! 그래서 3-4반 아이들 이름도 열심히 외우고, 체육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함께 공을 차기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돌렸지만 친해진 느낌은 덜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준비한 학기말 게임- 수박먹기대회

   아이들에게 수박먹기대회를 하자고 했더니 모두 좋다고 했다. 500원씩 내라고 했더니, 그 정도는 하면서 반장이 돈을 걷어왔다. 그 돈과 내 돈을 보태서 수박은 5통을 주문했다. 날짜는 방학식하기 하루 전, 시간은 6교시 다른 선생님 시간을 대신 빌렸다.(당근, 좋아하셨다 ^^;) 조금 시끄러울 수 있으니까 지구과학실을 특별히 빌렸다. 수박은 학교에 도착하는 대로 식당에 맡겨서 반달모양으로 썰어 두었고, 교실 바닥에 깔 신문지까지 구해두었으니 이것으로 준비는 끝이었다.

   드디어 수박먹기 대회시간. 아이들은 쉬는 시간부터 지구과학실로 왔다. 책걸상을 뒤로 밀로, 신문지를 교실바닥에 깔았다. 모둠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급조할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수업종이 울리자 우리도 수박먹기 대회에 들어갔다.

   첫 번째는 몸풀기 게임으로 "야채게임"을 했다. 설명하는 동안 어렵다는 표정들이었는데, 막상 게임을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할만 했던지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야채 게임은 모둠 대항 게임이라서 급조된 모둠일수록 효과가 좋다. 왁자하게 떠들다가 조용히 집중했다가 내가 하는 설명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만들어졌다.

   이제 본 게임. 아이들에게 수박먹기 대회의 요령을 설명한다. 각 모둠(한 모둠은 6-7명 정도)은 1번부터 순서를 정한다.-당연히 1번부터 6,7번 정도까지 나온다. 이 순서를 짜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야구에서 타순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 - 그러면 각 모둠의 1번 학생들은 모두 모여서 각자의 위치에 편하게 않으면 내가 전에 한 "야채 게임"을 성적을 반영해서 수박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작은 수박을 골라야 하는데, 그래도 수박은 많이 먹고 싶고... 갈등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귀여운 녀석들!) 모두 수박을 쥐었으면 동시에 미친 듯이 빨리 먹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다. 입에서 국물이 흐르고, 씨가 튀고, 수박이 입에서 들락날락거리기도 한다. 보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승부는 누가 빨리, 다, 먹느냐다. 1등과 2등은 차등 점수를 주고, 꼴찌 모둠은 기본 점수를 감한다. 그러면 꼴찌를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한다.

   그렇게 각 모둠의 1번 학생이 끝나면 점수판을 기록하고 2번 주자가 다시 나와서 똑같이 반복한다. 시작 전은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남은 아이들에게 응원의 함성, 박수를 유도하면 분위기는 더욱 좋다. 게다가 응원상도 주면 더 열심히 한다. 모두 수박을 먹으면서 공평하게 게임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 아이들의 호응은 무척 좋은 것다. 수박이 남으면 왕중왕전이라고 해서 각 모둠의 대표자만 모아서 한 번 더 하면 모둠간의 사람수를 조절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수박 껍질을 모아서 담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면 1시간이 딱 맞다. (모두 달려들어서 뒷정리 잘 하는 것도 무척 맘에 들었다.) 다시 책걸상을 제자리에 두고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야채게임을 한 번 더  했다. 나는 상품으로 다시 방학하는 날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약속했었다. 이후에 나는 이 아이들과 은밀한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른 반 아이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까... 요즘도 수업을 들어가면 부담임반이라 그런지, 그 게임의 영향 덕분인지... 다르다는 느낌이다.

   사실, 교사가 아이들과 조직적으로 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결코, 내가 잘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과 함께 놀아본 기억이 없다. 애들이 놀자고 하면 그냥 자습해라, 하시고 약간 떠드는 걸 눈감아 주시는 정도 ^^; ) 1시간을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보다는 5시간 수업을 선택할 선생님들도 계시니... 그렇지만, 아이들과 잘 노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학생들과 별다른 거리감 없이(양쪽에서 모두) 무엇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4-07-2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둠이라는 표현... 일상 생활에서 쉽게 고쳐써지지 않는 것인데... 참 자연스럽게 쓰시네요.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부럽습니다. 누가? 아이들이 ^^

느티나무 2004-07-2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둠'이라는 말.. 저는 참 좋아합니다. OO'조'라는 말에서는 군국주의의 냄새가 나요. 하기야 학교의 또다른 모습이 작은 '군대' 아닐까요? (좀 심했나?)

조선인 2004-07-2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래도 님같은 분이 있기에 더 이상 군대가 아니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용
 

중학생 권장도서 목록

외국소설 - 제인 에어, 수레바퀴 아래서, 호밀밭의 파수꾼,  테스, 주홍글씨, 동물동장

한국소설- 7년간의 실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레디 메이드인생, 치숙, 백치 아다다, 시인

한국인물- 마하트마 간디, 닥터 노먼 베쑨

교과관련- 대한민국사, 조화로운 삶의 지속

 

   요즘 학교 선생님들께서 심심찮게 비슷한 책을 빌리러 오시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니 자녀들의 학교에서 권장도서 목록이라고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나! 아무래도 중학교 1학년이 읽기에는 좀 어려운 내용이다 싶어, 오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저런 책들도 들어있었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도 있고,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정리가 되지 않는 책도 있는데... 단언하건데, 저 책을 읽고 나름대로 이해하는 중학생은 한 반에 한 두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뭐, 내가 아직 안 읽어 본 책이야 말 못하겠지만... 저런 책을 중학교 1학년이 읽고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독서교육 운동을 한다는 학교에서는 교육청의 권장도서 목록을 내려받아서 교육청이 정해준 난이도에 따라 학년별로 목록을 정해주는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으로 독서인증제를 한다고 하니, 학교로서도 이 권장도서 목록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고. 시간은 없으니 학교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읽은 책을 나누고 정리할 시간은 없었을테니... 그냥 이렇게 만들고 방학과제로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권장도서를 만들지 않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자기 생각이 없는 독서감상문을 만들어 내느라 남의 생각을 베끼는 걸 가르치는-적어도, 그런 상황을 방조하는- 이런 권장도서 목록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벌써, 권장도서 목록을 제대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지도 오래되었다. 이제는 좀 바꾸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메시지 2004-07-2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독서문화를 해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선택권도 없이 책을 읽으라는 것도 상당히 권위적인 발상입니다. 자신이 먼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난 후, 그 책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통해서 책 선택에대한 경험도 쌓아야한다고 봅니다.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듯 잘못된 책 선택의 경험도 책읽기에는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발~* 2004-07-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홈페이지를 말씀하시는 건지?

느티나무 2004-07-2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청 홈페이지랍니다. 거기에 독서교육운동 페이지가 링크되어 있더라구요.

비발~* 2004-07-23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조선인 2004-07-2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언니도 권장도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거 같던데, 참 많이 속상하네요.

느티나무 2004-07-2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언니라시면? 혹시 사서선생님... 그 분이신가요? 그래서 저는 따로 권장도서 목록을 만들었거든요. ^^ 다른 사람이 안 만들어주면 제가 만들어 써야죠.

느티나무 2004-07-2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리고 조선인님 반갑습니다. 예전에 한 번 놀러간 적 있었는데... 좀 '빡시게' 사시는 분이시죠? ㅋㅋ

조선인 2004-07-2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서하시는 분 맞아요. 호랑녀 -> 호랑언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