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희망은 남아 있다
황형택 지음 / 두란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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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만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단어도 드물다. 세계사는 희망을 가진 인간이, 민족이, 국가가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도출했는지 잘 보여준다. 아무리 힘들고 굴곡진 삶을 산다 하더라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개인과 사회는 항상 승리의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희망이 있는 곳에 승리가 있다. 이는 진리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는 위축되었고,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여실히 드러났으며, 우리나라 또한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실업자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며, 급여 인상과 보너스는 환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비단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고통의 파생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생은 공부할 맛 안나고, 직장인은 일할 맛 안나며, 사업가는 사업할 맛이 안나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뾰로통한 형국이다. 희망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진리가 하나 있다. 희망이 없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제 위치에 서 계시지 못하는 곳에 희망은 없고 불행은 움튼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꿈과 희망의 추동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절망은 없다. 하나님과 절망은 양립하지 않는다. 그분은 희망을 몰고 다니시는 분이다. 희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다.

  두란노출판사의 신간 『언제나 희망은 남아 있다』는 희망의 설계자인 하나님으로의 회귀를 명령한다. 저자 황형택 목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희망이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설교한다. 세상에는 완전한 절망이 없으며 시편 저자 다윗처럼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껍지 않은 평범한 지면을 통해 하나님중심주의 희망학을 강의한다.

  책의 얼개는 크게 네 가지 챕터와 각기 네 가지 소제목으로 되어 있다. 「행복한 만남」, 「마음을 여는 습관」, 「절망에서 희망으로」, 「삶이 열리는 축복」의 네 가지 챕터 안에서 저자는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챕터별 성경본문이 제시되고 관련 예화와 풀이로 글이 구성되었다.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읽어보는데 무리가 없다. 많은 기독도서들이 갖는 건조함은 탈피했다.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의 내용과 구성을 일부분 공유하고 있기에 읽어야 할 대상이 굳이 기독교인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저자는 역설한다. 언제나 희망은 하나님 속에서만 내재하고 발현한다는 것을. 모든 문제는 인간이 일으킨다. 인간 안에서는 근본적인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을 벗어난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희망을 잡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리고 최대한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은 가진 자와 일하지 않으신다. 주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희망 엔진은 역동한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인간과 공유하지 않으신다.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홀로 받으실 때만이 찬란하고 완전한 성질을 지닌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수 있을 만큼 낮아질 때 하나님의 희망 사역은 불을 뿜는다. 이 한 권의 책은 이 확실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 만사가 어둡고 암울하다. 인간의 탐욕과 위선으로 점철된 자본주의는 그 한계와 모순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완전하지 않다. 항상 불안하고 사고가 터진다. 우주를 창조하고 세계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돌아가야 한다. 책의 제목, 언제나 희망은 남아 있다, 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사실(fact)로 통용될 수 있는 고백이다. 

  책이 전달하는 뚜렷한 메시지를 정리하자. 하나님 안에서만이, 언제나 희망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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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의 고백 - 신현준의 신앙고백 포토 에세이
신현준 지음 / 두란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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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연예계에 기독교인이 적잖은 것 같다. 각종 영화제와 연말 방송국의 시상식을 보고 있노라면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는 등의 신앙고백적 소감을 목도할 때면 한 사람의 크리스쳔으로서 뿌듯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 본질적인 질문에 부딪히기도 한다.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는 '고백'인가 하느냐다.

  연예인들의 '하나님' 남발에 대해 뭐라고 비아냥거릴 순 없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고백이며 넓은 의미에서 복음의 증거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나의 나 된 것이 주의 은혜라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공인으로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고백에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본인의 삶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말과 삶의 일치는 공인의 당연한 의무다.

  두란노출판사의 『신현준의 고백』은 영화배우 신현준의 신앙고백집이다. 평소 그가 크리스쳔인줄 모르고 있었던 나는 조금 놀랐다. 어, 신현준이?, 하는 솔깃함에 책의 첫장을 넘긴다. 연예인의 에세이가 대개 그렇듯 많은 사진이 실렸다. 신현준의 진솔한 고백과 이를 적절히 수식하는 사진들을 함께 배치했다. 글과 사진에서 묻어나오는 삶과 신앙의 진정성 있는 고백을 통해 인간 신현준의 단면을 엿본다.

  이 책은 철저한 신앙고백집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저자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그 존재성을 확립시킨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대중으로부터 오픈된 삶을 살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신현준의 진정성이 책 속에 잘 녹아 있다.

  기본적으로 신앙에세이의 틀을 유지하되 자기계발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각 테마가 끝날 때마다 관련 성경구절과 위인들의 명언을 수록했다. 흥미있고 귀담을 만한 일화들도 많이 소개했다. 저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 안에서 배우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삶과 일과 사랑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신현준 자신이 직접 쓴 것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문장은 투박하다. 하지만 솔직하고 담백하다.

  책의 마지막에는 '책 속의 책'이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동료 연예인들의 간증집과 축사를 담았다. 어버이날에 하나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는 방송인 김제동, 예수님을 웃게 해드리도록 노력하겠다는 개그맨 남희석, 기도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었다는 연기자 김원희, 강렬한 고백으로 하나님 사랑을 외치는 가수 이수영 등 많은 동료 연예인들의 신앙고백과 책 출간에 대한 축사는 읽어볼 만하다. 아들의 생명과 관련된 연기자 권오중의 간증은 특히 감동적이다.

  책을 읽으며 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삶일지 사유했다. 어쩌면 나의 삶이자 너의 삶을 사는 게 배우의 삶이리라. 연기하는 순간 곧 '나'는 사라지고 '너'가 된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을 때 연기하는 사람으로서의 번민은 증폭될 것이다. 나를 완전히 비울 때만이 타자의 속과 겉을 연기하는 행위예술이 자연스러울 수 있으리라. 누가 말했던가. 가장 좋은 연기는 내 안의 것을 온전히 비운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어쩌면 좋은 연기와 좋은 신앙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 신현준은 고백한다. 배우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깨끗한 백지 상태로 자신을 비우는 것임을. 신앙도 마찬가지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충돌한다. 욕심, 위선, 허영, 자기영광으로 뭉쳐있는 내 속의 덩어리들을 전부 비운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들어오고 평안은 찾아온다. 나를 버리고 주님이 들어와 작은 예수가 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으로서의 최상의 존재성이 아닐까.

  공인은 삶을 통해 대중과 국민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말과 행동, 꿈과 이상, 법과 도덕 등 모든 부분에 있어 귀감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하나님을 섬기는 크리스쳔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나는 배우 신현준의 진보를 지지한다. 좋은 연기와 연예 활동으로 팬들에게 흥미와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기를 소원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게 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삼는 진정한 예수쟁이 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 비전의 연장선상에 이 책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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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2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현준의 이런 책이 있었군요.
진정한 예수쟁이 배우를 희망하는 배우군요.
그 배우에겐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 님의 리뷰로 새로이 보입니다.
 
춤추는 예배자 - PK와 함께하는 은혜의 실크로드 항해
이요셉 글 사진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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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사무엘하 6:14> 

  여기 한 명의 왕이 있다. 거대왕국의 최고 통치자였던 그는 자신이 섬기는 신의 법궤를 수도로 옮기는 현실이 너무 기뻐 환희에 젖는다. 그에게 그 일은 너무 좋다. 그냥 좋다. 무조건 좋다. 참으로 좋다. 수많은 성가대와 신하들을 대동하여 백성들과 함께 법궤 이동의 현장에서 신을 찬양한다. 왕은 너무 기쁜 나머지 춤을 춘다. 바지가 내려가기까지 춤추며 찬양한다. 왕이라는 신분을 잊은 채 한 명의 어린 아이인양 신을 찬양한다. 논리와 이성과 체면을 모두 망각한 채 오직 신을 향해 종의 심정으로 춤을 춘다. 바로 그 순간, 이 세상 모든 우주의 물리학은 그를 중심으로 운행한다. 그가 사랑하는 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주목하는 순간이다. 

  다윗의 매력에 빠진지도 어언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임을 고백하며 평생 하나님 앞에서 젖뗀 아이와 같은 순전함으로 살았던 다윗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와 모형으로서 내 가슴속에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 여호와의 법궤를 이스라엘로 옮기는 기쁨에 심히 경도된 다윗이 왕의 신분을 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춤추는 사무엘하의 장면은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찬양의 진수를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춤추는 것, 그것조차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행위이다. 

  토기장이 출판사의 『춤추는 예배자』에는 이 시대에 다윗의 춤을 추고자 하는 이들의 열정과 고백이 담겨있다. 'PK(Promise Keepers)'의 일원으로 춤추며 예배하는 14명의 젊은이들과 사진작가 이요셉은 복음의 불모지인 중국땅으로 한 달간의 사역에 나선다. 실크로드 항해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모르며 살아가는 공산권 국가의 이곳저곳에 영혼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열정적인 춤과 간절한 기도와 진실어린 눈물로써. 

  책 속에서 가장 인상깊은 내용은 위구르인(터키계의 유목 민족)이 주민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의 사역이다. 1990년 구소련의 붕괴 이후 유일하게 독립하지 못한 이 지역에 대해 중국정부는 철저하게 감시하며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독립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 피지배 민족은 이슬람으로 똘똘 뭉쳐있는 철옹성의 비복음권이기도 하다. 바로 그곳의 중심부인 카슈가르(Kashgar)의 이슬람 사원인 '이드카 모스크(Id Kah Mosque)'에서 수만 명의 이슬람교도들에게 노방찬양을 전하는 PK단원들의 용기와 믿음은 과히 압권이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적하는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16억의 중국대륙과 12억의 인도땅, 그리고 13억의 모슬렘은 철옹성으로 굳게 닫혀 있다. 수없이 많은 선교사의 파송과 계속된 기도의 공격을 감행하지만 움직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주어가 인간일 때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사용될> 뿐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실 때에 굳게 닫힌 수십 억의 비복음권은 붕괴될 것이다. 언젠가 무너질 13억의 모슬렘과 30억의 중국·인도대륙의 미래를 생각하면 강한 전율이 차오른다.  

  PK 단장 장광우는 고백한다. 주를 위한 딴따라로 천국광대들의 흔적이 되고프다고. 하나님 앞에서 광대는 좋은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춤추며 노래하는 광대. 그것은 3,000년 전의 위대한 광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감의 단면이기도 하다. 나는 기도한다. 부디 지금처럼 천국의 춤으로 하늘 보좌를 높여드리는 PK의 열정과 수고가 계속되기를, 그리하여 이 시대의 작은 다윗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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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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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다. 9일 저녁 한국의 모든 미디어와 대중들은 한민족 최초로 우주를 향하는 젊은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예정된 시각에 발사된 우주선은 90분에 한 번씩, 총 33차례 지구를 돌며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하게 된다. 초속 7.4Km로 움직이는 ISS와의 성공적인 도킹을 위해 한국의 우주인은 가슴을 설레이며 우주로 향하고 있다. 지구 지면 350Km 상공에 진입하기 위한 인류의 이 작은 진보를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과 많은 사람들의 노고, 그리고 한국인들의 간절한 열망과 소망이 지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실까. 태양보다 훨씬 큰 별 1,000억 개 이상과 태양계보다 거대한 은하계를 10억 개 이상을 창조하신, 인간의 두뇌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를 완성하신 창조주 하나님. 과연 당신께서 지구 대기권을 살짝 벗어난 인류의 작은 도약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가지실지 제법 궁금해진다.  

  하나님의 스케일은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계에 오롯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유독 웅숭깊게 빛나는 테마가 있는데, 바로 신의 사랑 아가페(agapē)다. 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성과 차원을 논할 수 없는 고결한 신성은 결국 아가페라는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통해 더욱 명징하게 완성된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한 불변 진리의 러브 스토리다. 하나님의 거대하고 숭고한 사랑의 찬란함을 활자로 승화시킨 성경은 신약성서의 어느 한 구절에 이르러 그 모든 내용을 축약시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개역개정> 

  복음적인 영성과 문학적 감성의 최고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3:16 - 내 생애 최고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적 본질을 얘기한다. 세상 모든 기독교인들이 의무감으로 암송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문장 속에서 루케이도는 아름답고 도전되는 글귀들을 추출해낸다. 루케이도 특유의 강렬하고 간결한 문장은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 속에 숨어있는 참된 진리를 깔끔하게 수식한다. 

  루케이도는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중에 나온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말씀을 사분화하여 네 가지의 타이틀을 뽑아낸다. 추출된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요한복음 3장 16절의 웅숭깊은 본질을 해부하고 분석한다. 성경의 인용과 자신의 고백, 주변인의 간증과 예화를 소개하면서 이 말씀이 왜 '내 생애 최고의 축복'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파한다. 

  사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은 성경 전체의 압축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인간 구원에 대한 그분의 결단,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공의 모두를 함의하고 있는 명문장이다. 더욱이 한 문장 안에 완벽한 논리와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어 고백하면 고백할수록 신비로움이 지수적으로 배가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전 세계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명구절을 암송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의 지면을 목도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좁쌀보다 작은 존재로 바글바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한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라는 것을. 고만고만한 사람들 중에 누가 좀 더 착하고 누가 좀 덜 착한가를 구분하는 세상의 기준이 우습게 느껴졌다. 만약 구원의 잣대가 인간의 불완전한 선(善)에 기반하고 있다면 기독교는 정녕 초라하고 힘없는 종교로 추락하여 몰락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기준,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인간의 구원이 완성될 수 없다는 참된 진리가 무너지지 않는 한 기독교의 번영은 계속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근본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고초를 당할 수밖에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 자신의 결단에서 신적인 사랑 아가페는 태동했고 발현했다. 그리고 그 팩트를 <믿는> 것만으로 무임승차하는 구원론의 진수를 요한복음 3장 16절은 명징하고 적확하게 드러낸다.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을 해부하여 강렬한 단문장으로 승화시킨 맥스 루케이도의 작업에 새삼 감동을 선사받는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셨고, 당신 자신을 주셨으며, 이를 믿음으로 내가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단순한 진리를 곱씹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속으로 안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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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의 희망 메시지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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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해 뚜렷한 확립을 이루지 못했었다. 한 분이시면서 삼위로 존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창세 전에 미리 예정을 하셨다면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란 말인가, 왜 세상에서 주를 믿지 않고 악한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도록 내버려 두신단 말인가, 등의 의아한 질문들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몰이해를 분출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해서인지, 하나님과 인간은 다른 <차원>의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우주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고 움직이는 피조의 세계임을 인정하면서 그 모든 해답이 명징하게 풀리게 되었다. 하나님, 그 분은 우리와 다른 존재인 것이다. 

  복음주의 계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그의 신간 『희망 메시지』를 통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과 계획, 희망과 치유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무지와 불신으로 하나님의 투명하고 완벽한 사역을 목도치 못하는 인간들에게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웅숭깊고 고차원적인지를 얘기한다. 총 여덟 가지 파트로 정리하여 전하는 루케이도의 희망과 치유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근본 성품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품었을 의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라는 단호한 답변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다. 인간의 오감으로 탐색할 수 있는 분이 아니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라는 창조주를 인간의 과학과 잣대로 형상화하려는 의도는 결코 온당치 않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신성을 묵상하며 섬기는 것, 그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임을 루케이도는 일깨우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연 얼마나 농밀할까. 흔히 사람들은 신적인 사랑을 '아가페(agapē)'라 부르며 상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는 당신께서 본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던 점에서부터 완성된다.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하늘 보좌에서 이 낮은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 갖은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당신의 사랑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형용사로도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함의 극치리라.  

  사탄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의 활개를 인내하시는가. 이에 대한 답변 또한 적확하다. 하나님께서는 사탄까지도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악의 번영과 악인의 활개, 선의 핍박과 의인의 고통은 잠시뿐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그렇다. 지구에서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다른 차원에서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수심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마음이다. 본래 인간은 창조적 관점에서 '신뢰'할 존재가 아니다. 그저 사랑하고 보듬어주면 된다. 우리가 신뢰할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신뢰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바라보면 '원수'나 '복수' 등의 단어는 사전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비판과 복수와 정죄는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다. 하나님에게 이것들을 맡기고 사랑의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에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나님의 뜻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하신 수많은 디테일은 한 점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는 불변의 진리이다. 하지만 이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기도>라는 것을 통해 말이다. 기도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중 가장 고차원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모든 일은 누군가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길, 그것은 기도뿐이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완독할 수 있는 이 짧은 메시지는 다양한 주제와 각도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증거한다. 맥스 루케이도는 간결하지만 힘있는 문장으로 힘들고 지쳐있는 이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힘겨운 순간을 위한 우리의 기도'로 책을 끝맺음한다. 기도의 힘은 기도하는 자가 아닌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 있다, 는 명문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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