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밖에는 비가 장맛비답게 후두둑 쏟아집니다. 시험 기간이라 모두 퇴근한 날 오후, ‘비도 오는데,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오늘 모인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서야 글을 썼습니다. 언제 쓰나 앞뒤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6월 우리 반은……


느티나무


  아, 유월! 이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요? 지금 되돌아 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정말 까마득하게만 느껴집니다.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답답함과 막막함이 지난 한 달 동안 저를 무척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새롭게 제 마음의 밭을 갈아주고 있는 듯 합니다. 조금은 게으르고, 자신감에 차 있고, 뭔가 길이 보인다고 느낌이 들었던 제 마음이 다시 살얼음을 디딜 때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녀석들이 일깨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지혜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야자’와의 전쟁

  먼저, 유월의 우리 반은 야자와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라도 더 붙들어 앉히려고 하는 저와 어떻게든 학교를 벗어나려고 하는 우리 반 아이들과의 ‘전쟁’말이지요. 처음에는 부모님의 허락을 핑계로 당당하게 집에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저는 그게 ‘옳은 말이다’ 싶어서 보내주었는데, 그렇게 집에 가는 녀석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면서 그 다음엔 학원 보충을 들어야 한다는 녀석들이 잇따랐고, 집이 더 공부가 잘 된다거나 몸이 아파서 쉬고 싶다며 찾아오는 녀석들도 늘었습니다. 저는 그 녀석들과의 신경전 때문에 매일 저녁 마다 한바탕 전쟁을 해야 합니다.

 

  고백하건데, 더 큰 문제는 담임인 저는 도무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어쩔 때는 정규수업이 끝난 시간인데 집에 가겠다고 요구하는데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하루 저녁에 마흔 두 명 중에서 서른 명이나 되는 녀석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갖가지 사연으로 집에 보내달라고 요청할 때 ‘이러다 내가 이 녀석들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소연도, 잔소리도, 위협도 해 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는 야자를 빠지려면 조퇴증(?)을 끊어야 하는데, 며칠 전에는 하루에 30장까지 끊어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너 장이던 것이 서른 장으로까지 불어난 것이지요.]

 

  저는 왜 아이들이 집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교실에 잡아두고 있으면 학생들은 더 공부할까요? 실제로 모든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있어 봐야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그래도 제가 잔소리를 그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두 번째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부모)들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이 상황은-그것이 옳든 그르든- 우리 교육 현실의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목표가 대학 진학이라고 모두들 굳게 믿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는 학교 밖을 벗어나려는 아이들이 불안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공부 외에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순응과 저항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와 학년에서는 심각한 간섭이 없지만, 그런 경우도 생긴다면 그것 역시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가 되겠지요? 이럴 때 담임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제가 집에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던지라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잘 된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6월 우리 반은…

  야자 전쟁 이야기를 빼고 나면 무슨 일이 기억에 남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날적이’는 쓰고 개별 상담을 마무리 지은 것에 큰 위안을 얻어야 할까요?

 

  6월 4일, 토요일에는 학급에서 비빔밥 만들기를 했습니다. 일반계 학교라 평일에는 전혀 시간이 나지 않고, 기껏 토요일 점심 하루 밖에 없는데, 그 시간을 온전히 쓰기도 빠듯했습니다. 툴툴대면서도 대부분이 준비를 잘 해 와서 저는 흐뭇했지만, 막상 펼쳐놓고 보니 너무 먹는 데 집중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한 번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이것도 꾸준히 해 본다면 비빔밥을 앞에 두고도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도 있을 테지요? 무엇보다도 같이 어울리고 함께 한다는 것이 ‘일상(日常)’적인 일로 느끼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우리 반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꾸준하게 해서 1학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날적이’도 지금껏 해 온 대로 계속 써 나갈 것이고, 개별상담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날적이’는 서로의 생각을 얻어갈 수 있는 보물단지입니다. 이 ‘날적이’가 없었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욱 더 모르지 않았을까요?

개별 상담이랍시고 매일 점심시간에 하던 이야기를 6월 중순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것을 끝내고 나니 속이 참 가벼워졌습니다. 점심시간도 한결 여유로워지긴 했는데 그 한편으로 아쉬움도 남습니다. 다시 시작해야겠지요? 이어지는 기말고사 때문에 아직 두 번째 상담은 시작하지 못 했지만, 서로에게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조금 더 힘을 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말을 꼭 해 둡니다. 우린 매일 얼굴을 보면서 살고 가끔 이야기도 하지만, 선생인 나에게 진짜 네 이야기를 할 기회는 기껏 두 세 번이다. 어쩌면 올해 1년 동안에만 두 세 번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게 고등학교 생활 내내 일수도 있다. 그러니 너도 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꼭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기말고사를 끝으로 조금 더 여유 있는 학급운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예고한 대로 ‘수박먹기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학급운영비로 수박을 사려니 절차가 좀 복잡하네요. ‘수박먹기대회’야 이미 검증된 행사고 저도 서너 번의 진행 경험이 있으니 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학급운영비로 학급활동이나 학급비품 구입해 보신 분 좋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학기말에 앞서서 학부모 가정통신문을 보내려고 합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으나 여전히 정보를 얻을 곳과 정보의 양은 부족합니다. 학기말 성적표와 함께 지금껏 써 둔 이 글을 바탕으로 학기말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학부모들에게 학급 활동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조금만 더 마음을 썼더라면 가정통신문을 자주 보내고, ‘개별적으로 만나자는 전화도 덜 받게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에서야 듭니다. 그러고 보면 몰라서 못하는 것 보다는 알면서도 안 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학급야영은 학기 초부터 하려고 했으니 날짜를 잡으면 되는데, 그 날짜를 잡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첫 번째로 떠오른 날짜는 7월 15-16일이었는데, 그래도 방학 하는 날인데 학교에 있자고 하려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호응을 할는지 잘 모르겠고, 다음으로는 보충수업이 끝나는 8월 6-7일도 괜찮을 듯한데, 너무 더운데다가 그 때까지 미루면 정말 야영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선생님들께서 학급야영을 준비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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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과 2005-07-0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은 무척이나 부지런하고 애정이 많으신 선생님이시군요.^^*학생들에게 그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면 실로 대단한 선생님이세요. 선생님들께 욕되는 말씀일지는 모르나 어떤 선생님을 보면 기력이 빠지는 선생님도 계시고 어떤 선생님을 보면 아이들이 반수 이상이 누워서 자도 아무 말씀도 안 해주시는 선생님도 계시죠. 한번은 제 1학년때의 일어 선생님이 아이들이 반 이상이 자는데도 안 깨우시길래 한 아이가 왜 나두느냐고 물었더니"따라오고 싶은 아이들만 공부해."라고 말씀하시며 "떠들바에는 차라리 잠이나 자라."라고 말씀을 하셔서 아이들이 그 선생님 험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느티나무님은 잘하고 계심거예요. 그리고 야자를 빠지는 것은 보내주지마세요. 이런사정, 저런사정으로 다 보내주면 남아있는 아이들은 뭡니까?정말로 그 아이들 중에서 그렇게 긴급한 사정을 가진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학원을 안 가면, 집에 안 가면 무슨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답니까? 그리고 가벼운 두통같은 사유로 병원을 간다고 하면서 집에 가면, 정말로 아픈 통증을 참고서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뭐가되지요? 느티나무님이 애정이 너무 많고 정이 많으셔서 그런 아이들을 모두 보내주시는데, 그런 행동은 역효과가 나서 선생님을 우습게 보는 아이들이 생겨나지요. 조금은 무서운 선생님이 되시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저의 기쁨이요, 희망이요, 자랑입니다."

   올해 아이들에게 들려줄 내 다짐이다. 며칠 전부터 계속 입 속에서 중얼거리면서 학교에 오고 있는데, 요즘 우리반 녀석들을 보면 이 말이 쑥 들어가 버린다.

   한마디로 속상한 일이 많다. 내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번 주에 있었던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이렇다.

   월요일에 스승의 날에 찍은 사진을 나눠줬다. 다른 친구들도 서로 사진 구경하라는 뜻으로 사진을 자기 사물함에 붙여 두라고 월요일에 말했다. 화요일에는 테이프와 가위를 빌려 주며 사진을 붙이라고 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수요일 아침까지 붙여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하자고, 다 붙여서 구경하고 나면 그 날 오후에 바로 떼자고 했다.

   수요일 아침 조례 시간. 여전히 사진이 반 정도 밖에 붙지 않았다. 음, 이건 좀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단순히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지만- 누구나 자기 상황에 빠지면 한 쪽만을 보게 되는 법이다. 복도로 모두 불러 내어서 왜 붙이지 않았는지 물었다. 물론-내 입장에서지만- 타당한 이유는 없다. 그걸로 더 잔소리하기 뭣해서 '팔굽혀펴기' 3번을 하고는 들여 보냈다. 그리고는 들어가는 녀석들의 뒤통수에다 대고 "토요일 아침까지는 붙여 놓아라"고 말했다.

   오늘 아침 조례가 끝난 시간. 아직도 7명이나 사진이 없다. 일일이 왜 붙이지 않았냐고 묻자 그제야 테이프가 없다는 둥, 집에 두고 왔다는 둥의 변명을 한다. 이럴 때면 정말 도를 닦는 심정이다. 다시 복도로 불러내어 벌로 '팔굽혀펴기' 6번을 하고는 들여 보냈다. 그리고, 모두에게 안 붙여둔 친구는 어쩔 수 없고, 오늘까지 서로 보고 다 떼 가서 집에 보관하라고 일렀다.

   4교시에 다른 반에 수업을 들어갔더니, 호기심이 잔뜩 묻은 얼굴로 녀석들이 묻는다.

   "선생님, 오늘 사진 안 붙였다고 때렸어요?"

   "아니, 때린 적 없는데...벌 받았어. 팔굽혀펴기 6번..."

   "어? 그럼 애들이 뻥친 거에요? 애들이 샘 많이 화나서 몽둥이 들었다던데요..."

   "글쎄... 애들이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는 났지만 때린 적은 없어"

   이런 말을 들어도 좀 속이 쓰린다. 저희 반 담임이 얼마나 짜증났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다. 수업이 끝나고 종례시간. 아침의 저 다짐은 공허해지고 다시 잔소리는 이어진다. 사진 다 찾아갈 것, 여름방학 보충수업 희망하지 않는 학생은 나한테 와서 말할 것, 급식할 때 자기가 먹은 식판은 꼭 자기가 치울 것, 청소시간에 자기 청소 구역은 책임지고 해 놓을 것... 등등.

   아, 그리고 3000원짜리 학교 매점상품권이 걸린 우리반 인사 공모의 결과를 발표하고 오늘 연습했다. 아이들의 그 황당한 표정이라니...ㅋㅋ 우리반 종례 인사로 확정된 구호는 이렇다.

   "(반장이) 목숨을 걸려면 (모두가) 미래에 걸자 (박수로)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 (모두)내일 뵙겠습니다."

   이렇게 처음이라 어색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도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반 녀석들이 오늘 옆 반이랑 축구 시합이 있고, 그 반 선생님도 나오신다고 해서 나를 데리러 왔다. 여러가지로 일이 많이 있어서 어쩔까 좀 망설이다가 뛰기로 했다. 땡볕에서 50분이나 뛰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우리반의 압승. 5:1이었다.

   시합이 끝나고 한참이나 교무실에서 쉬었다. 생각해 보니 아침도 안 먹었고, 점심도 안 먹은 상태였다. 배가 고픈 건 이미 지나가 버렸다. 터덜터덜 학교를 나와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좀 사고 싶었다.

   알라딘에서는 절판으로 나온 '사람 vs 사람'을 고르고, 누군가를 빌려 줘서 우리집에 없는 '살아간다는 것'을 또 사고, 1987년에 초판이 나온 시집도 한 권 집었다. 기운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수행평가를 채점하려고 잔뜩 가방에 넣어왔으나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기운을 차려야 겠다. 월요일엔 다시,

   "여러분은 저의 기쁨이요, 희망이요, 자랑입니다."를 말하게 될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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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6-1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숨을 걸려면 미래에 걸자..호오..무섭습니다^^; 그나저나 아이들이 요즘 신나해하고 있는 것은 뭔지 참 궁금하네요.

느티나무 2005-06-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이 신나 하는 것? - 진부하게 들리시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을 마음을 빼앗은 건 온라인 게임이죠. 우리 반은 요즘 운동에 빠져있어요. 그 쉬는 시간에도 나가서 축구, 농구, 야구, 탁구를 하고 오니까 말이지요.

해콩 2005-06-1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문제는 완벽!하게 다 냈습니다... 어제 오늘 하루 죙일.. 수행평가 채점하려고 들고 왔는데 그/대/로/ 가방에 챙겨 넣은 거 있죠..
아이들이랑 아웅다웅.. 그러면서도 기쁨과 희망과 자랑임을 다짐하는 샘이 참 좋아보여요~ 내일은 꼭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5-06-25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5-07-01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님, 격려와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학교 생활이 만만치는 않지요? 근데 저 같은 경우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어리숙해지는 것인지... 아무튼 님께서 좋은 시절을 보내신다고 생각하십시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가슴뛰는 첫마음을 간직한 그 시절이니까요. ^^
 

강민구, 강상규, 고상영, 공창헌, 김기환, 김동범, 김민우, 김복규, 김성훈, 김준대, 김태훈, 김호준, 김휘빈, 라호철, 류종항, 류명진, 맹주성, 문인환, 박   건, 박대웅, 박명수, 박병인, 박성우, 박정근, 박정한, 배한동, 서   웅, 서웅석, 손호진, 염순조, 오창근, 유승근, 윤종훈, 이길현, 이명해, 이성현, 이재웅, 이헌재, 전상원, 최필준, 김태우, 배동일

   우리반 녀석들... 가끔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사랑스럽고 이쁜!

   지난 4월 어느날부터 어제까지 매일 점심시간에 그것도 상담이랍시고 우리반의 한 녀석 한 녀석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가 마지막이었는데, 어제 만난 OO이는 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왜 자기만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푹 쉬는 녀석에게 별로 해 줄 말이 없었다. 저도 부모님이랑 좋은 곳에 놀러가고 싶고,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한 번 다녀보고 싶고, 참고서 살 때 눈치 안 보고 샀으면 좋겠다는 녀석의 소박한 바람 앞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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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과 2005-06-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지요..그 기분 이해해요.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않은 사람은 그런 마음을 모르죠. 아이들이 가끔가다가 던지는 말에 상처입기도 하고, 그 흔한 매점에 가기도 힘들죠...하지만 어쩌겠어요..방도가 없는걸..그래도 걔는 선생님이랑 상담이라도 했네요..그럴수도 없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아시나요?혼자서 속앓이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해콩 2005-06-1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이 제목을 정할 때 '힘'이라는 단어가 걸린다고 이상석 샘께서 그러셨는데 그래도 못난 것도 힘이 된다고 말해주셨으면 해요. 결국..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더군요. 易地思之.. 처지-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경지임을 역설한 신영복 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샘의 따뜻한 마음이 녀석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네요.. 아마도.. 이미! ^^

느티나무 2005-06-1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 사과님-음, 맞아요. 혼자서 속앓이를 하는 녀석들이 많지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 녀석들을 보면 답답해요. 저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럴까 싶다가도 그 녀석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요. 휴=3=3=3
해콩님-대부분은 자신감이 있는데요, 한 번씩 실제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를 보면 스스로 무지하게 약점이 많이 보여요.ㅎㅎ 따뜻한 사람이면 더 좋겠지요?
 

   오늘은 우리 반이 비빔밥을 만들어먹는 날이다. 그런데 꼭 한 두명은 빠지고 싶은 하는 눈치! 바쁘다고 하는데 조금 고민이다. 일단은 빨리 보내준다고 약속은 했는데, 영 씁쓸하기도 하다. 내가 준비하기로 한 계란은 어제 퇴근하면서 샀다. 오늘 들고 와서 학교 급식실에 부탁했다. 점심시간에 비빔밥에 넣어 먹을 수 있게 좀 만들어 달랬더니, 기쁘게 들어주셨다. 계란은 내가 냈으니 난 숟가락만 들고 녀석들이 만든 비빔밥 시식이나 하면서 점심을 때워야 할까 보다.

 

얘들아 같이 밥 먹자!!

 

   우리반 모두가 둘러앉아서 밥 한 번 같이 먹고 싶어. 원래 같이 밥을 먹으면 훨씬 더 친해진다는 거 너거들은 알랑가 모르겄네! 별로 내키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재미없을 것 같다’는 말은 안 통하는 거 알지? 경험해 보고 불평하면 인정해 준다. 그리고 바꾸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안 해보고 그러면 괜한 투정!! 해보고 재미없으면 다음엔 안 하려고 해!


언제→ 2005년 6월 4일 (그냥 놀기엔 넘 아까운 토요일 오후)

어디→ 깨끗하게 정리된 우리(1-3반) 교실

누가→ 모둠별로 완벽하게 준비해 온 우리반 모두가


모둠 준비물


○ 밥을 비빌 수 있는 큰 그릇 (모둠별 1개)

○ 고추장 적당히 (7-8명이 비벼 먹을 수 있는 양으로)

○ 반찬으로 김치 약간(모둠별)

○ 참기름 조금(모둠별)

○ 밥, 수저는 각자 준비

○ 비빔밥에 들어갈 갖가지 나물 및 기타

   (콩나물, 고사리, 무, 시금치 다양한 나물 종류……)

○ 자리에 깔 신문지 약간

○ 계란후라이 (모둠별 5개씩) - 담임샘 준비

○ 모둠별 취향에 따라서 참치캔, 소고기 볶음 약간을 준비할 수도 있음.


♣ 우선 한 번은 해 보고, 재미없으면 다음에 절대로 안 함!

 


아~자, 자! 공부는 꾸준히, 놀 때는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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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4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굼 2005-06-0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 주륵;

느티나무 2005-06-04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글쎄요. 다음에 한 번 모시겠습니다. ^^

느티나무 2005-06-0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1t님, 관심 고맙습니다. ^^

빨간사과 2005-06-1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신가요??참..저희도 학교 점심대신에 이렇게 역할을 담당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곤했었는데... 한반이 다 동참해서 먹으면 더 즐겁죠. 그룹마다 들어가는게 간간히 다르거든요,양푼이 들고오는 아이들이 제일 싫어했는데..>-<아..그립네요.즐거우셨겠어요.

느티나무 2005-06-13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모둠별로 준비해서 먹으면 아무 것도 없는 듯해도 정말 맛나죠^^ 아, 그리고 양푼 들고 오는 애들이 싫어하죠.ㅋㅋ 저는 심사해서, 상품권줬어요. 상품권은 매점에서 1,000원 살 수 있는 상품권이지요. 어찌나 좋아하는지...
 

 

5월 우리 반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말!

  저는 늘 잔소리가 많은 ‘선생’입니다. 이런 잔소리는 한편으로는 제 관심의 표현방식이기도 한데 아이들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소통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행동이라는 게 굳어진 습관이라서 변하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가볍게 생각한 것도 사실이지만, 제가 나중에 따로 불러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아예 내 말을 귀담다 듣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니, 아이들이 달라지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이들의 마음에 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과 억눌린 가슴에 분노만 쌓게 하는 언어는 이미 교육을 한다고 하는 교사의 언어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 안팎에서 들려오는, 우리가 늘 보고 듣는 교사의 언어는 어떻습니까? 가끔 지나가다 들리는 말에도 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에도 누가 듣고 있다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울까요?) 학생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보고 듣는다면 민망한 수준의 언어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이들을 야단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실테지요? 아이들이 정말 자기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써 ‘교육적인 언어’를 써야한다는 것이 제가 드리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말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호수 같은 마음에 가 닿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말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닿은 그 한 마디가 아이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시작입니다.

  이렇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 놓고 정작 교실에서의 실천은 젬병인 책상물림이 아닌지 저는 못내 조심스럽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서로를 격려해가며 아이들의 행동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교사의 ‘말’에 대해서 고민해 보자는 뜻으로 짧게 적어 보았습니다. 좋은 일깨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5월 우리반은

  늘 사소한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우리 반은-아니, 담임인 저만 그런지도 모르지요- 겉으로는 지각도 조금 줄어들고 서로의 말하기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면서부터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5월 내내 열심히 학급 날적이를 써 왔고, 이 날적이가 아이들과의 작은 소통 창구가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아직 아이들끼리의 상호작용으로까지 나가지는 못 했지만 올해는 유달리 날적이를 알차게 쓰는 학생들이 많아 기분이 좋습니다. 날적이의 시작 무렵에는 담임선생님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할 듯 합니다.

  5월에 학급 담임으로서 집중한 일 중의 하나는 점심시간 상담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피곤하기도 하고, 약속이 겹치면 미뤄야했기 때문에 곤란한 경우도 생겼지만 아이들 한 루에 한 명씩 알아가는 재미도 참 좋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녀석들이 언제 ‘선생’이랑 마주 앉아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까요? 일년에 기껏해야 한 두 번이겠지요? 아이들에게도 기껏 일 년에 한 두 번 찾아오는 기회를 잘 살려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사는 아이들에겐 여전히 어려운 ‘어른’인가 봅니다.


  6월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여유가 생길까요? 아이들과 토요일 점심을 한 번 먹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고사 끝나는 날, 그 재미있다는 수박먹기대회를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아울러 그 날은 마음 놓고 학급체육대회도 해 볼 생각입니다.

  아직 아이들과의 첫 번째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지만, 6월 중에 다 끝나더라도 두 번째로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지요. 아이들과의 이야기야 말로 교사의 교육활동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가지로 심란한 하루였습니다. 오늘 하늘도 참 맑았는데 말이지요.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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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6-01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하루는 하루 종일 아이들하고 이야기 하면서 지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느티나무 2005-06-0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고 거기에서 출발해서 다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요? 정말, 아이들과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sa1t님, 댓글 고맙습니다.

심상이최고야 2005-06-03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들을 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부끄러워 집니다. 참...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