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기소하다
빈센트 불리오시 지음, 홍민경.최지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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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을까. 미국과 한국을 위시한 대통령제 국가들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형사상 소추가 불가하도록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다. 직무와 관련하여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의회 제적의 2/3 이상의 가결을 통해서 탄핵할 수 있을 뿐이다. 기소는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야 가능하다. 대통령 개인의 불법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거대 리더십이 요동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헌법 장치인 셈이다.

  엄연히 헌법과 법률상으로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 전직 검사는 '대통령을 기소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106건의 재판에서 105건을 승소하고, 이중 21건의 살인 사건에서는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전직 검사 빈센트 불리오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유일무이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 『대통령을 기소하다』는 부시 대통령을 기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증거를 논설한 책이다.

  책을 읽기 전, 자못 도발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치거나 비논리적 외침이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부시 대통령의 살인죄 기소 이유를 독자에게 설명한다. 왜 부시를 기소해야 하며, 증거는 무엇이고, 법률적 가능성은 어떠한지를 구체적이고 생동감있게 언급한다. 또한 열정적이고 흥미있게 논설하고 있어 지루하지도 않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논지 전달로 충분한 공감이 형성된다.

  저자가 부시 대통령을 살인죄로 형사 고발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건은 응당 이라크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4,000명이 넘는 미국 젊은이들이 사망했으며, 이라크 민간인 도합 1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저자는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철저하게 실패한 이라크 전쟁의 원흉으로 부시를 지목했다. 또한 잘못이 없는 한 국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으로서 부시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논리다. 탄탄한 논리와 생생한 증거들, 그리고 법률적 근거들을 열거하며 독자를 설득한다.

  현직 대통령의 기소 여부를 떠나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특별하다. 애초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위해 내세운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후세인이 WMD(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는 당장이라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인이 9·11 테러에 연루되었다고 한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후세인과 이라크는 WMD를 보유하지 않았고, 9·11 테러와는 전혀 상관 없음은 이미 명명백백해졌다. 요컨대 초강대국 미국이 자국에 아무런 잘못도 가하지 않은 주권국가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저자는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을 위해 부시와 그의 참모들이 온갖 거짓과 기만으로 국민을 속였음을 증명한다. 수없이 많은 거짓말, 양심의 부재, 도덕과 인권의 추락, 언론과 지식사회의 역할 부재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미국 사회의 오류와 문제점 또한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부시에게 8년 동안이나 국가 운영을 맡긴 미국민들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비단 저자의 논설을 떠나서라도 지난 8년 동안 미국의 추락은 자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이뤄온 미국의 존재감은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부시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외교 노선은 많은 국가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를 초토화시키며 세계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다. 모두 부시가 재임한 이후에 벌어졌다.

  미국 만큼 빛과 어두움이 대극적으로 공존하는 국가는 드물다.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이면에는 세계 제일의 양극화 국가라는 오명이 존재한다. 가장 부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4,000만 명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존재하는 국가. 국민 중 약 5,000만 명이 의료보험 하나 없이 살아가는 국가. 아무 명분없는 전쟁으로 1조 달러를 쏟아붓고 4,000명의 젊은이가 개죽음을 당하는 국가. CEO의 임금과 직원의 평균임금 비율이 531대 1의 엽기적 경영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 그게 바로 미국이다.

  저자가 주장한 도발적 문제제기는 그 실현성 여부를 떠나 지난 8년 간의 부시 행정부의 무능과 독단이 미국과 세계를 얼마나 불행하게 했는지, 더 나아가 작금의 미국사회가 얼마나 잘못 운행되고 있는지를 꼬집고 자책했다는 점에서 응당 유의미하다. 어쩌면 저자와 같이 의식있고 용기있는 지성인이 아직도 목소리를 내고 있기에 미국엔 아직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부시 정권의 실패와 미국의 추락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부시 정부의 정책과 기조를 그대로 따라하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모토는 시장주의와 미국우방주의다. 하지만 이는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미국발 경제위기를 통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폐해는 만천하에 입증됐다. 또한 자국의 경제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미국의 무능은 이미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부시 정권의 실패를 교훈삼아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위정자들은 고심하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백악관의 주인이 바뀐다. 미국인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건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부시는 분명 무능했고 독선적이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그대로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민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지난 8년 동안 잘 봐왔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 또한 국민의 힘이자 책임이다.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민들의 수준은 다시 한 번 검증받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앞으로 남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민들의 수준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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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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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행작가 오소희가 있다. 그녀는 여행을 사랑한다. 또한 사람을 사랑한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명소'와 '복닥거림'은 그녀에게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비본질보다 본질을 보고, 외연보다 내포를 보며, 비인간보다 인간을 보는 뚜렷한 여행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창조해내는 여행수필 속에는 깊은 향기가 배어 있다. '인간'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의 향기가 말이다.

  그렇기에 오소희는 유명하고 화려한 곳보다는 조용하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찾는다. 터키에서는 올림포스에 경도되어 시간이 정지되었다. 라오스에선 욕망이 멈추는 것을 체감했다. 9개월여만에 선보인 그녀의 신간은 어떤 '공간'을 담아냈을까. 그녀의 공식적인 세번째 여행에세이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는 '하쿠나 마타타'라는 스와힐리어 문구를 제목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궁금증에 살포시 귀띔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족하고 빈곤하며 소외된 공간 '아프리카'의 이야기라는 것을.

  아프리카가 어디인가. 에이즈와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리는 비운의 대륙이자 물과 식량이 없어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들이 굶어죽는 대륙이 아니던가. 또한 문명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미개한 문화와 원시적인 생활환경을 갖고 살아가는 대륙이며 인간의 욕망과 인권이 최소한의 분량조차 보장되지 않고 정지된 곳이기도 하다. 신조차도 버린 대륙이라 불리며 인류의 소외와 결핍이 하나의 대륙 안에 집대성된 어둠의 공간 아프리카. 우리의 상식은 아프리카를 척박하고 막막하며 우울한 땅이라 부르고 있다.

  반면 아프리카는 또 어떤 곳인가. 넓은 초원에서 수많은 야생 동식물들이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땅이자 장엄하고 웅장한 자연 환경으로 인간의 오감을 압도하는 거대한 대륙이 아니던가. 극도의 느긋함과 여유로 '태초적' 인간다움이 서려있는 공간이며 가장 낮아져 있어 더이상 낮아질 수 없기에 높아질 미래를 소원할 수 있는 희망의 땅이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 오소희는 아프리카가 그녀에게 선사할 것을 믿기에, 더욱이 그 '선사'가 파생해내는 예기치 못한 '기대'와 '설레임'을 소망하고 있기에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리라.

  책이 꽤 두껍다. 할 말이 많았을 게다. 작가는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거대한 지면 위에 아프리카를 담아냈다. 아들 중빈과 함께 한 한달여의 여행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떨 때는 배꼽이 빠질 정도의 코믹함으로, 어떨 때는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으로, 어떨 때는 주옥같이 정제된 명문장으로 독자의 머리와 가슴을 추동한다.

  책의 구성은 일반 여행수기의 포멧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총 45개의 테마로 구성된 에피소드가 텍스트의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텍스트를 수식할 만한 적확한 사진을 실었다. 작가가 직접 디카로 찍은 다양한 사진은 작가 특유의 정갈한 문장과 함께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대륙 아프리카를 잘 소개한다. 탄자니아를 시작으로 우간다를 거쳐 르완다에 이르는 한 달간의 동아프리카 여정을 적절한 템포와 높낮이로써 흥미있게 담아냈다.

  그녀가 담아낸 아프리카는 기쁜 곳이다. 춤추는 곳이며 걱정이 없는 곳이다. 모든 것이 느리고 여유있고 부담없이 흘러간다. 우리에게 '심각한' 것들이 그곳에서는 '대충대충'이라는 미명으로 신비롭게 부드러워진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속도는 '선善'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느린 것이 미덕이 되고 그 수치를 측량하지 않는다. 실존 자체가 행복이 되고, 그 행복의 원초성이 춤추는 이유가 된다. 

  또한 그녀가 담아낸 아프리카는 아픈 곳이다. 가난과 질병이 만들어낸 인간의 거짓과 비굴함이 어린 아이의 순수한 심장마저 왜곡시킨다. 우간다와 르완다의 접경지역 부뇨니의 고아원에서 겪은 '닭 사건'의 충격으로 그녀는 '여행자'에서 '관광객'으로 추락한다. 모든 여행마다 배터리가 방전되고 충전되는 주기가 있기 마련인데, 아프리카의 주기는 유난히 짧기만 하다. 아프리카의 아픈 단면을 목도할 때면 어느새 여행자는 길 잃은 미아가 된다.

   오소희의 발군의 관찰력은 아프리칸의 구체적 면면까지 꼼꼼히 포착한다. 소소하고 다양한 피사체를 잡아내되, '인간'과 '본질'이라는 그녀 특유의 관찰력 브랜드의 속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프리칸의 각기 다양한 말과 행동, 표정과 인식 등은 모두 그녀의 탐구 대상이다. 그러나 관찰과 탐구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녀와 아들 중빈에겐 '느낌'과 '조화'가 있다. 서로의 '다름'으로 상대를 재단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을 때, 순간, 하나의 소우주를 건설하여 그 우주 속에서 상대와 하나가 된다. 인간에 느끼며 조화하는 열정이 두 모자의 마음속에 오롯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까지 여행이 그들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지혜의 선물이 아닐까.

  에필로그가 자못 인상적이다. 여행의 네 가지 단계를 정리했다. 작가가 언급한 여행의 네 단계는 이렇다. 처음엔 '나'만을 보다가,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 다음,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릅답게 한다. 하지만 어느 단계의 여행자이든, 아프리카에 가면 평범해진다고 작가는 일갈한다. 아프리카가 시공간의 지엽성으로 조망하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땅이기에, '지구'라는 가장 큰 공감대로 묶어질 수밖에 없는 역할과 의무를 선사하는 신비한 땅이기에 그럴 것이다. 

  결국 아프리카를 권하는 문장으로 에필로그는 끝맺음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우리가 같은 행성에 공존하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이 2세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지구인'이라는 공동체적 삶과 사랑에 대한 일깨움에 있었음이리라.

  작가 오소희를, 그녀의 문장을 만난지도 어언 1년하고도 반이 지났다. 참 좋은 '만남'이다. 내가 그녀의 문장을 흠모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온 삶과 우주적 통찰이 멋진 글귀 위에 용솟음치며 나를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녀의 내공은 여행을 통해 공급받은 경험과 깨달음에 기초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동시에 내가 그녀의 여행수기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그녀의 여행 목적과 내 독서관의 오롯한 부합, 그것이 이 아름다운 만남의 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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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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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면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 반면 여러가지 면에서 동물보다 못한 면도 있다. 인간이 유독 동물에 비해 많이 실행하는 부정적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배신'이다. 인간과 배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다. 두 남녀의 소소한 실연에서부터 국가와 사회에서 자행되는 배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수없이 많은 배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물론 동물 세계에서도 배신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간 세계의 그것과는 빈도와 차원이 다르다. 과히 인간사는 배신의 역사이다.

  오늘날처럼 배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적은 드문 것 같다.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지도 어언 몇 달이 지났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면서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강행 수입하려 했다. 수십 만의 촛불 인파는 수도 서울을 덮었고 대통령과 정부는 움찔했다.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하여 세계 경제에 배신을 때렸다. 금년에 불거진 국가와 사회에서의 다양한 배신의 형태를 바라보면서 국민들의 고개는 갸우뚱거렸고 마음은 불편했다.

  2004년부터 교양, 상상력, 거짓말, 자존심을 주제로 강연회를 주최했던 한겨레출판사에서 금년에는 배신을 주제로 선택했다. 매 해마다 깊은 통찰과 용기있는 지성의 목소리를 쏟아낸 지식인을 강사로 초빙하여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잘 조명해왔다. 매년 초에 진행되는 강연회에 나는 단 한 번 참석한 적이 없다. 게으름과 의지 부족이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강연을 정리하여 출간된 책은 꼭 만나보고 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출판사의 『배신』은 다양한 코드로 배신의 성질과 의미를 궁구한 강연집이다. 배우 오지혜 씨의 재치있는 사회로 진행된 강연은 인문학을 위시하여 자연과학과 심리학, 사회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 코드로 배신을 천착한다. 사회자 오지혜의 매끄러운 진행은 단연 돋보인다. 청중의 날카로우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 수준 높은 질문 또한 인상깊다. 강연자의 성실하고 통찰력있는 답변도 훌륭하다.

  올초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김용철 변호사의 강연이 전면에 배치됐다. 삼성에 대한 자신의 배신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삼성의 배신을 대비시키며 논지를 이어갔다. 정혜신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배신의 의미를 풀어냈다. 진중권의 날카롭고 기백있는 외침은 여전하다. 과학의 시각으로 배신의 정체성을 파헤친 정재승의 강의도 인상깊다. 정태인의 신자유주의와 한미FTA에 대한 반대 담론은 언제 읽어도 설득력을 지닌다. '21세기 시리즈'의 강연자로 첫 인연을 맺은 조국의 강연도 읽어볼 만하다. 한국 정치와 지식사회의 모순인 '폴리폐셔(polifessor)' 현상의 일그러짐을 법률가의 시각에서 잘 지적했다.

  정혜신이 얘기했듯이 개인의 배신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행동은 에고이즘(egoism)을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내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고 타인의 행동은 현상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내가 당한 배신은 과대 해석하며, 내가 행한 배신은 무자각한다. 이러한 배신에 대한 몰이해와 역설적 행위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배신을 천착할 수 있는 지혜를 차단시킨다. 김용철 변호사에 의해 폭로된 삼성 비자금 사건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따져보자. 탈법과 탈세를 일삼으며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 아들에게 거대 산업 자본을 물려주려 했던 국내 최고 기업의 행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법률을 공부한 한 남자의 양심있는 고백이 한낱 조폭 의리로 둔갑한 해괴망측한 배신 논리로 재단되어야 하는지를.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배신했다면, 삼성은 '국가'와 '법률'과 '국민'과 '상식'을 배신했다. '삼성의 배신, 나의 배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의 전면에 선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배신은 어감면에서 기본적으로 부정적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보다 통찰있게 배신의 의미를 궁구할 필요가 있다. 해서는 안 될 배신이 있고, 반드시 해야 할 배신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배신에 대해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 자유와 행복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신해야 하며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올바른 배신이 우리 사회에서 역동적으로 작동할 때 21세기를 사는 지혜로서 배신의 의미는 더욱 새롭게 재창조될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시작을 여는 데 이 한 권의 인문학 서적은 자못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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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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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콤플렉스가 있다. 내게도 응당 콤플렉스는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여행의 문외한이다. 서른의 나이를 넘으면서도 여행의 경험은 일천하다. 이십대의 젊은 시절, 나는 여행에 진중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상을 벗어남으로써 참다운 나를 관찰하는 귀한 작업을 한낱 '노는 것'으로 가치 격하시켰다. 또한 돈과 시간의 여유를 우선 전제하며 여행의 실행을 재단하기도 했다. 여행에 관한 내 몰이해는 이십대의 시절을 졸업했음에도 여권에 스탬프 한 번 찍지 못한 현재상을 만들어놓았다. 아.. 부끄럽도다..

  이러한 내 여행 콤플렉스는 책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나는 책과 여행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책읽기의 종국은 인간 성찰로 귀결된다. 여행의 깊은 맛은 다양한 인간 탐구에 있다고 한다. 요컨대 책과 여행의 공통점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치인 '인간'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기반한다는 점이다. 내가 여행의 결핍을 책의 보완으로 치환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여행에세이는 내가 즐겨 읽는 분야이다. 잘 다듬어진 한 권의 여행기를 통해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고결한 탐구에 간접적으로 동참케 된다.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한비야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고, 지역성보다 인간성에 주목하는 오소희의 여행 철학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나운서라는 명함을 버리고 무작정 떠났던 손미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여행! 믿건대,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경외스러운 행위리라.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2005년에 EBS를 통해 방영된 장기여행자들의 다큐멘터리 <On the Road>를 책으로 출간한 버전이다. 여행 프리랜서 박준은 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했다. 박준 자신의 여행기라기보다 여행지에서의 시공간을 함께 한 다른 이들의 목소리다. 지구 곳곳에서 온 다양한 인간상들의 모습이 인터뷰 속에 잘 배어 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을 취재했다. 인종, 지역, 국적, 성별, 연령이 각기 다른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각의 문화와 습속, 철학과 여행관을 풍성히 들려준다. 쉰이 넘어 배낭 메고 떠난 부부가 있는가 하면, 태국에서 배타적인 유대인이면서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기백있는 여자도 있다. 이메일 보내는 방법도 모를 정도로 탈속적인 스님이 있는가 하면, 학교를 자퇴하고 떠날 만큼 여행을 사랑하는 소녀가 있다. 

  저자의 취재는 '다양성'의 가치가 지구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남녀와 노소를, 오대양과 육대주를 구분치 않는 저자의 취재 목적이 십분 이해된다. 60억의 인류는 각기 하나의 '원본'이다. 사본은 없다. 아무리 문화와 인종, 지역과 종교로 가름되었다곤 하지만 한 사람의 본질 속에 내재된 각각의 독특한 신의 성품을 외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저자는 여행을 통해, 곧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각기 다른 원본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 책이 조명하는 사람들은 전부 장기여행자들이다. 여름방학 동안 한두 달 유럽여행을 하는 건 이 책에 소개된 여행자들 앞에선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다. 최소 1~2년은 기본이다. 계획없이 떠나왔으면서도 몇 년씩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들네의 일탈성이 녹록지 않다. 그들은 왜 떠났을까.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일탈하고 있는 걸까. 그런 용기와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상을 벗어던지고 '무조건' 떠나는 그들의 기백이 경외스럽다. 나는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

  책의 말미는 저자의 여행 예찬으로 갈무리된다. 저자는 말한다. 여행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지만 중독은 아니라는 것을. 중독은 겸손을 배운다는 여행의 의미에 어긋난다는 것을. 그렇다. 여행은 인생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을 통해 인생의 집약을 조망하고, 자기 자신을 입체화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하며, 그 가운데 겸손을 함양한다. 종내 자아를 웅숭깊게 궁구하는 힘이 여행의 본질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리라.

  추석이 지났다. 엄연한 가을이지만 날씨는 덥기만 하다. 하늘은 청명하다. 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환경이다. 창 밖의 일렁이는 나뭇잎은 내게 나오라고 유혹한다. 차에 가득한 기름도 내 일탈을 부채질 한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또' 다짐한다. 이번 주말에는 반드시 어디론가 일탈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간 그 지독한 콤플렉스의 고리를 끊어버릴 것임을.

 

Thanks to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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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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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읽기를 사랑한다. 찬탄하며 경외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자의 지혜를 내 가슴속에 품는 것이며, 남의 머리를 차용하여 내 사유를 비트는 일이다. 러셀이 고백했듯이 사랑의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모두 독서를 통해 해소된다. 믿건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우주와의 조우이자, 내 자신이 그 우주 속으로 귀속된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리라.

  나는 책읽기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꼽는다. 책을 통해 작가를 만나고,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인을 만나며, 그것을 거울 삼아 내 자신을 만난다. 모든 책은, 특히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성찰로 귀결된다. 인간의 존재성은 그 어떤 지식과 정보보다 우선한다. 내가 지적 탐구로서의 책읽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인문학적 책읽기의 웅숭깊은 가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인류사의 수많은 지성들 또한 책읽기를 통해 지적 화두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고민들이 하나의 결과물로 합치된 것이 바로 고전이다. 고전에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사색과 열정이 담겨있다. 또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지성의 고민들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고전을 읽으며 우리는 맞닥트린 현실적 난제를 풀이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요컨대 책읽기는 시대와 문화와 공간을 뛰어넘는 최고도의 지적 소통이자 희망의 통로이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책읽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문서다. 왜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역설한다. 저자 이권우 씨는 스스로 도서평론가라 칭할 만큼 책에 대한 사랑이 녹록지 않다. 책벌레의 한 사람으로서 죽어도 읽지 않는 우리 시대의 고민을 공론화하면서 책읽기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 논지한다.

  우선 저자는 왜 읽어야 하는지를 언급한다. 21세기는 영상문화의 범람으로 문자문화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중들은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 쓰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에 열광한다. 그렇기에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높은 의식 수준은 점점 요원해져만 간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책읽기는 더욱 긴요하며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책읽기의 논거들은 다양하고 공감적이다. 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지식과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되고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열어보이며 정서적 안정을 얻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며, 시간 죽이기에 그만인 데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는 것이다. 책읽기에 대한 내재적 동기뿐만 아니라 외재적인 면을 동시에 담고 있는 훌륭한 풀이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책읽기는 인간의 외적 성장은 물론 내적인 성장까지 담보하는 훌륭한 '행위'인 것이다.

  다음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얘기한다. 이 파트가 자못 실용적이며 고개가 주억거리는데,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천천히 읽어야 하고, 깊고 겹쳐서 읽어야 하며, 읽은 후 토론하고 글쓰기로 정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의 논지는 내 책읽기 철학과 완전히 합치된다. 먼저 책읽기의 속도를 보자. 독서는 다독일 때 가장 위험하다. 다독은 책읽기의 빠른 속도를 전제하기 마련인데, 이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보는' 차원으로 하향화시킨다. 가슴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빠른 속도가 나올 수 없다. 무조건 느려야 한다. 천천히, 쉼표 하나 놓치지 않고 진중히 읽을 때만이 비판적 안목이 고양되고, 활자를 거울 삼아 자아를 덧대어 삶의 의미를 질문할 수 있다.

  깊이 읽고 겹쳐 읽는 것은 지식과 교양을 폭넓고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깊게 읽는다는 것은 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담고 있는 분야의 책을 여러권 동시에 읽게 되면 편견과 선입견이 사라진 균형있는 독서가 가능하다. 너무 한 쪽에 치우치거나 일면적 지식의 함양만으로는 건강한 독서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주제와 분야에 대한 다양성을 넓히는 일은 균형있고 건강한 독서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읽은 후 토론하고 글쓰는 것은 가장 긴요한 독서법이다. 동일한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마다 느낌과 호오는 천양지차다. 책은 지은이를 떠난 이후에는 철저히 독자의 것이 된다. 구입한 것이든 도서관에서 대여한 것이든 한 권의 책에 대한 주인은 응당 읽고 있는 사람이다. 활자에 대한 반응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다르고 너가 다르다. 그렇기에 서로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존중하며 토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독서는 결국 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독후감 쓰는 습관을 독서 완성의 고갱이라고 단언한다. 책을 읽은 후 내용을 요약하고 느낌을 갈무리함에 있어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 본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쓰기'는 '읽기'의 결과이자 완성이다. 책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의 편린들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채 일렁인다. 이를 제자리에 잡아주고 조립하며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독후감은 책읽기를 갈무리하는 데 가장 적확한 출력 방식이다. 서평쓰기의 쾌감은 지속적으로 '쓰는' 자만이 안다. 그것은 책읽기를 완성하는 가장 조화된 인과적 활동이며, 더 나아가 문자문화의 가치를 개인의 역량 속에서 발현시키는 위대한 작업이다.

  21세기를 '도상적 전회(iconic turn)'의 시대라고 한다. 사회의 주요한 소통매체가 문자에서 영상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상과 문자는 매체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영상으로 문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사유와 의식 자체가 언어로 구조화한 이상, 영상문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 바탕에서 문자 코드는 여전히 작동할 수밖에 없다. 문자문화의 흔적은 인류의 종말까지 인류사에 끊김없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문화와 사회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책읽기의 '고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마르킨 루터는 말했다. 모든 위대한 책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이며, 모든 위대한 행동은 그 자체가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을. 책을 읽을 때 희망이 있다. 책읽기의 수고를 통해 세계는 변혁된다.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의 의미와 가치는 끊임없이 장려되고 고양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매우 요긴한 책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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