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아이가 건강해!




                    느티나무




놀이와 수업 중에서 무엇을?


  학교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다 보니 주변에 정말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물론,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기 마련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재능이나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을 볼 때의 부러움은 아주 큽니다. 그 중에서 내가 아주 부러워하는 분들은 아이들과 잘 놀거나, 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생님들입니다. 조금씩 놀이의 힘을 새롭게 깨달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께 한 시간의 수업과 한 시간의 놀이 중에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부분이 수업을 선택하지 않으실까요? 흔하게는 우리에게 놓인 입시 환경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시간이라든가 소풍을 가서도 학생들과 잘 놀아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학생들과 노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아이들과 노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닌지요?




  저는 짧은 교직 경험과 공부방 교사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과 잘 놀고자 하는 마음과 아이들과 잘 놀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잘 노는 것이 교사-학생의 관계를 좋게 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놀이가 교사-학생의 관계를 의미 있고,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벼운 상처를 다스릴 수 있는 ‘가정상비약’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실에 놀이를 허하라!


  수업 상황이나 학급 행사에 실제로 쓰일 수 있는 놀이의 형태는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양한 놀이의 방법과 형태는 정작 우리의 교실 문턱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도, 교사들이 아이들에 대해 <노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까닭 때문에 놀이를 하찮은 것, 필요 없는 것, 심하게는 없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할 때의 마음과 놀이할 때의 마음은 다릅니다. 공부할 때는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여겨야 하지만 모둠과 함께 하는 놀이는 옆 자리에 앉은 친구와 마음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에 집중해야 할 딱 그 시간만 아니라면 놀이는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학급 담임으로서 학급행사를 열었을 때나, 학교 체육대회 때나, 수업 시간에 교과담당 교사로서 짬짬이 놀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방법은 교사마다 다양할 수 있습니다. 교사마다 자신이 잘 하고 좋아하는 방법을 찾으면 될 것입니다. 그 중에 아이들과 함께 <논다>는 것은 이 각박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현실을 뚫고 교사와 아이들이, 또는 아이들끼리 격의 없이, 환하게 웃으면서 어우러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통로입니다. <놀이>야말로 노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아름다운 수단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관계의 출발점


  저는 올해 계발활동으로 도서부를 맡았습니다. 구성원들이 2학년 남학생과 1학년 여학생이라 서로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어색함은 아마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느낀 마음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저는 그 어색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좀 느긋하게 출석을 부르고, 계발활동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피하거나 이것저것 학생들의 신상에 관해서 물어보는 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올해 도서부 아이들과 함께 도서실 운영을 멋지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을 먹었는데, 정작 아이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서실 운영에 대한 어떤 의논도 힘들겠다 싶어서 지난 1학기는 계발활동을 할 때마다 15-20분 정도는 꼭 놀이를 했습니다.(2학기에는 서로가 어느 정도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15-20분 정도 생활나누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서부 학생들이 스스로 도서실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도서실 운영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합니다. 이제는 도서실 운영에 대한 적절한 노하우까지 생겨서 저녁시간엔 학생들이 알아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도서부 아이들에게 한 학기 동안 가르친 것이라고는 장작 놀이 방법 밖에 없는데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학생들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들과 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서로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놀이는 서로의 마음을 여는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아무리 낯선 사이라도 놀이에 몰두하는 동안 서먹서먹한 감정이 많이 사라지고 놀이 과정에서 환한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즉 놀이를 통해 낯선 상황에 대한 긴장감과 경계심이 풀어져서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다른 구체적인 활동이 들어갈 자리가 생길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이것은 우리 선생님들이 늘 부딪치는 ‘학교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떠올려 보시면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아이들의 변화는 교사의 깊은 인내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놀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놀이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변화의 첫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전 양산 개운중학교 박계해 선생님께서 쓰신 놀이예찬론의 일부입니다. 서로의 고민이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들께 소개해 드립니다.




 한 현장교사의  놀이 예찬


  5월 15일 스승의 날, 오랫동안 담임을 해 온 탓에 많은 아이들의 전화와 방문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학교는‘배움의 터’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 중 누구도 열심히 공부했던 일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았다. 함께 여행을 갔던 일, 소풍이나 야유회, 학교축제에 관한 기억 등 그 모든 얘깃거리는 <놀았던> 일에 닿아있었다. 그 모든 행사에 놀이계획을 잘 세우고 꼼꼼히 준비해 간 경우에는 인솔하는 나 역시 기대감과 설렘으로 즐겁게 행사를 맞이할 수 있었고 결과도 늘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잘 놀고 난 후의 만족감으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두 뺨을 볼 때는 내가 선생인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남들이 들으면‘선생이 무슨 애들 놀리는 사람이냐?’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잘 자라는’아이들은‘잘 노는’아이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과‘놀’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진 것도 한 원인이 된 것 같다. 그것도 내가 바빠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바빠서……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일과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한다. 그것도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경우보다 부모님의 선택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예전처럼 방과 후에 생일잔치를 하거나 모둠별 연극경연대회 같은걸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렵게 그런 행사를 한다고 해도 학급회의 시간을 쪼개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하는 등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사실 자신이 더 배우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이라면 난들 왜 속이 상할 것인가-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상술과 잘못된 교육열에 보조를 맞추면서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게다가 그런 억눌린 배움으로 인한 긴장을 푸는 데는 컴퓨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밤이 깊도록 채팅을 하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느라 아침에는 하품을 입에 달고 등교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 아이들에게 조례시간이나 종례시간에 교사가 애써 전달하는 말이나 가르침은 지루한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교사는 더욱 절망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나의 경우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조/종례를 통한 <놀이>활동이다. 조례 때는 빙고나 퀴즈, 혹은 동작이 작은 게임들을 하거나 책 읽어주기, 가사가 아름다운 노랫말 익히기 등 다른 반에 피해가 가지 않는 내용으로 운영한다. 그리고 종례 때는 시디나 테이프를 이용해서 노래뿐 아니라 신나는 율동을 함께 배운다. 3월초에는 종례만 끝나면 빨리 보내달라고 아우성이던 아이들이 지금은 종례 시간을 기다리고 즐기는 모습을 보며 기쁨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배움의 기쁨에 충만한 아이들이라면 <놀이>에서 위로 받을 필요가 없겠지만 배울수록 자신에게 절망한 아이들이기에 지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는 <놀이>의 치유효과가 더욱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언제나 <오늘은 어떻게 놀지?>하는 것이다.




짧은 글을 마치며……


  먼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남을 학교에 대한 기억은 무엇일까요? 제가 매일 해대는 잔소리,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 늘 엄격하고 딱딱한 모습……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기억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기억되지는 않을 겁니다. 막연히 ‘이런 선생님이었지’ 이 정도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가장 구체적으로 남을 기억들은 자기와 함께 한 선생님의 모습일 겁니다. 이런 기억은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마음의 고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기억되는 모든 게 행복했던 어린 시절처럼.




  저는 그렇기 때문에 학급에서의 놀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급 놀이(행사)를 잘 계획하고 진행하면, 아이들은 함께 한 친구, 교사의 모습을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기억 자체로는 의미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기억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저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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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12-0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

2004-12-03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4-12-0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빛우주님, 고맙습니다.

속삭여주신님의 투철한 직업 정신(?) 아니면 직무 의식, 놀랍습니다. 덕분에 성황리에 끝났으나 정작 저는 발표도 못 했습니다.

해콩 2004-12-04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우니 2005-01-0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사로서 너무 공감가는 이야기 입니다. 저희반 아이들이 잘놀아서 너무너무 이쁘거든요^^ 헤어지기 아쉬울 정도로요. 추천하고 퍼갈께요. 행복하세요.

느티나무 2005-01-0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니님 반갑습니다. 제대로 잘 놀면 더 이쁘겠지요? 아이들과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면 보통 선생님은 아니시네요? ㅋ
 

   수능이 끝난 다음날의 학교는 이제 막 전력질주를 끝낸 마라토너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이 아이들의 표정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은 어리벙벙한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오늘까지는 시험이 끝난 것이 잘 실감이 나지 않는가 보다. 방송에서는 시험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있는 것 같더라만,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평소처럼 봤지만, 다른 사람이 잘 쳤을까봐 내심 불안한 눈치다.

   아무튼 난 오늘은 1교시 1학년 수업시간이다. '진로와 직업' 시간. 중간/기말 고사도 없는 교양과목이다. 지난 두 시간은 가족신문 만들기를 했었고, 오늘은 집단 상담 프로그램으로 배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는 것과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설명하는 수업을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집중해서 놀랐다.

   2교시부터는 어제 수능을 친 3학년들이 도서관으로 책을 빌리러 많이 왔다. 책을 빌리기도 하고, 나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당연히 이번 시험 점수가 안 나와서 걱정과 한숨을 푹푹 쉬고, 성급하게 '재수'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이번 학예전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가요제의 예심을 봐 달라는 부탁도 들어오고, 수시 '구술 고사'에 대한 정보도 물으러 오기도 했다. 당연히, 좋은 책-읽을 만한 핵- 추천해 달라는 부탁도 많았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이야기는 적은 편이고, 그냥 도서관에 앉아서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마음 내키면 도서실의 도우미 어머니들께서 준비해 놓으신 차 한 잔을 건네기도 하고, 잔잔한 음악도 틀어주고-내가 불러준다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말린다- 아이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참 시간이 잘 간다. 그러다가 마음이 잘 맞으면 여러 명이서 영화보러 갈 계획도 덜컥 잡고.-어쩌면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볼 지도 모르겠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도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도서실에 들렀기에 한동안 신나게 놀았다.

   오늘 온 아이들에게 도서실에 무슨 차를 있으면 좋겠냐고 했더니, 겨울엔 유자차가 가장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내일은 가까운 마트에 다녀올 생각이다. 3학년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날은 이제 얼마 없지만-시험이 끝난 고3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주로 견학을 나간다-, 그래도 가끔씩은 도서실을 찾아 올 그 녀석들을 위해 따끈한 유자차 한 잔 준비해 놓고 도서실에서 기다려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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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1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우리집에도 모과차가 있습니다.

언제 모과차를 함께 할 친구를 초대해야겠네요. ^^

느티나무 2004-11-1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끈한 차 한 잔과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다면... 행복하겠지요?

해콩 2004-11-1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다/

느티나무 2004-11-1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요???

해콩 2004-11-2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지요~ 다 부러워요.. 샘의 여유, 책읽을 수 있는 넉넉한 시간, 쾌적한 도서실 환경, 아이들이 샘을 보는 다정한 눈빛, 샘이 아이들을 보는 은밀한(?) 눈빛, 그 사이에 김을 뽈뽈 내뿜으며 놓여있을 뜨뜻한 유자차까지... 다음에 그 유자차 저도 한 잔 주셔요. 기본 18시간 수업에 기타 잡다한 업무로 내년 2월까지 시달릴 2학년 전담, 담임교사를 위해 위로의 유자차....ㅠㅠ

글샘 2004-12-13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느티나무님과 해콩님은 같은 학교에 계신가 보네요. 재미있겠습니다. 도서실지기가 건네는 유자차 한 잔.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 열 여덟 시간 수업에 기타 잡무로 힘드신 2학년 해콩선생님께 위로의 유자차를 한 잔(제 대신 나무님이 타 주세요.)^^

느티나무 2004-12-1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반갑습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건 아닌데, 자주 뵙기는 합니다. 할겠습니다. 해콩님 오시면 따끈한 유자차, 모과차 한 잔 드리겠습니다. 근데, 글샘님, 어쩌면 해콩님이나 제가 아는 분일지도 모르겠네요 ^^
 

   - 안준철 (순천 효산고등학교)

   영어듣기평가가 있는 날은 학교가 좀 어수선합니다. 3교시가 시작되는 11시 정각에 듣기평가 본방송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3교시 수업이 있는 교사는 평소보다 5분 먼저 교실에 들어가 시험지를 나누어 주어야 하고 학생들도 시험이 끝난 뒤에야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습니다. 듣기평가가 끝나면 약 20분 가량 시간이 남는데 그것도 처치 곤란입니다. 듣기평가 시험을 30분 앞당겨 시행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요.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듣기평가가 있는 날은 영어 교과서 대신 팝송 책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팝송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생각처럼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과거와는 달리 시적이고 낭만적인 가사에도 눈을 반짝이거나 귀를 쫑긋하는 아이들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상금으로 내건 500원짜리 동전 하나에도 눈이 갑절은 더 커지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지요.

그날 우리가 배운 팝송은 <아바>의 'I have a dream'이었습니다. 첫 가사가 이렇게 시작되지요.

I have a dream, song to sing
to help me cope with anything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 부를 노래도 있구요.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지요.)


저는 칠판에 노래 가사의 앞부분을 먼저 적은 다음, 좀 떨어진 곳에 'cope with a difficulty (어려운 문제를 잘 처리하다)'라는 문장을 따로 적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꿈을 가지면 어려운 일도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꿈을 갖는 것과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교사에게는 이런 순간이 가장 괴롭습니다. 사탕 하나라도 내걸어야 눈이 빛나는 아이들에게 순수한 호기심을 요구하는 것은 교사의 욕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말입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시를 한편 끝까지 읽어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한번만 들어 달라고 사정을 하다시피 해서 시를 읽기 시작하면 불과 이삼초가 못되어 여기 저기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들에게 유익한 교훈이 담긴 말을 해 주고 싶어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듣게 하려면 큰 소리를 치거나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데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거나 좋은 말을 해 줄 거면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보니 가끔은 이런 엉뚱하고도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거 칼입니다. 보드 마커가 아니고 진짜 칼이란 말입니다. 이 칼이 어쩌다가 여러분 손에 들어왔습니다. 눈앞에는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못 살게 구는 불량배일 수도 있고 아버지의 사업을 망하게 한 직업 깡패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술이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고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물론 그 사람을 죽이고 나면 살인자로서 지명수배가 되고 감옥에 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중 일은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그 사람을 죽이고 싶습니다."

시나리오에도 없던 말들이 제 입에서 쏟아져 나오자 흩어졌던 아이들의 눈길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초점 없이 허공을 맴돌던 아이들의 눈망울도 하나 둘 켜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에 이렇게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꿈이 없다면 그 사람을 죽일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여러분에게 꿈이 있다면 그 순간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살인자가 될 운명에서 여러분 자신을 구해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 한번 말해 보세요?"

무언가 감을 잡은 듯 몇몇 아이의 눈길이 진지해지고 있었지만 막상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기다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한 아이의 입이 실룩하는 것을 알아채고 말을 해 보라는 뜻으로 그 아이에게 눈길을 던졌습니다.

"그것은, 그러니까, 그 사람을 죽이고 나면 감옥을 가게 될 거고, 그러면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맞았어. 그 사람을 죽이고 나면 자신의 꿈도 함께 산산조각 나고 말겠지. 그러니까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은 함부로 살인을 하지는 않겠지. 인생을 함부로 살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꿈을 가져야 해, 말아야 해?"

"가져야합니다."

저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칠판을 향해 잠시 몸을 돌려야 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진지해진 그 아이의 눈빛에 그만 감격하여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기 때문이지요. 그날 두번째 눈물을 흘린 것은 그로부터 5분쯤 지난 뒤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꿈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팝송을 배우고 있는데 이 노래를 끝까지 잘 배우는 것도 여러분의 꿈을 이루는 한가지 방법이에요. 왜 그럴까요?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한 일이니까 우선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 열심히 하면 내일도 열심히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학교 생활이 즐거워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오늘 이 노래를 끝까지 배울 수 없다면 내일도 그럴 거고 모레도 그럴 거고 여러분은 여전히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고 말지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의 꿈을 이루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이 맞아요, 틀려요?"

"맞습니다."

두 아이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대답에 저는 다시 한번 울컥해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기계적이고 단순한 대답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갈참나무가 되기 위한 도토리의 꼼지락거림일 수도 있기에 저의 감격은 결코 감정의 과잉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재빨리 칠판 쪽으로 몸을 돌려 눈물을 훔치고는 서둘러 나머지 가사를 읽고 해석해주었습니다.

If you see the wonder of a fairy tale
You can take the future even if you fail
I believe in angels
Something good in everything I see
I believe in angels
When I know the time is right for me
I'll cross the stream
I have a dream

(당신이 동화 속의 그 신비로움을 볼 수만 있다면
설혹 실패한다고 해도 당신은 미래를 지켜나갈 수 있어요
나는 천사를 믿어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는 선한 것이 있음을
나는 천사를 믿어요
때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난 시내를 건널 거예요
난 꿈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세번째 눈물을 흘린 것은 '때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난 시내를 건널 거예요'라는 대목을 설명하는 도중이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초롱하고 예쁜 아이들의 눈망울에 목을 적시며 이런 말을 던지던 바로 그 순간이었지요.

"시내를 건넌다는 것은 새가 알을 깨고 창공을 향해 날아가듯이 나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간가는 것을 뜻하지요.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기도 해요. 그래서 꿈을 가진 사람만이 시내를 건널 수 있어요. 이룰 꿈이 없는데 뭐 하러 힘들게 시내를 건너겠어요? 여러분 축하드려요. 오늘 이 노래를 끝까지 배웠잖아요?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여러분도 작은 시내를 하나 건넌 거예요.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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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 2004-11-0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눈물을 글썽거린 것이 감정의 과잉은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바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잊었던 나의 꿈들과
이제 자라나고 있는 제 딸 아이의 꿈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집니다.

느티나무 2004-11-0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읽고 서재에 옮겨오면서 아바의 노래를 줄곧 들었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꿈을 가지게 해야 할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정작 아이들의 꿈에는 둔감한 것 같아 미안하네요. ^^

모래언덕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uyeo-ni 2004-11-1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곧 고3이 되는 딸아이가 있습니다 . .

옆의 동료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껌벅거리는 중입니다.

현실은 늘 팍팍하지만, 이런 따스한 글들을 만날 때 가슴속으로 한줄기 시냇물이

흐르는 느낌 . . . 건강하세요 !




느티나무 2004-11-1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고 공감하셨다니 감사합니다. 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고3 따님도 힘내셨으면 하네요.
 

체벌을 대신할 방법을 고민합니다(하)

송승훈(광동종고)

 

5. 체벌에 대한 잘못된 대안들
5-1. 때리는 것보다 더 학생들을 꽉 잡을 수 있어요! : 빽빽이
   백지를 주고서 거기에 깨알같은 글씨를 꽉 채워오라는 벌이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벌로, 학생의 모든 삶의 영역을 제약하는 최악의 벌이라 할 만하다. 이 벌은 ‘공부를 시킨다’거나 ‘애들을 잡아야 한다’는 선의를 내세우지만, 빽빽이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매하다 하겠고, 만약 학생들을 잡아놓겠다는 의도라면 그것은 일상의 식민화라 하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한 벌 같지만, 빽빽이를 해오지 않으면 가혹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기에, 체감 공포는 최고다!!! 일상의 영역을 식민지화하는 벌이어서, 학생들은 머리가 점점 나빠진다. 학습의 관점에서도 폐해가 아주 심한, 그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도 아주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최고인 벌로, 이 벌이야말로 ‘가혹행위’로 규정하고 교육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5-2. 이렇게 감동이 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 반성문 쓰기
   옆자리 선생님이 감동을 받은 표정이다. 그러면서 한탄한다. “애들이 쓴 반성문을 보면 어휴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찡~한데 왜 하는 짓은 계속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는 아~하고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선생님 그거 아니에요. 그거 다 사기에요.’ 아이들은 교사의 마음을 이미 알고 거기에 맞춰준다. ‘요즘 아이들을 뭘로 보는 겁니까.’ 반성문을 일상적으로 써오게 하는 교사도 있는데, 그 교사에게 속한 아이들은 반성문 몇 장을 정말 순식간에 다 써낸다. 정해진 각본이 뻔한 글이어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좋은 분이십니다. 제가 죽일 놈이지 선생님 같은 분이 신경써주시는데 그런 일을 하다니요.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성문 쓰기는 학생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지도방법이라 하겠다. 반성문이라는 글의 양식 자체가 전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항복과 굴종의 표시밖에 안된다. 학생들은 그러는 척하는 것이고. 거기에 교사가 자기만족할 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생활일기나 생활이야기 또는 그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5-3. 학교판 박정희 향수? : 해병대 체력단련
   요즘 와서 왜 이런 방식이 자주 텔레비전에 등장하는지 답답하다. 고생을 안 해 봐서 아이들이 버릇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과거 독재자들을 난데없이 조명을 받더니만, 이제는 그간 계속 청산의 대상이던 군사문화가 학교에서마저 대안 이미지로 자꾸 제시된다. 사회에서 박정희 향수가 부는 것과 비슷해서, 예민하게 주의해야 한다. 물론 집단체력단련도 교사가 함께 학생과 똑같이 뛰면 교육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칫 체벌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보복으로 가해지는 과도한 육체훈련이라면. 또는 잘해주면 기어오른다며 학생들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게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무력시위라면.
   그리고 짚고 넘어갈 것 한가지가 있는데, 선착순 뛰기다. 왜 힘없는 아이들은 두 배로 벌을 받아야 하는가. 체력이 약한 아이들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도 강한 아이들보다 힘이 더 드는데, 힘이 없는 아이들이 또 운동장을 돌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선착순 뛰기는 동료를 밀쳐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비교육적 가치를 담은 벌이다.

5-4. 이거 체벌을 대체한다는 제도 맞아요? : 벌점제도
   벌점제도는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 제도를 칭찬하는 학생은 별로 보지 못했다. 교사들 또한 떨떠름한 표정들이다. 체벌을 대체한다는 이 제도에 대한 반응이 왜 이럴까?
   첫번째는 벌점을 주면서도 할 체벌은 또 다 한다는 문제제기이다. 때리시던 분들은 벌점을 주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손을 댈 때가 많은 모양이다. 과거에는 때리고 끝났는데, 이제는 때리고서 벌점까지 준다는 것이다. 벌점제가 체벌을 없애기는커녕 통제를 위한 족쇄로 변하는 순간이다. 과거에는 교문에서 복장이 걸리면 한두 대 맞고 벌 쓰면 끝났지만, 이제는 한두 대 맞고 벌점 받고 엎드려뻗쳐까지 하고 와야 한다는 불만이다.
   두번째는 벌점제가 주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불만이다. 생활하는 과정 그 자체가 평가의 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험성적이 아니라 생활 태도가 평가 요소라니, 꼭 인성교육에 한걸음 더 다가선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많다. 벌점을 받았다고 그 벌점을 상점으로 대체해야 한다며, 만만한 선생님께 목숨 걸고 쫓아다니는 모습하며, 상점을 많이 받아 나중에 선행상을 받는 학생을 보면 묵묵히 제 일을 소리없이 하는 학생이라기보다 요령있게 어른-교사에게 잘하는 학생일 때가 많고(그래서 두뇌좋은 일진회 짱이 선행상을 탈 뻔한 적도 있다), 좀 불러다 특별실 청소를 시키려 해도 ‘상점 주실 거죠? 안 주면 안 해요’ 하고 싹 돌아서는 아이들을 보게 되고, 이거 영 벌이 벌 같지 않고 상이 상 같지가 않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이 제도가 갖는 문제는 운영하면서 고칠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에 내재한 모순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본래 취지대로 시행해도 문제가 많은데, 본래 취지마저 왜곡해서 이 제도를 시행한다면 어떨까. 벌점제도가 처음 시작될 때 어느 학교 풍경이다. 교사들 전반적으로 반대하자, 어느날 갑자기 교장의 명이라며 실시했다. 학생부 교사들이 다짐하던 목소리가 들린다. “맛을 보여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벌점을 우습게 본대두.” 그 앞에서는 '모래시계', '삼청교육대'에서 본 군대 유격훈련 피티체조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끝나고 여학생 몇몇은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눈물 흘리고 있고. 이거 벌점제인가? 아닌가?

   벌점제는 일상의 짜증화다.

   그리고 체벌? 사라지지 않았어요.


6. 글을 마치면서 : 남은 이야기
   체벌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꼭 황색저널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게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인 것을. 교사인 내가 신나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맥이 풀린다. 추한 현실을 자꾸 드러내야 현실에서 자유가 점점 더 넓어진다고 하니, 그 말을 믿을 뿐이다.

6-1. 현상을 보고 욕하는 것 당연하지만 원인을 살펴달라,
   “교사 집단을 범죄자 취급하면서는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말은 나에게 무척 굴욕적이다. 비굴하게까지 느껴지는 변명이다. 욕먹을 게 있으면, 욕먹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도 있다. 교사집단의 엉망인 행태에 대해 비난하면서, 왜 교사들이 그렇게 나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파고드는 목소리를 보지 못했다.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면, 아궁이를 살펴야 하는 법이다. 문제를 일으킨 교사 몇을 쳐버린다고 해서, 낡은 학교사회가 개혁되리라 믿는가.
   돌아보면 학교 사회란 곳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 일방전달식의 교무회의, 3년 안 된 교사가 교무회의에서 발언하면 눈치 주는 분위기, 논의하다가 말이 막히면 ‘학교는 교장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오만함이 있는 곳. ‘진정 중요한 것들은 외면하면서 지나쳐도 별 상관없는 작은 잘못에만 매서운 우리들’(김명인, '동두천')이 우리네 교사들의 모습이다. 군것질할 돈을 모아 굶주린 북한 사람들을 돕게 했다고 교무실에서 교감에게 멱살 잡힌 교사가 있는 한, 교사 집단의 낡은 행태는 영원할 것이다. 교사가 교사답게 교단에 설 수 있을 때, 교사의 부정적 모습들도 자체 치유될 수 있다.
   건강한 교사가 나올 수 없는 환경에도 관심 가져주기를! 이런 학교상황에서는 멀쩡한 교사도 '여고괴담'에 출현하기에 적당한 교사가 되기 쉽다.

6-2. 최고의 의술이란 병이 안 생기게 하는 것
   규칙과 법은 제 역할이 있다. 규칙과 법을 적용하고, 규칙과 법의 힘에 기대어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한 방법이다. 하지만 세상의 여러 일들 가운데는 규칙과 법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일도 많다. 살이 썩어서 고름이 찼을 때 그 고름을 짜버리는 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평소 몸을 건강히 해서 곪는 곳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집단의 건강한 부위를 계속 키워주어서 곪은 부위를 치유한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 좋겠다. 언제나 최고의 의술은 병을 생기지 않게 하는 예방의학이 아닌가.
   사범대학 교사양성과정 문제도 이야기하자.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대해 고민할 내용을 교사양성과정에서 가르쳐야 한다. 지금 사범대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주하는 교육과정에서, 체벌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교사가 어디 길러지겠는가. 왜 사범대의 교육과정은 그토록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거리가 먼가. 교사들은 제대로 된 감정 조절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체벌이 이토록 중요한 사회 쟁점이자 교육 과제라면, 그것을 대학에서 체계있게 가르쳐야 한다. 관점없는 초임교사들의 무분별한 체벌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이렇게 체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나도 초임시절 한때 학생을 때리는데 재미를 붙인 적이 있었다. 한번 두번 때리다보니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딱 집중도 더 잘하고 해서 멋모르고 학생들의 종아리를 걷어올리게 하고 손을 댄 적이 여러번이다. 너무 엉망이라고 판단되는 학생을 아주 세게 패준 적도 있다. 대학 때 교육에 대한 공부를 소흘히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학문이란 본래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인류가 고민을 축척해온 성과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공부는 현실과 지나치게 거리가 먼가 보다. 나는 열심히 여러 외국 상담이론가 이름을 외우고, 이론을 배웠지만, 내 눈앞에서 나를 열받게 하는 ‘학생 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은 바가 없으니 말이다.

6-3. 폭력에 주눅든 학생은 나-당신-우리 사회 전체다.
   폭력에 주눅든 사람은 짜증내는 언어를 사용한다. 합리적으로 의사소통을 해보지 않았기에, 늘 뒤에서 상대를 씹어버리기만 했던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말문을 틔워주면, 건설적인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오고, 온통 투덜거림 천지다. 가끔 ‘애들 잘해줘봐야 기어오르기만 해’ 라는 말을 듣는데, 아이들은 실제 그러기도 한다. 민주적 의사소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대화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불평의 언어를 가지며, 본능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한다. 끔찍한 일이다.
학교를 바꾸는 일은, 우리 사회를 바꾸는 일의 한 출발점이다. 힘의 위계에 따른 복종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좀더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비폭력적으로 가르친 아이들이, 나중에 이 사회를 바꾸어가리라는 꿈을 꾼다. 동시에 이 과정은 폭력에 오염된 내 몸, 내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이 글에서는 학교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만남에 주로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앞으로 체벌에 대한 대안은, 학생 생활지도 차원의 고민이다. 그것은 한 학교 안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영역이다. 이미 학생은 학교를 벗이나 사회의 여러 곳에 머물고 있기에 그렇다. 이 부분은 아직 남겨진, 앞으로 해야 할 과제다. 학부모들의 몫이다. <雲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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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11-03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하긴 하지만, [지각하는 사람은 5대 맞기]하고나서 우리반 지각자가 부쩍 줄어든 것도 사실이거든요...에이구.
 

체벌을 대신할 방법을 고민합니다(중)

송승훈(광동종고)

4. 체벌을 대체해서 해 볼 만한 시도들

   잘못한 학생에게 고통을 주어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희망이 없는 관점이기에, 교육적이지 않다. 진정한 ‘꾸중’이란 학생이 자기 행동을 되돌아보고, 그래서 인간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벌’을 말한다.

   벌을 안 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이상적 관점은 현실에서 무기력하다.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은 먼저 이상교육을 할 수 없게 하는 콩나물 교실이나 입시 제도나 돈을 최고가치로 여기는 사회와 싸워야 할 것이다. 다양한 욕망과 권력이 판치는 지금 학교 현실에서, 일정한 통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학생에게 억압적이지 않게 하는 평화교육의 이상은 모든 교사 누구나 고민할 영역이기도 하다. 이상은 언제나 현실의 추한 부분을 비추어주기에, 우리가 나아갈 더 나은 세계를 알려주니까. 이런 고민 속에서 현장교사들이 체벌을 대신해서 쓰고 있는 방법을 소개해본다.
   이 대안들이 교육적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가 극기복례하는 일이 필요하다. 벌은 교사가 맺힌 것을 푸는 게 아니라 학생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몸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요즘같이 공동체 문화가 해체되고 찰나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참 어렵다. 이 영역은 그러기에 인간의 영역이다. 교사가 불완전한 존재로 자신을 자각하며 늘 반성하며 깨어 있도록 애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그리고 평소 학생과 맺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교사와 학생이 관계맺을지에 대해 거듭되는 회의와 고민이 있어야겠다.
 
4-1. 몸을 움직이는 일 :
몸은 신체와 정신을 함께 포괄한 말이라 했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인다.

(1) 10초 동안 일어섰다 앉기 :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하나둘이 떠드는 건 괜찮다. 주의를 주면 되니까. 그런데 전체가 게릴라식으로 떠들면 교사는 아주 힘들어진다.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누구를 주의줘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학생들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가 10초쯤 뒤에 앉히는 방법이 쓸 만하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하고 학생들을 일어나게 한 다음, 잔소리를 길게 하면 역효과가 나니까,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딱 한마디만 하고,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하고 자리에 앉힌다. 계속 분위기가 잡히지 않으면, 다시 일어나게 했다가 20초쯤 있다가 앉게 한다. 간단하지만 학생에게, 교사가 느끼는 문제의식을 전달하는(의사소통하는) 방법으로 그만이다. 실제 써보면, 꽤 효과가 좋다. 이 벌의 힘은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스럽다는 교사의 판단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2) 재미있는 몸짓하기 :
벌을 아무리 부드럽게 준다고 해도, 잘못했다는 전제 아래에서 받는 것이기에 벌은 기본적으로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이다. (물론 속이 후련하다는 학생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수업 때 계속 정신이 없는 학생을 지적해서 일으켜 세운 다음, 거기에 맞는 재미있는 몸짓을 하게 하면, 재미있으면서도 부끄럽기에 잘못을 비억압적으로 지적하는 효과가 있다. 수업 때 서로 때리며 장난을 심하게 논 학생은, 의자를 뒤로 들고 가서 그 의자 위에 올라선 채 자유의 여신상을 흉내내게 하고, 자꾸 떠드는 학생에게는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고 의자 위에 올라가 서 있게 한다. ‘너는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을 본받아라’ 하며 슈퍼맨 자세를 취하게 해도 좋다. 그러면 벌을 주는 순간 생기는 어색한 분위기를 새로운 생기로 바꾸어낼 수 있다. 몸짓은 오래하면 안 되고 5분 안에 풀게 해준다. 이렇게 세워두는 벌은 오래해서 별로 안 좋고 짧게 인상깊게 해야 좋다. 이 벌의 힘은 잘못을 부끄러움과 우스개로 풀어내는 데 있다.

(3) 손잡고 운동장 한 바퀴 돌기 :
교육에서 통제란 그 자체가 중요한 목적이 되어 있을 때 문제이지, 모든 통제가 악인 것은 아니다. 소규모 학교가 아닌 대규모 학교에서 어느 정도 통제가 없다면, 학교는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반 전체가 책임없는 행동을 했을 때, 그래서 교사가 반 학생 전체에게 ‘그 행동은 문제가 있는 거야’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다. 두레(모둠,조)별로 손을 잡게 한 다음, 나란히 서서 운동장을 한 바퀴만 돌고 오게 한다. 손을 놓고 자기 혼자 앞질러 가는 두레(모둠)는, 다시 한 바퀴를 더 돌게 한다. 운동장에 신발주머니를 들고 나가설 때는 잠시 심각해지다가, 막상 뛰어보면,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처럼 되어버린다. 그것으로 족하다. 몸을 쓰는 벌은 무릇 시작이 엄숙하고 끝이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친구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도는 일은 색다른 인상을 준다. 어떤 행동이 마음에 새겨지면, 그 자체로 벌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기억에 새겨지는 것, 이 점이 핵심이다.

(4) 업어주기 :
학생끼리 몸을 부대끼게 하는 일이다. 말썽장이들이 계속 속을 썩일 때, 의미있는 숙제를 내주었는데도 거듭해서 해오지 않을 때, 쓰면 좋다. 수업 끝내고 불러다가 일장훈계를 한 다음, 운동장에 데리고 나가서 둘씩 짝은 지은 다음, 서로 업어주면서 정해진 거리까지 교대로 갖다 오게 하는 벌이다. 너무 힘들지 않게, 그러나 땀은 조금 날 만큼 시키면,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재미있는 벌이다. 치마 입은 여학생에게 이 벌을 시키실 분은 없겠지.

4-2. 학습과 관련해서 :
(1) 시 외우기 :
   분위기 있어지는 벌이다. 그전까지 잘못하면 두들겨맞아본 적밖에 없는 학생이, 잘못해서 교무실에 와서 시를 외우는 모습을 보면, 학생 스스로도 자신을 대견하게 여긴다. 나쁜 행동을 좋은 언어를 통해 촉촉하게 적시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시 외우기는 숙제를 안 해온다든지 하는 간단한 상황에서부터 그밖에 여러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부담없는 방법이다. 수업시간에 본 만화책을 압수했을 때, 대여점에서 빌려온 만화책이라며 돈 물어줘야 한다며 다시 돌려달라고 사정하는 학생에게 딱히 줄 벌이 마땅치 않을 때도 시 외우기는 쓸 만하다.
   소박한 수준에서 시 외우기 벌은, 학생들이 이해할 만하고, 내용도 좋은 시집 대여섯 권을 준비해놓고, 일이 있을 때마다 학생에게 시집을 한권 집어주고, 마음에 드는 걸 한편 골라서 외워오게 하면 된다. 더 적극적으로 시 외우기를 활용하려면, 상황에 따라 권해줄 시를 파일에 끼어놓고서, 그때그때에 따라 ‘이게 좋겠구나’ 싶은 시를 외워오게 하면 된다. 편집을 해서 조그마한 종이에 복사해놓고, 한 장씩 나누어주어도 좋다. 이때 주의할 점은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시, 감동이 있는 시여야 한다는 것이다. 뜻도 알지 못하는 어려운 시를 권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암기훈련일 뿐, 다른 기대 효과가 없어진다.


(2) 책읽고 글쓰기하기 :
   심각한 문제를 저질렀을 때다. 담배를 피웠을 때나, 계속 같은 잘못을 오랫동안 했을 때, 처벌 대신 쓰는 방법이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글을 받거나, 책을 한권 사오게 해서 읽게 한다. 담배 피다가 걸린 학생에게 나는 이렇게 묻는다. “학생과로 가서 벌점 받고 근신을 받을 테냐? 아니면 책을 한권 사와서 독후감을 쓸 테냐?” 이때 역시 학생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학생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고통인 그런 책은 적당하지 않다. 어려운 고전보다는 최근에 나와서 학생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책을 권하는 게 좋다. 그리고 꼭 감동이 있는 책이어야 한다. 감동이 없으면 교육도 없다.

 

4-3. 교사와 학생이 서로 교감하는 일 :
(1) 신체접촉하기 :
   수업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을 때, 계속 정신없이 떠들거나 너무 건방진 행동을 할 때, 슬쩍 그 학생에게 가서 꼭 안아주며 턱에 난 수염으로 꾹 찔러주는 일이다. 남자 교사가 남학생에게만 쓸 수 있는 벌이다. 학생들은 그럼 난리가 난다. 서로 몸이 맞닿을 때 생기는 연대감을 이용한 것이다. 가만히 손을 잡고 잠시 동안 있을 수도 있다. 점심시간 같을 때, 손을 잡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 나눌 수도 있다. 동성간에 하는 것이 좋고, 이성간에는 삼갈 일이다.

(2) 그때 상황에 대해 글쓰기하기 :
   자신이 한 행동을 차분하게 되돌아보게 해서 학생 스스로 자기 행동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처지를 합리화하는 속성이 있어서, 잘못한 그 순간에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다. 글쓰기가 갖는 힘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인데, 그 특성을 이용한 벌이다. 경찰 조서처럼 ‘네가 잘못했지? 써!’ 하고 소리치고서 쓰게 하면, 교사의 비위에 맞추는 글이 되어 효과가 반감되니까, 조심해야 한다. 사실 자체를 꼼꼼히 쓰라고 주문하면서, 그때 네 마음을 적고,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를 짐작해서 적어보라고 얘기하면 된다.

(3) 불러다가 1:1 대화하기 :
   나-전달하기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큰소리내면 학생도 같이 큰소리낼 수도 있어 난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또는 학생이 아예 입을 다물어버려 일방적 훈계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나-전달하기’란 ‘그 상황에서 나는 이런 기분이 들더라. 또 이런 생각도 했지’ 하는 식으로 문제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담담하게 1인칭 시점으로 독백하듯 말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에게 ‘너 왜 그랬어. 맛 좀 볼래.’ 하고 따지는 말은, 교사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가 하는 ‘결과’를 보여줄 뿐이어서, 그 앞에서 학생이 할 수 있는 말이란 ‘잘못했어요. 죽여주세요.’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나-전달하기로 말을 하면, 학생도 교사가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이렇게 얘기를 교사가 먼저 꺼내 놓아야, 학생도 적어도 교사가 자기 심정을 말한 만큼은 이야기를 해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 남아서 선생님과 함께 퇴근하기 :
   장난꾸러기들 가운데는 지적을 받고 교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다. 성장기라 제 몸의 기운을 주체 못하는 것이다. 몇 번 계속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가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앞으로 잘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날 또 청소를 도망가버리는 학생을 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런 아이들은 또 모질게 한번 혼나고 나면 그런 버릇이 고쳐지기도 해서 더욱 체벌해야겠다는 충동이 교사에게 강하게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체벌을 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지도방법이, 선생님과 함께 퇴근하기이다. 수업이 끝난 다음 곧바로 신발주머니를 들고 교무실로 오게 해서, 교사 옆자리에 앉혀두고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크게 윽박지름은 이미 다른 선생님에게 여러번 당했을 테고 하니, 많은 말을 하지 말고 그저 옆에 앉혀두기만 하면 충분하다.

(5) 교장실에서 1시간 머물기 :
   정학이 없어지면서 근신이라고 해서 교무실 복도에 책상을 갖다두고 하루를 지내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이 아이들은 그러나 사실 방치 상태이다. 학교 구석구석에 있는 휴지나 줍고, 잡스러운 일에나 동원된다. 수업이 아주 싫은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복도에 책상 갖다 두는 일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그렇게 근신하는 학생들에게 하루 1시간씩 의무적으로 교장실 소파에 앉아 있게 하면 어떨까. 소극적으로는 교장실에 그냥 편하게 앉혀만 두어도 좋다. 교장 선생님은 신경쓰지 말고 자기 일을 보면 된다. 적극적으로는 교장-학생 상담록을 만들어서 할 수도 있다. 신세대 아이들이 버릇없다고 하지만 나이 지긋한 교장 선생님 앞에서까지 그럴까. 여러 가지를 몸으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좋은 체험학습의 장이 바로 교장실이다.

4-4. 그 밖에 :
(1) 종이에 줄긋게 하기 :
   흥분한 학생에게 쓰는 방법이다. 요즘 보면, 선생님께 주먹을 날리는 일이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데, 보편적 현상이다. 이런 모습이 점점 많아지는 까닭은 어른들이 행동을 잘 못해서 청소년들에게서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업사회 핵가족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또래집단 안에서 갈등 해소 방법을 잘 못 익혔기 때문이기도 하고, 승자보다는 패배자를 더 만들어내어 기죽이는 우리네 학교 교육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몇 번 위압적인 학생의 몸짓에 당황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3-4분 동안 계속 이상한 손동작을 하기에 지긋이 손을 잡으며 그만 하라고 했더니, 내 손목을 탁 잡으면서 ‘힘도 없으신 분이 왜 그러십니까’ 한 적도 있고, 잠자는 학생을 깨웠더니 그 학생이 일어나서 쓰레기통을 뻥 차버린 일도 있었다. 종이 위에서 1센티를 줄긋고 그 다음 1센티를 띄고 다시 1센티를 줄긋고 1센티를 띄고, 가로 세로를 이렇게 하게 한다. 감정절제를 하지 못해서 거친 행동을 한 학생에게 시킬 만한 벌이다.

(2) 운동장 걷게 하기 :
   역시 감정절제를 못해서 막 나가는 학생에게 자기 행동을 되새겨보고 자기 자신과 만나라는 뜻에서 시키는 벌이다. 길을 오랫동안 걷고 있으면, 자신과 관련된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온갖 이야기들과 만나게 된다. 군인들이 행군을 싫어하는 이유가,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여러 가지로 너무 많이 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길을 오랫동안 걷는 일이 전통적으로 종교적 수행에 속해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자기를 제어하지 못해서, 상황을 난감하게 만드는 학생이 있다면, 조용히 불러서 이름을 불러준 다음 짧게 대화를 나눈 뒤 길을 걷게 해도 좋다. 반드시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지 날씨를 고려하고, 30분에서 1시간 사이를 안 넘기는 게 좋다.

(3) 공익광고 :
   담배를 피웠을 때 쓰면 좋다. 보통 학교에서 담배를 피다 걸리면, 몽둥이로 여러 대 맞는 일로 시작해서 크게 혼이 나는데, 그것은 ‘이렇게 크게 혼나니까 하지 말아라’ 하는 겁주기 정책이다. 그러나 이 겁주기 방법은 그 과격함으로 해서, 잘못한 학생을 그 방향으로 낙인찍어버리는 역효과도 커서, 그 대안으로 생각해낸 방법이 공익광고다. 이 방법의 교육적 의미는 보편적 규정을 어긴 데 대해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고민하게 하는 방법이다. 잘못한 일과 관련된 구호를 만들게 한 다음, 다른 반 교실로 들여보내 웃는 얼굴로 인사하게 하고 구호를 큰 소리로 3-4회 외치게 한다. 이때 구호의 끝을 ‘합시다’ 투가 아니라 ‘해요’ 투로 하면, 구호가 부드러워져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담배는 만수무강에 해로워요. 건강한 청소년이 되어 아이엠에프를 극복해요.” 이 웃음에 규칙을 어기는 어두침침한 마음을 치료하는 효과가 숨어 있다. 자존심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에, 서로 의지할 수 있게 꼭 두 명 이상이 함께 하도록 하고, 여학생에게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4)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시간 갖기 :
   쉬는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교실에 들어오니 아이들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먼지도 자욱하고 어디선가 과자 냄새도 난다. 이런 어수선한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해보았자 좋은 기분일 것 같지 않다. 잠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수업 시작하기 전 이렇게 3분에서 5분 정도 눈을 감고 몸가짐을 바로 하고 있으면, 교사와 학생 모두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수선하면, 교사도 학생도 짜증내기 쉽고, 이 짜증은 상호 증폭이 되어서, 안 좋은 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체벌을 미리 예방하는,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5) 수업시간에 자꾸 화장실을 가겠다는 할 때 :
   생명체인 사람이기에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될 때가 있는데, 학생들이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선 담배를 피거나 매점에서 과자를 먹거나 하기 때문이다. 또 여럿이서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한참 있다가 들어올 때도 있다. 보통 교사들은 처음에 수업 때 화장실 가는 걸 허용하다가, 나중에 학생들이 악용하는 것을 보고, 아예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못 가게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몸이 안 좋아서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아이가 있는데, 평소 다른 ‘양치기 소년’들이 한 장난 때문에,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는 한 사람씩 화장실을 가게 하면 문제가 쉽게 풀린다. 먼저 화장실에 간 사람이 돌아오면, 그다음에야 두번째 사람이 나갈 수 있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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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0-2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때 옆반 여선생님이 쓰던 체벌방법이 생각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스트레칭인데 그 때는 그게 무지 괴로왔죠.
마주보고 앉아 서로 다리 찢어주기, 오랫동안 정자세로 앉아/서있도록 자세 교정해주기, 등으로 업어주기, 손바닥이 땅바닥에 닿도록 허리 눌러주기, 뒤로 팔 잡아당겨주기 등등등.
한참을 체조고문하다 보면, 전신에 땀이 솟을 정도로 몸은 힘들면서 마음은 상쾌해졌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