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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휴식
마크 부캐넌 지음, 마영례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하나님의 은혜는 신학적으로 크게 두 가지 기류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일반은총(Common Grace)'이며, 다른 하나는 '특별은총(Special Grace)'이다. 일반은총이란 인류 보편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일반적인 은혜이다. 태양으로부터 밝음과 따뜻함을 얻을 수 있고, 육지의 동식물과 바다의 물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며, 아름답고 광활한 대자연을 목도할 수 있는 은혜들이 바로 일반은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특별은총은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특별한 은총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구속사救贖史 의 실현을 위해 특별히 작정하신 은총을 의미한다.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임하는 일반은총과는 달리 특별은총은 철저한 하나님주권주의를 표방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나 주관성으로는 절대로 변형되거나 훼손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특별은총이다. 그렇기에 지극히 하나님중심적이며 선택적이고 구속사적인 은총이다. 이러한 위대한 특별은총의 결정체가 바로 기록된 은혜인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대략 1600년 동안 40여명의 기자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어떠한 것인가를 농밀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신성과 성품, 일하시는 방식과 용인술, 원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 등을 망라하여 하나님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학습과 탐구를 할 수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적지 않은데, 그 중 하나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실 때에 독자인 인간을 염두하신 흔적을 강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언어에 구속될 수 없는 절대성과 고차원성을 갖고 계시기에 인간의 지혜와 시각에서 당신을 이해시키기 위한 배려심이 성경 속에 충만하게 함축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는 하나님 자신을 의인화한 메타포에서 충분히 설명된다. 인간의 메타포가 기술이라면 하나님의 메타포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언어는 그 본질성과 고차원성에서 인간의 언어를 압도한다.
피곤하다, 후회하다, 계획을 바꾸다, 등의 언어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신성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어찌 피곤하시고 후회하시며 계획을 바꾸실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고차원적 배려가 성경 속의 메타포적 활자에 오롯이 함의되어 있기에 성경은 신이 전하는 러브스토리이다.
영적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마크 부캐넌의 신간 『하나님의 휴식』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제목을 전면에 배치했다. 피곤치 아니하신 하나님께서 휴식하신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오류인가, 라는 의문과 어리둥절함으로 이 책은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어느새 의문과 어리둥절함은 산산조각 나고 진한 감동과 강한 도전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책의 막장을 확인할 때까지 부캐넌 특유의 아름다운 언어는 스피드의 세계에 살고 있는 분주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휴식>의 웅숭깊은 본질을 증거한다.
마크 부캐넌은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는 <휴식>의 본질과 성질에 대해 얘기한다.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 번째 날에는 쉴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휴식 속에서 인간을 향한 고차원적 사랑이 함의되어 있음을 뛰어난 문학적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과연 영적 언어의 마술사답게 신학의 깊이와 문학의 아름다움을 접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몰입도를 배가시키고 있다.
저자가 여섯 번째 챕터에서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 거론된 안식일의 의미적 차이를 상세하게 풀이한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안식일의 기초를 창조에 두고 있음이 출애굽기라면, 신명기는 애굽에서의 해방에 두고 있음을 지적한다. 출애굽기에서는 에덴동산을 기억하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으며,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일깨워주는 반면 신명기에서는 애굽을 기억하고, 뒤를 돌아보고 있으며, 역사적 정당성을 제공하며, 하나님의 구속을 일깨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출애굽기는 <초청>이고, 신명기는 <경고>라 정리한다. 이 얼마나 깊이있는 통찰인가.
저자의 안식 예찬이 더욱 감동스러운 이유는 안식을 그저 계명을 지키는 차원에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순종과 예배와 겸손과 자유의 의미까지 넓고 깊게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본받음으로 하나님이 되려는 시도를 멈추는 것'이 안식일에 대한 훌륭한 정의라고 갈파한 후 안식을 통하여 우리의 연약함과 왜소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되는 고결한 의식에 참예할 수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이 또한 얼마나 웅숭깊은 해석인가.
하나님의 안식은 일을 끝마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는 저자의 언급에 나는 오롯이 동의한다. 하나님의 안식은 일을 잘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특별 수당이 아닌 것이다. 안식은 그저 순수한 선물이다. 일의 결과를 예견치 않고 그냥 쉬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고차원적인 배려이며 지시이다. 일상에서 완결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서도 쉬어야만 하는 것,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 없이 취할 수 있는 휴식,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순수한 선물로 주신 안식의 본질이다.
우리는 너무 빠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작금의 인류는 속도와의 전쟁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나치게 분주하다. 이미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빛의 속도에 비유될 정도이며 예술과 문화를 위시하여 삶 속 작은 부분 하나 하나까지 초고속으로 변화하고 흘러간다. 이러한 고속도의 시대에서 빠름은 선이 되고 느림은 악이 된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수천 년 전에 계명으로까지 못박으신 하나님의 요구는 점점 녹록해져만 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한 법이다. 아무리 시대와 문화가 빠르고 다양하게 바뀐다 할지라도 창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위엄한 요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정해진 날에 안식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는 명령이고, 이치이며, 질서이자, 사랑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에 승리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왕왕 인식하게 된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라는 성경구절을 묵상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안식을 통하여 일상에서 천국을 맛보고, 포도주 한 잔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맛보며, 근육의 통증 속에서 또는 우리 이마에 흐르는 땀 속에서 기쁨을 맛보기를 기도한다. 내가 나서서 하는 운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운행에 그저 가만히 있음으로 침투되고 싶다.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완전한 주일성수를 다짐하며 한 권의 책을 통해 얻은 감동과 도전을 가슴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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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