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이터 - 디베이팅 세계 챔피언 서보현의 하버드 토론 수업
서보현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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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주연 배우만 보고 선택할 때가 있다. <그레이트 디베이터스(The Great Debaters)>가 바로 그런 경우다. 덴젤 워싱턴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는데 한 대학교수가 흑인으로 구성된 토론팀을 만들어 하버드대 챔피언십 우승까지 하게 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930년대 미국은 흑인차별이 극심했기에 흑인은 백인과 같은 교육을 받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그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무적의 토론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토론대결을 다룬 영화였기에 토론팀을 꾸리고 훈련하고 준비하는 토론의 모든 과정이 묘사되었는데 그걸 보면서 들었던 생각. 토론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는 것. 언변이 좋다고 해서 토론도 잘 할 수 있다? 글쎄...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수줍음이 많아서 남들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소년의 안전하고 조용한 평화가 깨지고 말았으니. 바로 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된 것.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조차 드문 곳에서 낯선 언어로 둘러싸여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터득해나갔고. 그리고 곧이어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게 된다.

 


그의 이름은 서보현. 세계토론대회에서 두 차례나 우승을 거머쥔 디베이팅 챔피언으로 불린다. 현재 이력만 보면 어린 시절의 얌전했던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극과 극을 오가는 엄청난 간극. 그 차이를 그는 어떻게 채워나갔던 것일까.


 

<디베이터> 간결한 책 제목 아래 부제에 눈길이 머문다. ‘디베이팅 세계 챔피언 서보현의 하버드 토론 수업’. 그렇다 이 책은 수줍은 소년이 저자가 어떻게 하버드대 토론팀 코치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토론의 기본요소와 단계에 맞게 담겨 있다.


 

나는 수천 년간 이어져온 토론대회의 전통이 바로 공동체가 서로 상반된 주장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런 주장들을 바탕으로건설됐다는 증거라고 말하고자 한다. - 25

 


십 년이 넘게 독서모임을 했지만 아직도 토론은 어렵기만 하다. 가장 큰 고민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지 논제를 정하는 것. 단답형이 아닌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것,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질문을 통해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로 사고를 확장해서 새롭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질문, 논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번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좋은 논쟁은 사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일 뿐 아니라 추구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 28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토론의 다섯 가지 기술, 2부 토론의 기술을 삶에 적응하기. 그 아래 토론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은 토론의 발제로 토론의 세 가지 유형(사실 토론, 가치 토론, 처방 토론)을 비교하면서 짚어주는 것에서 출발한다. 토론의 주제를 분석했다면 나의 생각과 주장을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설득할 것인지 방법을 설계하는 논증’, 이어서 상대의 논증에 어떻게 반대할 것인지 반론을 펼치는 것에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강조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반론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토론 상대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다. 상대가 우리의 허심탄회하 의견을 들을 자격이 있고 그걸 품위 있게 받아들이리라는 판단이 담긴 행위였다. - 128

 


청소년들과 독서수업에서 가끔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때론 평소 생각과는 무관하게 부작위로 찬반으로 나누어서 토론을 하게 하는데 그럴 때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흥미로워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상황을 보다가 다른 아이의 의견에 말을 보태는 정도로 넘어가는 아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난처해하는 아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난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토론의 스킬 이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타인의 주장을 잘 들어보는 훈련이 필요한 건 아닌가...


 

토론과 지적 양가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의 관점이 진정한 반대에 직면했을 때 우리에게는 더 강력하게 주장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 한번 더 생각해서 제3의 길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다. 교육 도구로서 토론이 지닌 또다른 측면이다.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지속해나갈 수만 있다면, 토론은 우리에게 꾸준히 서로에게 배워나가는 법을 가르쳐준 다. - 331

 


얼마전 한 방송사의 토론프로그램이 1000회를 맞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까지 토론에서 서로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고 상대를 무시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는데 그 토론은 이제까지의 토론과는 다른 모습, 인상적이고도 재미가 있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피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토론의 최강자에 오른 저자의 경험이 4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에 빼곡하게 담겨 있는 <디베이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들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이에게 권하고 싶다.

 

 

토론은 세상의 작은 구석을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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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질문 - 나를 깨닫는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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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자왈)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하고 三十而立(삼십이립)하고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하고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하고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하고 七十而從心所欲(칠십이종심소욕)호되 不踰矩(불유구)호라.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이 되어 스스로 바로 세울 수 있었으니 마흔이 되어서는 결코 흔들림이 없었고 쉰이 되어서는 하늘의 뜻을 알았다. 예순이 되어서는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노라.


 


공자는 공자였다. 나의 삶은 그의 말대로 되지 않았다, 마흔이 되어 유달리 흔들림이 많았고 쉰이 넘었지만 아직도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노라고 포기하는 것도 해결책은 아닐 듯 하니 어찌해야 좋을까. 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어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다산의 마지막 질문>은 저자의 다산의 마지막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최종 완결편이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에 이어 <다산의 마지막 습관>을 읽었기에 <다산의 마지막 질문>을 읽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의문이 들었다. ‘다산의 마지막시리즈의 처음이 아니라 완결편인데도 제목이 질문이라니. 왜일까.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은 그야말로 극과극의 삶을 살았다. 그의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높이 산 정조의 총애를 받아 마흔도 안된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다산이었지만 일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18년 유배도 모자라 그의 집안은 멸문지경에 이르고 만다. 중심에서 단번에 구석으로 내쳐진 상황이었지만 다산은 민초들의 참상에 눈을 돌리고 본격적으로 책을 써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귀양지에서 그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고 아들은 굴복을 권하는 편지를 보내기에 이르렀지만 다산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내가 살아 고향에 돌아가는 것도 천명이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 또한 천명이다. 그러나 사람의 도리를 닦지 않고 천명만 기다린다면 이 또한 이치에 합당치 않다. 나는 사람의 도리를 이미 다했다. 그럼에도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또한 천명일 따름이다. - 19~20

 



다산은 늘 [논어]를 가까이 두고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논어]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주석을 모으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 <논어고금주>를 썼다. <다산의 마지막 질문>은 다산의 [논어]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담은 책인데 구성은 단순하다. [논어]의 한 대목을 원문과 의미를 담고 그에 대한 다산의 생각을 저자가 풀어놓았는데 익숙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가장 먼저 소개된 문장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로 시작하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의미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문구다. 때문에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이미 알면서도 다산의 글은 울림이 있었다.



 

학이란 알기 위한 것이며 습이란 행하기 위한 것이니, ‘학이시습은 지와 행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후세의 은 그저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기 때문에 기쁠 수가 없다 36.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속임을 당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위정)편의 글에서 다산은 배움과 생각의 균형을 강조했다. 배움과 생각이 적절하게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중년의 나이에 돌아보니 아쉬움이 많았다. 특히 다산의 초서독서법은 나의 책읽기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것 같았다. 그런가하면 子謂仲弓曰 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자위중궁왈 리우지자 성차각 수욕물용 산천 기사제)’ (옹야)편의 글에서는 호되게 일갈하는 듯했다. 아비가 착하지 않다고 해서 그의 아들을 매도하는 것은 군자로선 절대 해선 안된다는 것인데 이 말은 반대로도 해석된다는 것. 아버지가 아무리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부당하게 대물림하거나 자식의 삶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부모의 학벌이, 곧 자식의 직업과 학벌이 되는 요즘 세태에 누구나 꼭 새겨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훌륭한 목수는 서툰 목수를 위해 먹줄을 고치거나 없애지 않고, 羿는 서툰 사수를 위해 활을 당기는 기준을 고치지 않는다. 군자는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 활쏘기를 가르치는 것처럼 활을 끝까지 당길 뿐 시위를 놓지 않음으로써 화살이 튀어나가고 싶게 만든다. - 213

 



책으로 만났던 수많은 이들 중에서 한 명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두어 달 전 독서모임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발제자가 토론 말미에 던진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지금까지 책으로 만난 위대한 저자가 한둘이 아닌데 그중에 딱 한 명만 고르자니 난감했지만 멤버들은 바로 지금만나고 사람을 꼽기 시작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의 호메로스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를 왜 선택했는지 이유도 함께 털어놓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한 명 고른다면 누굴 꼽을 것인가. 만약 세종대왕과 정조가 장수를 누렸다면 지금 우리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혹은 과거 역사 속 인물이 되어 하루 동안 살 수 있다면 누구를 택할 것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결정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지금 다시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삶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계속 지금처럼 살 것인가?”라고 마지막 질문을 던진 다산의 생각과 마음자리를 알고 싶기 때문에 그가 되어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내 나이 예순, 돌아보니 한 갑자를 다시 만난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은 모두 가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보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어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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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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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미사일 공격과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침공을 가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추구한다면서 이에 만약 다른 나라가 간섭할 경우 즉각 보복할 것이며 특히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마치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시설을 다수 파괴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고향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전세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비서방국가 간이 다시 신냉전을 벌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두 나라의 지정학적인 갈등이 주변 국가로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먼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궁금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어떤 나라인가.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에 침공을 가하는 결정을 내렸을까.



 

나의 궁금증을 간단하게 풀어준 이가 있었는데 바로 [두선생의 역사공장]이라는 유투브 영상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도상의 위치를 시작으로 지리적 여건과 환경이 어떠한지 그로 인해 어떤 점에서 차이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해주었다. 마치 학창시절 선생님의 열정적인 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번거롭더라도 일일이 지도를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얼마전에 출간된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서양편>은 부제가 인상적이다. [지리로 역사를 아는 척하기시리즈], 두선생의 역사공장 유투브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지리로 역사를 아는 척 하는 게 가능하냐고. 역사 지식이 아니라 그저 아는 척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중동을 시작으로 유럽, 미국, 중남미를 거쳐 아프리카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해당 지역의 자연지리와 역사, 인문지리에 대해 풀어낸 다음 챕터 정리로 한 번 더 짚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중동편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왜 중동으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인데 유럽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용어라고 한다. 중동 대신 메나’ ‘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을만큼 이 지역은 지리적 위치나 민족 구성, 종교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중동에 속하는 각 국가의 지리적인 여건을 짚은 다음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중동의 여러 나라가 왜 끊이지 않는 충돌을 일으키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예전에 종교에 대한 책에서 종교로 인한 중동 국가 간의 첨예한 갈등을 알게 됐는데 지도가 더해져서 시각적으로 접하니 이전보다 더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지구는 크게 육지와 바다로 나뉜다. 그리고 육지는 강과 호수, 평야와 산맥, 사막 등 지역마다 다른 환경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인간이란 요소가 더해지면서 더욱 복잡한 상황이 빚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역사인데 그 출발이 바로 지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리를 아는 것만으로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닥치고 암기하는 과목으로 여겼던 역사를 지리적인 면을 살펴보면 그 속에 숨겨진 과거의 사람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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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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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 ♪


 

DJ. DOC의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식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주눅 들곤 했다. 나의 서툰 젓가락질을 흉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서.



 

가장 긴장됐던 순간은 결혼 전 신랑집에 인사하러 갔을 때였다. 어르신께서 형식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고 소탈하다고 신랑이 귀뜸해줬지만 그래도 혹 실수를 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정말 다행인 건 신랑이 어르신께 내가 채식을 한다는 걸 미리 얘기해두었는지 식탁에 내가 꺼리는 음식은 없었다. 익숙하고 친숙한 반찬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어머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된장국에 넣은 멸치도 고기라고 안 먹었네?” 허걱....ㅠㅠ


 


아이를 기르면서도 아이가 혹 나의 젓가락질을 보고 배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식사 때 아이 맞은편 자리에 늘 신랑을 앉혔던 것도 아이의 시선이 나의 손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나름 선방한 것 같지만 종종 의문이 들었다. 대체 젓가락이 뭐길래, 그저 식사할 때 쓰는 도구 중 하나인 젓가락 때문에 이렇게 애를 태울 필요가 있나 싶어서.



 

작고 둥근 푸른 공 같은 지구를 젓가락이 집고 있는 모습에 쿡 웃음이 터졌다. X자로 교차된 젓가락이 꼭 나의 젓가락질을 보는 것 같아서. 표지 그림 덕분에 <너 누구니>가 담고 있는 얘기가 무엇일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더욱더 궁금해졌다. ‘젓가락에 대해 할 말이 얼마나 될까젓가락에 대해 무슨 얘길 하길래 책 한 권이 출간되었을까




궁금증에 책을 펼쳤는데 저자는 도리어 수수께끼로 맞받아치고 있다. 깊은밤 옛날얘기해 달라며 몰려온 손자손녀들을 대하듯 꼬부랑 이야기 열두 고개(수저 고개, 짝꿍 고개, 가락 고개, 밥상 고개, 사이 고개, 막대기 고개, 엄지 고개, 쌀밥 고개, 밈 고개, 저맹 고개, 분디나무 고개, 생명축제 고개)로 이끌고 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는 것처럼 흥겹게 나서보자.



젓가락은 옛날 유물이 아닙니다지금도 끼니때 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용하는 물건입니다신기하지 않습니까천 년 동안 내려온 젓가락과 젓가락질그 속에 한국인의 마음과 생활의식이 화석처럼 찍혀 있다면그것은 어떤 고전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 13~14.

 

 

책은 모두 12개의 장(고개), 각 장마다 두세 개의 꼬부랑길로 이뤄져 있는데 본문의 형식이 독특하다. 소주제마다 그에 관련 내용을 길게 서술하는, 기존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형식이 아니라 10줄 내외의 짤막한 글에 번호를 달아 놓았는데 마치 수수께끼의 힌트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 어느 때든 심지어 어느 부분을 펼쳐 읽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데 짧은 내용은 기억하기에도 용이해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한두 가지 꺼내어 말문을 여는데 활용하기 제격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중일 3국 중에서 쇠젓가락은 한국인만 쓴다는 거 알아? 그래서 수저라는 개념도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다지 뭐야.”라고 한다거나 일본에는 부부 젓가락 세트가 있는데 색깔과 길이를 다르게 만든 젓가락인데 셋트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고 해심지어 1억짜리고 있다던데상상이 돼?” “거기다 일본은 가족 간에도 젓가락을 따로 쓴대그래서 일회용 젓가락 와리바시가 나오게 되었다는데중국은 완전 반대래자기 젓가락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걸 허용하는데 친밀함을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하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대학진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잖아. 근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수저계급론기준표까지 있다고 하더라구. 놀랍지?” 







우리는 몇천 년 동안 사용해왔고지금도 매일 젓가락으로 식사를 한다그런데도 왜 우리는 왜 젓가락 행진곡이 작곡된 것처럼젓가락을 문화로 만들지 못했을까엉뚱하게 젓가락질도 못 하는 서양 사람이 만든 찹스틱 왈츠라는 곡을그걸 어쩌다 우리가 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젓가락 문화권에서 젓가락 왈츠 같은 음악이 작곡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이것도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면서 그냥 지나칠 것인가. - 47.

 


 

젓가락에 대한 흥미롭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젓가락의 출발은 뜨거운 음식을 먹기 위해서인데. 음식이 식지 않게 계속 끓였고 배고플 때 허겁지겁 먹다가 자꾸 화상을 입으니까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젓가락을 쓰게 되었단다. 그리고 유인원과 인간은 닮은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DNA가 아니라 손을 이루고 있는 뼈와 힘줄, 근육이라고 한다. 특히 엄지손가락이 나머지 네 손가락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그 점이 인류문명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그 버릇이 평생을 간다면서 이렇게 덧붙여놓았다. ‘막 젓가락질하는 사람치고 막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213)’ 충격이다. 지금이라도 젓가락질을 다시 배워야하는 걸까 고민이 된다.

 


알고 보면 쓸모 있고 신기한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 일명 알쓸신젓이라고 할까? 일상 속의 소소한 것에 숨겨진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이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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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 -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
이종수 지음 / 학고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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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는 제목만으로 무엇을 다루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책이다. 노란색 표지에 금박의 선이 서로 교차한 모양이 마치 사진찍기 전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구도를 가늠해보는 것 같다. 함께 삶을 일궈가는 사랑하는 가족의 순간을, 일상에서 놓치기 싫은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데 대체 책은 어떤 것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라는 부제와 표지의 동양화의 일부가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유일한 힌트인 셈이랄까.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 화가에게도 붓을 들어야 할 순간이 있듯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 지금 내 마음 두드리는 그림 한 점 있다면 첫걸음이 되기 충분하다. 보물찾기를 시작해보자. 이 봄 지나기 전에 길을 나서보는 거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 당신의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 10


 

어떤 그림을 좋아하세요?” 사람들은 저자에게 자주 묻는다고 했다. 그 질문에 저자는 고심했던 것 같다. 수많은 그림 중에서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이에 저자는 우리 나라의 보물을 떠올린다. 다만 2,643점의 국보와 보물 가운데 그림은 303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비단이나 종이에 그리기 때문에 훼손되기 쉽다고 하지만 그렇다해도 겨우 이 정도인가. 놀랐다.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저자는 보물로 지정된 그림 중에서 22,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 가치나 작품의 의미에 있어 꼭 알아두어야 할 그림 4점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그림을 이야기한다. 이상, 현실, 역사, 보물 아닌 보물로 나누었는데 각각의 꼭지 제목만 보면 어떤 그림을 다루고 있는지 몇 개를 제외하고는 예상하기 어렵다. 저자가 소개한 그림에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한 그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낯선 그림이 더 많았다. 거기다 풍경화는 왜 그리도 다 비슷하게 보이는지. 이 모든 게 그림에 대한 지식이 짧기 때문일거라 생각하니 저자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짬짬이 책의 순서와 상관없이 끌리는 대목부터 읽어나갔는데 책장을 덮고도 특히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소개된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말을 타고 가던 선비가 고개를 돌려 나뭇가지에 시선이 머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저자는 화가가 자신의 봄을 그림 속 주인공에게 투영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선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나무 위의 꾀꼬리일까, 흩날리는 버들잎이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봄날 나는 어땠는가. 바삐 길을 가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깊어가는 봄을 마주했는가.


 

병아리를 낚아챈 고양이를 잡으려는 소동을 그린 김득신의 [야묘도추].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가서 당황한 어미닭과 당돌한 고양이를 한 대 후려치기 위해 담뱃대를 휘젓는 사내, 그 뒤의 여인. 이들의 모습을 잘 포착한 그림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 찬찬히, 때로는 그림을 부분적으로 살펴보니 이전에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똑같은 그림책을 매일 질리지도 않고 읽어달라고 하는 이유가 읽을때마다 그림에서 새로운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고양이가 어미닭이 방심한 순간, 병아리를 입에 물자 고양이를 쫓으려는 사내와 여인의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랄까.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조선판 슬랩스틱 코미디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곤여만국전도].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 사제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당시로선 최신의 정보를 반영한 세계지도다. 하지만 이 지도의 가장 큰 의미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다는 데 있다. 조선에선 숙종 때인 1708, 중국 원본을 모사해 지도를 제작했는데 이 지도의 이본은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가로 531cm, 세로 172cm 8폭 병풍 속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담아낸 지도에는 이국적이고 희귀한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본문에 수록된 사진은 낡고 상태가 좋지 못해 어떤 지도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된 [곤여만국전도]가 복원작업을 마치고 봉선사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 사진을 함께 곁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원된 곤여만국전도를 바라보고 있는 월운 스님 (출처: 경기일보)]

 


마음을 둔 것에는 시선이 오래도록 머문다. 가슴에 담아둔 것은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어떠했나 돌아보게 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본 나의 시선에, 마음에, 가슴에 꼭꼭 눌러 담아둔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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