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때문에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 서재가 있다는 걸 비밀로 해야할지 모르겠다.

   요즘 새학기라서 조사해서 통계를 내는 게 많다. 뭐, 대부분은 교육적인 필요에 의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쓸 데도 없는 걸 받아내는 걸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대표적으로 서약서) 그리고 행정 편의주의적인 사고 때문에 받아내는 것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대표적으로 자율학습 희망서-일단 시작하고 나서, 희망서는 나중에 형식적으로 받는다. 나중에 장학지도 나왔을 때 학생 희망의 근거로 활용될 것이다.) 더구나 올해 맡은 업무는 그런 공문을 만들고, 거두고, 통계를 내는 학년 기획 업무라 더 곤혹스럽다.

   일이야 지금은 못해도 차차 배우면 되는 것이고,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고, 밀려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니 괜찮은데 내가 피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게 되니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담당이 아니면 못하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때도 있을텐데, 지금 사정이 영 곤란하게 되어서 그냥 개인적은 문제로 한정시켜서 말하게 된다. (교육방송 시청할 계획이라고 하기에 나는 돈 받고 하는 방송시청 감독이라면 못 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구하든지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 혼자 안 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절대로 하기 싫은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

   며칠 전부터 급식비 면제자를 선정해 달라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희망자는 개인적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두 번 세 번 말해도 찾아오는 학생이 없기에, 점심시간에 슬쩍 나가서 물로 배를 채우는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밥을 먹어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고 얘기했더니 슬금슬금 네 명의 학생들이 차례로 찾아왔다.

   아직은 학년초라 아이들의 환경을 잘 모르니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정이 딱하면 추천서를 써 주면 되는데, 제일 먼저 찾아 온 OO이의 사정은 너무 딱했다. OO이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말자 울기 시작하더니 거의 통곡하다시피 했다.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으나 자연스럽게 한바탕 우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내버려 두었다. 어린 녀석이 마음에 맺힌 서러움이 많았던 가 보다. 통곡하는 녀석을 한 번 꼭 안아 주고, 벌겋게 충혈된 눈을 식히기 위해 내가 쓰는 교무실의 뒷문을 열고 나가서 바람을 쐬었다.

   그 이후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늦게까지 혼자 있는 동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어쩌면 흔해 빠진,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니 조금 후회스럽다. 왜 그런 이야기 밖에 못 했지.) 그래도 돌아갈 때는 씩씩해 보였다. 나는 고마웠다.

   그 녀석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이 눈물이 세상에서 자기가 꿋꿋하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나 역시도 이 한번의 눈물이 그 녀석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다.

   지금은 봄이지 않는가? 초록의 물결로 밀려오는 봄 같은 아이들이 아닌가? 이 봄에, 봄 같은 아이들을 두고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콩 2005-03-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게도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아이가 선생님 반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오늘 학교에서 남은 업무처리와 짐정리를 했다. 그냥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아침부터 학교에 갔으나, 일은 아주 늦게야 끝났다. 일은 지금까지 받은 공문을 차례로 정리하고 나서 색인목록을 만드는 것과 교과서 대금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사실, 오늘 뿐만 아니라 어제도 학교에 가서 일을 했으나 다 끝내지 못한 터였다.

   그러나 오늘은 점심도 생략해 가며 일한 덕분인지 저녁 5시 반쯤에는 모든 일을-만족스럽지는 않지만-끝낼 수 있었다. 신경을 조금 더 쓴다면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오늘은 도서부 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 오는 날이기 때문에 딱 그 시간까지만 여유가 있었다. 짐을 한가득 손에 들고 택시를 기다렸다가 겨우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집은 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어린 손님을 맞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김치전으로 요기를 하고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밥상을 꺼내어 닦고 책상도 대충 정리하고 앨범도 꺼내 놓았다.

   7시 전까지는 온다던 녀석들이 7시 30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소식이 없길래 속으로 '어디서 휴지를 사들고 오는가 싶었다.' 7시 30분쯤, 드디어 벨이 울리고 명랑한 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해가 정성껏 준비한 김치전을 내놓고 오렌지주스를 준비했더니 모두 즐겁게 먹느라 야단들이었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깔깔대며 웃어서 집안이 떠나갈 듯 시끄러웠다. 거리낌없이 웃고, 떠들며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 '살아있다는 건 저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 짬뽕, 탕수육을 시키고 아무래도 음료수가 부족한 것 같아서 아파트 앞 수퍼에 갔다 왔다. 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려고 윷도 샀다. 모두 둘러 앉아 결혼 사진과 야외촬영, 신혼여행 사진을 보며 간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은 금방 왔고, 흔한 음식에도 맛나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저녁을 거의 다 먹고 준비해 둔 윷놀이를 시작했다. 모두 12명이 모여서 3명씩 한 모둠이 되고, 그래서 4모둠이 윷놀이를 했다. 흥미진진한 윷놀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 것이다. 윷놀이가 원래 긴장감이 높고, 변수도 많은데다 말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서 의외의 결과가 자주 일어나는 놀이라 모두 윷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게다가 조금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몇가지 규칙을 새로 정했기 때문에 모두들 더욱 좋아했다.

   윷놀이를 두 판 하고 나니 어느새 10시가 다 되었다. 그 때쯤엔 애들을 보내야 하지만, 조금 늦게 온 녀석들도 있고, 모두 일어서는 걸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지금껏 계발활동하면서 배운 단체놀이를 했다. 처음엔 '홍삼' 게임이라고... 신나게 떠들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이었는데, 벌칙은 '노래부르기' 이제 3학년 올라가는, 수줍음이 많은, 수용이가 세 번 걸려서 노래를 불렀다.

   다음 게임은 모둠 놀이로 '야채'게임이라는 것인데, 모 방송국에서 하는 '후라이팬' 놀이랑 하는 방법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어렵다.(예전부터 알던 게임이라 방송국에서 이 게임하는 거 보고 좀 황당했다.) 이 게임의 벌칙도 역시 모둠별로 노래부르기. 신나게 게임을 했는데, 영근-은진-아름 모둠이 노래부르기 벌칙이 걸렸다. 영근이는 '내 여자니까'를 부르고, 은진이와 아름이는 '어머나'를 열창했다.

   이러다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가 버렸다. 서둘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일어나기 싫어하는 눈치였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마무리는 안해와 나의 노래부르기였다.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자주 부르는  '바위처럼'을 불렀다.

   이것으로 신나고 유쾌한 집들이는 끝났다. 간단하게 뒷정리를 하고 있으니 또 이쁜 아이들에게서 집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나도 답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 너무나 즐거웠다고, 같이 와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이제 너희들이랑 헤어져야 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 그랬다.

   지금까지는 같이 있을 땐 정을 듬뿍 주고 받으며 지내고, 헤어져야 할 때는 그냥 웃으면서, 조금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헤어지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종업식날, 아이들 앞에서 인사하는 날에도 그리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냥 싱긋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내려왔었다. 그런 방식이 어쩌면 진한 아쉬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너희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는 말을 해버렸다. 집안을 대충 치우고 안해와 앉아 오늘 집들이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안해는 아이들이 구김살이 없고 밝아서, 또 저희들끼리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다고,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어도 오늘 참 즐거운 집들이였다고 좋아했다. 나도 아이들의 찰랑거리는 웃음이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것 같아서 집이 아직도 생기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역시 아이들을 집들이에 초대하길 잘 했다. 몸은 조금 힘들었어도-특히, 안해가- 유쾌, 상쾌, 통쾌한 느낌이 이렇게 오래가니 말이다. 아무튼 좋은 밤이다. 자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굼 2005-02-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같이 있었던 것 처럼...
 

   2월 18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들의 졸업식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해왔다. 그 사진으로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줄 작은 기념품을 만들고 싶었다. 욕심내지 않고, 그냥 지금껏 찍은 사진을 분류만 하고, 담임선생님들의 영상편지를 찍어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렇게 했다.(물론, 정색하면서 카메라를 거부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어쩔 수 없었다. 이젠 '그냥,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하고 신경쓰고 싶지도 않다!!)

   나로서는 거액을 들여서 CD와 케이스도 샀고, CD에 붙이는 라벨도 구했다. CD라벨의 디자인은 아이들 사진을 조각조각 붙이는 것으로 했고, '빛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는 카피도 달았다. 아이들 사진과 몇 분 선생님들의 영상편지, 그리고 약간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불켜진 학교의 야경도 동영상으로 찍고 편집했다. 그리고, 꾜박 이틀을 야간작업까지 해 가면서 320장의 CD를 구웠다. 졸업식에 반 별로 나눠주고 나니, 그제야 내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한 날 저녁, 허전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문자메세지가 왔다. 대부분 CD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세지들을 보는 순간, 지금껏 고생했던 기억들이 정말  까마득해 지는 게 정말 잘 만들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글은 학교 야경을 배경으로 아이들에게 보낸 마지막 글이었다.

 

태양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눈이 먼 소경보다도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마음 속에 빛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늘 마음 속에 세상을 비추는 빛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영원히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힐

소중한 불씨를 드립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며...

 

2005년 2월 17일 느티나무 드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5-02-2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아쉬운 졸업식이었겠군요. 그리고 애정이 담긴 CD, 아이들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참 좋은 선생님이셨어요, 느티나무님. 새 학교에 가셔서도 건강하시고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 잘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앗..저 복돌이 맞어요? 말투가 왜 근댜..느끼하게..헤헤..

▶◀소굼 2005-02-2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선생님~

느티나무 2005-02-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멋진 선생님으로 인정해야 멋진 선생님이 되는 거겠죠? ㅎㅎ 새 학교는 조금 부담스러운 학교라 내심 걱정입니다. 어딜 가나 아이들하고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그럼 되었지, 뭔 걱정을 또 하고 있을까요??) 자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요즘입니다. 응원해 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
 

   오늘 OO이의 자기소개서를 퇴고해 주었다.

   사실은 OO이가 구랍 29일 저녁에 문자로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해서, 30일, 방학하는 날에 학교 도서실에서 만났다. 학교 선생님들은 방학을 겸해서 2004년을 정리하는 자리라 송년모임을 가셨고 학교는 텅 비었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이야기를 시작하다보니 이런저런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다. 선생과 학생의 대화가 아니라, 현직 교사와 예비 교사 사이의 인터뷰라고 할까...

   언제나 어른스럽고 당찬 학생인 OO이. OO이와는 몇가지 웃긴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을 일이 있다.

   그 때가 가을쯤이었다. 학생들은 한창 수능준비로 바빴던 것 같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수업이 끝나고 앞자리에 앉은 몇 명의 학생들이 질문을 해 오길래 교탁 근처에서 질문에 답을 해 주고 있었다. 그 때 제일 앞에 앉아 있던 OO이가 일어서며 다른 아이에게 설명하고 있는 나에게 슬쩍 다가와서 가만히 속삭이고는 앞문으로 나갔다.

- 샘, 바지 지퍼 열렸는데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웃으며 '그래' 이러고, 설명은 계속하면서 한 손으로 바지 지퍼쪽으로 손을 내렸다. 순간 움찔! 지퍼가 반쯤 내려가 있었다. 순간 얼굴은 빨개지다 못해 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입으로는 하던 설명을 마저 했기에 다른 학생들은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OO이가 다시 앞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내가 하던 설명을 계속 하고 있으니까 걱정스러운 말투로 한 마디 더 했다.

- 샘, 아까 제 말씀 들으셨어요?

- 응, 들었어. 그래, 정말 고맙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순간은 참 민망했다. 서둘러 설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OO이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다 듣는 앞에서 짖궂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 후로도 OO이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OO이는 그렇게 속이 깊은 아이다. OO이가 이번에 모대학의 국어교육과에 원서를 넣었다. 결과가 좋으면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내가 그런 것처럼 한 학교에서 같은 국어교사로 근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는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하면 누구라도 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교사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좋은' 이라는 형용사는 다양하게 정의내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겠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좋은 선생님-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가르치고, 헌신적인 선생님-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OO이에게서 좋은 선생님의 싹을 본 오늘 기쁜 날이다. 내일 심층면접을 보는 OO이에게 게으름부리지 않고, 지금껏 공부해 온 노력의 결과가 한껏 나타나기를 빌어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1-06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졸업하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

 

느티나무

 

  J야.
  날이 많이 춥다. 추워도 잘 지내고 있느냐? 그래도 거의 지난 1년 동안은 매일 만나던 얼굴이었는데,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고 소식도 뜸하다, 그렇지? 

  그래, 요즘 정말로 어떻게 지내? 머리를 마음껏 기르고 싶다더니 그렇게 하고 있니? 지난 여름에는 나에게 그랬었는데...... 네 시간이 많이 생기면 꼭 책을 읽고 싶다고. 네 바람대로 요즘은 좋은 책에 흠뻑 빠져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친구들처럼 네 손으로 돈을 벌기 위해 어느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난생 처음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방바닥에 펼쳐놓고, 텔레비전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아무려면 어떠냐? 살면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도 좀 있어야 할 테니까 어떤 것이라도 좋다. 아무튼 J가 여전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대학이 오늘로 정시 모집을 마감하더라. J, 너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느 대학인가에 원서를 넣었을 테지. 원서를 넣고 나서는 네가 지원한 대학 학과의 경쟁률도 살펴보았겠구나.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려야 하겠구나. 하지만 이 안타까운 기다림의 순간도, 네 인생이 걸린 것 같은 절박함도 지나치지만 않다면 너에겐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 나는 학교 밖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가 많다. 그런데, 들른 식당에서 가끔 아르바이트를 하는 네 친구들을 만난단다. 수줍게 인사하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학교에서 만날 때와는 달리 이젠 슬쩍슬쩍 어른 티가 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 한편으로 안타까움이 동시에 차 오르더군. 그 설명할 수 없는, 모순된 감정에 어쩔 줄 몰라 식당에서 제대로 말도 나눠보지 못하고 나온 경우도 많았다.

   J야.
   올해는 유난히 늦은 추위로 3월에도 눈이 펑펑 내렸을 때 J를 만났었지 싶다. 그 때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책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너와 네 친구들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그 고요함 밑으로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교실에서 나 역시도 제법 긴장했던 것 같다. 너의 얼굴에서 언뜻 십 수년 전의 내 모습이 보여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는 올해 네 앞에 서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약속했었다. 첫 번째는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네가 미성숙한 개체가 아니라-그래서 많은 보편적인 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한 받는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한 인간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언제나 너의 작은 권리에, 요구에 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내 기분에 따라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모두 대등한 인격체로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관계로 인정하겠다는 다짐이다. 따라서 언제든 교사인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음을 내어 친절하게 대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네가 보기엔 못 느낄 정도로 내 실천이 형편없었는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처음의 내 마음은 그랬다는 걸 이 자리에서 밝혀둔다.

   두 번째는 너희들과 함께 생각하는 수업을 해 보자는 욕심이었다. 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에게는 무모한 욕심이었는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어느 공부라도 관성화(慣性化) 된 사고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나는 공부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껏 네가 해 온 언어 영역의 공부라는 것도 굳은 사고력의 다른 말인, 암기력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튼 어리지만, 그래서 어쩌면 더 굳어버렸을지도 모를 네 사고의 틀에 조금의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내 수업이 어떠했는지 이젠 네 대답이 궁금하기도 하다.

   세 번째는 너의 긴장감을 좀 줄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역시 공부란 쉬운 것은 아닐 터이다. 더구나 아직 왜 공부가 필요한지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 너와 네 친구들에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공부할 때는 늘 긴장 속에서 보내게 된다. 그것도 힘든데, 나까지 너를 지나치게 긴장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내 수업이 편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엉뚱한 짓을 하면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것처럼 머릿속에는 온통 딴 생각으로 가득 찬 긴장 상태를 원하지 않았다. 여유와 집중의 교차 속에서 너희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활용하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을 보니 1년 동안 너의 영혼이 성숙하는데 내가 어떤 도움을 준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닌지, 목표는 제대로 세운 것인지......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지금은 새삼스럽게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의 흔적들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시간들이 아련하다. 그 시간동안 너를 한없이 부러운 눈길,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던 내 모습을 너는 보았는지?

   무엇보다도 내가 부러웠던 건 너의 웃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웃음, 웃음, 웃음.
   언제고 어디서고 항상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너를 보면서, 아직은 마음이 순수하고 따뜻하다는 것과 영혼이 건강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세상을 알게 되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그 생기발랄한 웃음, 좋은 것을 좋은 것대로 받아들이는 건강한 마음에서 나오는 그 웃음이 무엇보다도 나는 부러웠더랬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없는 나는 너의 그 웃음에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었고, 너에게 비춰본 나를 보며 조용히 한숨을 짓기도 했다.

   가끔씩 나는 너에게 이런 이야기도 했었다. 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그 때마다 너는 피식 웃으며, 저는 선생님이 부러운걸요, 라고 말하곤 했었지.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네가 부럽다. 한줌도 되지 않는 내가 가진 것이 혹시 너의 부러움을 샀는지 모르겠다만, 네가 가진 가능성에 비하면 사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니, 네가 가진 그 가능성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점심시간 어쩌다가 내가 도서실에 앉아 있을 때, 가끔씩이라도 책을 빌리러 오는 너를 볼 때마다, 여러 책을 앞에 두고 반짝거리는 네 눈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점심시간엔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친구랑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을 쪼개서 도서실을 찾아온 네가 고마웠다.

   오랜 시간 학교에서 말문을 닫고 살아가는 너이기에 점심시간, 도서실은 좀 시끄러우면 어떠냐 싶어서 네가 친구랑 재미있는 이야기로 깔깔대는 것도 모른 척 지나가곤 했었다. 그런 너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어찌나 흐뭇하던지!

   이제 졸업을 앞둔 너에게, 흔하디 흔한 잔소리 같은 당부를 하고 싶다. 이 잔소리 같은 말을 내가 너와의 짧은 인연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너는 ‘리차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을 테지? 우리는 그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의 놀라운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우리도 더 멀리 날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는 했다, 그렇지? 조나단이 겪게 되는 시련과 따돌림마저도 얼마나 멋있어 보이고, 거기에 반해서 조나단을 비웃고 배척하는 다른 무리의 갈매기들은 어찌나 답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러나 현실에서 조나단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 우리는 어쩌면 조나단처럼은 아니더라도 조나단을 핍박했던 갈매기의 무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짚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괴롭더라도 우리는 항상 꿈을 가져야 한다. 꿈은 오늘 우리가 어디로 서 있고,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별과 같은 존재이지. 비록 마음 속에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결국 그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진실로 인간됨의 괴로움을 알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오래도록 자기 마음에 선한 꿈을 품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사람, 네가 바로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지닌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배워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마도 너는 현실에서 가슴으로 느껴볼 기회는 적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이제부터는 지금껏 배운 지식들이 네 눈앞에 현실 상황으로 펼쳐질 것이고, 너는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네 지식을 검증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껏 네가 배운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네 배움이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부디 세상을 냉철한 이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되, 너의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에 온기가 돌게 했으면 좋겠다. 네가 가진 고운 마음을 나누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사는 것이, 결국은 네가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정말 작별의 인사를 건네야 할 시간이구나. 씩씩한 기상과 착한 마음을 지닌 J. 그래서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네가 대견스럽고 뿌듯하다. 네 앞길의 시련과 고통에 맞서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럼, 지난 1년 간 내 사랑이었던 J.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4-12-2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우리 학교 교지에 졸업하는, 3학년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썼네요 ^^ 글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푸른나무 2004-12-3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을 위한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 고뇌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교사의 자세,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느티나무님 같은 분들만 학교에 있다면 인성,지성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형식적으로 던지는 편지투가 아닌 진솔한 마음이 곳곳에 배어나옵니다. 한 해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